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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8)
2023년 04월 14일 (금) 11:09:28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마태복음 2:1-23

  예수님 탄생 기사에 관한 마태의 기록은 매우 독특하다.1) 그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기 위해 제일 먼저 베들레헴에 찾아왔던 사람들이 유대 백성들이 아니고 오히려 멀리 동방으로부터 찾아온 이방들이었음을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2장에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언급하고 있다(1). 1절 초두에는 ‘절대소유격’(genitive absolute)의 구문이 나타나고 있다.2) 이것은 마태가 비록 2장에서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여전히 그 중심 주제는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마태는 1절 초두에서 예수님의 이름 앞에 ‘정관사’(Τοῦ Ἰησοῦ) 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태가 이러한 표현을 하는 이유와 관련하여 건드리(R. Gundry)는 “앞장에서 진술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며, 그의 이름의 구원적인 의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1:21)라고 지적하고 있다.3)

 

동방 박사들의 방문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은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다.
마태는 실제 일어난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방문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글 성경에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1절에서 마태는 ‘보라’라는 뜻의 ‘이두’(ἰδοὺ)’라는 감탄사를 사용하고 있다.4)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방문한 사건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 의미를 강조하는 차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두’(ἰδοὺ)’하는 표현과 관련하여 리더보스(H. Ridderbos)는 “예루살렘에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의 예상하지 못했던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5)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두’(ἰδοὺ)’라는 감탄사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표현법이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6)

사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칼빈(J. Calvin)은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마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7) 다만 예수님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는 ‘헤롯 왕 때’라고 하였다(1a).8) 또한 예수님의 탄생 장소에 대해서는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만 간단히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a).9) 그러나 마태는 동방에서 이방인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에 관해서는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10) 따라서 동방에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에 관한 스토리가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것과 관련하여 일부 학자들은 그 기사의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11)

그들의 주장을 따르면 당시 유대 사회에는 ‘아기 모세’(infant Moses)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전설이 퍼져있었는데 “마태는 이런 스토리에 의해 영향을 받아 예수님의 위대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라고 하는 것이다.12) 그들은 마태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예수님이 ‘모세와 같거나’ 혹은 ‘모세보다 우월하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힐(D. Hill)은 “모세와 구원자로 오신 메시야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으며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로서 그보다 우월하시다는 것을 마태가 암시하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13) 마운스(R. Mounce)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처럼 예수님은 두 번째의 모세로서 더 위대하시며 그의 백성을 영적인 노예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4)

이러한 주장들은 마태가 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탄생 스토리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15) 그러나 모리스(L. Morris)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분명히 주관적 요소가 많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모세에 관한 스토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마태가 예수님에 대해 유사한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16) 카슨(D. Carson)도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재구성 이론’에 대해 “많은 약점이 있다”고 반론하면서 “마태복음의 신학과 역사성의 사이에 대립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마태가 역사를 기록했고, 그것을 통해 신학적인 의미를 끌어낸 것이다”라고 하였다.17) 이러한 관점에서 프란스(R. France)도 “9절에 나타나는 움직이는 별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사건에서 역사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18)

 

동방 박사들은 누구인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그들의 출신지라고 마태가 언급하는 ‘동방’이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동방’이라는 단어는 ‘아나톨레’(νατολή)인데 문자적으로는 ‘떠오르다’(rising)는 뜻이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동쪽’이라는 뜻보다는 그들이 ‘해가 떠오르는 지역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그너(D. Hagner)는 ‘동방’이 뜻하는 지역에 대해 ‘파티아’(Parthia), ‘바벨론’(Babylon), ‘아라비아’(Arabia), 그리고 ‘이집트’(Egypt)등 네 가지의 가능성을 추정하고 있다.19) 이러한 네 가지 가능성에 가운데 “그들이 바벨론에서 왔을 것이다”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판단된다.20)

그렇다면 이 ‘박사’들은 당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가? ‘박사’라는 단어는 ‘마고스’(μάγος)를 번역한 것인데 점성가(astrologer), 마술사(magician), 혹은 점쟁이(sorcerer)를 뜻한다.21) ‘마고스’(μάγος)에 대해 힐(D. Hill)은 “본래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제사장 계급이었다”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나중에는 그 단어가 모든 마술사, 점쟁이, 의술인(charlatan)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22) 카슨(D. Carson)은 이 단어가 구약시대에는 “꿈을 해석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메데(Medes) 지역의 제사장 계급을 뜻했다”라고 주장하면서23) 신약 시대에는 “보다 넓은 의미로 꿈, 점성술, 마술, 미래에 대한 신비로운 언급을 하는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24)

프란스(R. France)도 ‘마고스’(μάγος)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다가 후에는 ‘마술사’와 ‘점성가’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25) 해그너(D. Hagner)는 ‘마고스’(μάγος)에 대해 “신약에서는 비밀스러운 지혜의 소유자를 언급하고 있으나 이 구절에서는 점성가, 즉 행성과 별을 관찰하여 세상의 사건을 보는 특별한 통찰력을 얻었던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라고 하였다.26)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왕’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27) 그러나 마태는 여기서 그들이 ‘왕’이었다는 암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기에 그러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들이 동방에서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는(2)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8)

 

별을 보고 찾아온 이방인들

이방인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것은
메시야 대망 사상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지식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이 유대인 공동체가
있던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먼저 헤롯 왕을 찾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문의하였다(2).29) 여기서 ‘그의 별’(αὐτοῦ τὸν ἀστέρα)은 ‘메시야 탄생을 보여주는 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힐(D. Hill)은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별이나 성좌의 출현은 고귀한 자의 출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30)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떠오르는 태양’이나 혹은 ‘별’로 비유하는 예가 있음을 볼 수 있다.31) 마태는 그들에게 나타난 별이 ‘메시야의 별’이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만 기록하고 있다.

동방에 나타난 ‘그 별’이 ‘메시야 탄생’과 관계가 있음을 그들이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우선 민 24:17에 나타나는 “한 별이 야곱에서 나온다”는 ‘발람’의 예언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32) 혹은 메시야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의 유대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33) 이러한 관점에서 리더보스(H. Ridderbos)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 동방의 먼 지역, 메디아 페르시아까지 두드러질 정도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다양한 증거가 있다(행 2:9-11)”는 것을 언급하며 “특히 바벨론 점성가들 가운데 위대한 왕이 서쪽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오래동안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34)

해그너(D. Hagner)는 “마태복음의 기록에서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 대망 사상에 대한 어떤 지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유대주의 사상과 접촉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접촉은 유대인들의 정착 공동체가 있던 페르시아, 아라비아, 바벨론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35) 리더보스(H. Ridderbos)는 “다니엘이 바벨론의 박사들과 점성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36) 카슨(D. Carson)도 “박사들은 구약이나 유대 문헌 연구를 통해 그 별을 유대인의 왕과 연결하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바벨론에는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37) 이런 관점에서 마운스(R. Mounce)는 동방의 박사들은 “아마도 바벨론에서 온 점성가들로 유대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고 메시야의 오심에 관한 관심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38)

그러나 그들이 이방 땅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이방 세계를 향해 구원을 베푸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계획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註)

1) Leon Morris, op. cit., 33. 
2) ‘절대소유격’(genitive absolute)의 구문은 마태복음의 특징을 보여주는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는 1절 초두에서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Τοῦ Ἰησοῦ γεννηθέντος ἐν Βηθλέεμ τῆς Ἰουδαίας)라는 ‘절대소유격’(genitive absolute)의 구문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 구문은 고대 헬라어에서 문장 초두에 나오는 소유격의 명사 혹은 대명사와 소유격의 분사로 구성되는 종속절을 의미한다. 뒤에 나오는 주절과 내용상 관계는 있으나 문법적으로 주절과 독립되어 있으며, 주절이 다루고 있는 시간적인 상황이나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3) Robert H. Gundry, op. cit., 26. 
4) Donald A. Hagner, op. cit., 26. 
5) H. N. Ridderbos, op. cit., 31.
6) ‘이두’(ἰδοὺ)’라는 감탄사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표현법은 마태의 문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두’(ἰδοὺ)’는 문법적으로는 ‘보다’ 혹은 ‘알다’라는 뜻의 ‘오이다’(οἶδα)라는 동사의 부정과거 명령형이지만 사건을 생생하게 표현하거나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마태복음에서는 감탄사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1:20, 21:1, 13, 9:18, 12:46, 17:5, 26:47, 28:11). 또한 앞 문장이나 사건이 끝나고 새로운 문장이나 사건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이두’ 앞에 ‘카이’(καὶ)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καὶ ἰδοὺ’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2:9, 3:16, 4:11, 8:2, 24, 29, 32, 34, 9:2, 20, 12:10, 15:22, 17:3, 19:16, 26:51, 27:51, 28:2).
7) John Calvin, vol. 1, op. cit., 82.
8) cf. 눅 1:5. 여기서 ‘헤롯’(Ἡρῴδης)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을 뜻한다. 프란스(R. France)는 예수님 탄생 시기에 대해 “예수님은 아마도 BC 4년경 헤롯 대왕이 죽기 전에 탄생하셨을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R. T. France, op. cit., 81). 마운스(R. Mounce)는 예수님이 B.C. 4년경 탄생했다는 견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인 날짜 계산법은 몇 세기가 지난 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착오가 있을 수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Robert H. Mounce, op. cit., 17). 
9) ‘베들레헴’(Βηθλεέμ)은 히브리어로 ‘집’을 의미하는 ‘베이트’(בית)와 ‘빵’을 뜻하는 ‘레켐’(לחם)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는 ‘빵집’이라는 뜻이다. 
10) 이에 비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누가의 기록을 보면 동방에서 이방인들이 방문한 것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 땅의 목자들이 베들레렘에 찾아가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였으며(눅 2:8-20), 유대인 시므온(눅 2:25-35), 안나(눅 2: 36-38) 등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11) 프란스(R. T. France)는 일부 학자들이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수님을 방문한 것’의 진정성을 부인하는 근거에 대해 두 가지 차원에서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다. 즉 우선 그들은 “그 사건이 구약의 선택된 본문을 근거로 인위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는 것과 또한 “그 기록이 당시 경건한 전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징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징정성을 부인하는 근거로 지적하는 것이다(R. T. France, op. cit., 80-81).
12) Leon Morris, op. cit., 34. 
13) David Hill, op. cit., 81. cf. 신 18:15. 
14) Robert H. Mounce, op. cit., 17.
15) D. A. Carson, op. cit., 83. 
16) Leon Morris, op. cit., 34. 모리스(L. Morris)는 마태의 재구성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자료들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하면서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마태가 예수님에 대한 스토리를 재구성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라고 하였다. 
17) D. A. Carson, op. cit., 83.
18) R. T. France, op. cit., 81. 프란스(R. France)는 AD 66년 경에 있었던 동방 박사들이 네로(Nero)를 방문한 경우를 언급하면서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 방문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19) Donald Hagner, op. cit., 27.
20) R. T. France, op. cit., 81. 모리스(Leon Morris)는 “다수의 해석자들이 동방 박사들이 바벨론에 왔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Leon Morris, op. cit., 22)
21) 델링(G. Delling)은 ‘마고스’(μάγος) 의미를 (1) 페르시아 종교지도자 (2) 초자연적 지식과 능력의 소유자 (3) 마술사 (4) 사술사 등 네 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다(Donald Hagner, op. cit., 26에서 재인용).   
22) David Hill, op. cit., 82. cf. 행 8:9, 13:6, 8.
23) 다니엘서는 바벨론에 존재하는 ‘마고스’(μάγος)들을 언급하고 있다 (단 1:20, 2:2, 4:7, 5:7).
24) D. A. Carson, op. cit., 84-85. 
25) R. T. France op cit., 81. 
26) Donald Hagner, op. cit., 26. 
27) 힐(D. Hill)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후기 기독교 전통에서는 시 72:11, 사 49:7, 60:1-6의 구절들의 영향을 받아 세 사람의 박사를 왕으로 묘사했다”고 하면서 특히 사 60: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는 말씀을 근거로 세 사람을 왕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6세기 후반 ‘아르메니안 유아 복음’(the Armenian Infancy Gospel)이 그들의 이름을 ‘멜콘’(Melkon), ‘발타자’(Balthasar), ‘가스파’(Gaspar)로 지칭하면서 왕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David Hill, op. cit., 82). 마운스(R. Mounce)는 “이러한 추측의 근거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Robert H. Mounce, op. cit., 13). 해그너(D. Hagner)는 시 72:10-11, 사 60:1-6을 언급하면서 “왕들의 예물을 말하고 있는 이러한 구약의 병행 구절들은 동방의 박사들이 왕들이었다는 후기 사상의 근거가 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Donald A. Hagner, op. cit., 31).   
28) 이와 관련하여 프란스(R. France)는 “점성학은 특히 당시 바벨론에서 정교한 과학으로 발전되었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R. T. France, op. cit., 81). 
29)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에서 이방인들의 입을 통해 언급되고 있다(27:11, 29, 37). 
30) David Hill, op. cit., 82. cf. 민 24:7. 이때 나타났던 별과 관련하여 힐(D. Hill)은 “BC 7년경 목성과 토성이 만났다”고 하는 독일의 천체 과학자 케플러(Kepler)의 주장을 언급하고 있다. 프란스(R. France)는 ‘별’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세 가지 의견을 요약하고 있다. (1) BC 7년에 일어난 ‘행성의 결합’(토성과 목성), (2) BC 12-11년에 일어난 ‘헬리(Halley) 혜성의 출현’ (3) 폭발로 인해 일시적으로 특별한 빛을 발했던 ‘노바(Nova)라는 별의 출현(R. France, op. cit., 82). 또한 이에 대해서는 Donald A. Hagner, op. cit., 27을 참조하라. 
31) cf. 눅 1:78, 벧후 1:19, 계 22:16. 
32) R. T. France, op. cit., 82.
33) cf. 단 9:24.
34) H. N. Ridderbos, op. cit., 32.
35) Donald A. Hagner, op. cit., 27.  
36) H. N. Ridderbos, op[. cit., 32. cf. 단 2:48, 5:11.
37) D. A. Carson, op. cit., 86.
38) Robert H. Mounce, op. cit.,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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