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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할미의 손녀 사랑
장경애 사모 컬럼
2022년 09월 02일 (금) 12:43:13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난 요즘 손녀 사랑에 푹 빠져 산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 고희를 몇 년 앞둔 나이에 첫 손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손녀가 태어난 후 백일 정도는 함께 지냈지만 지금 손녀가 내 곁에 없다는 점이다. 손녀와 내가 같은 하늘 밑에 있지 아니하기에 손녀를 향한 내 사랑은 절절 끓고 있으나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 서운하기 이를 데 없다. 맘에 드는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보고 또 보며 마치 손녀가 옆에 있는 양 사랑을 퍼붓고 있다.

손주가 생기기 전에는 손주가 얼마나 예쁜지 잘 몰랐다. 이해하고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안다고 여길 뿐이다. 내가 그랬다. 실제로 손주가 생기고 나니 그 전의 생각은 지금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런 손주 사랑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내 친구들의 휴대폰을 보면 그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거의 다라고 말할 정도로 손주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있고,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주 자랑에 흠뻑 빠진다. 좀 주책스럽게, 그리고 염치도 없이 손주 자랑질이다.

   
▲ 장경애 사모 손녀 

손주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다수는 손주 바라기, 혹은 손주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 대열에 드디어 끼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바보라고 흉봐도 좋다.

이 땅에 존재하는 아기들은 모두 다 예쁘고, 귀엽지만 그중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말하라고 하면 노인 대다수는 자기 손주가 가장 예쁘고 귀엽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친다. 그리고 나아가 “내 손주는 객관적으로도 예쁘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이라“는 멍청한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보는 눈과 마음이 모두 완전히 바보 그 자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속이거나 속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그만큼 손주 사랑이 넘친다는 말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손주 자랑하려면 돈을 내놓고 하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그것도 자랑 수준에 따라 금액이 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돈 많이 벌어놓고 손주를 보아야 한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런데 이 말도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듣는 사람이 손주 자랑 제발 그만하라고 돈을 거두어 손주 자랑에 빠진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니 손주를 둔 사람의 손주 사랑은 끝이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나는 늦은 나이에 생긴 손주라 그런지 그 사랑이 더 진하고 애절하다. 체력은 딸려 조금만 안아 주어도 팔이 쑤시고 아프지만,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도 그러하려니와 꼬물거리는 그 모습과 수정보다 더 맑게 빛나는 눈빛과 그 미소는 나의 피곤함을 다 녹여 버리고도 남는다.

손녀의 어미인 내 딸을 보고 웃는 맑은 미소와 화사함보다 할미인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을 보면 더 예쁘다. 딸이 질투할 정도다. 그래서 손주는 행복 영양제이며 항우울증의 명약이라는 말까지 생긴 것 같다.

   
▲ 장경애 사모 손녀 

분명한 것은 조부모는 손주에게 커다란 치마폭이다. 그곳은 아이가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되기도 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야단맞을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조부모는 무슨 잘못을 해도 따지고 혼내기보다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받아주신다. 그래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는 버릇이 없는 아이가 되기도 하지만, 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인지 오히려 인정도 많고 노인 공경을 배우는 장점도 있다.

내 딸 역시 그러했다. 나의 엄마가 매우 편찮으실 때 딸인 내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병구완하지 못했을 때도 나의 딸이 나보다 더 자상하게 할머니 병간호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의 딸은 지금도 돌아가신 할머니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뇌에 새겨진 것이며, 때로는 내가 직접 낳은 자식 사랑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에모리대 연구진은 3~12살의 어린 손주를 둔 할머니 50명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법(fMRI)으로 촬영했는데 실험대상 할머니는 손주 사진을 본 뒤 뇌의 감정이입 영역이 강력하게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손주가 웃는 사진에서는 기쁨을, 우는 사진에서는 할머니 뇌도 고통과 스트레스를 느꼈으며, 특히 일부 할머니는 직접 낳은 자식 사진을 봐도 손주 사진만큼 강력하게 뇌의 감정이입 영역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연구를 이끈 제임스 릴링 박사는 “할머니가 손주를 돌볼 때는 엄마로서 자식을 키울 때 가졌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훨씬 적었다”라고 말하면서 “엄마보다 할머니인 걸 훨씬 즐겼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볼 때, 할머니는 손주의 훌륭한 양육자의 자질이 있다. 할머니가 되는 것은 복 중에 큰 복이다.

손주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나의 유아기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 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리며 사진첩을 꺼내 비교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 손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반대로 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손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내 손녀는 주님을 위한 사역자들 속에서 태어났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두 분이 목사님이고, 아빠와 엄마도 목사님이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러니 우리 손녀는 축복으로 가득한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축복 속에서 자랄 것이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의 손녀는 참으로 많은 별명이 있다. 모두가 다 내가 지어준 별명이다. 눈이 너무도 똘망똘망하여 ‘똘망이’, 눈빛이 초롱초롱하여 ‘초롱이’, 잠시도 쉬지 않고 꼬물거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꼬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 모양이 공처럼 둥글어 ‘짱구’란 별명까지 지니고 있다. 이 별명은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별명이기도 하다.

나의 손녀가 주님께 사랑받는 딸로 자라 주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처럼 하나님과 평생 동행할 것을 매일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손녀 사랑이 더욱 커지고 깊어진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이 주관해 주실 것이기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바보 할미의 손녀 사랑은 이처럼 끝이 없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될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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