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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인가? ‘정치인’인가?
박상기 목사 단상
2022년 08월 18일 (목) 10:11:20 박상기 목사 webmaster@amennews.com

박상기 목사/ 시인, 수필가, 빛내리교회 담임목사

   
▲ 박상기 목사

‘꾼’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직업적인 일이나 전문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일이나 행위를 전문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꾼’으로 끝나는 말이 얼마나 되는지를 온라인 포털에서 확인해 보니 무려 799개나 되었다. 지금도 T.V.에서 방영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오직 한 길,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도 주어진 일에 익숙할 만큼 능숙해진 사람을 일컫는다. 가끔은 왜 신앙 달인이나 목회 달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생활이나 목회는 평생 하는 것이기에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에 오르고도 남을 법도 한데, 아직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신앙생활이나 목회는 소위 짬이 붙을수록 숙련이 되기는커녕, 매 순간 부어주시는 은혜 안에서만 감당할 수 있기에 속성상 결코 ‘달인’이 될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 싶다.

그런데도 교회 안팎에서는 달인 신드롬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소위 교회 중직자들 중, 그런 사람이 다수(多數)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웬만한 성경지식도 통달하고, 교회생활도 오래 했기 때문에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너무도 익숙해 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하나같이 신앙생활에 ‘관성(慣性)’이 붙어있다. 진정성이나 사모하는 마음은 떨어지는 반면,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에 대하여는 민감하고 일이 발생하면 선봉에 설 때가 많다. 개선의 의지도 없고, 대안도 없으면서 목소리를 높여 선동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집단에서 특정 지도력을 갖게 되면 필시 진영이 나뉘고 집단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교회 리더십은 이 같은 ‘꾼’들로 인해 아픔을 경험하게 되고 이들로 인한 고민은 점점 깊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참 좋은 성향과 바탕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평안한 정서를 퍼뜨리고, 누구나 차별하지 않으며, 속에서 피어난 겸손을 가진 사람들이다. 살펴보면 믿음(신앙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지는 않고, 태생적으로 타고 난 것 아닌가 싶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든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하고 사심이 없기 때문에 눈빛에는 의혹이 없다. 말에 신뢰가 있고 행동에는 무게가 있다. 진영논리에 빠져 무조건 그 무엇을 배제하거나 혹은 수용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말을 맞추고 세()를 규합하지도 않는다. 진중하고 사려 깊기에 곁에는 사람이 많고 묵시적으로 그를 지원하는 층이 두텁다. 앞에서 언급했던 ‘꾼’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양 쪽의 사람들이 서로 대조되면서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정치판이다. 사람이 모이면 조직이 세워지고, 그 조직 안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념이나 정서를 같이하는 그룹이 형성된다. 반면 정서와 가치를 달리하는 그룹도 생기게 마련이다. 둘은 같은 사안을 놓고도 서로 상반된 관점을 갖기도 하는데, 이 경우 쌍방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해충돌을 조율하고 합의할 뿐 아니라, 민의(民意)를 얻어서 집단의 뜻을 관철하려는 행위가 바로 ‘정치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정치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이합집산을 통해서 얻어낸 권력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그로 인해 집단, 또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종의 주도권 싸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일반정치든 교회정치든 본질과 목적이 같을 수는 없지만 양태는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세상이든 교회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권력으로 정치적인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정치는 필요하고, 모두가 나서서 정치를 할 수 없기에 ‘대의정치’ 즉, 유능한 사람을 뽑아 파송하고 대신 자기의 뜻을 대변한다. 문제는 그렇게 뽑혀 정치판으로 보내진 그가 정치인이 아닌 정치꾼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 정치뿐 아니라 교계 안에도 ‘정치꾼들’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대개 정치적인 말을 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정치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모종의 정치적인 행동을 통하여 결국 ‘자기’가 중심이 되려는 사람은 ‘꾼’일 공산이 크다.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과 사익(私益)을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치꾼이다. 정치꾼은 신념보다 계산이 앞선다. 정치적인 가치 판단이 아니라 정치공학적인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한다. 당연히 권모술수나 임기응변에 능하며 이 같은 행태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인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정치 공학적 셈법과도 거리가 멀다. 올바른 가치와 공익(公益)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목적이 이뤄진 후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사람은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야비하게 프레임을 씌워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진영의 정서에 편승하여 행동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권력(勸力)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능력에 맞지 않는 것을 굳이 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직임(職任)이 맡겨졌을 때는 공정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를 위한 정치, 꾼들의 정치는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권력을 손에 넣으면 집단은 권력자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권력자가 합리적이고 공익적이며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정치꾼’에 의해 권력이 사유화되거나 남용된다면 그 집단은 내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제 가을 노회와 총회의 정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이름을 알리는 메시지들과 여론을 호도하는 사이비 언론의 편향적인 쓰레기 뉴스들이 회자되고 있다. 거의 모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목적이 중심에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불법을 합법인 것처럼 가장한 기사가 판을 치고 있다. 겉으로는 교회를 위한다고 하지만 속셈은 마르지 않을 돈줄에 빨대를 꽂고 자기도 확신하지 못할 소리를 내뿜고 있다. 의도와 목적이 불순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 진영논리와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교계 정치판이 흙탕물이 되고 있다. 원칙도 상식도 없이 단지 ‘내 편이냐!, 네 편이냐!’로 중요한 정책들이 판가름 나고 있다. 엄연히 법(헌법)이 현존하는데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교회권력과 정치력, 그리고 금력을 동원하여 법을 뭉개버린다. 법치가 무너지면 집단이 존립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난히 자기만 해 먹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이해관계에만 목을 매고 있다. 그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도 없이 세()를 규합하여 저항하는 사람들을 짓밟고 여론을 형성하여 의도대로 밀고 나간다. 전형적인 꾼들의 행태다. 따라서 노회든 총회든 리더십을 세우는데 있어 한 가지만 분별할 수 있다면 성공이지 싶다. 공익추구형인가? 사익추구형인가?’ ‘정치인인가? 정치꾼인가?’ ‘정치꾼’들은 사라지고 진정으로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교단 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날이 속히 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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