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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 현장을 가다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3년 04월 10일 (월) 10:45:05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여전히 멀고도 가까운 나라

  최근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잊을 만하면 새로운 이슈들이 대두되어 한일관계의 골은 깊어져 왔고 상호 민족 감정은 치유되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To Remember)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사실해서, 현재를 사는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삼고, 왜곡되거나 굴절되지 않은 바른 역사의 미래를 열어가야 함이다. 우리의 기독교는 역사적인 신앙을 견지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필귀정을 통해 올바르게 정립되고 이해된 역사의 현실을 기독교적 사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견지에서, 정정당당한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사랑과 용서로 대변되는 기독교 정신의 실천은 양쪽에서 각기 굴러가야 하는 수레바퀴 같다고 하겠다.

 

조선인 노동자 학살 추모비 앞에서

   
▲ 일본 미에현 기노모또에 세워진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일본 미에현 기노모또에서 1926년 1월 3일에 조선인 노동자 이기윤 씨와 배상도 씨가 군, 관, 민이 혼합된 마을의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이기윤 씨는 경상북도 경주군 내동면 출신으로 25세의 나이에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배상도 씨는 경상남도 동래군 사하면에서 자랐고 29살의 나이였다. 미에현이 발주한 기노모또 터널 공사에는 초기에 2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참여하였는데 사건이 발생했던 1926년에는 가족 포함 70여 명이 남아있었다. 한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사이에서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고 격분한 일본인이 일본도로 그 조선인 노동자를 찔렀다. 이에 항의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노모또 주민들이 공격하면서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무참히 살해되었다. 구마노시와 그 주변의 일본인들이 과대 포장된 조선인들의 위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조선인들이 부상을 입었고 여타의 조선인들은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와  함께 새겨진 설명서 

재판과정에서 위해를 가했던 일본인들은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조선인들은 정당방위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모든 일들이 근본적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와 민족적인 차별에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구마노시와 인근의 모든 일본인들이 조선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일본인들은 조선인 노동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대항키도 하였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일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깊은 우애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큰 흐름은 누가 이 학살의 주범인지를 명약관화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진상규명을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현재의 자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하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이곳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염원을 가지고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을 구상하였다.

 

오니가조(Onigajo) 역사문화 순례길

   
▲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기노모또 터널 전경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필자가 독창적으로 이 순례길의 이름을 지어보았다. 앞으로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필자가 명명한 이 순례길을 사모하며 방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이 순례길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오니가조 (도깨비성)의 해안 절벽을 따라 펼쳐진 둘레길을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면서, 그 해안 절벽을 벗어나 기모노또 마을을 지나서,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추모비가 있는 곳에 다다르고,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기모노또 터널을 관통하여 순례길의 시작점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오니가조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포함하는 세인트 제임스 순례길과 함께 구마노 고도 순례길은 세계에서 단 두 개밖에 없는 신령한 가도이다. 오니가조도 구마노 고도 순례길의 연장선상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 구마노 고도 순례길의 연장 선상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오니가조(도깨비성) 

오니가조는 보통 동쪽 입구를 출발하여 서쪽 입구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다(최은수 교수의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클릭) 참조). 동에서 서까지 대략 1킬로미터 정도 되고 초입에 자리 잡은 기이한 바위는 풍화작용과 파도에 다듬어져서 그 면적이 약 1500평 정도에 이를 정도다. 필자가 일본의 북단인 홋카이도부터 시작하여,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혼슈를 거쳐, 가장 작은 시코크를 지나, 그리고 규슈에 이르기까지 네 개의 큰 섬들을 다녀 보았지만 구마노 고도 순례길과 그 주변에 산재한 세계문화유산이 단연 개성이 강하고 독보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필자는 ‘구마노 고도 순례길과 그 주변 명소들을 가보지 않았다면 일본을 안다고 논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필자가 명명한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을 세 가지 루트로 제시한 본다. 이는 기독교인 참가자들 각자의 성향과 체력을 고려한 것이다.

   
▲ 오니가조의 기암괴석이 경이롭다. 터키의 카파도기아와 바나도키아를 연상시킨다. 

첫 번째 루트는 주차장이 있는 동쪽 입구에서 출발하여 기괴한 절벽만 약 1킬로미터에 달하는 오니가조 길을 절반 내지는 그 이하만 걷게 하는 것이다. 이 루트는 개인의 취향과 체력을 배려한 길이다. 이 루트를 택한 크리스천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서 주차장이 있는 동쪽 입구에 도착한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필요한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차량에 탑승하여 서쪽 입구로 이동한 후 오니가조의 기괴한 절벽 길을 완주한 일행들과 만난다. 그리고 도보로 기모노또 마을을 가로질러 추모비가 세워진 곳에 모여 역사를 되새기며 기독교인의 역사 인식을 점검한다.

두 번째 루트는 주차장이 있는 동쪽 입구에서 출발하여 약 1킬로미터에 이르는 기괴한 형태의 절벽 길을 감상하며 서쪽 입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거기서 차량으로 이동한 일행들과 만나서 기모노또 마을을 돌아보며 추모비가 있는 곳에 이른다. 이 루트를 택한 기독교인들은 복장과 신발에 특히 신경써서 낙상이나 미끄럼에 대비한다. 이 그룹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기암괴석과 새파란 바다, 그리고 날씨에 따라 바뀌는 하늘의 조화를 만끽한다. 아울러 오니가조 전체를 돌아보면서 터키의 카파도키아나 바나도키아와 유사한 바위 동굴들을 보며 조물주의 신묘막측한 역사를 느끼게 된다.

   
▲ 오니가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풍화작용과 파도에 의해 다듬어졌다 

세 번째 루트는 두 번째 루트와 마찬가지로 오니가조 전체를 완주하고 기모노또 마을을 지나서 추모비가 있는 곳에서 다른 그룹들과 함께 역사를 되새긴 후 기모노또 터널 속을 걸어서 오니가조의 동쪽 입구에 다다르는 길이다. 한마디로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을 삥 둘러서 완주하는 것이다. 이 그룹은 기모노또 터널을 걸으면서 뒤에서 오는 차량들에 유의해야 하고 터널을 빠져나온 후에는 큰길을 오가는 대형차들을 조심해야 한다.

   
▲ 오니가조 역사 문화 순계길의 이정표 

이 세 루트 중에 어느 것을 택하든지 크리스천 순례자들은 가능한 아침 식사를 한 후 산책하듯이 신비한 자연의 절경을 감상함이 좋겠다. 날씨가 무더워지는 계절일수록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것이 좋으며 마실 물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 말자. 아울러 동쪽 입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기상예보를 숙지하고 높은 파도와 기상악화에 대비한다. 특히 비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다가 사진기나 전화기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필자가 명명한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의 정점이 학살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추모비임을 유념하면서 말이다.

 

구마노 고도 순례길과 연계하여

필자는 신구(Shingu)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이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구마노 고도 순례길의 신령한 분위기를 경험함과 동시에 기독교인의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구마노 가와 강(Kumano Gawa River)을 따라 유유자적하는 뱃놀이는 숨이 막힐듯한 경치뿐만 아니라 왜 이곳이 신령한 가도로 오랫동안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90분에 이르는 뱃놀이를 통해 크리스천들은 광대한 자연의 위엄을 느끼며 수 많은 새들의 노래소리에 매료된다. 그리고 곳곳마다 산재해 있는 저마다의 사연을 듣게 된다.

   
▲ 혼슈의 땅끝마을인 구미모토에 위치한 하쉬구이 이와 바위들 

아울러 주변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쉬구이 이와 바위들(Hashigui Iwa Rocks)이다. 일본 혼슈의 땅끝마을인 구시모토에 위치해 있는 하쉬구이 이와는 850미터에 펼쳐져 있는 기괴한 바위 기둥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석양의 풍경이 화룡점정이다. 관광안내소의 이층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좋고 다양한 위치에서, 또는 다양한 시간대에 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역사는 의미이며 생명이다

   
▲ 신구(shingu)에서 출발하여 90붐에 걸친 뱃놀이 순례 

일본을 대표하는 신령한 장소인 구마노 고도 순례길과 그 주변을 아우르는 명승지의 한 켠에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 의미가 역사에 생명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간 역사는 생명체가 되어 역동적인 활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중요한 것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견지한 기독교인들이 솔선수범하여 그런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실천이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행동하는 지성인이자 신앙인이 된다. 필자가 명명한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을 걷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질수록 두 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희생정신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고 이 땅에 사는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먼저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역사의 의미를 공유하고 그런 분위기를 확산시킨다면 1926년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 있는 조치들이 이루어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대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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