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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검 딴죽걸기’ 우려된다
과민반응 배경과 향후 전망
2003년 03월 19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현대의 대북 송금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동결을 위협하던 데서 나아가 지난 대선 기간 중 한나라당 밀사와의 접촉설까지 주장하고 나서는 등 정상적인 궤를 벗어나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제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수용하기로 결정한 3월 14일에는 입장발표 몇 시간만에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나서는 등 과거와는 달리 발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검제 도입 움직임과 관련한 북한의 반응은 단계적으로 수위가 높아져 왔다. 북한 당국에서도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본격적인 반응은 지난 9일 대북송금과 관련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북한은 당시 특검법 국회 통과와 관련 “북남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현대의 협력사업은 민족의 응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며 절대로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특검도입을 주도한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북측에 밀사를 파견해 ‘집권시 대규모 대북지원’을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북한은 당시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아태평화위원회 상보(詳報)에서 “아태와 현대의 경제협력사업 과정에는 경제 논리만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아태평화위는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아태와 현대 사이의 협력사업은 물론 북남협력사업 전반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라고까지 말했다.

북한은 대북송금 특검을 밀어부친 한나라당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상보는 “그들(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 출현 이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고위급 접촉을 제안하면서 자기들의 청원을 들어 준다면 수 백억 달러의 자금은 물론 우리의 요구라면 항목과 규모에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까지 제안해 온 바 있다”고 공개했다. 또 “특히 한나라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측에 밀사를 보내어 지금 자기들이 현 정부와 여당의 대북정책을 공격하는 것은 집권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이회창이 당선되면 현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통 큰 대북지원을 할 것을 담보하였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특검제에 대한 공표가 결정된 14일에는 대선 기간 중 밀사접촉의 구체적인 정황까지 거론하면서 한나라당을 한층 더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과 12월 한나라당이 보내온 밀사는 평양과 베이징에서 우리측에 이회창이 대통령이 다된 것처럼 기정사실화 하면서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확정적이라 하고 이회창 정부는 자기들의 청원을 북측에서 들어만 준다면 현 정부보다 더 많은 자금은 물론 항목과 규모에 제한없이 통 큰 대북지원을 할 게획이므로 북에서 이회창 후보를 밀어달라고 애써 요청했다”는 게 골자다.

북한은 또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둔 7월과 10월에 3차례에 걸쳐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이 직접 다른 나라의 정부와 국회를 통해 자기가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북을 나쁘게 보아서가 아니라 당선 목적인 것인 만큼 북에서 오해 없이 협력해 줄 것을 요망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처럼 특검에 반기를 들고 나오면서 표면적으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우고 있다. 금강산 사업의 북측 사업자인 아태평화위(위원장 金容淳)가 중앙통신을 통해 밝혔듯 남북경협 과정에서는 “경제논리만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특검과정에서 현대와의 구체적 거래내역이나 자금흐름이 낱낱이 드러날 경우 김정일(金正日)체제가 떠안을 부담을 우려한 때문이란 게 가장 유력한 분석이다.

최소 5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의 송금 경로를 밝히는 과정에서 북한 대남라인의 면면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송금계좌 같은 민감한 사안들이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배달사고’ 같은 돌발사안이 불거질 경우 북한 정권의 부도덕성 문제까지 도마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권력의 핵심부 몇몇만이 쉬쉬하고 있던 대규모 자금의 유입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탈북자나 북한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남한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주민들 생활은 나아진 게 뭐가 있느냐”는 반발이 대두될 경우 북한 권력층이 떠안아야 할 부담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6·15 공동선언이나 남북 정상회담이 결국 달러지원에 따른 대가가 아니었느냐는 안팎의 의혹이 쏟아질 수 있다. 모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일 수 있다.

북한이 특검제가 공식 공표된 15일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송금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북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내정간섭 행위라고 주장하고 나온 것도 이런 정황에서라고 볼 수 있다.

대북송금 특검 문제는 김정일 체제 내부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미칠 것이란 점에 북한 당국은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남측 정권이나 기업과의 비밀거래가 공개되는 전례를 만들 경우 향후 당국간 협력사업이나 민간차원을 대상으로 한 ‘조달경제’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판단도 내렸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특검문제는 북한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며 의미를 부여할 게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특검을 다루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처리됐으면 한다”며 북한의 거친 목소리를 우려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북한의 도를 넘어선 주장에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북송금이 현대와 아태간의 민간교류라던 북한이 지난 5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세워 “특검제 강행은 현 북남관계를 동결상태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노골적인 위협을 내놓았는데도 반박성명 하나 없이 침묵한 때문이다.

여기에다 대선 때마다 불거진 대북 비밀접촉 의혹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북한이 97년과 지난해 대선 기간 한나라당과의 대북 비밀접촉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어떻게든 특검제가 현실화 되는 것은 막겠다는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한나라당의 밀사파견문제는 현재로서는 그 비밀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는 추가폭로를 암시해 특검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예봉을 꺾으려는 냄새가 난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과의 막후접촉을 현대측과의 송금문제와 등치시킴으로써 ‘남북간은 특수한 관계’란 주장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북측의 대선 비밀접촉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은 “터무니 없는 소리” 라며 부인했다. 당사자인 이회창 전 총재도 “지난 97년 대선 때도 북한이 내 위임장을 가져갔다느니, 밀사를 보냈다느니 터무니 없는 소리를 했는데 다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며 일축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이 북한으로부터 밀사설 등 의혹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소위 ‘북풍’이란 변수를 대선에 이용하려고 시도한 그림자는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그만큼 북한이 남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정치권 스스로가 만들어 준 꼴이란 비판이다.

북한이 특검제와 관련해 동분서주하며 차단막을 치려하고 있지만 사태는 평양측이 의도하는 쪽으로 굴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 ‘대북 밀사설’까지 주장하며 특검을 밀어부친 한나라당을 압박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제 수용으로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 때문이다.

 3월 15일에는 민주당까지 나서 “북한은 밀사설 등을 내세워 우리 여야관계를 이간말라”며 북한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까지 특검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마당에 북한의 주장은 메아리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점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특검에 촉각을 곤두 세우다 스스로 벼랑에 몰렸다고 판단되면 극단적인 처방을 내놓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검제 강행=남북관계 경색’이란 위협을 현실로 보여주기 위해 내달로 잡힌 10차 남북장관급회담이나 금강산 이산면회소 착공식의 판을 깰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럴 경우 자칫 특검제를 둘러싼 남북간의 신경전이 남북관계의 동결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검제와 남북관계라는 함수를 정부당국은 물론 국회와 국민여론이 신중하게 풀어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 중앙일보  통일외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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