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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4
2023년 04월 24일 (월) 13:03:01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1969년 미국의 남부 명문 사립대인 밴더빌트 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교수는 조국 방글라데시에 귀국에서 가난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며 버티다 결국 길거리로 내몰리는 자국민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대학 교수직을 과감히 내던지고 빈곤의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설립, 무담보 대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라민 은행’은 1175개 지점으로 그 수를 확장하였고 240만 명에게 3조 6000억 원의 대출금을 제공하였다.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보여준 삶의 정신과 가치와 방식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사도 바울이 보여준 삶의 철학과 방식, 그리고 목회의 핵심가치와 실천적 방식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목회자들이 직면한 고통(아픔) 극복을 위한 가치실현 방법과 삶의 성취 동력을 살펴보는 오총균 목사(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의 <특화목회론>을 연재한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수행해 왔던 일반적인 목회개념(concept)을 뛰어넘는 종합적인 목회개념과 내용(contents)을 포함하는 「특화목회론」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오총균 목사/ 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부회장

   
 오총균 목사

 

  4. 자신만의 목회 노하우를 개발하라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하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가갔다. 단순한 보조금 지원 방식만으로는 계속하여 구걸하고 싶은 노예근성만을 심어 주어 자립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았다. 고기를 항시 잡아 공급해 주는 방식은 오히려 자립 의지를 저해하고, 이들 스스로가 고기를 직접 잡아 생계를 유지해 가도록 삶을 확장시켜 주는 방식이 그들의 자립을 실질적으로 돕는 길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가가 ‘인간자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들에게 ‘자신감’과 ‘자립의지’를 북돋워 주었고 ‘창의력’과 ‘열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비록 경제적 담보물이 없는 빈민들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인간적 자산만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전제로, 빈민들에게 무담보로 대출금을 제공하였다. 그는 무담보로 소액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빈민들에 대한 무한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었다. 소액 대출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빈민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간자산’을 일깨워 주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였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세워 가도록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이 같은 빈민에 대한 무한 신뢰와 믿음이 가난한자들을 거름더미에서 일으켰다(시113:7).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통해 자국의 사회적 약자들을 ‘노예인생’에서 ‘자립인생’으로 바꾸어 놓았다.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자기만의 특유 방식으로 핵심가치를 실천하며 모든 사람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을 창출해 나갔던 것이다.

목회에서도 이 같은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목회자가 ‘보조금’에 의존하여 사는 방식으로는 목회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보조금을 지원받는 방식은 고비를 넘기는 단기처방 효과에 탁월한 방식이다. 그러나 자칫 이 방식이 의무가 되어 지원금에 의존하여 사는 삶이 고착화되면 타성에 젖어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삶은 ‘보조금 지원처’에 정신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보조금 지원에 의존하여 사는 한은 현대판 노예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방식은 노예인생의 수명만 연장할 뿐이다. 보다 근원적인 빈곤 해결책은 목회자 스스로가 자신이 소유한 인간(영적)자산을 자각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목회 노하우를 개발하여 목회 잠재력을 최상으로 발휘하도록 자신을 세워 가는데 있다. 목회자에게서 ‘자존감(自尊感-self esteem)’은 생명과도 같다. 자존감이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권위와 품위와 가치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이것이 손상되거나 무시당하면 속이 상하고 분노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빈약하거나 무너지면 목회의 존립 기반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목회자로서의 자존감이 허약한 상태에서는 목회 지도력(leadership)을 발휘할 수 없다. 목회 자부심이 훼손되면 목회 지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모든 목회자들이 영적 지도력을 당당히 발휘하는 길은 무한한 영적(인간적) 자산(資産)이 목회자들 내면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음을 자각하는데 있다. 이로써 자신만의 철학과 의미를 담은 독점 방식의 주체적 목회가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타에 의존하여 확보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취해야 한다. 목회의 해당 분야하면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도록 목회능력을 개발하고 목회실력을 구비해야 한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목회 노하우를 지녀야 한다. 목회의 진입장벽을 높여 남들이 따라 잡을 수 없는 자신만의 목회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6가지 영역에서 목회 노하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가치실현에 부합하는 목회상황을 설계하라

목회현장이 처한 환경은 제각각이다. 각자의 목회환경은 ‘생존’, 혹은 ‘자유’라는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공헌’이라는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환경에 처한 목회현장도 있다. 어떤 가치를 과제로 하는 환경이든, 각각의 생존, 자유, 공헌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맞는 상황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은 사역 상황에 따라 그에 적응하는 ‘상황적 지도력(situational Leadership)’을 발휘하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을 가진 자이지만 율법 없는 자처럼 자신의 사역 밑그림을 설계하였다(고전9:20).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상황을 설계함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의지를 실천해 갔다. 가치실현을 위한 상황설계는 중요하다. 그 이유는 환경에 부합하는 상황설계가 가치실현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행3:1-10에 기록된 40세 남성 장애인은 삶의 통제력, 주도권, 자기결정권, 자아실현을 위한 의지권도 없이 40년을 살아왔다. 남들이 설정해준 삶의 밑그림을 충실히 따르는 자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지니고 있던 장애가 극복되면서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삶의 주권이 회복되었다. 새로운 가치실현을 위해 나갈 수 있는 상황설계가 이루어졌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인생으로 세팅되었다. ‘노예인생’은 정복되었고 ‘생존’의 가치실현은 물론 ‘자유’와 ‘공헌’의 가치까지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아실현’이라는 발전적 미래와 인생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상황설계란 이와 같이 삶의 판을 뒤집어 놓는다. 세팅의 혁신은 삶의 결과를 바꾼다. 모든 목회자들은 상황설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부합하는 각자의 목회환경으로 세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목회자가 Ⓐ‘생존’이라는 가치실현을 성취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립’이 가능한 ‘목회환경세팅’이 요구된다. 자립 없는 목회환경은 대지(大地) 없는 공사 현장과 같다. 이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삶이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가난이라는 굴레에 묶여 비참한 노예인생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노예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립이라는 생존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재정지출 요인이 없는 목회현장의 상황설계가 요구된다. 비효율적인 재정지출 요인이란 월세(임대료), 대출이자, 과도한 관리비 등, 아깝게 지출되는 재정지출 요인을 말한다. 비효율적 재정지출 요인은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의 꿈을 펼치는데 발목을 잡는 결정적 요인들이다. 목회자의 생존 보장을 위해서는 목회환경에 불필요한 재정지출 요인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목회에서 ‘생존’이라는 핵심가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력(自力) 혹은 타력(他力)에 의해 목회현장의 비효율적인 재정지출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목회자는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뿐 아니라, 헌신적인 이웃과 부요한 교회의 맞춤형 지원을 통해 생존 가능한 상황설계를 해야 한다.

이어 Ⓑ‘자유’라는 가치실현을 위해서는 특화된 평신도의 확보를 위한 목회현장의 ‘영적질서’가 세팅되어야 한다. 영적질서란 광야교회에서 보듯 여호와(하나님)-모세(목회자)-이스라엘 자손(평신도)으로 이어지는 영적 통치 질서체계가 효율적으로 확고히 구축되는 것을 의미한다(출39:42). 즉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의 종(목회자)에게 전달되고, 회중(구성원)들은 이 리더십에 100% 순종하는 구조의 상황설계를 뜻한다. 영적질서 체계가 확고하게 구축되면 혼란이나 무질서를 통해 나타나는 에너지의 낭비나 소모가 없는 최상의 효율성을 창출하게 된다. 교회 내부의 비생산적인 분위기 때문에 앞문으로 사람들이 들어 왔다가 뒷문으로 나가는 비효율성이 사라지게 된다. 확고한 영적질서가 구축되면 발전을 저해하는 비효율성은 차단되고 단단한 신뢰 구조가 형성된다. 이 같은 영적질서의 체계 구축은 교회의 영적 생산성을 높인다. 교회의 영적 생산성이 증진되면 목회자의 영적 지도력이 발휘되면서 평신도들을 특화시켜 헌신도와 충성도가 최상인 일꾼들을 사역 전선(前線)에 배치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자유’의 가치 실현을 위한 교회 내의 시스템이 순기능으로 작동된다. 이 같은 상황설계 속에서 공동체의 부요가 확보되고 ‘자유’의 가치를 넘어 ‘공헌’의 핵심가치를 실현할 목회환경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헌’의 가치실현을 위해서는 교회예산의 일정 부분을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위해 지출할 수 있는 상황설계가 요구된다. 예컨대, ‘이웃사랑실천’ 예산을 전체 교회 예산의 20-30%를 편성하고 매년 이를 집행할 구조를 형성한다면 ‘공헌’ 가치 실현을 위한 상황설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랑실천 예산을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투입한다면 공헌 가치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성취되어질 것이다. 이때 유대인의 지원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곧 자립대상교회 지원의 경우 단순한 생활비 보조금을 매월 지원하는 예산 집행을 넘어서 지교회가 스스로 자립 가능하도록 예배당을 확보해 주는 등의 맞춤형 지원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은 아들을 내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롬8:31). 십자가의 사랑에 근거한 헌신적 사랑이 실행되도록 상황설계가 이루어질 때 이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 통 크게 내어주는 사랑실천을 위한 상황설계는 모든 교회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형교회라 하여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의지가 확고하고 ‘공헌’에 눈을 뜬 의식 있는 교회라야만 가능하다(갈5:6). 각 교단에서는 이 같은 정책을 개발하고 정착시켜 상생의 교회 공동체를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 경우처럼 공교회성을 반영하는 ‘공헌’의 가치를 최상으로 실현하는 상황설계도 없다 할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목회자는 기존 목회 방식을 뛰어넘어 더 높은 방식으로 접근하여 최상의 성과를 가져오는 상황설계를 해야 한다. ‘가치실현’이라는 목적에 부합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발전적 변화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목회자는 생산성을 증대키 위한 강화된 목회 상황을 설계하여 가고자하는 비전성취에 근접하도록 충분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내적 힘을 환경에 위임하여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경우에 맞는 상황을 설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바람에 대해 불평하고 그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만 바라지만, 어느 누군가는 돛을 사용하여 가는 방향을 조정한다. 성공을 향한 변화의 시작은 감나무 아래 누어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비롯되며, 실제로 감을 따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상황설계를 완성함에 있다. 목회자는 가치 실현에 부합한 상황설계를 세팅하여,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진전을 이루어 냄으로서 마침내 최상의 가치실현을 성취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목양의 기본업무에 충실하라

예장 교단 헌법상 목회자에게 주어진 직무(職務)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일이며, 둘째는 성례를 거행하는 일이다. 셋째는 교인을 축복하는 일이며, 넷째는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이다(교단 헌법 정치 제25조). 이 네 가지 직무는 목회자가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기본 직무로서, 목회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목양의 핵심 사역은 「말씀사역」(교단 헌법 정치 제4조), 「행정사역」(교단 헌법 정치 제5조), 그리고 「권징사역」(교단 헌법 정치 제6조)이다. 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자유”이다. 곧 양심의 자유(교단 헌법 정치 제1조)와 교회의 자유(교단 헌법 정치 제2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믿음과 행위의 기초가 되는 진리(眞理)로 행위의 일치와 성결을 지녀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대표자로 세워진 권위와 신분적 지위에 걸맞게 목회자 본연의 3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목회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리더십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을 인도하고 교회를 안정되게 관리하고 통솔해 가야 한다. 이 업무는 목회자가 신학 수업을 통하여 철저히 전수 받고 교육 받아야 할 교과 내용이나, 담임목회 사역 현장의 부재 상황에서 신학생 때의 신학 수업만으로는 충분히 공급받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그러나 차후에라도 반드시 내실을 다져 몸에 익혀야할 중요 직무 내용이다. 따라서 현직 목회자들에게 기본 업무 수행을 위한 목회 리더십 개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목사계속교육 차원에서 목회적 식견과 소양을 구비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부름 받은 소명과 관련하여 목사로 임직한 순간부터 기본업무 수행임무를 지닌다.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직무와 관련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하며, 얼마만큼 최상으로 지도력과 잠재력을 개발하느냐? 가 효율적 업무 수행의 관건이 된다. 목회 직무능력 개발은 목회자 자신의 몫이다(딤후4:5). 목회자는 본연의 직무 수행에 성공하도록 업무수행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3대 업무를 주저함이나 막힘없이 수행해 낼 수 있도록 자신을 구비해야 한다. 다음은 목회자의 직무와 관련된 3대 기본업무이다.

말씀사역

목회자가 수행할 첫 번째 기본업무는 ‘말씀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과 진리이며 행위와 성결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4:12), 사람을 변화시키며 새사람을 만든다(엡4:24). 말씀은 믿는 자들 속에서 실제 역사한다(살전2:13). 그리고 죽은 영혼도 살린다(요6:63).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 목회자는 복음의 말씀 사역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딤후1:11). 유감없이 마음껏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파할 수 있다. 목회자는 공적예배 시간에 강단에 오를 수 있는 신분과 직위가 보장되어 있다. 이 때 말씀사역자로서의 공적 자격을 잘 활용해야 한다. 목회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한다(딤후2:15).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해야 한다(딤전6:3).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년)의 말처럼 한손에 성경을, 다른 한손에 신문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딤전4:13). 절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아야 한다(수1:7). 목회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딤후4:2).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싫어하여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는 이에 현혹되거나 영향 받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자로서의 직무수행 역할에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한다(딤후4:5). 말씀사역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영혼을 낳는 것이고(약1:18), 둘째는 성도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다(벧전2:2). 그리고 셋째는 잘못된 사상과 이단에 물들지 않도록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다(유1:4). 목회자는 이 소중한 말씀사역에 충실히 임하여 성도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해야 한다.

행정사역

목회자가 수행할 기본업무는 ‘행정사역’이다. 행정사역은 치리권의 행사 영역이다. 치리(治理)란 교회와 성도들을 안정되게 관리하고 공동체를 올바른 이치로 다스리는 통치행위이다(딤후5:17). 곧 ‘다스림’의 업무수행을 의미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지체되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자를 직원과 대표자로 세워 복음을 전하고 성례를 행하고 교인들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하게 하셨다(예장 헌법 정치 제4조). 이를 위해 치리 즉, 다스리는 직원이 필요하며 이 다스림 즉, 치리를 위해 교회의 대표자를 세우셨다(딤전6:17). 그가 바로 교회를 대표하는 담임목사다. 치리회(당회/노회/총회)에는 ‘행정’의 권한이 있다(예장 헌법 정치 제63조 제2항). 행정이란 일종의 ‘의사결정’ 행위로 담임목사는 교회의 대표자(당회장)가 되어 행정권을 행사한다. 행정권 행사는 법대로 조직한 치리회에서 행사한다(교단 헌법 정치 제62조 제4항).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섬기고 전달하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의사결정이다. 행정권의 행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신봉하는 교회의 직원들(목사/장로)에 의해 행사되어야 하며, 이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행정권 행사에 있어서 목회자는 자원하는 자세(벧전5:2)와 온유한 심정을 지녀야 하며(딤후2:24), 교회에 유익하고 교회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된 행정 처리를 해야 한다. 주장하는 자세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자세와 모본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다스려야 한다(벧전5:3). 사람들 위에 굴림 하는 보스(boss)로서의 통치자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마20:28)로서 교회를 치리하여 ‘목양지’를 은혜의 동산으로 가꾸어야 한다.

권징사역

목회자가 수행할 세 번째 기본업무는 ‘권징사역’이다. 권징(勸懲)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준말로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의미이다.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한을 행사하며 그 법도를 시행하는 것으로써 각 치리회가 헌법과 헌법이 위임한 제 규정 등을 위반하여 범법한 교인과 직원 및 각 치리회를 권고하고 징계하는 것이다(예장 헌법 권징 제1조). 권징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에서 벗어나 잘못 가는 신도들을 바르게 교정하고 계도(啓導)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도록 깨우치고 견책하고 근신케 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징의 목적은 범죄의 예방이며 신도들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함에 있다(예장 헌법 권징 제2조). 따라서 권징은 증오의 산물이 결코 아니며, 조치 과정에 부정적 감정이 개입되어서도 안 되는 신성(神聖)한 사역 행위이다(히12:6-9). 권징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이며, 국법에 관한 것도 아니다(예장 헌법 정치 제6조).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잘한 자들에 대하여는 칭찬하고 상을 주어 교인들의 모본으로 삼아야 함과 동시에(딤전3:13), 죄를 범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딤전5:20). 이 때 목회자는 범죄 한 자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진리를 따르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회개(悔改)하게 하려는 사랑의 심정으로 권징을 행사해야 한다. 그리하여 선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사람의 본분과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게 하고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닌 선교공동체로 나아가도록 선도(先導)해야 한다.

목회자는 예수님을 닮은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요10:14). 앞에서 말한 3대 기본업무인 말씀사역, 행정사역, 권징사역에 충실히 임하여 목장과 목양의 양 무리를 평온한 가운데 생명 길로 인도해야 한다.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인도해야 한다(시23:1-8,요10:10). 목양의 기본업무에 충실할 때 목장의 풍성함이 보장된다. 해야 할 일을 선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늘어놓아 늘어난 일에 잡아먹히는 현상을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저것 주변적인 일에 붙잡혀 너무 많은 일을 행하면서도 핵심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두리 주변 일을 중심 업무로 대체하고 분주하게 일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중심적인 사역보다 주변적인 사역이 80%를 차지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 목회 현장의 실상이다. 많은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편견적인 생각이 불러온 착각 현상이다. 특화목회(特化牧會)에서는 많은 일을 열심히만 하는 것을 지향(志向)하지 않는다.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핵심사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을 지향(志向)한다. 이 원칙은 중요하다. 목회의 기본업무, 즉 목회자의 직무에 충실함이 하나님의 뜻이다(딤후4:2).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며 목회자가 생존하는 길이며 목회를 목회답게 하는 지름길이다(딛2:8,히4:12). 자기 구실을 다하는 목회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답다.
 

기본업무 외의 일은 레버리지(leverage)하라

목회의 핵심가치를 실현하는 특화목회를 성취하려면 목회의 핵심역량 발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기본업무 외의 사역은 「임파워먼트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란 목회자의 업무 수행에 있어서 업무 재량이나 책임 및 권한을 구성원에게 위임함으로써 목회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것을 뜻한다. 목회는 목회자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 사역을 일궈낼 수 없다. 목회는 위임 지도력을 발휘하여 레버리지(leverage)해야 한다.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란 최소 노력의 법칙으로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하여 능률적으로 보다 크고 많은 일을 해내는 원리이다. 즉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은 타인에게 맡겨 100%의 사역효과를 창출하는 원리이다. 목회자가 혼자 영웅이 되려한다면 목회능률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또 장기적으로 모든 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도 없다.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에 있어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다수 목회자들은 지금 자신이 수행하는 목회사역에서 열정과 노력과 헌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사역의 열매와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공적 사역을 위해서 사역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증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업무를 기획하고 과중한 사역의 짐을 짊어지고 그 많은 일의 노예로 스스로를 자처해 버린다. 곧 목회자 자신을 가중된 업무에 족쇄로 채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역업무 수행은 결국 핵심사역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역의 분량만 늘려놓고 뒷감당하지 못하는 산만함만 경험한다. 결국 아무 일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고 분주함만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왜 열매와 성과가 없는가?’ 하며 자포자기와 체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 같은 방식을 좋은 방식으로 추천하지 않으셨다(눅10:42). 예수님은 대중사역도 하셨지만(눅12:1), 소수의 핵심멤버에 집중하여 80%의 에너지를 쏟으셨다(마10:1). 예수님은 사역에서 80%의 힘과 에너지를 12제자에게 쏟으시며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데 집중하셨다(막3:13-15). 예수께서는 12제자를 세워 양육하고 이들을 통해 세계를 복음화 하려는 전략을 펼치셨다(마28:19). 예수께서는 실제 레버리지(leverage) 이론의 본을 보여 주셨다(요20:21).

목회자도 예수님의 이 목회 전략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는 조각가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듯 자신에게 편중된 사역의 짐을 홀로 지고 가지 말아야 한다. 무분별하게 늘려놓은 사역의 분량을 축소시켜야 한다. 목회자는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업무에만 충실하고 나머지는 전문 사역자들과 훈련된 일꾼들에게 위임하여 레버리지(leverage)해야 한다. 레버리지처럼 똑같은 노력을 하고도 엄청난 차이를 끌어내는 효과 비결도 없다. 특화된 사역자들이 전체 사역의 80%를 감당하여 효율적인 사역 효과를 얻게 해야 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는 핵심적인 소수 20%가 80%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20/80 원리이론을 제시하였다. 일반적으로 세일즈맨의 경우, 50%는 한번만 권유한다. 10% 정도만 4번 권유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체 판매량의 80%는 이들이 차지한다. 목회자가 전문 사역자들을 특화시켜 레버리지(leverage)한다면 사역 결과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자신이 이루어내야 한다는 집착과 의무감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역을 레버레지(leverage)하여 결과보다 사역과정에 몰입하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 새 해당 사역은 80%의 목표가 달성되는 신기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말한 바대로 ‘지렛대’를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목회를 실행하여 나간다면 목회자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목회의 핵심가치를 실현하는 위대한 결과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결정적 위기 순간에 해내는 목회자가 되라

가치에 부합하는 목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황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그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에 무지(無知)하여 대처에 미숙(未熟)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나가야 할지를 학습한 바가 없기에 당황하고 불안해한다. 갑자기 몰아닥친 재난 수준의 사건을 만난 참담한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손을 놓아 버린다. 예기치 못한 위기사건 발생은 목회자에게 황당함과 불안의식을 갖게 한다. 자칫 목회생명과 목회자로서의 인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 위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없는 목회자들은 심각한 위기와 부정적 상황에 직면하여 몸과 마음이 얼어붙게 된다. 멘붕(멘탈붕괴-mental collapsing), 즉 정신이 허물어져버린 상태에 빠지게 되어 꼼짝 달싹 못하게 된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불안을 장악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관에 대비하는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불안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결정적인 순간, 자신을 실패와 패배에 내어주게 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다. 백성은 물이며 임금은 배란 뜻으로, 목회현장은 목회자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론 비참하게 침몰시키기도 한다. 이에 목회자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순간에 절대 침몰되지 말고 그 위기에서 자신을 구출해내는 명인(名人)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이 침몰하는 자신을 포기한다면 누구도 그 자신을 구출해 줄 수 없다. 목회자는 반드시 자신을 지켜 사자의 입에서라도 자신을 구출해야 한다(딤후4:17). 그렇다면 결정적 위기 순간에 이를 정복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회 안정화를 성취해내는 돌파력의 기술과 비결은 무엇인가? 다음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인식(認識)단계

이는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할 것인가?’ 에 대하여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목회자는 위기상황을 피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현실적 진실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행동(行動)단계

위기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타에 의존하여 해결하려하지 말고 위기해결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나중에 일어날 결과에 매이거나 임시적으로 위기를 봉합하려 하지 말고, 직면한 위기가 완벽히 정복될 때까지 끈질기게 파고들어 그 위기를 반드시 해결해 내야 한다.

의지(意志)단계

위기의 직면 여부는 목회자의 선택 사항이 아니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반응은 목회자의 선택사항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외부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의지’라는 내면의 힘을 주셨다. 목회자는 이 내면의 자유의지의 힘을 사용하고 영적, 지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위기를 필히 극복해 나가야 한다.

위기에 처한 목회자가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유일한 길은 불안흥분설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꾸어 성취동기를 극대화하고 성공추구 동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한다. 불안과 흥분(설레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개인의 지각에 따라 통제도 전환도 가능하다. ‘불안에 먹히느냐?’ 아니면 ‘불안을 정복하고 살아남느냐?’는 전적으로 목회자 자신의 인식과 태도에 달려 있다. 위기를 정복한 최상의 성공 모습을 설렘 속에서 만들어 내면 마음에 지닌 불안을 삼키게 되고 결정적 위기 순간에 해내어 생존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목회자는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정글 속에서 사역한다. 정글의 3대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필히 먹힌다. 이때 목회현장에서 생존이라는 기본가치를 성취하는 길은 자신이 만난 일보다 더 강한 자가 되는 길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한마디로 특화생존(特化生存)’이 해법인 것이다. 자포자기라는 나약함을 보이는 순간, 나를 삼키려는 세력은 더 강해지고 그 결과 자신은 그들의 밥이 되고 만다(잠24:10).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목회자는 결코 당황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 만난 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히10:39). 냉철한 이성과 돈독한 신앙심으로 지구력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히10:36). 험악한 도전 앞에서도 지혜와 순결(10:16)’로 응전하다 보면 재난과도 같은 고통의 현장은 길(-way,road)로 변한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 시켰던 위기상황은 오히려 미래 발전을 향해 나가는 토대와 기초가 된다. 폭풍 속에서도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가게 되는 것이다(찬송가 373장).

F. 케네디의 말처럼 위기는 위험도 내포하지만 동시에 기회도 포함한다. 위기와 기회는 붙어있다. 기회를 놓치면 후회라는 위기의 씨앗이 심겨진다. 그러나 위기를 넘기면 모든 것이 기회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든지 불안과 두려움을 설렘과 자신감으로 바꾸어 결정적인 순간을 해내는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다. 생각만 바꾸어 역발상으로 대응한다면 반복되는 위기를 기회의 씨앗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언제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뇌를 자신이 되고픈 쪽으로 길들이면 생각은 그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목회자들 대다수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명제(命題)에 쇠뇌 되어 있다. 완벽주의는 목회자들의 트렌드(trend)로 자리 잡고 있다. 약간의 문제만 발생하여도 ‘패배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실패자’라는 의식 속에서 실패와 부정을 심고 좌절하며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실패해도 된다는 용기와 해 낼 것이라는 확신으로 생각을 채우면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하는 일을 해 낼 수 있다. 성취동기로 가득 찬 흥분과 설렘의 생각은 미래를 희망의 나라로 이끈다. 이 의식이 위기 상황을 맞아 그 위기를 풀어가는 목회자의 마음을 편하고 가볍게 해 준다. 목회자는 위기 상황에서둔감한 대처역발상의 상식화로 결정적 위기 순간을 극복해 낼 수 있다. 위기를 통해 오히려 목회자로서의 능력과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차후, 동일한 경험을 겪는 목회자들이 결정적 순간에 해내는 목회자의 노하우를 전수받게 될 것이며, 그들도 한계를 뛰어넘고 해낸 목회자들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목회자는 결정적 위기 순간에 해내는 필인(必人)이 되어야 한다. 필인(꼭 필요한 사람)3대 요소는반드시 해 내는 사람,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필인(必人)이 있어 세상은 긍정적인 사회로 바뀐다. 필인(必人)은 타인의 느낌과 필요를 안다. 그래서 ①타인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주거나, ②필요한 사람을 연결해 주거나, ③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거나, ④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언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법의 준행자로서의 본심(本心)을 실현한다(갈6:2).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필인(必人)의 핵심 덕목이다. 이런 목회자는 목회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목회 성공 스토리의 계승(繼承)은 하나님이 세상에 두는(빌1:24) 필인(必人) 목회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목회의 가장 멋진 성공자가 바로 이들인 것이다.
 

현명하게 착한 목회자가 되라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생각이며 행복한 목표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는 그것 자체로 매우 좋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착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마냥 안정적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험난한 과정과 행복을 담보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여러 난제들이 세상 속에 존재한다. 이 같은 현상은 목회현장에도 동일하게 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은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그를 좋은 사람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에 대하여 착함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으나 인간의 탈을 쓴 동물 같은 사람들이 있어 착한 사람을 만만히 보고 이용하며 휘두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 좋은 사람됨이 화(禍)가 되어 손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데도 착한 사람은 으레 착한 일을 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착한 사람들이 겪는 맘고생을 당연히 겪는 운명이라 여긴다. 이와 같은 목회자가 있어 남에게 마냥 잘해주고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남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정작 필요한 때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 결과 가야 할 길에 올인 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에 얽매여 비전을 성취할 열정을 무의미하게 소진(消盡)하며 낭비하는 소모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착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성숙한 착함’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 숙한 참함’이다. ‘성숙한 착함’은 착함의 진가(眞價)를 최대로 발휘하여 그 열매와 수확을 확실하게 챙기는 현명한 착함이다. 이에 반해 ‘어리 숙한 착함’은 남의 입장에서 배려만하고 만만하게 보이며 남에게 끌려 다니며 필요한때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만 억압하는 미성숙한 착함이다. 이제까지 다수의 목회자들이 이 ‘어리 숙한 착함’을 착함의 전부(全部)로 이해해 왔다. 남에게 베푼 배려에도 불구하도 그것이 이용당한 것이 되어도 그에 대하여 말 한마디 못하고 눈치를 보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이 같은 현상에 의거할 때 착한 것은 좋은 일이나 착함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착함은 세상이 모두 다 착할 때만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다 같이 착한 적이 없다. 세상에는 착한 목회자를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부탁을 거절하면 상대가 모욕을 느끼거나 실망과 좌절에 빠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상대의 부탁에 쉽게 응한다. 그러나 목회자가 부탁을 들어주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여도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고마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남들과 대립하기를 주저하는 착한 목회자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들을 만만히 보고 가볍게 여기고 비웃거나 무시(無視)하고 이용한다. 이에 목회자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명분 없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게 되면 가벼운 사람 취급을 받게 되고 모든 일에 양보를 요구 받게 된다. 호의가 무시 받게 되는데도 이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매사를 가볍게 처리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제공하게 된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며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정당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래서 불의를 정의라고 우기며 거짓을 진실처럼 가장하며 휘두르는 ‘패역(행2:40)’까지도 용인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착한 목회자들은 이들에게 끌려 다니며 불의를 방조하고 진리(眞理)까지도 양보한다. 말하자면 착한 사람들이 패역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착한 사람이 간특(나쁜 짓을 용인하여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의 주체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삶의 목표에서 벗어난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며 이 같은 이유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착한 목회자들이 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착함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생산적인 착함을 당당히 주도적인 자세로 실천하며 현명하게 착한 「바나바」 같은 목회자들도 많이 있다(행4:36). 현명하게 착한 목회자들은 창조적 소수로서의 존재감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주가(株價)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상승시킨다(행11:24). 그리하여 ‘선한 영향력’이 지배하는 좋은 세상을 마침내 만들어 낸다(행9:31). 목회자라 하여 무조건 갈등은 피하고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오히려 목회자에게는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냉정함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게 삶의 주도성을 행사하며 정의실현을 위한 명분 있는 싸움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시144:1). 목회자는 삶을 아름답게 세우고 목회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리 숙한 착함’을 버리고 ‘성숙된 착함’을 소유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착한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이상(異相)일 뿐이다. 무조건 남에게 잘해주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냉정하고 단호하게 인생의 주도성(主導性)을 행사하는 ‘능숙한 착함’을 지녀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정당한 싸움도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며 삶을 생산적으로 창조해갈 수 있어야 한다. 손해를 감수(甘受)하며 부탁을 들어주고 후회하지 않는 현명(賢明)한 착함이 모든 목회자들에게 요구된다. 현명한 착함으로 어둠과 절망에 처한 세상에 빛과 생명을 전달하며 진리를 세워 세상을 변혁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특화목회 실현자’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고후13:8).
 

유대인의 1:250 전술로 목회 승부를 걸라

유대인은 세계 중 인구(2%)가 많지 않은 소수민족이다(신7:7). 그러나 그 영향력만큼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유대인은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의료, 예술, 과학, 인문, 등 각계각층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유대인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며 살아가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골드만 삭스의 창립자 마르쿠스 골드만, 20세기 최고의 펀드투자가 조지 소로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경제학자 앨런 그린스펀,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그 수는 유대인들의 인구수에 비해 아주 많은 편이다. 유대인의 인구는 약 15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0.2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약 23퍼센트, 미국 유명대학 교수의 30퍼센트가 유대인이다. 미국 100대 기업의 약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유대인은 세계인들 삶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과 함께해 온 가운데서도 수가 적은 민족이면서도 하나님의 성민으로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우수 민족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신28:7-14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민(聖民) 유대인들에게 네 가지를 약속하셨다. Ⓐ대적과 전쟁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완벽한 승리 Ⓑ생존의 달인으로서의 소생과 소산의 풍부한 증식 Ⓒ꾸지 않고 꾸어주는 경제적 부요 Ⓓ꼬리와 아래에 있지 않는 정치 지도자(머리) 지위 확보 등이다. 이 약속에 힘입어 유대인들은 국가를 잃고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 속에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고 생존을 일구어 냈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와 독일의 강압에 의해 강제에 의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게토(ghetto)와 히틀러에 의해 무참히 집단 학살을 당했던 홀로코스트(holocaust)속에서도 살아남아 마침내 위대한 국가를 이루며 번영을 일구어 냈다.

유대인들이 죽음 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번영을 이루었던 힘은 다음 세 가지 정신(精神)과 사고력(思考力)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결연한 의지로 나아가는 ‘다브카(Davca)’ 정신, ⓑ어떤 경우에도 뻔뻔함과 배짱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질문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후츠파(Chutzpah)’ 정신, ⓒ어떤 문제 속에서도 비전을 발견하고 세상을 개선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티쿤올람(Tikkun Olam)’ 정신 등이다. 이 3가지 정신과 사고력은 오늘날 유대인들의 번영과 성공을 일궈낸 원동력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정신적인 계몽을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행위를 발전시켜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소아마비 백신, 감기독감 백신, 페니실린, 인슐린, 비티민C 등은 유대인들이 개발한 의약품이다. 특히 유대인들 사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이웃의 안위를 돌보는 ‘쩨다카(Tzedakah)문화’는 유대인들이 사람들의 인격을 높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동력(動力)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에 도전하여 결국 해내는 민족으로 우뚝 서 세계역사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삶의 전략은 아주 특출(特出)하다. 그 우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대인들은 수평적 진보보다 수직적 진보를 선호한다. ‘수평적 진보’란 이미 입증된 것을 복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설계된 방식을 따라 똑같은 방식으로 결과물을 생산했다면 이는 ‘수평적 진보’이다. 반면, ‘수직적 진보’는 이전의 설계된 방식과 다르게 새로운 생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결과물을 생산했다면 이는 ‘수직적 진보’이다. 이 때 ‘수평적 진보’는 경쟁이 심화되어 제로(0)로 마감되지만, 수직적 진보는 독보적 존재로서 막대한 결과물을 창출해 낸다. 이를 인문학적 미래 설계라 부른다. 인문학적 미래 설계에서는 사람이 언제 행복한가? 사람은 원하는 그 대상을 왜 사랑하는가? 사람들은 어떤 의미와 가치에 공감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인문학적 미래설계란 이 같은 질문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 사람의 불변하는 심리적 욕구에 부응하는 자신들만의 가치를 전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 철학적 접근 방법으로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은 ‘1:250 전략이다. 곧 사랑대상 1명을 만족시켜 주면 그 1명이 250명에게 만족한 바를 전달하여 250명의 사람을 이끌어 오게 한다는 전술이다. 유대인들은 사랑대상 1명을 250명으로 보고 그 1명에게 만족감을 최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세워 목표를 성취하여 왔다.

특화목회에 있어서도 이 같은 유대인의 사랑 방식으로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 바울은 아담의 범죄(불순종)로 인류에게 미친 사망의 왕 노릇한 영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인류에게 생명의 왕 노릇한 절대적 영향력을 조명하고 있다(롬5:12-21). 한 사람 아담으로 인류가 죄 아래 놓이고, 한 사람 예수로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 한 사람의 존재 가치가 담고 있는 영향력은 우주적이다. 요나 한 사람의 외침에 의해 니느웨 성 사람 12만 명이 구원 얻은 것을 보면, 1명의 가치는 단순히 1명에 국한되지 않는다(욘4:11). 영향력 있는 목회자 1명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 10만 명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어느 신학자의 말은 상당히 일리(一理) 있는 말이다. 이 지구상에 단 1명의 사람이 존재하였을지라도 구주(救主) 예수께서 기꺼이 그 1명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 것이라는 외침은 그 정도로 한 사람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주적이며 크고 강렬함을 보여준다. 감동적인 복음의 메시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필요와 요구에 둔감한 목회자들에게 경종을 울려 준다. 다수에 심취되어 1명의 사람을 귀중히 여기지 못하고 이 1명을 소외시키는 현상(마18:6)은 목회자들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규모가 커지면 유연성이 줄어들고 구성원의 필요와 요구에 둔감해진다. 그러나 작은 규모에서는 1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진다. 태풍이 불어올 때 나무는 뽑히지만 잔디는 살아남는다. 목회자는 작은 자 1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마10:42), 그에게 우주적 사랑을 쏟아 그 한 사람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전술로 목회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마25:40). 밀알 하나의 위력, 예수께서 축사하신 오병이어,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 손에 들려있던 돌 하나, 선지자의 생도 집에 있던 기름 한 병, 천국의 상징인 겨자씨 하나, 이들은 작은 하나였지만 큰 기대치를 만족시켰다. 이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나다운 특화목회의 진수(眞髓)이다(요12:24). 자신만의 목회 노하우를 지닌 목회자는 어디로 향하여 어떤 목회 길을 가야할지 방황할 필요가 없다. 섹스피어의 말대로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앞에서 말한 6가지 영역에서 목회자 자신의 목회 노하우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는 교회의 특화된 모습과 풍요롭고 넉넉한 특화목장(엡2:21-22)의 발전적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날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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