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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예수꾼의 후예, 백종근 목사와의 대담
은퇴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
2022년 06월 14일 (화) 13:48:40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백종근 목사/ 한양대학교 공업화학과 학사와 석사, 미 오스틴 장로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미국장로교에서 안수 후 비버튼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25년 사역 및 은퇴. 저서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 <조선 선교사 하위렴(윌리엄 해리슨)의 선교행전>(근간)

   
▲ 백종근 목사 

최은수 교수: 전킨기념사업회를 위해 애쓰고 계신 전병호 목사님을 통하여 백 목사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한국에서 만나 뵈려고 했었는데 당시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뵈오니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사님의 가문이 미 남장로교회의 한국선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목사님의 신앙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백종근 목사: 저는 제 증조부이신 백낙규 장로로부터 이어진 모태신앙입니다. 제 가족 즉 아들과 손자까지 하면 6대를 이어온 장로교 집안입니다.

증조부님께서는 구한말 동학의 소접주로 농민항쟁에 뛰어들어 우금치 전투에 참여하신 분이셨습니다. 패전 후 마침 조선에 들어온 남장로교 내한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들었으며 윌리엄 해리슨(하위렴)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1901년 익산에 동련교회와 계동학교를 세운 분입니다.

제 모친의 서원 기도가 장남인 제가 목회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의 의도와 달리 공학도가 되었고 졸업 후 연구기관(KIET)에서 일하다가 미국에 유학을 했으나 뒤늦게 소명을 듣고 다시 신학을 공부하고자 미국장로교(PCUSA) 신학교 중의 하나인 오스틴 신학교(Austin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장로교(PCUSA)에서 안수를 받았으며 오레곤에서 목회를 시작해 25년 목회를 마치고 4년 전 은퇴했습니다. 지난 3월 소천하셨지만 살아생전 한평생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의 덕분으로 목회자가 되어 이민목회 여정을 은혜롭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 전킨기념사업회 전병호 목사와 만남을 가진 백종근 목사

최은수 교수: 동학운동에 직접 가담하셨던 증조부님과 그분이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셨으니 목사님의 가문은 동학과 초기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네요. 참으로 귀한 가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를 저술하게 된 동기와 의의, 백낙규 장로님에 대해 무엇을 나누고자 하셨나요?

백종근 목사: 백낙규 장로님에 대한 신앙과 그가 세우고 섬기던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는 동련교회 90년사(1992)에 어느 정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고, 동련교회사를 쓰신 한신대 연규홍 교수가 다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에서 백낙규 장로의 영성에 대해, 또 전영철 씨가 쓴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에서 백낙규의 신앙과 동련교회를, 또 인천대 김민아 교수의 논문에서도 백낙규에 대한 고찰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고, 그의 삶과 영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군산 수락산에 있는 전킨선교사와 드류 선교사의 선교 기념비 앞에서

저는 격동하던 구한말 그의 개종의 동기를 살피고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초기 교회 지도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교회와 학교를 세워 계몽에 힘쓴 백낙규의 활동을 조망해 보았습니다. 나라를 잃은 망국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성도를 돌보며 교회를 이끌었고, 리더십을 발휘해 교회와 지역사회에 기여했던 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이끌어왔던 영성과 신앙을 함께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사에서 1세대 기독교인들 중 한 분이셨던 백낙규 장로님에 대하여 듣다 보니, 전북지역 교회 역사 연구의 대부이신 주명준 교수님께서 이런 책을 발간하신 백 목사님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백종근 목사님은 좋은 목사님이고 기독교 명문 가문의 후손으로서 영민하신 분입니다.’ 목사님의 다음 책으로써 곧 출간될 ‘조선선교사 하위렴의 선교행전’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백종근 목사: 하위렴은 남장로교 7인의 개척자보다 약간 뒤늦게 내한했지만 7인의 개척자의 한사람인 리니 데이비스와 결혼해 실제로 그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으나 7인의 개척자에 가려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선교사입니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성장과 신학교를 가게 된 동기와 선교사로서 파송, 초기 내한선교사로서 활동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 전주 신흥학교 인톤관 방문

무엇보다도 그는 복음, 교육, 의료사역 등 전 분야에 걸쳐 전천후로 활약을 했던 남장로교 선교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주, 군산, 목포 3개 선교부의 조성사업을 실질적으로 완수해 선교 인프라를 구축해 놓음으로 그 이후 남장로교 선교가 훨씬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장터선교라는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개발해 순회 전도에 힘을 썼으며, 교육사역에도 그의 은사와 재능의 빛을 발했습니다. 전주 신흥학교, 군산 영명학교, 목포 영흥학교등 3개 학교의 기틀을 세웠으며 교회법에 대한 그의 해박한 안내로 전라노회와 전북노회의 설립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순회사역을 통해 만났던 초기교회들의 에피소드들과 김창국, 박연세, 황재삼, 구연직, 김중수, 최흥서, 백낙규 등과 같은 초기교회 지도자들을 발굴하는 이야기들도 소개했습니다.

하위렴은 1896년 30세의 나이로 내한해 1928년까지 32년간의 한국사역을 마감하고 그의 나이 62세로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무리한 사역으로 일찍 건강을 잃은 것이 원인이 되어 귀국 2개월 만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조선선교사 하위렴(William Harrison)의 선교행전>은 그가 조선에 파송되어 그가 선교잡지에 남겨 놓은 1차 자료와 그의 고향과 학교와 노회에 남겨진 사료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으며 그가 조선 땅에 남겨 놓은 선교행적을 연대별로 기록해 전기 형식을 취해 보았습니다. 비록 많지 않은 자료들이었으나 가장 신빙성이 있는 자료들이라 생각합니다.

남장로교 선교 역사뿐 아니라 한국 초기교회사에 관심을 갖는 목회자나 학생은 물론 일반 성도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와 세계디아스포라 한인교계를 향하여 던지고 싶으신 화두는 무엇인가요?

   
▲ 백종근 목사의 증조부인 백낙규 장로가 설립한 동련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

백종근 목사: 초기교회사를 들여다보면서 크게 배울 점이 있다면 그 당시 선교사 공의회에서 결정한 선교원칙은 교단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선교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예양협정을 맺으면서도 한편 협력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에큐메니컬 정신을 실현했다는 점입니다.

요즘의 한인 교계에 부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교단 중심으로 치닫다 못해 개교회주의로 치달으며 성장주의를 내세우며 협력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습니다. 초기교회시절부터 교인 수가 200명이 넘어가면 교회를 분립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에 옮겨 6개나 되는 포자교회를 분립시켜온 동련교회는 이런 점에서 모범이 되는 교회라 여겨집니다.

기독교의 세계화는 유대의 초대교인들이 흩어지면서 생긴 디아스포라 교회가 중심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자의든 타의든 해외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수가 전 세계에 7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던지 현지언어와 문화에 적응이 된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엄청난 선교자원이 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현지의 한인교회에서 그들을 통해 그 지역에 함께 사는 이들을 복음화해야 하는 사명을 인지하고 갈등과 분열을 넘어 힘을 합쳐 선교역량을 제고해야 할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한인들 가운데 지도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본국교회와의 연계 속에 선교의 외연을 부단하게 확장해 간다면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통해 더큰 선교효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 미국장로교 총회에서 관계자들과 교인들과 함께

최은수 교수: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교훈이나 좌우명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종근 목사: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 상황을 맞이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다양한 정보와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목회에 활용하고 있지만 여기에 매달려 영성을 상실해 가는 것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목회는 테크닉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그를 권면한 말씀은 우리 모두가 좌우명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최은수 교수: 귀한 교훈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증조부이신 백낙규 장로님에 대한 목사님의 서술은 선교사 제위로부터 복음을 듣고 토박이 예수꾼이 되어 한국교회를 발전시켜 왔던 수많은 한국교회의 인물들을 발굴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워 줍니다. 아무쪼록 수 대째 이어오는 한국기독교의 명문 가문들이 솔선수범하여 전기든 가문의 역사든 기술하여 출판하는 일들이 들불과 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런 작업들이야말로 믿음의 후대들이 든든히 서게 될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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