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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를 역행하는 위험한 생각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3)
2023년 02월 06일 (월) 13:25:01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몇 사람의 선교사에게 
선교 사역의 전부를 맡기고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역행하는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주후 1세기 초대교회를 연구하면서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초대교회가 자기중심적인 ‘지역주의’(provincialism)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민족을 향하는 기독교 공동체로 성장했던 이유가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소수 몇 사람의 선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일생을 바쳐 수고한 선교 사역의 중요성과 선교적인 공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대는 선교사 몇 사람이 나서서 선교의 모든 것을 감당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적은 무리에 불과했던 초대교회가 괄목할 만한 교회 성장을 이루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며 열방을 향한 선교의 위대한 과업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던 진정한 원인은 다만 특정한 몇 사람의 헌신이 아니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삶을 나누고 비전을 나누던 모든 구성원이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 선교사의 삶을 철저히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그리스도의 선교 명령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핍박하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그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증인의 삶을 담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듀란(W. Durant)은 당시 초대교회의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의 모든 개종자가 선교의 직무를 가졌다"고 하였다. 1)  또한 케인(H. Kane)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았던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의 이 같은 헌신적인 선교적인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기가 없어도 진리는 있었고, 깃발은 없어도 사랑과 함께 충성스럽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바다와 육지를 건너 로마 제국의 구석구석 모든 지역으로 들어갔고, 가는 곳 마다 친구와 이웃과 나그네를 만나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믿음을 나누었다. 그들은 노예, 상인, 군인으로서 그들의 세속적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그들은 멀리 떨어진 해안이나 외딴 지역에 망명을 떠나면서도 믿음을 전파하였다”2)

   
 

사도 바울의 선교의 동역자로서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 초대교회의 생생한 선교 역사를 기록했던 누가의 증언은 매우 놀랍다. 그 증언은 많은 사람이 그동안 잘 못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빛을 던져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시리아 안디옥에 위치하였던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처음으로 특정한 지역으로 파송하므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를 시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시각을 교정해야 하는 것은 시리아 안디옥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기 전에 이미 예루살렘에 위치하였던 교회에서 흩어진 수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여러 지역에서 이미 선교에 헌신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4) 그들 중에는 사마리아에서 선교하였던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외에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던 자들의 대부분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일생 동안 무명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를 ‘구브로’에 파송하므로 선교 역사에 족적을 남겼던 시리아 안디옥교회조차도 정확하게 말하면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던 제자들의 선교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이다. 5) 이처럼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에 헌신하기 이전에도 수많은 크리스천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며 무명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선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주후 1세기에 등장했던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무명 선교사의 거룩한 행렬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 거룩한 무명 선교사의 행렬은 그 이후 교회 역사를 통해 꾸준히 계속되었으며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260-340)는 주후 1세기를 넘어 주후 2세기 초엽에도 이름 없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했던 선교적인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해 그들이 처음으로 취했던 행동은 그들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었다. 그 후 그들은 집을 떠나 전도자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비전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믿음의 말씀을 전하고, 거룩한 복음서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이방인들 가운데 신앙의 기초를 놓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며, 믿음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양육하는 책임은 그들 가운데 목자를 세워 위임하였다. 그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따라 다른 지방과 나라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6)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와 지도자들은 선교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살피는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특정한 소수의 몇 사람을 해외 선교지에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선교의 전부를 맡겨버리고 선교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를 역행하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선교하는 교회’는 특정한 소수 몇 사람을 해외에 파송했거나 또는 선교사 몇 사람을 후원하면서 그 명단을 홍보하거나 그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선교 보고를 받는 교회를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교는 소수의 지원자를 위한 일종의 선택적 추가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선교하는 교회’는 그 지역 교회의 모든 크리스천이 선교 마인드를 회복하고, 자신이 서 있는 삶의 현장이 어디이든지 그곳을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서 선교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수 전문적인 선교사들에 의해 진행되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사역으로는 주님의 마지막 지상 과제인 선교의 완성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주님의 제자들이 선교적인 삶에 헌신할 때만이 선교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제도화된 교회의 위험성

모두가 실천해야 할
교회의 선교는
소수 몇 사람에 불과한
전문적인 선교사의
사역으로 남게 되었다

초대 기독교의 선교 지향적 공동체의 특징은 적어도 주후 3세기까지는 지속되었다고 본다. 그 결과 주후 3세기 말에 이르러 로마제국 내부에서 부분적으로라도 복음이 침투해 들어가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을 정도로 선교의 열매는 매우 크게 나타나게 되었다.8) 그러나 주후 4세기 초엽에 이르러 교회 공동체는 초기에 가졌던 이러한 선교적인 관심을 현저하게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을 하게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지하에 숨어있던 교회는 지상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안정적인 모습과 조직을 갖추면서 로마 제국 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지상 위에서 안정적인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제도화될수록 선교 마인드는 서서히 사라져 가게 된 것이다.

둘째, 4세기의 교회는 격렬한 신학적인 논쟁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콘스탄틴 대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국이 분열될 수 있다는 위험을 느낄 정도로 신학적인 논쟁이 격렬해졌다. 결국 325년 니케아에서 열렸던 종교회의를 기점으로 교회 내부의 신학적 갈등은 격렬한 신학적 논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신학적 갈등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교회의 선교적인 삶은 매우 둔화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선교에 헌신하는 일에 더 이상 깊은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였던 이유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 시기에도 ‘고트족의 사도’(Apostle the Goths)라고 불렀던 울필라스(Ulfilas)9) 같은 선교사를 통해 로마 제국 변방의 게르만족을 위한 선교는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로마 제국 내부에서 외형적인 안정을 찾고 제도화된 교회는 선교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이전 시대가 보여주었던 선교 공동체로서의 진정한 교회 모습은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주님의 제자라면 모두가 실천해야 할 교회의 선교는 소수 몇 사람에 불과한 전문적인 선교사의 사역으로 남게 되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을 통해 기독교 공동체가 로마제국의 합법적인 종교 조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축복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선교적인 측면에서는 재앙이 되었던 것이다.

주후 4세기에 이르러 단지 느슨한 조직에 불과하였던 교회 공동체는 로마제국의 세속적인 정치 구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도화된 교회로 그 조직을 견고하게 강화하게 되었다. 별다른 선교적인 헌신 없이도 로마 황제가 직, 간접으로 후원하는 교회에는 수많은 귀족과 로마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배경과 숫자적인 증가로 인해 교회 공동체는 거대한 힘을 가진 가시적인 종교 조직으로 로마 제국 내부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은 주후 4세기 경 로마제국의 인구를 5천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10) 그리고 3세기 말에 이르러 로마 제국의 약 10% 정도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통계가 아니라고 본다.11) 따라서 대략 500만 명의 인파가 교회로 몰려들었고 이런 숫자를 볼 때 교회는 제국 내에서 엄청난 세력을 얻게 되었고 로마제국의 정치 세력과 연결되어 서서히 기득권층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도화된 교회는 더 이상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12) 당시 교회가 선교할 필요를 느꼈다면 그것은 로마제국 밖에 있는 야만족들을 위한 선교였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을 전문적 선교사로 파송하였을 뿐,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 교인들은 선교의 사명과는 관계없이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세력을 얻게 된 것은 영적으로 교회가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이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소수의 선교사가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해야 될 선교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경향은 매우 뚜렷하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선교의 범주를 약화시키고 축소시킨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가 지상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길로 나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제도화되어 그 기동성(mobility)을 상실하고 선교 정신이 메마르게 되면 교회의 미래는 분명하다. 그것은 교회가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외향적인 선교적인 사업은 진행되고 있어도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주님의 제자들이 실천하는 선교가 아니면 그곳에 선교 마인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교는 그 속성상 언제나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속에 머무는 ‘나그네 됨’을 요구한다.13) 그러나 교회의 제도화나 선교 단체의 비대한 조직은 언제나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그네 됨’을 막아버린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 제도 안에 안주하고 머무는 동안 세속의 물결은 교회를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다.

 

주(註)

1) Will Durant, Caesar and Christ,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44, 602. J. Herbert Kane의 책, A Concise History of the Christian World Mission, (Grand Rapids: Baker), 1982. 20에서 재인용. 

2) Herbert Kane, op. cit., 20.

3) 행 13:1-12.

4) 행 8:1-8.  

5) 행 11:19-26. 

6) Eusebius, Eccles. Hist. Hist. III, 37, 2-3, Stephen Neil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Penguin Books: London), 1964, 35에서 재인용. 

7) Howard Peskett & Vinoth Ramachandra, The Message of Mission: The Glory of Christ in a All Time and Space, (Downers Grove: IVP), 13.

8) Ibid.

9) ‘작은 여우’(Little Wolf)라는 뜻의 울필라스(Ulfilas)는 311년 터키에서 출생하여 38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죽었다. 그는 최초로 성경을 고트족 방언으로 번역했다. 

10) Stephen Neill, 1990, op. cit., 39.

11) Ibid.

12) David Bosch, op. cit,, 489.

13) M. R. Spindler, "The Missionary Movement and Missionary Organizations", in Missiology: An Ecumenical Introduction, ed. F. J. Verstraelen, A. Camps, L. A. Hoedemaker, M. R. Spindler, (Grand Rapids: Eerdmans), 1995,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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