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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2)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2년 09월 19일 (월) 11:11:51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에 생각하는 십자가

 동부 아나톨리아, 즉 아르메니아 고원지대를 방문할 때 주로 북동부의 관문 도시인 카스(Kars) 공항을 이용하거나 남동부의 반(Van) 공항을 활용한다. 단일 공항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하여 하늘을 날다 보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동부 아나톨리아의 대평원과 마주한다. 날씨가 맑을 때는 크고 작은 산들로 조화를 이룬 고원지대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동부 아나톨리아 전역에 걸쳐 아르메니아의 정기가 서려 있지만, 오랫동안 이슬람의 영향권 하에 있어서 십자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는 없다.

아르메니아어로 예쁜 신부라는 뜻의 카스(Kars)는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곧이어 벌어졌던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오토만 투르크 제국의 치열한 전쟁으로 인하여 기독교 관련 건물들의 파손 정도가 타 지역에 비해 더 심하다. 카스 성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가 있는데 말이 교회지 실제로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나마 이슬람교의 구미에 맞아서 교회의 형태라도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 예쁜 신부라는 뜻의 카스(Kars)는 아르메니아어에서 나온 도시 이름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곧이은 전쟁으로 카스 지역의 기독교 유적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카스 성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위치한 이 교회는 이슬람에 의해 기독교 조각들이 지워졌는데도 한쪽 구석에 십자가 조각이 생명력을 과시하듯 남아있다.

이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슬람 세력들이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흔적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제거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언뜻 보아도 지워진 자리에 아르메니아의 카치카르(Khachkar), 즉 십자가 문양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 세력들이 아무리 철저하게 지웠어도 건물의 구석구석을 살피던 필자의 눈에는 아직도 십자가가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시적이든 아니든 역사와 그 흔적들을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감추고 다른 요상한 내용들로 채운다고 가려지지 않음이다.
 

바돌로매 순교 기념교회 및 수도원: 십자가의 길, 복음의 길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데에는 조명자 그레고리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조명자 그레고리는 십자가의 도를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알려준 복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십자가의 도는 훨씬 이전인 주님의 승천 후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바돌로매와 유다 다대오 등 두 사도들을 통하여 아르메니아 백성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두 사도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 반(Van)에서 바돌로메 사도의 기념 교회 및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호수다. 975번 도로는 반 하카리(Van Hakkari)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란 국경까지 연결된다. 이 도로는 역사적으로 열강들의 이동 경로이자 복음 전도자들의 길이기도 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험한 길이었을 것이다.

특히 바돌로매 사도는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진 후 목이 잘려 순교했다거나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어찌되었든 바돌로메(나다나엘)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하다가 영광스럽게 생을 마감하였다.

바돌로매 사도가 순교한 장소에 그를 기념하여 교회 및 수도원이 설립되었고 그의 숭고한 삶과 신앙을 본받고자 수많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그의 순교 장소와 관련해서 여전히 설왕설래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가 현재의 수도원 자리에서 순교를 했든 안 했든, 그의 영광스러운 순교를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그곳이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 봉헌됐고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 생명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한 헌신과 희생

반(Van)에서 바돌로매 사도 순교 기념 교회 및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긴장감이 돌았다. 아직도 쿠르드족 무장세력들이 공개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테러와 군사적 도전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은 나라 없이 떠돌던 쿠루드(Kurd)족의 주거지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쿠르드족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저지른 만행 또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것과 비교하여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 975번 반 하카리 대로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곳곳에 성을 쌓아 방비하였다. 호삽 성은 바위산 위에 견고하게 지어진 천혜의 요새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단면은 예나 지금이나 쿠르드족은 강대국들에 의해 이용만 당했지 정작 자신들이 염원하는 독립 국가, 즉 쿠르디스탄(Kurdistan) 건설은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왔으니 타 민족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깊고 크겠는가! 다시 생각해 보니 반(Van)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쿠르드족 사람들이라 유일한 타인종인 필자를 그리 경계하며 웃음 한 번 주지 않던 모습이 굉장히 낮설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반(Van)의 도심에서도 타인종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필자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쿠르드족 사람들이 화난 듯한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어디든 가든 절대 다수가 쿠르드족 사람들이라 화난 듯 적개심을 가지고 이방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은 거의 동일했다. 오히려 쿠르드족의 빈번한 테러와 무장봉기 때문에 곳곳에 주둔해 있는 터키(튀르키예) 군인들과 경찰들은 한국사람인 필자를 열렬히 환영하며 검문검색도 설렁설렁하는 등 특혜를 베풀며 형제 국가의 예를 다했다. 당연하겠지만, 쿠르드족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그렇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인 것은 아니고, 주로 남자들이 그렇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환한 웃음으로 이방인인 필자를 신기한 듯 반겼다.

이런 시선을 받으면서 975번 도로(D975)인 반 하카리(Van Hakkari) 대로를 따라 이란 국경으로 달려가는데 두 가지 생각이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고대로부터 이 길이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 수 많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바돌로매와 유다 다대오 사도 등 복음전도자들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해 이 길을 오갔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냐하면 이 길이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하는 험로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이 먼 길을 걸어서 왕래했다니 저절로 숙연해졌다. 이 길이 협곡의 바닥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풍광은 좋았고 전략요충지 곳곳에 바위산을 적절히 이용하여 건설된 성곽들이 세워졌다. 그중에 가장 웅장하고 잘 보존된 성채가 호삽성(Hosab Castle)이다.

   
▲ 975번 반 하카리 대로를 나와 이란 방향으로 들어오다 보면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덜커덩거리며 한 민가를 끼고 돌면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바돌로매 사도 기념교회 및 수도원 건물이 나온다. 교회당 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곳이 이란이다. 아르메니아에 복음 전했던 유다 다대오 사도의 무덤 및 기념예배당이 이란 영토인 저 너머에 있다. 


십자가 외에는 희망도 소망도 없기에

975번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이란의 국경이 지근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돌로매 순교 기념교회 및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도로에서 핸들을 틀어 이란 국경 방향으로 더 가야했다. 쿠르드족이 원래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전통을 이으며 많은 수가 목축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로의 양옆에서도 쿠르드족 목동들이 소, 양, 염소 등을 몰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오랫동안 방치되어 무너지고 앙상하게 외관만 남은 상태에서도 곳곳에 조각된 십자가들이 선명하다. 필자가 파괴되고 버려진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적들을 상당히 많이 보았는데도 이 기념교회만큼 많이 새겨진 십자가들을 본 적이 없다. 수 많은 십자가들 때문에 숙연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필자의 네비게이션이 바돌로매 순교 기념교회 및 수도원에 가까이 왔다고 알려주는데 이정표도 없고 길도 정비되지 않고 오히려 그곳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반(Van) 지역을 소개하는 공식 홍보물에서 이 수도원을 보았는데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으며 보호와 복원은 요원해 보였다. 필자는 정비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덩그라니 방치된 기념교회 및 수도원 건물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이 주변이 군부대의 방어진지로 사용되었다는 흔적들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 방치된 기념 수도원 주변으로 무너진 참호와 제거되지 않는 철조망들이 흉물이 되어 널부러져 있었다. 사람의 흔적보다는 가축들의 배설물들로 주변이 지저분하고 어수선하였다. 필자는 이런 광경을 마주하면서 바돌로매 사도의 순교를 묵상하며 숙연해졌고,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계기로 방치되었던 것에 대하여 마음이 너무 아팠으며,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던 사실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밖에 내세울 것도 의지할 것도 없었다. 이 기념교회 주변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에서 목축을 하는 쿠르드족들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의 그늘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필자가 바돌로매 사도의 순교 기념 교회 및 수도원의 안과 밖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묵상하며 작은 흔적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살피다가 건물 곳곳에 새겨넣은 수 많은 십자가들을 보면서 갑자기 심령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시 간절한 마음으로 크고 작은 십자가들을 건물 구석구석에 새겨 놓았던 그 성도들의 애절한 마음을 필자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대략 1600년 전에 세워졌던 이 기념교회 및 수도원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이 바돌로매 사도의 순교와 유사했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 있던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한 손에 정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망치를 들어 십자가를 새겨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애절함을 말이다.

이곳을 방문했던 국내외 기독교인들이 굉장히 소수라고 할지라도, 필자가 그 어떤 글에서도 여기에 새겨진 십자가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을 본 적이 없다.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아도 그 수많은 십자가 조각들이 다른 지역의 교회당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슬프고 애잔하고 고통스러움을 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더욱더 필자의 귀에 그들의 절규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였다.

‘십자가 외에는 희망도 소망도 없습니다’
‘십자가만이 피난처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권능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이 믿음 지키게 하소서’

그래도 한 줄기 위안은 교회사가인 필자가 돌들이 소리 지르는 생명의 현장에 와서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렇게 기록을 남겨서 독자 제위와 더불어 기억하는 것이리라! (To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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