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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니까 주셨지
장경애 사모 컬럼
2022년 08월 01일 (월) 11:37:15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은 은퇴를 바로 앞에 둔 연세 많은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학생들을 매우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우리는 그런 선생님을 존경했다. 그런데 이러한 선생님께도 문제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 시절에 공부하신 분이셔서 그런지 한글 사용이 조금은 불편하셨던 것 같다. 한글로 서류를 만들거나 한글로 작성할 것이 있을 때면 종종 나를 부르셨다. 학생들의 성적표를 작성한다든지 심지어는 생활기록부의 기록까지 나에게 맡기셨다. 그래서 방과 후에 남아 선생님을 돕는 일이 다반사였다.

처음에는 나 같은 학생에게 좀 과한 일을 맡겨주신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나에게 맡기신 것은 나를 믿기 때문이고, 내가 돕는 것이 선생님께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나를 믿어 준 선생님의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도와 드렸다. 나아가 그 많은 학생 중에 나를 뽑아서 일을 시킨 것에 대해 자부심까지 생겼다.

어떨 때는 해야 할 공부가 많아 시간이 부족한데 일을 시키셔서 당황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공지가 나면 공부에 몰두해야 하건만 그때도 일을 시키셨다. 분명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을 모르지 않으실 터인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거기엔 관심이 없고 오직 선생님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만 같아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불평 없이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사실 생활기록부는 학생이 전혀 볼 수 없는 것으로 혹 생활기록부 사본이 필요하여 뗄 일이 있으면 반드시 봉투는 인비라는 도장을 찍어 봉하여 내어 주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문서였다. 그런 문서를 학생의 손으로 쓰게 했으니 당시에 교장 선생님이 학생인 나에게 시킨 것을 알았다면 나의 담임선생님에게 경위서를 쓰게 하고 징계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위험성이 있는 일을 선생님께서 나에게 시키셨다는 것은 선생님 생각에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그만큼 나를 믿었다는 것이고, 또 내 글씨체가 선생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보다는 내가 입이 무거워 기록한 내용을 발설하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음도 분명하다. 아마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우리 반 친구들의 생활기록부를 지금도 그대로 보관하였다면 내가 쓴 내 글씨체 그대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맡길 때는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물론 시험 삼아 맡길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믿을 수 있고, 해낼 것 같은 가능성이 있기에 맡기는 것이다. 비록 맡겨진 일이 복잡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맡겨진 사람은 귀찮고 하기 싫을 수 있다. 그러나 맡겨 준 사람이 존경하는 인물이거나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맡겨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주었다는 자부심마저 든다. 그리고 맡겨준 사람 마음에 들게 하려고 더 열심히 맡겨진 일을 할 것이다.

자폐아의 자녀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것을 괴로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런 아이를 감당할 만하다고 하나님께서 여기셔서 이런 아이를 내게 보내셨나 봐.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신 주님께 감사해.

이어서 하는 말은 “이 아이가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나는 이 친구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앞에 기술한 고등학교 때의 일을 떠올린다. 세상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정작 나의 삶 속에 주어지는 역경과 고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우리 삶 속에 힘든 일은 수도 없이 생긴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만날 때 그것을 피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며,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 원망까지도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 별 탈 없이 잘 사는 사람도 많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잘 믿지도 않는 것 같은데 일이 잘 풀리고 하는 일마다 잘 되는 데 반해 나에게는 늘 힘든 일만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까이 울부짖으며 “왜 하나님은 하필 나에게 이렇게 고난을 주시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해 보기도 한다.

내 친구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경과 고난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나 같은 사람을 최소한 믿을 수 있고, 해낼 것 같은 가능성이 있기에 그것을 맡긴 것이리라. 인생길에 닥치는 모든 일의 주관자가 주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친다 해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맡겨진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쓰러질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맡겨진 사람은 죽을 것 같은 아픔이 있을지라도 맡겨 준 사람이 나를 지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맡겨 준 것을 도리어 감사해야겠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 주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기 위해 맡겨진 것들을 기쁨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감당 못 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말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은 오늘도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어떠한 일을 당하든 “왜, 하필 나지?” 하며 의아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믿을 만하니까 주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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