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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2년 07월 11일 (월) 14:21:23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1)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2)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3)

  “아르메니아인들이여, 애니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들의 애니를 보소서, 당신들은 애니를 보고도 자비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애니가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는 말입니까?
애니를 보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나요?

애니가 경험하고 있는 통곡과 두려움의 나날들 속에서,
애니의 눈은 흐르는 눈물로 맹인이 되었고,
항상 애니는 고아처럼 홀로 남겨져 외로움에 치를 떨고 있으며,
작은 행운조차 애니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애니는 많은 것을 잃었고,
이제는 부엉이들이 애니의 하늘을 날며 주인인 양 행세를 하면서,
부엉이들이 말하기를 ‘애니의 찬란한 영광은 사라졌고,
고아처럼 버려졌다고’.

나는 애니인데, 한때 사람들로 넘쳐났었지만,
지금 나 애니는 그저 쓰라린 폐허일 뿐입니다.
애니의 통곡, 탄식, 슬픔,
어미 잃은 고아와 같습니다.

   
▲ 1001개의 교회로 이 땅에 임한 거룩한 도성을 실현코자 했던 애니의 복원도.거룩한 도성 애니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아라랏산과 불가불리의 관계다. 하나님과 같았던 아라랏산은 모든 아르메니아 교회당 건물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하였다

한때 나 애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동방을 대표하는 위대한 도시였습니다.
이제 나 애니는 폐허가 되어 땅에 나뒹구는,
홀로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고 있을 뿐입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이여, 당신들은 와서 보았고 이제 떠나려 하네요,
당신들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애니와 작별인사를 하는군요.
당신들이 영산인 아라랏의 정상에 오를 때,
신령한 산에 임재하신 하나님께 부디 애니를 잊지 말아주십사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산인 아라랏에 강림하신 하나님께,
불쌍한 애니가 폐허가 되어 울고 있다고 아뢰어 주십시오.
언제쯤 애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어,
더 이상의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지도 여쭈어 주십시오.”

-19세기 무명의 아르메니아 시인-

   
▲ 조명자 그레고리를 기념하는 가직 1세의 예배당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규모가 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막상 가까이 가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거룩한 도성 애니를 하늘과 땅이 닿는 성지로서 그 위상을 높이려고 했던 가직 1세의 희생과 섬김이 돋보인다

역사는 역사를 부르고,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지난 번 글에서 잠시 설명했듯이, 역사는 살아 숨쉬기 때문에 그런 생명력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생명의 부름에 응답하여 역사와 호응한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의 사명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함이다. 아무리 오래된 역사라도 죽지 않는 이유는 역사와 함께 생명력을 공유하며 호흡하는 사람들이 기억함으로 사멸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 천상의 천사들의 오르내림을 생각하며 가직 1세가 건축했던 교회의 원통형 외곽 모습이다. 교회가 영산인 아라랏산을 모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 부분은 산 아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넓은 교회당의 하단부를 이런 규모의 돌들을 다듬어 원형으로 세웠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는 가히 천부적이다

기억함으로 살아있는 역사가 되지만, 반대로 망각하고 왜곡하고 간과함으로 역사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게 된다. 19세기 아르메니아의 무명 시인은 노아의 방주가 도달했던 아라랏산을 신적 임재의 상징으로 묘사하면서 애니를 의인화하여 하나님의 자녀처럼 운율에 담았다.

무명의 시인이 서글프게 읊조린 대로 애니가 폐허로 남겨진 상황이기 때문에 탄식과 통곡의 분위기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이 애니가 동방을 대표하던 위대한 도시로서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었던 사실 때문에 깊은 탄식과 비통함에 빠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 영산인 아라랏산을 향하여 탄원하는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종합해 보면 동방의 위대한 거인인 애니가 쓰러져 있는 듯 보이지만 숨통이 멎지 않고 여전히 호흡하고 있다는 말이다.
 

애니가 포효하다

애니로 들어가는 입구 중에 가장 유명한 문이 사자의 문, 즉 라이언 게이트이다. 그 문을 통과하여 오른쪽 벽 위를 보면 사자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사자 벽조각은 애니의 위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고 하겠다. 애니가 바로 동물의 왕인 사자와 같이 동방을 향해 포효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높였다. 아숏 3세가 애니의 기틀을 놓았다면, 그의 아들 심밧 2세는 12년 어간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애니의 내실을 기했고, 아숏 3세의 아들이자 심밧 2세의 형제인 가직 1세(Gagik I)는 잘 다져진 기틀 위에서 만방을 향해 애니의 위엄을 알리며 포효하였다.

   
▲ 가직 1세 교회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주요 기둥 중 하나의 모습이다. 이 엄청난 분량의 석조건물을 올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건축기법이 전문가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교회당 기초를 얼마나 튼튼하게 닦에 놓았으면 아직까지도 이렇게 건재할까를 생각하니 놀라울 뿐이다

애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직 1세 또한 바그라티드 왕가의 전통, 즉 하나님이 특별하게 지명하여 부른 사람들답게 애니를 이 땅에 임한 거룩한 도성이 되도록 헌신하였다. 가직 1세는 아르메니아를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조명자 그레고리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듯 보였다.

왜냐하면 조명자 그레고리와 같이 가직 1세도 아르메니아의 전통적인 강점들, 즉 고유한 문자와 체계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십만 명을 상회하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연을 확장하였고 동시에 내연을 튼실히 다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를 통하여 밝혔던 대로, 아르메니아가 속전속결로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배경에는 조명자 그레고리가 전권을 가지고 교육으로 기독교적 기틀을 다지면서 군사력을 활용하여 이교세력들을 단숨에 제압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가직 1세는 그런 조명자 그레고리를 흠모하였음이다.

   
▲ 거룩한 도성 애니의 황금기를 적나라하게 증거하듯이 가직 1세 교회의 돌기둥이 표면에 새겨진 선명한 문양만큼이나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거룩한 도성

가직 1세는 최전성기의 제왕답게 애니를 대표하는 애니 카세드럴을 완성하였고, 천재 건축가 티르닷과 함께 애니의 위상에 걸맞는 교회당들을 건축하는데도 열성을 다하였다. 그는 아르메니아를 강국으로 이끄는데 초석을 놓았고 자신에게 무한한 영향을 주었던 조명자 그레고리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치적도 빛나게 해 줄 대형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 거룩한 도시 애니의 위대함을 만방에 포효하듯 드러냈던 가직 1세가 자신의 이름을 딴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모습이다. 가직 1세의 교회당을 발굴하면서 거의 원형에 가까운 조각이 있었으나,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이 모형은 아르메니아 국립박물관에 재현된 모조품이다

조명자 그레고리를 기념하는 가직 1세 교회를 보았을 때 필자는 생각보다 크고 장엄하며 위대함 그 자체였다고 기억한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가직 1세 교회가 원통형으로 되어 있어 규모가 크지 않고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가 보니 반석과 같은 돌 하나하나의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큰 돌판들이 셀 수 없이 서 있거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내부에서 한 바퀴 도는데도 거리가 제법 되었고 밖으로 나와서 원형의 모형대로 걸으니 그 규모가 엄청났다.

가직 1세는 애니가 실크로드의 예루살렘, 더 나아가 동방을 대표하는 거룩한 도성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천상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상징물을 두고자 했다. 가직 1세는 현재 수도인 예레반 근처에 있는 츠바르놋츠(Zvartnots)에 세워져 있던 카세드럴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자신의 이름을 딴 교회를 건축하였던 것이다. 츠바르놋츠의 뜻이 천상의 천사들이라는 점에서 가직 1세는 거룩한 도성인 애니야말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하였을 법하다.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야곱이 벧엘에서 잠을 자다가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었듯이 가직 1세도 애니 또한 그런 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단일 도시를 놓고 볼 때, 1001개의 교회들로 번성하던 곳이 애니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것도 시대를 앞서가는 교회당 건축 기법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였으니 애니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그 장엄함과 위대함에 압도되곤 한다.
 

애니를 기억하기

   
 애니로 가는 관문이자 공항이 있는 카스(Kars) 박물관에 소장중인 대문이다.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파괴되면서 가까스로 보존된 교회의 부속품들이 매우 다행스럽게 보존되어 박물관의 중심에 전시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인데도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유물은 거의  없고 박물관의 내부와 외부 모두 기독교 유물들로 채워져 있다.

기억하면 살고 망각하면 죽는다. 다른 역사적인 현장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애니는 기독교인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애니를 관습과 문화에 담아서 기억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여자의 이름이 애니이다. 아르메니아의 어느 곳을 가든 남녀노소가 모인 자리에서 ‘애니’라고 부르면 적지 않은 여자 아이들과 숙녀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줄 알고 돌아볼 것이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애니를 소재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코카서스 아르메니아에 사는 아르메니아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형성하여 세계 곳곳에서 애니를 기억하고 있다.

특별히 아르메니아 국내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하여 애니를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노력들이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애니를 기억하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도 동부 아나톨리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생명력의 현장을 기를 쓰고 방문하고 있다. 참으로 애니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불편한데도 말이다. 본 시리즈 글을 접한 분들도 애니를 탐방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며 좋은 기회를 보고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동방의 애니

   
▲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모형인 가직  1세의 동상 조각이 여기저기 나뒹굴다가  가까스로 에르주룸(Erzurum)박물관에 전달되어 전시되고 있다. 20세기 초 터키 군대가 애니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수장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애니에 있는 유물들을 옮기려고 노력했으나, 운송이 쉬운 물품들 위주로 챙기느라 가직 1세의 동상을 옮기지 못했다. 애니를 점령한 터키 군대는 닥치는대로 애니를 파괴하였다. 가직 1세의 동상도 파괴자를 피해가지 못했다

301년에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자리매김을 한 후 상당수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유수한 전통은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를 네 구역으로 나눌 때 기독교 쿼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 쿼터가 어엿이 독립적으로 자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필자는 본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애니를 코카서스의 예루살렘이라고 지칭하였다.

이 표현도 맞는 것이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동서양을 연결했던 실크로드의 예루살렘이라는 말도 되고 당시 지구의 절반이 넘는 동양을 대표하는 동방의 거룩한 도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거룩한 도시를 대표할만한 고유 명사이기 때문에 독자 제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단순히 사용한 것 뿐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이 땅에 등장한 교회(에클레시아)만 놓고 볼 때, 현재 뉴욕이나 런던과 같이 압축된 면적 속에서 인구밀도가 높았던 애니에 1001개의 교회들로 장관을 연출했던 것은 비교불가이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모습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도 시대를 앞서간 건축 기법을 동원하여 셀 수 없는 돌덩이들을 큼지막하게 다듬어서 건축했다니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 많은 돌들을 과연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왔을까를 생각만 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신적 임재의 장소이자 영산인 아라랏산의 거룩한 에너지를 받아서 애니에 거룩한 도성을 건설하여 현재까지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영산과 거룩한 도성을 중심으로 현재 터키의 동부와 남서부, 이란, 이라크,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에 걸쳐 그 강인한 생명력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중이다.

교회를 파괴하고 무너뜨려서 돌들을 사방에 방치한다고 해서 숨통이 끊어지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흔적을 지워도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사명이 역사를 기억하여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투 리멤버(To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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