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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아담론' 그게 뭔데?
성경해석 능력을 키우는 4가지 방법(16)
2023년 01월 26일 (목) 10:47:51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아담 이전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상이 있다. 이단자들이 주장하는 내용 중 하나다. 소위 ‘이중아담론’이라 부른다. 바로 창4:14절의 “나를 만나는 자”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그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 개역개정)

위 성구의 배경은 이렇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후,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창4:8).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은 것에 대해, 가인이 화를 참지 못해 그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믿음 없이 제사 드린 것에 대해 회개하고 반성해야 할 가인이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을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벌을 내리셨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2)라는 게 그 벌의 핵심이다. ‘유리하는 자’라는 게 무슨 내용인가. 그것을 영어성경(NLT)에서는 “you will be a homeless wanderer on the earth”라고 의역을 했다. ‘집 없는 방랑객이 된다’고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의 내용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과도 같다.

   
 

가인은 ‘집 없는 방랑객이 된다’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당시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개고생’ 그 이상의 무서운 의미다. 자신에게 내려진 그 죄벌이 너무 무겁다며 쩔쩔맸다. 가인은 한 번만 용서해 주든지 아니면 그 벌의 정도를 약하게 해달라는 하소연이다. 그러면서 한 말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창4:14절이다. 특히 “나를 만나는 자마다”에 대한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이 집 없는 방랑객으로 돌아다닐 때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의해서 자신을 죽게 될 것이라며 매우 두려워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위 성구에서 “나를 만나는 자마다”에 해당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구문이다. 창세기 4장을 1절부터 14절까지 읽는 동안 등장하는 인물을 살펴보자.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 이렇게 4명뿐 아닌가. 그런데 가인이 집을 떠날 때 만나기를 두려워한 인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가인이 실언을 한 것일까? 창세기 4장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 가져본 적 있지 않은가?

이때 소위 이중아담론이라는 사상을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 이중아담론이라는 것의 내용은 한 마디로 ‘아담 이전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인이 “나를 만나는 자마다”라며,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이들이 바로 아담 이전에 존재했던 이들이라는 말이다. 이런 주장을 들어보았는가? 처음 들어본 이도 있을 것으로 본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다. 일반 정통교회에서 그러한 내용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 이중아담론이라는 것이 바로 비성경적인 내용이니까 말이다.

이중아담론, 즉 아담 이전에 사람이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주장이 정통적인 성경적 내용이라고 말한다. 이때 사용된 구절이 지금 우리가 언급한 창4:14절이다. 가인이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바로 아담 이전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런 뜻이 아니라면 가인이 두려워했던 이가 도대체 누구냐며 오히려 항변을 한다. 죽은 아벨이 살아난 것이냐며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아!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내용은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니 혼동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의 믿음이 뿌리 채 흔들릴 수도 있다.

이중아담론, 즉 하나님께서 아담 이전에 여러 명의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후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중 소위 괜찮은 사람 하나를 택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고 그가 생령이 되었다. 그가 바로 아담이다. 이후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 그들이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그 가인이 아벨을 죽였고, 그 벌로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때 가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했다.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아담과 함께 창조되었던 나머지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설명하면 위 창4:14절의 “나를 만나는 자마다”에 해당되는 의문이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딱 그 정도까지만이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오히려 위 사상이 스스로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따져보자. 아담과 함께 여러 명이 창조되었다고 했다. 아담은 선택되어 ‘생령’이 되었다고 했다. 생령이 무슨 말인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들인데 생령이 되지 않은 존재라는 말밖에 없다. 그런 이들이 누구인가. 오늘날 흔히 영화나 만화에서 언급되는 바로 좀비가 아닌가. ‘살아 있으나 죽은 존재’ 또는 ‘살아 있는 시체’ 등과 같은 피조물이 된다. 가인이 두려워한 이들이 바로 그들인가. 또 하나 문제가 더 발생한다. 그 좀비들은 오늘날 어디에 있는가. 어느 지역, 어느 민족으로 존재하는가. 혹 멸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고 다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들은 모두 영화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살아있다고 말하면 될까?

이제, 가인이 두려워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 위 성구 “나를 만나는 자마다”(창4:14)에 대한 접근이다. 아담이 첫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게 그 핵심이다. 우리가 그 동안 훈련했던 방법들을 총동원해 보자. 먼저 관주가 눈에 들어온다. “만나는 자마다”(창4:14)에 관주 표시가 있다. 연결된 성구를 찾아보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민35:19)

위 구절을 읽어보니, 우리가 찾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성이 크다고 보기 힘들다. 그럼 다른 번역 성경을 참고해보자. 직역 성경, 역동적인 번역 성경 그리고 의역 성경 모두를 살펴보자.

every 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창4:14 KJV)
whoever find me will kill me”(창4:14 NIV)
anyone who finds me will kill me”(창4:14 NLT)

여러 번역 성경을 읽어보아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성경 내용의 반복이었다. 영문 성경 외 다른 한국어 번역 성경을 읽어보아도 동일하다. 역시 우리가 원하는 내용과 거리가 멀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가인이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자가 누구인가’ 또는 ‘첫 사람이 누구인가’ 등이다. 관주로 연결된 위 성경구절을 읽어보아도 우리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찾을 수는 없다. 관련이 없어 보인다. 창4:14절에 다른 관주도 있다. 첫 구절 ‘주께서’에도 관주가 달려 있고, 그 뒤 ‘주의 낯을’에도 있다. 모두 찾아보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관주로 인한 성구 연결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관주의 한계다.

관주를 사용한다는 것은 개인 성경 연구를 풍성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이단 문제를 대처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임을 그동안 살펴보았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전해준 귀중한 선물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관주를 실제로 사용하다 보면, 연결해 놓은 구절이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연결해 놓았으면 좋았을 구절이 관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관주에 분명 한계가 있다.

이번에는 문맥을 따라 읽어보자. 창4장 16절 이하를 보면 방랑객이 된 가인이 놋 땅에서 아내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를 만났다는 게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이중아담론의 주장에 오히려 더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도움이 아니라 더 답답해질 뿐이다. 어찌해야 할까? 그냥 신학교 교수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거나 유명하다는 주석서를 참고하고 끝내야 할까?

이때 고린도전서 15:45절과 47절을 알고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된다. 신약성경이 구약성경, 그것도 아담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래와 같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이는 성경이 스스로 아담이 첫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명확한 구절이다. 이런 성경 구절이 있었다니, 정말로 두 손 들고 ‘할렐루야’라며 소리칠 일이다. 평소 성경공부 등을 통해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구절이다. ‘아담’이라는 단어로 <성구사전>을 찾으면 나온다. 또는 ‘첫 사람’이라는 단어로 컴퓨터 검색을 해도 발견할 수 있다. 관주나 문맥을 통해서 발견할 수 없는 연결점이다.

그렇다. 아담은 분명히 첫 사람이다. 성경이 스스로 직접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바다. 복잡한 신학적 해설을 통해 얻은 결과가 아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증명해 주고 있어서다. 아담 이전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즉 ‘이중아담론’은 그래서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위 두 개의 성경구절(고전15:45, 47) 때문이다. 이 두 개의 구절이 창4:14절의 관주에 표시되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이중아담론의 반론 성경구절을 찾지 못해 한 때나마 가슴 쓸어내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관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 된다. 이제 자신의 성경 창4:14절 인근 여백에 위 두 개의 성구를 직접 관주로 기록해 놓으면 된다. 나만의 관주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 가인이 두려워 한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아담=첫 사람’이라는 맥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계속적으로 출산을 해서 생긴 자녀들로 이해하는 게 좋다. 그것 역시 성경이 지지해 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창5:4)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이외에도 계속해서 많은 자녀를 낳았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그 모든 자녀의 이름이 다 나타나지 않는다. 구속사에 필요한 인물만을 선택 기록된다. 다시 말해 가인이 두려워했던 이들은 아담과 하와의 또 다른 자녀들로 이해하는 게 좋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맥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 본 원고 시리즈 전체가 단행본 <성경해석 누구나 4단계>(장운철, 부크크)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알라딘’이나 ‘부크크’ 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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