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신학자의 신학이야기 | 최은수 교수의 교회사 이야기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5)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2년 10월 20일 (목) 12:58:44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에 찾은 바라가방크(Varagavank)

반(Van) 도심에서 약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바락(Varag)산이 있는데 현재는 에렉(Erek)산으로 불린다. 바라가방크는 바락산의 수도원과 교회라는 뜻이다. 필자는 시간도 절약하고 출근 시간의 혼잡도 피할 겸해서 해돋이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보다는 개와 반 고양이(Van Cat)들이 유일한 이방인 방문자를 반기며 잠시 따라오기도 하고 무서워서 숨기도 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목격되었다. 평지를 벗어나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굽이굽이 대관령을 연상하는 좁고 가파른 길로 들어섰다. 산 중턱에 이르자 탁트인 벌판과 반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때마침 산 넘어 동쪽에서 강렬하게 부상하는 붉은 태양이 산, 들, 호수, 도심을 아우르며 거룩한 성지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역사의 현장에서 각기 다른 광경의 해돋이를 수도 없이 보아왔던 필자이지만 이런 광경은 독특하고 경이로우며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 현재 에렉산으로 불리고 역사적으로 바락산으로 불렸던 곳에 바라가방크가 있다. 해가 떠오르면서 반 도심을 환하게 드러내고 반 호수도 보인다. 산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가파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걸어서 도피처를 찾았으니 그 얼마나 고난의 여정이었겠는가

황홀한 광경에 취하다 보니 자칫 실족할 수도 차량이 추락할 위험도 있어서 아찔하였다. 강렬한 태양이 조명하는 반 성채(Van Castle)가 마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듯 생생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랑의 섬인 악다마르도 큰 도화지 위에 찍어 놓은 한 점과 같이 어렴풋하게나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가 가파라지고 길은 좁아졌다. 그런 길로 가끔씩 마주하는 차량들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순간 식겁하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가파르고 굽이굽이 돌아서 오르내려야 하는 산의 정상 주변으로 적지 않은 민가들이 늘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역시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몰아내고 살아오고 있는 쿠르드족 사람들이었다.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흩어져 사는 쿠르드인들은 도심에 사나 산간벽지에 사나 하나같이 표정이 어둡고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의 나라도 없이 여전히 남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으니!
 

여성들이 기초를 놓은 바라가방크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기 일 년 전인 주후 300년 경에 일단의 여성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그 여성 공동체의 대표가 ‘가야네’였고 귀감이 될만한 신앙의 순수성을 순교로 지켜낸 여인이 ‘흐릅시매’였다. 그 여성 공동체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니노’였고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가 되어 코카서스 조지아가 기독교 국가가 되도록 헌신하였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총본산인 에치미아진에 가면 가야네 기념교회와 흐릅시매 기념교회가 있을 정도로 그녀들의 신앙적 헌신과 희생은 실로 위대하고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인 애니(Ani)와 동부 아나톨리아 곳곳에 흐릅시매를 기억하는 교회당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 강렬한 아침 햇살이 반 도심의 중앙에 있는 반 성채를 웅장하게 드러낸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이후 신인류가 이 성채를 중심으로 우라투 왕국을 건설하고 문명을 창출하였다.

원래 가야네의 여성 공동체는 로마에서 결성되었는데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근동지역을 전전하며 고귀하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다. 가야네의 여성 공동체가 성지인 예루살렘 등을 거치면서 주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의 일부를 가져왔고 당시 바락산에 그 역사적 유물을 보관한 것이 바라가방크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로부터 바라가방크는 반 지역의 신앙적 중심지가 되어 수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중세시대 아르메니아가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 되면서 헌신적인 제왕들이 기념비적인 기독교 건축물들을 다수 세웠고 그중에 바라가방크도 포함되었다. 튀르키예어로 ‘예디 킬리시’(Yedi Kilise)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곱 개의 교회들이라는 말이다. 일곱 개의 교회들은 세인트 소피아 교회, 세인트 요한 교회, 동정녀 마리아 교회, 세인트 조지 교회, 홀리 씰 교회, 홀리 크로스 교회, 그리고 세인트 시온 교회들이다. 중세시대 황금기를 구가하였던 바라가방크는 국보급 필사본들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보관하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니

   
▲ 바라가방크의 중심적인 부분이 아직도 건재하는 것은 기적과 같다. 바라가방크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쿠르드족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더 많은 흔적을 주변에 남기고 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바라가방크도 영욕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중세시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거룩한 성지로 자리매김 했던 대아르메니아 지역이 이슬람권의 침략과 노략질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바라가방크도 중세시대 황금기 이후 파괴, 약탈, 살해, 방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초대교회로부터 보관되었던 유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수 많은 필사본들이 화재로 타버리거나 약탈되었다. 기적적으로 생존한 필사본들은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에 위치한 국립고문서보관소, 즉 마테나다란에 국보급으로 소장 및 전시되어 오고 있다.

1915년에 시작된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바라가방크가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가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소수의 학살자들이 바라가방크를 방문하여 몇 명을 죽이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바라가방크를 떠나 반으로 긴급하게 소환되었다. 아마도 대대적인 학살에 동원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무차별적인 학살이 반 지역에서 자행되면서 약 3천 명에 육박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긴급하게 바라가방크로 피신하였다.

   
▲ 역사의 질곡 속에서 바라가방크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돌을 쌓아 외곽을 둘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다양한 외세의 파괴와 노략질로 부침이  심하였다

대개 그들이 도보로 바락산을 올라 바라가방크로 왔기 때문에 사선을 넘나드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대량학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3천 명의 사람들은 안도할 틈도 없이 학살자들의 표적이 되어 정규군과 민병대의 대대적인 색출 공격에 직면하였다. 그들은 급하게 하산하여 학살자들로부터 방어가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지역으로 피신하였다. 학살자들이 3천명의 사람들을 현장에서 몰살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들의 피신을 방관한 이유는 학살을 피해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던 지역에 피난민들이 모여들게 하여 식량의 부족으로 모두를 굶어 죽게 할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서글픈 경제논리

이미 언급했던 대로 사랑의 섬인 악다마르(Akdamar)는 중세시대 아르메니아 왕실의 궁궐이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해 왔다. 튀르키예 정부가 악다마르 섬과 그곳의 교회를 보기 좋게 재건하자 순식간에 관광명소가 되어 사시사철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반 호수의 여러 곳에 선착장들이 들어서고 수 많은 배들이 쇠도하는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기 바쁘다. 게다가 각종 음식점들과 상점들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언 듯 보아서는 유람선 가격에 악다마르섬의 입장료가 포함된 듯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별도의 입장료를 징수한다. 한마디로 경제적인 가치가 차고 넘친다는 말이다.

   
▲ 임시로 지붕을 덮어 놓았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위험천만하다. 지붕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모습은 폐허가 되어 방치된 바라가방크와는 다르게 아름답고 경치가 좋다

하지만 반 지역의 명소로 버젓이 소개해 놓은 바라가방크는 정비와 재건은커녕 수수방관하여 폐허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곳이 바돌로매 순교 기념 교회 및 수도원의 상태보다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으니. 이 두 성지가 방치된 데는 공통점이 있는데 방문객이 잘 가지 않아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돌로매 순교 기념 교회는 이란과의 국경지대에 있어서 쿠르드족의 테러와 무장봉기가 빈번하고 외진 곳에 있어서 찾는 이가 거의 없고, 바라가방크 또한 높은 산 정상에 있어서 테러의 위험과 더불어 일부러 찾아가기에도 불편한 형편이다. 필자가 답답했던 점은 그렇게 방치된 곳들을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이 전광판이나 안내 책자를 통해 관광명소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시적인 속임수일 뿐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폐허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변화들

   
▲ 바라가방크 내부의 모습이다. 이 부분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보기가 좋다. 창문을 타고 어두운 내부를 비추는 한줄기 빛처럼 이 교회도 하루속히 재건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도 곳곳에 박물관들이 있어서 소중한 역사문화 유산들을 보존하고 있다. 각 지역의 박물관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튀르키예나 쿠르드족과 연관된 전시물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아르메니아 유적들로 채워져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음이다. 그만큼 아르메니아가 남긴 역사적 유산들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아르메니아의 유적들을 보존하고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튀르키예와 쿠르드족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아르메니아의 문화적 우수성을 인정하고 동경하면서 폐허로 변한 유적들을 보살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는 그들의 동경이 셀 수 없는 돌들이 소리지르는 대로 기독교 신앙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해 볼 따름이다.

최은수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JMS 정명석, 징역 30년 구형
이재록, 신옥주 등 자칭 남신 여
사이비종교 소재 영화 <원정빌라>
교회 AI(인공지능) 도입, 52
기억함의 사명을 실천하는 이성만
교인 10명 중 4명 ‘명목상 기
주의 날은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