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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이 불편한 진실
2022년 06월 07일 (화) 13:16:18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가벼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숨이 꽉 막혀 온다. 주위를 돌아본다. 여유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물건들이 한꺼번에 나를 주목하는 것 같다. 아니,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상태건만 이 무질서가 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발이 있어 어지럽게 돌아다니지도 않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늘 그 자리에 있는 나의 분신 같은 고마운 물건들이건만 때로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 너저분한 나의 살림살이가 간결하지 못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스스로 얼굴이 붉어진다. 물자가 풍부한 오늘날엔 잘 버리는 것도 지혜며 미덕이라는데…

학창 시절의 나의 취미는 수집이었다. 실용성이 있건 없건 모았다. 특히 자료 수집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신문에 연재한 문학인에 관한 글, 혹은 역사 속의 기이한 일들, 자녀교육 문제, 때로는 요리에 관한 것들까지 나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모두 오려 내어 스크랩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렇게 빛 바란 신문 스크랩북 여러 권이 책꽂이에 꽂혀 내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중학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가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다. 날마다 톱뉴스로 보도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여 과학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칭찬과 함께 잠시 보시고 돌려 주겠다고 하시면서 가져가셨는데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일하다가 무엇이 필요하면 나를 연상하며 나에게 가 보라고 한다고 하니 나의 버리지 못하는 버릇은 이미 자타가 인정하는 버릇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이런 버릇을 버리고 싶어 하면서도 모질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은 과감한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결심은 결심으로 만족해야 했다.

언젠가 몸이 매우 아팠다. 누구나 아플 때는 자신의 주변이 유난히 지저분하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누워서 둘러본 나의 살림은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이 나를 서글프게 하더니 급기야 짜증까지 났다. 그래서 이제 잘 사용하지 않는 것, 오래된 것들을 과감히 처분하리라 굳게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버리려고 들어 보면 언젠가 꼭 필요할 것 같아 보류하고, 결국 그날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긴 것 외엔 정작 버린 것은 별로 없었다. 힘들게 내린 대단한 결단이었건만…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그 어마어마한 갈등과 함께 너저분하다고 생각하며 힘들게 버린 그 물건이 삶 속에서 더 요긴할 때가 많았음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큰 물건들은 없으면 사용하지 않으면 되고, 또 필요할 때 사면 되지만 작은 물건들은 구입하기에 그리 수월하지 않고 또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맞아, 이렇게 하는 거야’ 그 기이한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것은 이사하는 것이다. 이사를 하되 집을 바꾸는 것을 동시 동작으로 하루아침에 내어주지 않고, 지금 사는 집에 내 물건들을 그대로 놓아둔 채 새로운 집에 가서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그때마다 하나씩 옮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실제로 버릴 것은 버려질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고맙게도 이 멋진 생각이 실현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딸아이가 공부하러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원룸을 하나 얻고, 정말 꼭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록 작은 원룸이지만 공간이 무척 넓었다. 이제는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사들여서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것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어찌 수학 공식처럼 그렇게만 되리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군더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세월이 가면 먼지라도 더 붙는 법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의 살림은 하나씩 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방을 얻어 들어갈 때 비하면 이사 나올 때 짐의 양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버리는 것은 나와 맞지 않은 행위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못 버리는 행위를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질 땐 어차피 다 버려질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눈에 보이는 삶 속의 물건들뿐이랴. 마음속에도 버리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새로운 것을 넣을 여유가 없지 않은가. 내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기억, 다른 사람이 내게 내뱉은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 좋지 않은 말과 행동 등 버리지 못하여 힘들어할 때가 많은 나를 발견한다. 너무 오래되어 이미 버린 줄 알았던 것이 마음 한구석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헤집고 올라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도 있다. 이제는 버려야 한다.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버릴 때를 놓치면 후회할 일이 반드시 생긴다. 나쁜 성격, 버려야 할 습관, 끊어야 할 친구나 인간관계들은 정말 버리기 어렵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선뜻 결단하지 못한다. 혹 결단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할 때도 많다. 유익의 유무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은 취하고 보는 욕심 어린 본능이 우리에겐 있다. 더 다양한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취한 것들이기에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물건이야 버리지 않으면 쓸데가 생기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지저분하게 보여도 조금 불편함을 느낄 뿐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좋지 않은 기억들은 삶에 나쁜 영향을 주거나 혹은 인생을 망치게 하는 백해무익한 것일 뿐이다.

잘 버리는 것도 지혜다.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분리수거를 해 볼 작정이다. 보이는 물건들만 아니라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필요한 마음의 찌끼까지 과감히 버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잘 분리하는 지혜를 먼저 터득한다면 나의 버리지 못하는 이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습성도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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