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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것은
장경애 사모 컬럼
2022년 12월 02일 (금) 10:59:51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

  미국의 한 대학에서 대학생 52명을 대상으로 초콜릿 시식 실험을 했다. 한쪽 그룹에는 ‘다음 초콜릿은’이라고 말하면서 연달아 초콜릿을 주다가 5번째에는 ‘이번이 마지막 초콜릿’이라고 말을 하면서 주었고 다른 그룹에는 마지막까지도 ‘다음 초콜릿은’이라고만 말하고 주었다. 그러자 ‘마지막 초콜릿’이라는 말을 들은 그룹은 초콜릿 종류에 상관없이 마지막에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다고 답한 비율이 64%나 됐다는 이른바 마지막 효과(ending effect)라는 연구 결과를 심리과학지에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대학교수들은 일반적으로 학기 말 마지막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점수를 잘 준다고 한다. 면접관들도 마지막에 본 지원자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마지막이라는 것은 밝은 것은 더 밝고 약한 것조차 강해진다고 한다. 전구가 끊어지기 직전 더 강한 불빛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녁노을이 더 붉고 더 강한 것은 태양의 마지막 인사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루의 시작을 아침이라 한다면 마지막은 밤이다. 그런가 하면 일 년의 시작이 1월이라면 마지막은 12월이고, 인생의 시작이 태어나는 것이라면 마지막은 죽음이다. 이처럼 좁은 의미의 마지막도 있고, 넓은 의미의 마지막도 있다. 또한 좁게는 어떠한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다. 어떠한 일이든지 그 일이 끝나는 시점이 마지막이며 동시에 시작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처럼 의미 있는 단어는 없다.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마지막이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숙연하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섬뜩한 마음을 선물해 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명기하듯 뭔가 비장한 느낌이 드는 단어이다. 마지막 수업, 마지막 만찬, 마지막 인사, 마지막 잎새까지… 마지막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다시 볼 수 없고, 다시 느낄 수 없고, 다시 만날 수도 없다. 그렇듯이 ‘다시’라는 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마지막이다. 그래서 슬프다. 그래서 아프고 안타까운 것이 마지막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은 기억에 남는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인 유언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녀가 없는 것과 같다.

딸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 떠오른다. 혼자서 자취하며 지내는 딸에게 다녀오곤 했다. 만날 때는 그렇게도 반가워서 좋지만 떠날 때는 늘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해야 할 일을 거의 마치고 떠났다가 또 올 것이 분명하건만 헤어짐은 싫은 것이니 딸은 떠나기 전날에는 밤이 깊어가도 자려 하질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잠을 자지 않으면 내일은 안 오고 오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기 나름의 억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애절한 눈물의 표현이었다. 그럴 때마다 만일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이 만남이 마지막이 아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고 떠나는 것이지만,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떠날 것이므로 역시 마지막의 의미가 있는 밤이었다. 얼마 후에 또 딸을 만나러 올 것이므로 슬픔도 잠시뿐이지만, 만일 이 땅에서 다시는 못 만날 것이라면 헤어짐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나 지인과 만났다가 헤어질 때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면 헤어지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아니, 만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 우리는 또 만날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에 웃으면서 헤어지고 또 만난다.

10년 전에 천국으로 이사하신 내 엄마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병원으로 가시면서 다시 못 돌아올 것을 예상이라도 하신 듯이 여느 때의 외출과 다르게 현관문 앞으로 가시다가 한참 동안 몸을 뒤로 돌이켜 물끄러미 집안 전체를 돌아보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엄마의 눈길이 그렇게도 쓸쓸하고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이 외에도 내가 사는 동안에 마지막이라는 말을 실감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학교를 졸업할 때, 교사직을 마치고 학교를 떠날 때 또는 결혼하여 친정집을 떠날 때 등.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말을 가장 마음 깊이 느끼고 실감했던 일은 남편의 목회 은퇴였다. 남편은 2021년 12월을 마지막으로 40여 년간 목회 일정의 대장정을 마쳤다. 40여 년 동안 있었던 희로애락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마쳤기에 감사밖에 할 말은 없다. 주님 보시기에 어떠했는지 그것이 가장 궁금하고 기대도 되고 염려도 된다.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은 못 들을지언정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은 결코 들어서는 안 되겠기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는 정말 내 생애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좀 더 세월을 아끼며 주님 만날 준비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마지막처럼 생각하고 하라’는 말을 흔히들 잘 사용한다.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고 늘 마지막을 상기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마지막처럼 순간순간을 살아간다면 아무렇게나, 허송세월 보내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내일을 염려할 일이 없고, 용납하지 못하거나 용서하지 못할 일도 없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면 욕심이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가? 하루를 처음 맞는 것처럼,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야 한다. 끝을 생각하는 습관은 어떤 순간에는 큰 힘이 된다.

이 밤이 나에게 마지막이라면 잠을 잘 수 있을까? 지금 먹는 음식이 내 생애 마지막 먹는 음식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어쩌면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르고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이 땅에서의 일은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잘 달려야 한다. 그래야 유종의 미를 거둔다. 유종의 미라는 말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좋으면 과정이 조금 안 좋았어도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달리기도 마지막까지 완주해야만 한다. 먼 길을 운전할 때, 안전하게 운전하여 달렸는데 목적지 거의 다 와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이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잘해야 한다. 아니 마지막처럼 과정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일 년 365일 중에 맨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만큼 의미 있게 여기는 날이 또 있을까? 새로운 기대와 포부로 맞은 2022년도 마지막 달을 맞았다. 마지막이 있기에 또 새로운 한 해를 기대감 속에 맞을 것이다. 금년도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 새해를 새롭게 맞고 싶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의 세 글자로 삼행시를 지어 본다. <마> 마지막이라는 것은 <지> 지금까지 하던 것의 <막> 막을 내리는 것이다. 시작이 있었기에 끝이 있는 것처럼 이 글도 시작이 있었기에 마지막이 있다. 지금이 이 글의 마지막이다. 그것이 글이든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될 그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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