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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뇌관: 은퇴
조성돈 교수의 논단
2022년 12월 05일 (월) 11:18:01 조성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정병오·정현구·조성돈·조주희, 이하 기윤실)이 지난 11월 25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 목회자 은퇴 시스템을 생각하다’는 제하의 발표회를 가졌다. 목회자 ‘은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취지다. 이날 발표된 내용 중 조성돈 교수의 발제문 전체를 게재한다. 독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기윤실 공동대표)

   
▲ 조성돈 교수


  들어가며

  목회자의 은퇴는 최고의 면류관이다. 만 70세가 되어서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길게는 50년, 짧게는 30년 목회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었음을 말하고, 가정에서도 별문제가 없고, 무엇보다 건강이 뒷받침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영육 간에 강건하고, 주어진 사명 가운데 흔들림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목회가 한 교회에서 지속되었다면 더 큰 영광이요, 심지어 그 교회가 자신이 개척하여 일구어온 교회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 교회에서 10년 이상 목회한 자들은 영광을 받아 마땅하다. 10년 동안 동일한 청중을 대상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정말 뼈를 갈아 넣는 일이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들으며 감동을 받고 깨달음이 있기에 목회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세월이 10년을 넘어, 20년, 30년이 되었다면 그건 재주가 아니라 성실이고,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가족도 20년, 30년이면 그 관계에 있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부부라 해도 위기와 애증의 상황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로 만나 몇 십 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실족하지 않고 한 교회에서 은퇴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 같다. 그런데 은퇴의 과정에서 이 수십 년의 공로를 다 까먹는 경우들이 생긴다. 수십 년 은혜로 이끌어온 목회였는데,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되는 상황이 생긴다. 목사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까지도 모든 것을 헌신했다. 집 한 칸 없이 살았고, 하나 마련했던 것도 교회를 건축할 때 과감하게 내놓았다. 정말 온전히 헌신했다. 노후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걱정 자체가 불신앙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설교했는데, 내가 노후 걱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내 노후도 지켜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속내는 교회가 나를 돌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누구보다 우리 교회가 안다. 특히 장로들은 바로 옆에서 나의 헌신을 보았다. 적어도 그들은 나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은퇴가 다가오니 그들이 달라졌다. 돈 문제가 나오니 차가워졌다. 은퇴가 눈 앞에 다가왔는데 당장 들어가 살 집도 없다. 앞으로 30년 더 살아야 한다는데 먹고 살 돈도 없다. 목사라고 대접받고 살았는데, 가난으로 부끄럽지 않아야겠는데, 자신이 없다. 이제 내 노후를 저들에게 맡길 수가 없다.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한다. 먼저 은퇴한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한다. 평생 이런 이야기할 줄 몰랐는데 장로들 앞에서, 성도들 앞에서 내 몫을 달라고, 구체적으로 얼마를 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분노가 인다. 내 덕에 은혜받고, 구원받아서, 믿음의 일가를 이룬 장로들인데, 영적 아비인 내가 은퇴하는데 알아서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이렇게 비참하게 돈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래서 분노가 치민다. 화가 올라오고, 목소리가 커지고, 저주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성도들 입장은 안쓰럽다. 평생 신앙의 스승이요, 아비로 섬겼다. 그는 목자로서 헌신했고, 그 헌신에 감동이 되어 이 교회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런데 그 목자가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목청을 올리고 있다. 내가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고, 사업한다고 아등바등해서 모은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 문제로 교회는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님의 몸이요, 그 목자의 양 떼라고 했던 교회가 싸움이 나고, 분열하여 쓰러지고 있는데, 목사가 물러나지를 않는다. 자기 분깃은 온전히 챙겨야겠다고 한다. 내가 알던 그 목사가 맞을까 하는 의심도 들고, 신앙에 대한 회의도 일어난다. 우리 부모가, 우리 형제가, 내 자녀가 그 목사에게서 세례받고, 기도 가운데 결혼하고, 자녀를 보고, 장례까지 치렀는데, 그 목사님 덕에 이렇게 신앙의 대를 잇게 되었는데, 그가 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내 신앙도 문제지만, 우리 자녀가 시험에 들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시나리오는 최근 한국교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일이 되었다.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한국교회에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목회자의 은퇴 문제로 인해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어떤 제도가 없다 보니 영광스러운 은퇴의 자리가 돈 싸움이 된다. 목사도 실망이요, 성도들도 실망이다. 그냥 심적인 실망이면 다행인데, 다툼이 일어나고 분노가 일어나고, 끝내는 교회가 분열하여 무너진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상황을 살펴보고, 문제의 본질과 앞으로의 제안을 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6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다. 은퇴 목사 1명과 은퇴를 앞둔 목사 3명, 70대 은퇴 장로와 40대 직장 여성과의 인터뷰이다. 은퇴한 목사와의 인터뷰가 몇 번 실패하여 한 명밖에 성사되지 못했다. 실은 실망한 사례가 들어와야 더 생생한 그들의 심경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이후 이어진 좌담 형식의 인터뷰도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젊은 목회자들의 목소리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읽게 되었다.
 

1. 목회자 은퇴를 이야기하는 배경

1) 은퇴/원로목사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 70세를 맞아 은퇴하는 목회자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회자의 수명이 평균과 비교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의 은퇴를 보는 것은 그렇게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원로목사가 된다는 것은 더욱 그러했다. 교단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한 교회에서 20년을 목회한 이는 원로목사의 자격을 갖는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원로목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하는 목사가 많아졌고, 원로목사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2명의 원로목사를 모시는 곳도 있다. ‘젊은’ 원로목사가 ‘어른’ 원로목사를 모시고 다니는 풍경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70세에 은퇴하고 남아 있는 여생이 있다. ‘은퇴 이후’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은퇴 이후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 30년은 그냥 지낼 수는 없다. 아직 체력도 있고, 마음도 여력이 있다. 한 은퇴 목사는 ‘이제 목회를 알만한데 관두어야 한다’는 말로 심경을 피력한 적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은퇴 이후에 후배 목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회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다. 그래서 은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되기를 원한다. 아직 10년이고 20년이고 충분히 사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기반 역시 교회가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은퇴는 이렇게 복잡한 결과를 가져온다. 기존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들이다.

과거와 비교할 때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가족 중심의 부양체계가 있었다. 60세가 넘어가면 자녀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갔다. 자녀 집에서 그들의 부양을 받으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가정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결국 나이가 들어도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에 따른 주거 문제와 생활비 문제가 있다. 이걸 가정에서 해결이 안 되니 교회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자기 부모도 그렇게 못 모시는데 ‘영적’ 자녀들이라고 그걸 할 수 있을까.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문제가 불거진다. 은퇴 목사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교회마다 생기고 있다. 은퇴하는 목사도 영적으로나 체력적으로도 아직 힘이 남아 있다. 은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지내다가 은퇴하여 30년을 뒷방에서 지낼 자신도 의지도 없다. 여기에 더해 은퇴 이후에 자녀에게 의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사회가 벌써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목회자의 은퇴가 한국교회에 뇌관이 되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 교회는 어렵다.

요즘 부흥하는 교회를 보는 것은 정말 어렵다. 교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퇴 목사에게 예우할 수 있는 돈이 없다. 은퇴에 드리는 전별금을 드릴 목돈도 없고, 원로목사에게 드리는 월정액도 드릴 여건이 안 된다.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했던 퇴직금 적립금도 이미 교회가 어려울 때 모두 빼서 써버렸다. 더군다나 교단마다 차이는 있지만, 연금도 없다.

보통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십일조는 퇴직 적립금으로 쌓아둔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월 사례가 그렇게 높게 책정되어 있지 않다. 여타 복지 차원에서 지원되는 부분들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목회 활동비나 도서비 등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정작 본봉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십일조라고 하면 그렇게 많지 않다. 결국 이것은 퇴직 적립금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교회들이 이 적립금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교회가 건축할 때, 또는 어떤 위기를 맞이할 때 이 적립금을 내어놓는 경우들이 많다. 앞장서야 하는 목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퇴직 적립금을 놔두라고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즉 목사가 평생 목회한 교회인데, 감사한 마음을 표해 보려 해도 드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아마 대부분 작은 교회들의 상황은 다 비슷할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니 여러 편법이 나타나게 된다.

3) 미래는 불투명하다.

목사가 은퇴하면 대부분 교회의 사례를 이어간다. 원로목사의 경우도 그렇고, 꼭 원로목사가 아니어도 그렇다. 그래서 교회들이 이중의 부담을 가지게 된다. 현직 목사에게 사례가 나가고, 일정 금액은 또 은퇴 목사에게 나간다. 한 분의 월급도 책임지지 못하는 교회들이 상당한데, 이렇게 두 명의 사례를 지급하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교회가 부흥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교회는 점점 줄어든다. 특히 별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리더십이 바뀌면서 위기에 빠지는 교회들이 많다. 분열이 일어나고, 싸움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교회는 점점 사그라든다. 그러면 원로목사에 대한 월 사례는 감당이 안 된다. 이것이 적립되어 있는 돈이 아니고 현재 들어오는 헌금에서 지급이 되는 것이니 항상 불투명하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인해서 목회자의 은퇴가 이 시대에 한국교회의 뇌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은퇴하는 목회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각 교회들은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고, 앞으로도 이를 감당하기는커녕 교회가 줄어들어 현상 유지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교회나 은퇴목사나 불안은 늘어가고, 이러한 불안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2. 은퇴의 편법/불법의 현상: 4가지 유형

1) 후임에게 퇴직 사례를 받는 경우

작은 교회의 경우 목사가 퇴직하는데 챙겨줄 것이 없다. 요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후임이 은퇴하는 목사에게 전별금을 챙겨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음성적으로 이루어졌던 부분인데, 이제는 거의 공식화 되어 있다. 오히려 목사들 개인 간의 거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가 직접 나서서 주선하는 경우도 있다. 즉 교회가 헌금 형식으로 받아서 은퇴하는 목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후임을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가 쟁점이 된다. 즉 전임과 후임이 알아서 정하고 교회가 통로 역할만 할 것인지, 또는 교회가 나서서 양쪽을 다 상대할 것인지의 차이다. 그게 그거 같지만 당하는 교회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는 개인 역량에 따라서 정해지기 때문에 공적 여지가 없다. 즉 후임이 한 개인에 의해서 청비되는 경우의 문제가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는 그래도 교회를 거치기 때문에 좀 객관적인 청빙 절차가 생길 여지가 있다.

전에는 큰 교회들이 부교역자들에게 개척을 지원했다. 보통 1-2억 정도의 지원을 해서 개척하는 경우이다. 모든 교회가, 그리고 모든 부교역자에게 이렇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지원을 하는 셈이다. 그러면 개척하는 목회자는 일정 부분은 장소 임대 보증금으로 넣어놓고, 나머지는 교회 인테리어나 장비를 사기도 하고, 어느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생활비 등으로 쓰기도 한다.

문제는, 요즘은 이렇게 개척하는 교회의 성공률이 지극히 낮다. 정말 상가에 개척하여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교회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이러한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결국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요즘은 새롭게 개척시키기보다는 기존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럴 경우 개척자금이 그 교회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전환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 은퇴하는 목사의 전별금으로 지급된다.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니 이것이 대안이 된다.

이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대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진행이 안 되면 기존 교회가 유지되기 힘들다. 그리고 은퇴하는 목사는 전셋집이라도 얻을 수 있는 자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 또 지금 개척하는 것도 무리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서 요즘은 이런 현상이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2) 교회 병합을 통해서 퇴직 사례를 받는 경우

요즘 교회가 점점 어려워지니 교회당 유지가 어려워지는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교회 병합이다. 각각 존재하던 두 교회가 교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합치는 것이다. 이것은 코로나의 영향력도 큰 몫을 했다. 요즘은 상가나 공공공간에서 교회당을 얻는 것이 어렵다. 교회로 인해서 상가 전체가 영향을 받는 일들이 꽤 일어났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 표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상가에서 교회하던 사람들이 다수 쫓겨났다. 실제로 그러한 이유로 상가에 자리한 꽤 큰 교회가 교회당 재계약을 못 한 경우가 주변에서 있었다.

또 다른 현상으로 교회당은 번듯하게 있는데 교회가 무너진 경우가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것이다. 때로 분열로 인해서 그런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도태한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부흥하던 시대에 마련한 교회당이 있는데, 그마저 유지하기 어렵다. 한 교회는 교회당이 상당한 규모로 있었다. 교회가 있는 자리는 땅값이 전국적으로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담임목사는 원로목사로 은퇴를 했고 후임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후 교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다툼과 싸움이 일어났고, 교회 재산을 둘러싼 사기 사건도 있었다. 결국 교회는 교인을 다 잃었고 교회당만 남았다. 물론 원로목사의 사례는 감당이 안 됐다.

이 교회는 앞의 상가에서 쫓겨난 교회와 합병을 했다. 앞의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로 교인이 있었고, 뒤의 교회는 교회당은 있는데 교인이 없었다. 서로 교류가 있었던 교회는 아니었지만, 현실적 상황에 밀리어 두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합병의 조건 중 하나는 원로목사에 대한 대우였다. 최근 이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코로나 상황에서 나타난 특이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이런 형태 역시 합리적인 대안으로 자리하고 있다.

3) 교회 매매를 통해서 수익을 받는 경우

아직 이런 케이스가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다. 인터뷰 과정에서 들은 내용이다. 목사가 은퇴하는데 전별금도 마련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교회당은 상가에 있다. 교인들이 은퇴에 맞추어 교회당을 팔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목사의 은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자기들은 그에 맞추어 해산하기로 했다. 이런 일을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방법인 것 같다.

또 다른 케이스는 교회당을 팔고 규모를 줄여서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경우이다. 지방에 있는 한 교회는 5층짜리 건물에 교회당과 목사 사택, 그리고 함께 한 교인들이 층을 달리해서 살았다. 교회를 지을 당시 목사와 몇 교인이 동의하여 살던 집을 정리해서 공동주택 형식으로 마련한 교회당이었다. 그런데 목사가 은퇴할 때가 다가오자 문제가 생겼다. 은퇴 후 그 교회에서,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없다. 결국 교회당을 팔아 작은 곳으로 옮기고, 목사 사택을 분리하여 마련해 두려 했다. 그런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목사의 몫이라는 것이 있는가의 문제제기였다. 결국 교회는 분열이 되었고, 목사는 일정액의 퇴직금을 받고 은퇴 전에 나오게 되었다.

또 다른 경우는 교회당이 있는 곳에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었고, 교회당은 지역사회에 팔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당을 근방에 다시 사게 되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남는 금액이 있다. 이 경우도 역시 목사가 교회당 안에 있는 사택에 살고 있었다. 목사는 그 남는 금액에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요청했다. 그 돈이 2억 5천만 원이다. 목사가 개척하여 은퇴를 앞둔 교회이다. 이 돈에 대출을 얹어 교회 앞에 아파트를 하나 샀다. 일단 노후에 들어갈 살 집은 마련을 한 것이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서 큰 어려움 없이 노후를 마련한 경우이다.

4) 교회 재산을 정리하는 경우

가장 안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퇴직하는 목사가 교회의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다. 교회는 집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회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인 총회와 같은 회의체가 중요하다. 그런데 목사가 퇴직하는 상황에서 교인들을 내보낸다.

방법은 다양하다. 교회가 이사를 가는 경우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러면 못 좇아오는 교인들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또 이사를 간다. 이렇게 2-3번 이사를 하면 기존 교인들이 다 떨어진다. 물론 새로운 교인을 받을 생각도 안 한다. 결국 목사 가족과 가까운 사람만 남아서 교회의 재산을 정리한다. 건물과 남은 재산이 모두 대상이 된다.

또 다른 경우는 교회에 분란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교인들이 교회를 버리고 나가버린다. 경기도의 신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 시내에 있었던 교회인데, 교회에 다툼이 일어났다. 법정 다툼까지 가는 치열한 싸움으로 번졌다. 장로와 목사 사이에 일어난 법정 다툼이었는데, 목사가 이겼다. 그리고 교회당을 옮겼다. 새로 조성된 신도시로 새로 건축을 하고 이사를 했다. 그런데 교인은 다 사라졌다. 교회당이 매물로 나와서 개인적으로 소속되었던 교회의 장로들이 분립개척을 위해 알아보러 갔다. 목사가 나와서 언제든 매매가 가능하다고 소개하더란다. 교회가 목사의 개인재산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재산을 정리해서 셀프 은퇴를 하려는 것이다.
 

3. 은퇴의 핵심 사항

목회자가 은퇴함에 있어서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집과 월 생활비이다. 대부분 특별한 준비가 없이 은퇴를 맞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이다. 자세히 보도록 하겠다.

1) 집

‘집 문제가 제일 큽니다. 뭐 집만 있으면야 나머지는 뭐 그냥 먹고 사는 건 괜찮고요.’
한 은퇴 목사의 이런 이야기는 현실이다. 집이 가장 큰 문제이다.

목사들은 대부분 사택에서 평생을 지낸다. 자기 집을 가져야겠다고 생각도 못해 보았고, 그런 목돈을 모으는 것도 어렵다. 자기 집을 가졌다 해도 교회의 건축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앞장서서 헌금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걸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은퇴하면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이 집이다. 웬만한 교회에서 목회를 한 목사들은 은퇴를 맞아 집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전세금이라도 마련이 됐으면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교회나 목사 입장에서 무리가 생긴다. 당장 교회를 나가는데 후임 목사를 위해서 사택을 비워주어야 하고,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면 큰 돈이 필요한데, 어떻게 마련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바로 여기서 다양한 선택 앞에 서게 된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은퇴하는 목사가 살아야 할 집을 교회가 책임져야 할 것인지, 목사 개인이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은퇴를 한다면 이건 질문이 안 된다. 은퇴한다고 집을 마련해 주는 직장은 없다. 하지만 교회는 항상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 교회 소유의 사택에서 평생 살았던 분을 집이 없이 은퇴하게 한다면 매정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에서 은퇴하시는 분의 주거 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교회가 그럴만한 자산이 있는지 의문이다. 매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유동자산이 있는 교회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전세금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은퇴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난감한 문제이다. 당장 은퇴하고 그 다음 날이라도 들어가 살 집이 없으면 갈 곳이 없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해 본 목회자들은 모두 다 은퇴 이후에 지낼 집에 대한 고민이 컸다. 전에 만났던 지방의 중대형 교회 목회자 역시 집 걱정을 했다. 은퇴 이후에는 임대주택을 알아보아야겠다고 하는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현실 앞에서 아무래도 은퇴하는 목회자가 무리를 하게 된다. 당장 살 집을 교회에서 마련해 달라고 하거나, 집을 구할 수 있는 목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교회는 마련할 길이 없고, 역시 무리한 방법을 강구하거나 목사와 싸움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줄 수 없는 이유와 당위를 찾다 보니 목사의 문제를 들추어낼 수밖에 없고, 믿고 따랐던 목사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떠돌게 된다.

또 다른 선택의 문제는 교회가 집을 구입하여 마련하면, 그 소유를 어디로 할 것인가이다. 보통 이럴 경우 퇴직금 성격으로 은퇴하는 목사에게 소유권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유권은 교회로 하고 은퇴하는 목사와 그 사모가 돌아가시기까지 그곳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부동산 가격이 2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이 부분에서 은퇴 목사의 희비가 갈렸다는 후문이다.

주택 문제가 끼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교회에서 은퇴 목사에게 주는 주택에 드는 비용이 은퇴비용으로 계산된다. 최근 한 초대형교회의 목회자 은퇴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은퇴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억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집을 하나 해 주었고, 월 생활비로 들어가는 비용을 20년 계산해서 합산했다. 초대형교회에서 20년 가까이 목회한 목회자에 대한 대우로서는 그렇게 무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놀랄 만한 일이다. 은퇴하는데 교회에서 20억을 준다고 하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즉 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것도 이후 나타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일은 아니다.

또 다른 문제가 또 있다. 개인이 한다고 하면 임대로 갈 것인지, 전세로 할 것인지, 소유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물론 이거야 개인이 여건에 따라 할 일이기에 특별히 언급할 바는 없다. 그런데 요즘은 정부에서 지원되는 주거보조가 혜택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임대아파트와 같은 경우들도 있다.

은퇴하는 목사들에게 아무래도 주택문제가 심각하고, 수도권에서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요즘 나타나는 현상이 지방으로 은퇴 목사들이 몰리는 것이다. 한 목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주변에서 속초로 가는 원로 목사들이 많다고 한다. 노회장을 지낸 분들도 몇 분 속초로 갔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방이 주거비용이 적게 들고, 주거를 위한 혜택도 많다고 한다. 더군다나 속초는 자연환경도 좋고, 서울과의 교통연결도 수월하다. 이렇게 모이다 보니 속초에서 은퇴한 목사들이 모여서 교제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주변에 물어보니 흥미롭게도 교단별로 선호하는 지역이 달랐다. 감리교는 천안 쪽으로 모인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지역별로 교단이 모이는 곳이 있는 것 같다.

2) 월 생활비

목사들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월 생활비는 교단 연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교단 연금이 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 기준 교단 연금을 운영 중인 교단은 모두 8개 교단이다.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기독교장로회, 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설결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이다. 최근 침례교회와 예장백석이 연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한국교회에 속한 목회자 중에 이러한 교단에 가입이 안 된 목회자들은 결국 교단에서 나오는 연금은 없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교단에서 나오는 연금이 그렇게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연금이 생활을 책임져 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방편은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원로목사의 경우는 교회에서 생활비가 지급되고 있고, 아닌 경우는 교회의 형편에 따른다. 하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는 이러한 것이 쉽지 않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가늠을 해 보기 위해서 한 은퇴 목회자의 생활비를 공개한다.

이 목회자의 경우는 은퇴한 교회가 연 예산 3억 정도이다. 목사는 이 교회에서 14년을 목회하고 은퇴했다.

10년 간 교회에서 적금: 7천만원
은퇴 예우 퇴직금: 1억 (마지막에 교회에서 결정)
매달 50만원 교회에서 지금 (10년에서 종신으로 조정)
교단연금 76만원
국민연금 40만원

이 목사의 경우 교회에서 마련해 준 목돈으로 전세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월 17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한다. 그래도 살 만하다고 한다. 이 목사는 인터뷰 내내 ‘괜찮더라고요’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정도면 섭섭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는데, ‘근데 우리가 내려놓으면 돼요. 괜찮더라고요. 굶어 죽지 않고 그냥 그래도 사람 노릇하고 살더라고요. 해도 뭐 할 거 하고. 너무 돈돈 안 해도 괜찮아요.’

교회에서 이 정도면 다른 교회에 비해서 그렇게 잘 대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 교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합리적으로 되었다고 본다. 교회 입장에서나 은퇴하는 목사의 입장에서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수준이다.
 

4. 다른 시선

목회자 은퇴문제는 목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회에서 지급해야 하는 돈이고, 교회는 곧 공동체이니 성도들의 입장도 중요하다. 이에 성도 2명의 입장에서 정리를 해 보았다. 먼저는 목사 은퇴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교회의 장로였던 70대 남성의 목소리를 듣고, 이후 30대 후반 여성 성도의 목소리를 전해 보고자 한다.

1) 70대 은퇴 장로

시무하던 교회는 성인 기준 출석 교인이 600-700명 정도 되고, 1년 예산이 20억 정도 되는 교회였다. 거기서 장로로 시무했고, 목사가 은퇴할 당시는 교회의 감사였다. 교회는 은퇴하는 목사가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이끌었다. 교회 행정에 대해서 장로들도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심지어 목사의 처남이 수석장로 겸 재무장로였다. 행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목사의 은퇴에 대한 논의는 약 4-5개월 정도 진행되었다. 은퇴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갑자기 이루어졌다. 논의는 토론이나 공적인 과정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은퇴 준비는 목사 혼자, 재무장로와 했다고 봐야 한다. 즉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라 공개가 안되었을 뿐이다.

논의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랬더니 은퇴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근거자료를 마련했다. 주변에서 비슷한 규모의 교회가 은퇴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이 교회에서는 은퇴 이후에 월 400만원의 월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했는데, 다른 교회에서는 1천만 원씩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교회는 적게 드리는 것으로 주장을 했다. 이러한 주장으로 교인 총회를 통과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나중에 조사해 보니 거짓이었다. 하지만 이미 총회에서 통과가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장로는 은퇴에 대한 매뉴얼이나 규칙이 있었으면 했다. 총회가 그런 규칙을 제시해 주었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각 교회가 준비했을 텐데, 성도들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고, 다른 교회에서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니 목사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고, 다른 교회도 이렇게 했다더라 하는 전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과는 원로 목사에게 신도시에 신축된 집과 아파트를 주고, 월 400만원의 월 생활비가 지급되는 것으로 됐다. 물론 이외에도 교단연금과 다른 퇴직금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본 장로도 원로목사가 얼마나 더 챙겼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어림짐작해 보면, 월 생활비로 나가는 것을 빼고 부동산과 퇴직금 등으로 나간 지원이 대략 20억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교회 1년 예산이 은퇴 과정에 원로목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터뷰에 임한 장로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그래도 관대했다. 그동안 목회하셨던 거 생각하고, 들어가 살 집도 필요하니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단지 월 400만원은 과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도 받기 쉬운 금액이 아닌데,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돈을 받는다는 것은 과하다고 한다. 아마 평생 회사를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근로가 없는데 이런 돈을 월급처럼 매달 교회에서 지급하는 것이 꺼렸던 것 같다.

이후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은퇴 과정에서도 문제 제기와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장로회에서는 대부분이 원로목사 편이었고, 교인들도 60-70%는 원로목사 편이었다. 그런데 젊은 성도들은 달랐다. 권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40-50대의 권사(감리교는 안수집사 제도가 없고 남녀 모두 권사로 부른다) 그룹에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특히 원로목사가 은퇴한 이후에 살펴보니 재정적인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사안들도 많았다.

결국 원로목사는 원로 자격이 박탈되었다. 교회에서 주었던 부동산도 일부 반납했다. 또 이후에 발견된 교회 관련된 부동산도 반납이 되었다. 그리고 원로목사에게 주어지는 400만원의 생활비도 중단이 되었다. 기존 과정을 생각해 보면 원로목사가 이렇게 포기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니 법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사회 법정으로 가게 되면 범법행위로 나타날 것이 두려워서 합의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원로목사와 재무장로는 교회를 떠났다. 당시 교회에 있었던 장로들은 교회를 떠나거나, 이제는 은퇴했다. 교회는 분열되어 힘든 과정을 거쳤다. 20% 정도의 교인이 교회를 떠났다. 현재는 후임목사 체제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부흥했다. 하지만 아직도 앙금은 남아 있다. 인터뷰에 임한 장로는 아직도 마음에 짐을 가지고 있다. 평생 목회한 목사를 이렇게 떠나게 하고, 교회로 다시 오지 못하게 했다는 죄책감이다. 그래서 전 원로목사와의 화해를 교회에 건의해 보았는데, 후임 장로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장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 퇴직금은 당연히 그건 정리가 되는 거고. 퇴직금 외에 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어느 정도 좀 상식선에서 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가령 그분의 예 새 생활할 수 있는 그 어떤 그런 그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그런 정도의 뭐 그런 정도 수준을 만들었으면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 30대 후반 직장인 여성

30대 후반의 직장인 여성은 이미 10년 넘는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사회생활에 비추어 목사의 은퇴는 놀랄 일이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인정(人情)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성(理性)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앙의 집안에서 성장한 이 성도는 집안에도 목사가 여럿 있었다. 그들을 생각해 보면 교회에 헌신했으니 교회가 어느 정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맞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도는 ‘어느 정도껏’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성도는 목사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목사라고 어떻게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느냐는 말도 했다. 헌신한다는 것 인정하지만, 특별한 건 아니라고 한다.

‘교회가 사회 내에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교회가 사회 밖에, 법 밖에 있어요. 우리 아빠도 평생 사업 열심히 했고 나도 내 일 열심히 해요. 목사가 월급 받으면서 열심히 하는 거 당연한 거예요. 왜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인식이 들어있다. 목사를 신령한 어떤 계급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목사는 단지 교회에서 하는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경험하면서 어떤 권위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단지 교회만 이 변화를 모른 척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지적인 이제 개 교회의 문제로 풀 것이 아니라 교단을 포함하는 시스템으로 풀어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예를 들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는데 시스템이 안 좇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가족봉양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사라졌는데, 아직 시스템은 이후에 나타나는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이나 노인들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인식이 변했고, 교인들의 인식이 바뀌었는데 교회의 시스템은 안 바뀌었다. 회사에서 30년 일했다면 근속휴가도 주고, 월급도 더 주고 하는 것처럼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 근데 이런 것을 교단이 해 주어야 한다. 은퇴도 마찬가지다. 특별할 것 없이 교단이 시스템을 갖추어서 하고, 특별할 것 없이 사회와 다르지 않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내가 직장인이니까 나는 국민연금 있고 퇴직금 그거 얼마나 되겠어요. 똑같아요. 일반 성도들도 나도 막연해 나도 뭐 없어요. 그러니까 내 월급 얼마 안 되는 거 쪼개서 내 노후 준비하는 거잖아요. 그럼 목사도 준비해야지. 그러니까 목사의 월급을 실질적으로 올려야지. 그러니까 교회 현금으로 안 되면 그 나머지는 교단에서 지원을 해줘야지.’

이 성도의 주장은 아주 합리적이다. 사회에서 직장인이 받는 대접을 목회자도 받아야 하고, 그것은 덜도 더도 아닌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게 현재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실은 젊은 세대라고 하지만 30대, 40대, 그리고 50대까지의 성도들이다.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지만, 사회 경험도 있고, 자신의 삶도 있다. 그러한 범주 내에서 목사의 은퇴도 생각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동의해야 한다. 아니 이들이 동의하는 수준의 은퇴 과정이 있어야 한다. 특별할 것이 없이 이들이 생각하는 범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이들이 볼 때 목사는 자신들보다 조건이 유리하다. 정년이 70세이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정년이 70세인 곳은 없다. 이들 입장에서, 70살 되도록 월급은 받았는데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교회 보고 집을 해 달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보고 매달 생활비를 달라고 한다. 이건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다. 이 성도가 인터뷰 중에 아주 의미 있는 명언을 했다.

‘목사님 직업인라고 본인은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그러니까 성직자도 맞죠. 근데 성직자도 직업인이잖아. 그니까 직업 있는 성직자처럼 살아야 하는 거예요 당연히.’
 

5. 은퇴 후 수입

1) 은퇴적립금

교회 마다 목사의 본봉의 10% 내지는 목사가 내는 십일조는 은퇴적립금으로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걸 유지하고 있느냐이다. 교회가 힘들더라고 이걸 유지해야 하고, 이 선에서 퇴직금이 정리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2) 교단연금

요즘은 점점 교단에서 연금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연금이 있는 교단마다 이 문제로 인한 비리나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또 교단에서 운영하는 연금의 수익률이 너무 낮다. 거기에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투자가 손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익에 문제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현직 목회자들의 적립금으로 은퇴 목회자들의 연금을 채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는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3) 개인연금: 보험 / 펀드

교회에서 교단연금 외에 사적인 연금을 가입한 곳들이 있다. 교단 연금이 아무래도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오히려 안정성의 측면에서는 이러한 사적 연금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적극 권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4) 주식 / 재테크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목사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10년 전에 은퇴에 대한 고민 끝에 교회에 중간정산을 요청했고, 그 돈으로 안정적인 주식에 투자를 시작했다. 이 목사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 부분을 보고 설명을 했는데, 필자가 이해를 다 못해서 전달을 정확히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여간 한국 주식 시장은 급락이 커서 불안정하나 미국의 주식 시장이 안정적이라며 여기에 투자를 하면 큰 이익은 없을 지라도 손실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투자를 하고, 꾸준히 하고 있다는 한다. 이게 본인의 은퇴 자금이라고 한다.

5) 수입 창출: 2. JOB

은퇴 이후의 새로운 직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요즘 건설 쪽에 인력이 부족하여서 기술을 익히면 괜찮은 수입원이 된다고 한다. 전기, 타일, 배관, 용접 등 기술이 있다면 나이가 있어도 해 볼만 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가능한데, 그러한 기술을 통해서 은퇴 이후에도 경제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 있다.
 

6. 제안

1) 은퇴에 대한 규칙이나 매뉴얼이 필요하다.

현재 교단에서 정해 놓은 규칙이나 매뉴얼이 없다. 교회마다 은퇴하는 목사와 교회가 절충을 하여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들이 직접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서로 목사와 교인으로 살다가, 돈 문제로 ‘거래’를 해야 하니 쉽지 않다. 편한 논의나 거래가 되지 않으니 아무래도 무리수가 나타난다.

은퇴에 대한 규칙이나 매뉴얼이 정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교회마다 가진 여건이 다르고, 목사도 그 교회에서 하는 연수와 기여도 등 여러 가지로 변수가 많다. 하지만 기본적인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을 기본으로 해서 논의를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다면 원칙적일 수밖에 없다. 퇴직적립금과 교단 연금 외에 교회에서 마련한 사적 연금 정도가 기본일 것이다. 목사는 결국 이 정도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2) 은퇴에 따른 중재위원회 필요

감리교는 감리사가 각 교회를 감독한다. 매년 개 교회에서 하는 연말 당회(비교: 제직회)에 참여하여 1년 결산과 예산에 대한 감독을 실시한다. 여기서 보통 목사의 사례에 대한 것도 정리가 된다. 목사가 은퇴할 때도 감리사가 중재에 나선다. 교회와 목사의 입장에서 중재, 즉 감독을 실시한다. 실제로 한 교회의 목사 은퇴에서, 교회가 제시한 안에 대해서 감리사가 중재를 했다. 교회는 은퇴 이후에 매달 50만씩 생활비를 드리는데, 그 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그런데 감리사가 조정하여 종신으로 그 기간을 중재했다. 이와 같은 기능은 장로교에는 없다. 개교회 중심으로 제도가 짜여 있다. 그래서 노회장이나 시찰장이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제안한다면 은퇴 관련해서는 중재위원회를 노회 차원에서 구성해서 나서면 좋을 것 같다.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것이 아니라 중재하는 사람이 있어서 합리적으로 이끌어 준다면 좀 더 합법적인 선에서 은퇴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여러 부분에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이에 중재위원회나 중재위원이 채워 줄 수 있다.

3) 노회 제도 개선

한 목사의 제안인데 합리적으로 보인다. 노회에 전도사가 등록하면, 먼저 건강보험과 국민보험을 들어 준다. 목회자로서 가장 최소한의 보장을 노회가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가 되면 주택청약예금을 시작해 준다. 청약저축을 10년 지속하면 앞으로 주택에 대한 혜택이 늘어나니, 그런 기본적인 부분들은 노회가 공동체로서 책임을 져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그럴 법하다. 노회나 지방회 등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사항이다.

4) 은퇴 후 수입 교육

은퇴 이후에 2. JOB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이제 목사들에게 이직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목사 개인이 알아서 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5) 교회, 목사, 장로 등 은퇴에 대한 교육 필요

은퇴를 처음 맞는 교회들이 많다. 또 경험이 있다고 해도 시대의 변화 때문에 현재에 적용이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준비는 일찍 시작해야 한다. 은퇴를 목전에 두고 시작한다면, 너무 현실적이 되어서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서로 여유가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은퇴는 은퇴 때에 이르러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그냥 주변에서 들은 풍월로, 또는 어떤 이들의 영웅담으로 은퇴를 마주하면 큰일이 난다. 일찍부터 교회와 목사, 그리고 장로 등에게 은퇴에 대해서 교육해야 한다. 목사에게는 합리적인 대우가 있어야 하고, 교회에는 납득이 될만한 존경스러운 목회자의 은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무를 감당해야 할 장로들은 더욱 이 부분에 대한 지식과 상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어느 때,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교회 모두가 알 수 있도록 각 부분에서 이루어져 한다.

6) 돈이 아니라 관계

평생 목회한 교회이다. 수십년 돌봄을 받아온 목회자이다. 이런 관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돈 때문에 무너진다. 적어도 이 관계는 이렇게 무너지지 않았으면 한다. 은퇴 목사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헌신해서 세운 교회를 못 가는 것이다. 그 교회에서 돈은 가져왔는데, 공동체는 잃은 것이다. 또 이렇게 헌신한 목사가 물러나고, 교회가 무너지는 것도 비극이다. 은퇴 예우 문제로 인해서 교회가 싸우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돈이 아니라 관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은퇴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금은 관계 안에서 풀어 가야 한다. 어떤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남에게 베풀고 선교를 잘하는 교회는 은퇴하는 목사에게도 그걸 잘하더라. 주기를 잘했으니 은퇴하는 목사에게도 잘 준다.’

결국 은퇴는 목회자의 성적표가 된다. 그가 목회를 어떻게 했고, 교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했느냐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은퇴를 잘하면 목사도 교회와 분열되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 역시 분열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도들이 시험에 들지 않는다. 평생 신앙의 상징이었던 목사에게 실망하고 그 신앙을 버틸 수 있는 성도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 동안 내가 세웠던 양들이고, 내가 그들의 목자고, 그들을 목양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은퇴 목사의 한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서로 종이네 뭐 양이네 하고 살았던 사람들끼리 등을 돌리고 뭐 이렇게 얼굴 붉히고 살고 저주하고 그러냐고. 그 관계가 제일 중요한 거 같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은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정말 폭탄과 같다. 곳곳에서 교회가 깨어지고, 서로를 향한 저주와 원망이 난무한다. 그런데 아직도 은퇴에 대한 대책이 없다. 각 교회가 알아서 해야 하는 형편인데, 그 모양을 보면 평안한 곳이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제 교회가 부흥할 때 세워졌던 많은 목회자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서 목사의 은퇴를 ‘한국교회의 뇌관’이라고 표현했다. 이 뇌관이 터지는 순간 그동안 한국교회에 축적된 많은 문제들이 폭탄과 같이 나타날 것 같았다. 이제 시급하게 한국교회가 이 목사의 은퇴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터지고 있는 연쇄 폭발의 위험에 바리케이트를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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