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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탄 난로의 추억
장경애 사모 컬럼
2023년 02월 06일 (월) 10:29:18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우리나라는 아무리 추운 겨울도 시간이 지나면 봄이 오고, 아무리 더운 여름도 시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사계절의 선물을 받은 나라다. 이처럼 한 계절에 싫증이 날만 하면 또 다른 계절이 우리에게 온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이기에 감사하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 무뎌진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계절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싫증이 나고, 또 우리의 생활이 나태해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계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지난 몇 해 동안 겨울은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는데 이번 겨울은 겨울다운 매서운 추위가 우리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늦가을부터 우리에게 찾아온 추위는 예사롭지 않았다. 기상청의 예보대로 추위와 함께 서해안에는 이른 폭설이 내리고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다. 이번 겨울은 오랜만에 ‘겨울은 이런 것’이라는 듯 겨울 맛을 제대로 알려 주었다. 예전에는 추워도 삼한사온이 있어 3일 추우면 4일은 좀 덜 춥기도 했건만 이번 겨울에는 그것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는 일찍 물러갈 것이라는 예보도 있었으니 그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봄은 오고야 만다. 반드시 온다.

나 어릴 적에는 이 정도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었다. 해마다 한강이 얼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물이 나오고, 방안의 웃풍도 옛날 집처럼 심하지 않고, 옷도 갈수록 진화하여 얇으면서도 따뜻한 옷들이 많이 나왔다. 발전하는 세태의 영향으로 추위를 덜 느끼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내 어릴 적의 겨울은 정말 무척 추웠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다시 귀가할 때까지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기에 동상에 걸려 고생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지금은 몸을 녹여주는 손난로가 흔하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털실로 짠 장갑이 고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나마 조약돌을 달구었다가 등교하는 내 손에 쥐여 주기도 하셨다. 또한 지금은 버스 안에 난방장치가 되어있어 버스를 타면 따뜻하지만 내가 학교 다닌 시절엔 버스 안에도 사람이 많이 타서 사람의 입김과 체온으로 데워지지 않으면 버스 안도 추웠다. 그것도 낡은 버스가 대부분이라 버스가 달리면 바람이 버스 안으로 신나게 들어왔다.

학교 교실 안이 바깥 추위보다는 덜 추웠지만 교실 안에서도 몸이 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영하 4도 이하가 되어야 난로를 피워 주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기 전에 일기예보를 꼭 들었다. 겨울엔 대기 온도가 중요했고, 여름엔 날씨 상태가 중요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 겨울의 일기예보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 날, 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운동장은 온통 노란 연기로 자욱했다. 그것은 교실마다 있는 난로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이었다. 그 연기의 범인은 바로 조개탄이었다. 조개탄은 무연탄을 조개 모양으로 만든 땔감이다. 그런데 이 조개탄은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노란색 연기가 나는 연료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노란 하늘이 보이는 듯하고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난다. 1960년대 서울 시내의 학교 난로는 거의 가 이 조개탄 난로였다. 이 난로는 먼저 불쏘시개를 넣고 불을 붙인 뒤, 그 불 위에 조개탄을 부어 불이 붙으면 따뜻하게 되는 원리의 난로였다. 교실 한가운데에는 이러한 난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난로가 교실 전체에 온기를 주기보다는 난로 주위에 앉은 아이들에게만 그 혜택이 있었다. 허술한 유리창은 바람이 들어오기에 충분했고, 난로 주위에 앉은 아이는 난로 열기에 얼굴이 달아올라 벌겋게 되었지만, 온몸이 다 따뜻한 것을 아니었다. 발은 시렸고, 난로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추웠다. 그나마 열기 있는 난로는 점심시간까지만 가능했다. 한 학급당 배급받은 조개탄의 양이 너무 적었기에 점심시간이 지나면 난로의 열기는 다 사라지고 교실 안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저학년일 때는 수업이 오전에 끝나 별문제가 없었지만, 수업이 오후까지 진행되는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추위를 견뎌야만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너무 추운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난로에 필요한 조개탄을 창고에 가서 몰래 가지고 오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훔쳐 오는 일이었다. 어떤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가서 거리낌 없이 조개탄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오기도 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하는 일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추워하는 제자들이 안쓰러운 마음에서인지 은근 묵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간담이 큰아이도 자기 혼자 이 일을 도맡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학급의 모든 아이를 이 일에 공범으로 가담시키기에 이르렀다. 결국 키와 몸집이 큰 아이들부터 이 일을 하도록 했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반 아이들의 순서가 다 끝날 무렵 순서에 들어 있었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는 불안을 제외하면 몰래 조개탄을 가져오는 아이들 덕분에 오후 시간도 그나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나는 내 순서가 점점 다가올수록 전전긍긍했다. 내 양심상 도저히 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학급의 모든 구성원이 다 하는 일을 내가 못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반 아이들 사이에 완전히 찍힐 것이고, 아이들은 나에게 착한 척하지 말라고 비난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만일 그 일을 하다가 들키는 날이면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나를 압박했다.

기도도 해 보았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것은 나쁜 일인데… 도와주세요.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 없는데…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겁이 나고 무거운 마음의 그 일을 한 번도 할 기회가 없이 지나갔다. 내가 당번이 되었을 때, 그때마다 내가 시행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생겼다. 선생님께서 긴요한 심부름을 시켰든지, 혹은 단축수업으로 인해 조개탄이 더 필요 없든지 아무튼 용케도 피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작은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의 겨울은 불안함과 함께 더 추웠다. 그런데 이 불안한 일은 조개탄을 난방용 연료로 사용하던 여고 시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대범한 아이는 창고에 가서 조개탄을 몰래 가져오기도 했으나 당번을 정하여 가져오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조개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양동이에 담긴 조개탄과 노란 연기 자욱한 학교의 운동장, 그 조개탄 난로 위에 빼곡히 쌓아 놓은 양은 도시락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에 스치면서 힘들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그리고 뭔지 모를 미소가 떠오른다.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봄이 오기를 갈망하게 된다. 또한 겨울이 매우 추우면 봄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노란 하늘의 학교 운동장에도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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