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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대적하는 세력과 경배하는 세력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9)
2023년 04월 25일 (화) 13:53:52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마 2:1-23

  헤롯의 소동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 땅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경배하는 세력’과
‘배척하는 세력’의
두 가지 상이한 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게 되어 멀리 동방에서 베들레헴까지 방문하여 그에게 경배하는 이방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그식을 듣고 당황하며 소동하는 무리가 있었다. 마태는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라는 것을 기록하였다(3). 마태가 이것을 기록한 것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예수님의 탄생 시기부터 박사들과 헤롯 사이에 나타나는 것처럼 메시야에 대한 상이한 반응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 당시 유대 땅에는 이미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인정하는 세력’과 ‘배척하는 세력’의 두 가지 상이한 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롯 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그가 유대를 다스리는 유일한 왕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3절에서 ‘소동하다’는 동사는 ‘타라소’(ταράσσω)인데 ‘마음이 동요되는 상태’(agitate)를 뜻한다. 이러한 소동의 주인공이었던 헤롯은 B.C. 40년 로마 제국 원로원에 의해 유대 땅 분봉 왕으로 임명되었다.2) 헤롯이 유대 왕으로 임명된 것과 관련하여 카슨(D. Carson)은 “그는 부유했고, 정치적으로 재능이 뛰어났으며, 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충성을 다하는 행정가였다. 따라서 로마의 황제들로부터 호의를 얻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영리한 왕이었다”라고 평가하였다.3) 건드리(R. Gundry)는 마태가 헤롯에 대해서는 ‘왕’이라고 했으나(1) 예수님에 대해서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헤롯의 통치권의 위법성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왕권의 적법성을 암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헤롯에 대해서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며 이두메인(Idumean)이었다”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4)

헤롯 왕은 ‘이두메’인 즉 ‘에돔’ 족(Edomite) 출신으로 유대 나라의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5) 따라서 그는 유대 지파 출신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왕권에 대한 큰 위협을 느끼고 극도로 동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롯 왕은 이 문제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유대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소집했다(4a). 카슨(A. Carson)은 여기 소집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 대해 “예루살렘에 살면서 신속하게 왕의 자문에 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6) 따라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산헤드린 공의회가 공식적으로 소집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마태가 예수님의 출생지로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왕족으로서의 예수님의 위치,
즉 다윗 왕가를 배출했던
부족과 지역으로부터
오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헤롯 왕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자문을 얻으려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4b). 그들은 헤롯 왕의 질문을 듣고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였다(5).7)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 탄생’에 대한 예언을 찾아내었을 것이고, 헤롯에게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했던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대답했을 것이다(6).8) 여기 인용되고 있는 말씀은 정확하게는 ‘베들레헴’이라는 지역을 언급하고 있는 미가서 5:2과 ‘이스라엘의 목자’를 언급하고 있는 삼하 5:2의 결합 된 형태의 인용 구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마일 정도 떨어진 비옥한 농촌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죽어 묻힌 곳이며(창 48:7), 다윗의 조상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살던 곳이며(룻 1:22),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다.9) 따라서 마태가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베들레헴’으로 특정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과 ‘다윗 왕’을 연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건드리(R. Gundry)는 마태가 예수님의 출생지로서 ‘베들레헴’을 언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다윗 기독론’(Davidic Christology)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특히 2장에서 ‘유대’라는 지역에 대해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것은(1, 5, 6) “예수님의 왕족으로서의 위치, 즉 다윗 왕가를 배출한 부족과 지역으로부터 오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0)

이 구절에서 인용되고 있는 구약의 예언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단지 ‘다스리는 자’(ἡγεμών)자로 묘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목자’(ποιμαίνω)가 되실 것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을 ‘목자’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마태복음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11) 예수님이 구원의 메시야로서 이 세상의 왕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단지 ‘다스리는 자’의 위치를 넘어 ‘목자로서의 왕’(shpherd-king)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J. Calvin)은 “마태가 다스리는 자와 목자를 결합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이시지만 동시에 그들을 돌보는 사명을 받으셨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12)

 

실패한 무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헤롯 왕과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하고 경배하는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었다.
유대 땅 그 어디에도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맞이하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이처럼 메시야의 탄생과 관련한 성경의 근거를 헤롯 왕에게 제공하면서도 자신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를 경배할 수 없었다.13) 이러한 관점에서 모리스(L. Morris)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실지 세밀하게 알고 있었으나 그를 처음으로 경배한 사람들은 바로 이방인들이었다”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14) 이 시대에도 예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고 있으나 그를 향해 경배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교회 내부에서도 예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종교적인 진리를 가르쳤던 위대한 교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예수님에 대해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진심으로 경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는 교회 밖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전해야 하는 선교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정보를 얻은 후에 헤롯 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별이 나타난 때가 언제인지’ 자세히 묻게 되었다(7). 사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그에게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한 생각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운스(R. Mounce)의 지적처럼 정치적인 계산을 하면서 “유대인의 진정한 왕이 수면에 나타나게 된다면 그의 권력은 신속하게 무너질 것이다”라 판단을 했을 것이다.15) 이러한 관점에서 모리스(L. Morris)는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사람이며 로마 제국에 의해 만들어진 왕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박사들이 가지고 온 소식은 꺼림칙하게도 왕권에 대한 청구자로서 다윗 왕의 혈통을 가진 진정한 후손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16)

그러기에 헤롯 왕은 동방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고 부탁했을 것이다(8). 즉 겉으로는 그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려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제는 자신의 정치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을 품고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을 것이다.17) 그러나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 것은 유대 사회와 헤롯 왕에게 정치적인 혼돈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찾아 그에게 경배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던 것이다(2).
 

동방 박사들의 경배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를 드린 것은
단지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경배를 드린 것을 뜻하고 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찾으러 갈 때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다”고 하였다(9). 이 구절에는 ‘그리고 보라’(καὶ ἰδοὺ)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그 배후에 있었음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18) 이 구절이 보여주는 의미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탐사를 마칠 수 있었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9) 그러기에 그들은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마태는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서 ‘기뻐하다’는 뜻의 동사 ‘카이로’(χαίρω)를 수식하고 있는 표현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즉 ‘큰 기쁨’(χαρὰν μεγάλην)이라는 표현과 함께 ‘넘치게’(exceedingly)라는 뜻이 있는 부사 ‘스포르다’(σφόδρα)라는 표현이다. 마태는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기쁨은 ‘아주 큰 기쁨’이었으며 또 ‘넘치는 기쁨’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보여주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박사들이 누구일지라도, 또 그들이 어디서 왔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경배하러 온 것이다”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11절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목적은 메시야이신 왕에게 겸손하게 경배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20) 따라서 그들이 ‘메시야의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가 누워있는 집을 찾았을 때 “그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하였다(11).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마태는 요셉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아기가 먼저 언급되고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의 어머니’(τῆς μητρὸς αὐτοῦ)라고 지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건드리(R. Gundry)는 “1:18에서처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그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21) 또한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엎드리다’라는 동사는 ‘핖토’(πίπτω)인데 마태복음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2) 여기 나타나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충성과 복종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23) 그들은 그곳에 그의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었으나 ‘아기 예수님께’ 집중하고 오직 그에게 충성과 복종을 나타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누가 진정한 경배의 대상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엎드리다’는 동사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경배하다’라는 동사는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인데 마태가 그이 복음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다. 이에 대해 모리스(L. Morris)는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는 마태에게 중요했다”라는 것을 지적하며 마태복음에서 “그는 예배라는 단어를 10번이나 언급하고 있다”라고 하였다.24) 혹자는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라는 동사에 대해 신적인 존재에 대해 ‘예배를 드리는 의미’보다는 단지 ‘충성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 동사는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이 동사가 주로 ‘신적인 존재에 대해 경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료하시거나 혹은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실 때 그에 대한 사람들의 놀람이나 영적인 반응을 표현하면서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란스(R. France)는 “마태는 예수님께서 인간을 넘어서는 위치에 있음을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25) 이렇게 하여 마태는 그의 복음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예배의 대상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11절에서도 이러한 차원에서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라는 동사가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하나님의 현존의 나타남이시며(1:23), 독특한 의미의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2:15).26)

마태는 이처럼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유대인들과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야가 오셨을 때 오히려 그를 영접하는 데 실패하였지만, 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원의 메시야를 찾아 경배하였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면서 이방 세계를 향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처음부터 강조하는 것이다.

 

주(註)

1) Donald A. Hagner, op. cit., 23.
2) 헤롯은 B. C. 73년경 출생하였다. BC 47년경 로마 제국에 의해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BC 40년경 ’유대 왕‘이 되었다(David Hill, op. cit., 81).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는 총독이 되었다가 B. C. 40년에는 로마 제국의 원로원으로부터 유대 지역 전체를 다스리는 분봉 왕의 권한을 받은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cf. D. A. Carson, op. cit., 84, Robert H. Gundry, op. cit., 26, 그리고 Leon Morris, op. cit., 35).
3) D. A. Carson, op. cit., 84.
4) Robert H. Gundry, op. cit., 27. 
5) R. T. France, op. cit., 82.
6) D. A. Carson, op. cit., 86.
7) cf. 2:1, 요 7:42.
8) 미 5:2. cf. 역상 11:2, 요 7:42. 예수님의 출생지에 대해서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과 ‘에브라다’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갈릴리 지역에 있는 ‘베들레헴’과는 다른 곳이다(cf. 수 19:15). 
9) Robert H. Mounce, op. cit., 12.
10) Robert H. Gundry, op. cit., 26.
11) 9:36, 25:31-33, 26:31. cf. 요 10:1-18.
12) John Calvin, vol. 1, op. cit., 86.
13) 이와 관련하여 사도 요한도 메시야가 유대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했다”고 말한다(요 1:11). 
14) Leon Morris, op. cit., 38.
15) Robert H. Mounce, op. cit., 14. 
16) Leon Morris, op. cit., 37.
17) 이러한 요구는 헤롯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고 경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 하나님이 보내신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세웠다는 것을 미리 알려 애굽으로 피난을 가도록 명했던 것이다(13).
18) Leon Morris, op. cit., 40.
19) Donald A. Hagner, op. cit., 30.
20) William Hendriksen, op. cit., 155. 
21) Robert H. Gundry, op. cit., 31.
22) ‘핖토’(πίπτω)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엎드리다’라는 뜻으로(11, 4:9, 17:6, 18:26, 29, 26:39), ‘무너지다’(7:25, 27), ‘떨어지다’(10:29, 13:4, 5, 7, 8, 15:27, 21:44, 24:29), ‘빠지다’(15:14), ‘넘어지다’(17:15)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3) Donald A. Hagner, op. cit., 31.
24) Leon Morris, op. cit., 37.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라는 공사는 2장에서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으며(2, 8, 11) 그 외에도 8:2, 9:18, 14:33, 15:25, 20:20, 28:9, 17에 나타나고 있다. 
25) R. T. France, op. cit., 82. cf. 14:33, 28:9, 7.
26) Donald A. Hagner, op. cit.,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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