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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들
최은수 교수의 우크라이나 이야기
2022년 05월 23일 (월) 14:30:17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우크라이나 북서부 전선의 전쟁 범죄들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이 개시된 지도 벌써 9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며 종전과 평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러시아가 수도인 키이우에서 퇴각하면서 근 한 달 정도 지속되었던 침략자들의 압제로부터 수도권 도시와 마을들이 자유를 되찾는 승전 소식이 우크라이나 국내외 많은 이들에게 해방감과 승리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군대가 남긴 전쟁의 흔적들은 수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가져왔다. 키이우로 가는 관문인 이르핀(Irpin)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이르핀의 바로 옆 도시인 부차(Bucha)에서는 수백 명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됨으로 가장 악랄한 전쟁 범죄가 기정사실로 드러나는 가운데 전세계인들이 공분에 사로잡혀서 치를 떨고 있는 중이다.
  

전쟁 범죄의 심장부였던 까추장카(Katyuzhanka)

   
▲ 러시아와 체첸 군대로 이루어진 제35 연합군이 우크라이나 북서부 전선을 장악했을 당시의 지도. 까추장카, 부차, 보로당카 등의 주요 지명이 선명하다.

필자는 러시아의 침공이 개시되기 전에 까추장카 교회의 담임인 올랙 키리쿤 목사와 긴급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까추장카의 지정학적, 전략적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했었다. 전쟁이 개시된 이후 올랙 키리쿤 목사는 7차례에 걸쳐서 주변의 상황과 기도제목을 보내오는 와중에 긴박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공유키도 하였다. 필자는 올랙 목사로부터 전쟁의 상황과 기도 제목들을 받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었다. 그것은 러시아 군대가 퇴각하면서 자행했던 부차 학살과 같은 천인공노할 만행들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약 한 달 정도 지속된 러시아 군대의 점령 하에서 까추장카는 안전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의문은 올랙 목사와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역시나 러시아 군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을 사람들을 살육하는 만행을 까추장카에서도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까추장카에서 어떤 피해들이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여러 증거들을 수집하던 중에 한 제보자를 통하여 놀라운 진실을 접하게 되었다. 까추장카가 단순히 전쟁 범죄의 피해만 입었던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북서부 전선을 총괄하던 사령부가 까추장카에 위치해 있는 가운데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 지휘와 전쟁 범죄들까지 총괄하던 본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까추장카에 있던 사령부로부터 용인되고 하달된 전쟁 범죄의 악행들이 부차와 보로당카 등 주변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까추장카가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전쟁 범죄의 중심이자 정점에 있었다는 말이다.

   
▲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까추장카 교회에서 매년 여름에 일주일 동안 캠프를 개최하여 까추장카 주변까지 아우르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였다. 교회 옆에 있는 까추장카 학교 운동장에서 야외 활동들과 마지막 날에 콘서트를 개최하곤 했다.

필자는 단 한 번도 까추장카가 어떤 연유로든 그 어떤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전쟁이 카추장카를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만행의 중심지에 올려놓았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는 대로, 까추장카는 보로당카, 부차, 그리고 키이우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드니프르 강을 이용한다면 데미디우를 거쳐 까추장카로 이동하는데도 용이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러시아와 체첸 연합군의 사령부가 까추장카에 위치했던 것이다. 이 사령부는 올랙 목사의 까추장카 교회 옆에 있는 공립학교 건물에 있었다.
  

러시아 병사들이 천인공노할 전쟁 범죄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나찌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든지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하지 못하게 등의 정치적인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러시아 군인들의 사고 속에 깊게 배어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연합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까추장카 공립학교의 한 교실 칠판에 러시아 군인들이 남긴 선전 문구에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아는 한, 러시아 군인들이 남긴 선전 낙서 중에 까추장카의 것이 거의 유일하거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까추장카 공립학교 교실의 낙서를 통해 볼 때, 러시아 군인들의 잘못된 인식은 크게 세 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 현재 까추장카 교회 행사를 위해서 항상 사용해 왔던 학교 운동장과 그 주변이 러시아 연합군의 사령부를 수비하기 위한 방어 진지로 사용된 후 엉망이 되었다.

첫째로, 그들은 러시아 중심의 ‘극단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자체가 갖는 장점과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극단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 민족주의는 변질되어 버리고 정도에서 이탈하게 된다. 러시아가 큰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까지 간섭하거나 말살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런 민족주의는 편협한 국수주의라고 해야 더 옳을 듯하다. 러시아의 주장대로 온전한 민족주의라면 깡패와 같이 무력으로 주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설득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 러시아 군대가 퇴각하면서 까추장카 학교의 칠판에 남긴 장문의 선전 문구.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첫째, 러시아를 대적하고 있는 어른들의 전철을 따르지 말고, 둘째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러시아어를 중심으로 흡수되어야 정상적인 생활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

둘째로, 러시아 군인들의 역사 인식이 매우 왜곡되고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까추장카 교실의 선전 문구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국가이다’라는 언급만 보아도 그들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표현은 러시아가 쓸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사용해야 더 정당하다. 왜냐하면 중세시대 초엽에 키이우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지금의 벨라루스와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적 차원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키이우가 중심이고, 러시아 기독교도 키이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다. 러시아 군인들은 올바른 역사 인식 대신에 구소련 시대의 고루한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셋째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흡수되어 자신들의 영향 하에 있어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잘못된 현실 인식이다. 이 낙서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전쟁의 원인이 우크라이나 기성세대들의 선택이 잘못되어 러시아와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유럽연합과 함께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 모양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짐승처럼 다루며 그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잔악한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 까추장카 학교에 자리 잡은 러시아 연합군 사령부가 건물 지하에 고문실을 설치하여 여러 도시들에서 체포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비인간적으로 혹독하게 고문한 후 죽이거나 아니면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들을 학교 주변에 암매장하거나 방치했다. 까추장카 교회가 바로 옆에 위치한다. 


비인간적인 고문의 메카였던 까추장카

필자가 확보한 자료에 의할 것 같으면, 제35 연합군이 사령부를 까추장카 공립학교에 설치하였고 학교 건물 지하에 악명을 떨친 고문시설을 갖추었다. 이 고문소에서 비인간적이고 잔학한 행위들이 자행되었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학교 주변에 방치하거나 매장하였다. 러시아 군인들은 시체 치우는 일들을 까추장카 마을 사람에게 맡겼고 그들 중에는 이 과정에서 잘못 보이다가 즉결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차나 보로당카 등의 주변 지역으로부터 까추장카 사령부로 끌려와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죽어갔다. 그 중에서도 필자를 놀라게 한 사실은 러시아군의 고문기술자가 한 개신교 목사를 잡아다가 고문을 가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라고 강압했던 일이다. 그 개신교 목사는 극악무도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개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목사의 생사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단순히 까추장카만 놓고 볼 때 개신교 목회자는 올랙 키리쿤 목사밖에 없는데 이런 고문을 당한 사람이 그인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필자가 얼마 전에 만났던 올랙 목사는 자신이 고문 당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러시아 연합군 병사들이 가장 깨끗한 교실을 화장실로 사용했고, 세면대에 용변을 보는 등 차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급하게 올랙 목사에게 연락하여 진위 여부를 물었다. 올랙 목사는 자신도 그 개신교 목사의 고문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독일계’(German)라는 별명을 가진 고문 기술자가 까추장카의 유일한 개신교 목사인 자신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올랙 목사는 자신이 러시아 군인들이 아닌 체첸 군인들에 의해서 구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억류 장소에서 함부로 이탈할 수 없었고, 이런 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고문 기술자에게 잡혀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러시아 연합군 중 일원인 체첸 군인들이 올랙 목사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까추장카 공립학교의 지하에 마련된 고문소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개신교 목사도 강압에 의해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을 한다고 말했지만 아마도 비슷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만일 올랙 키리쿤 목사가 그 악명높은 고문 기술자에게 잡혀갔다면, 그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올랙 목사의 무사함이 기적과 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것도 맹수의 굴과 같은 전쟁 범죄의 메카에서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무차별적인 약탈의 현장이 된 까추장카

   
▲ 러시아 연합군이 학교를 떠나면서 컴퓨터를 비롯한 거의 모든 비품들을 약탈해 갔다고 분노하는 까추장카 학교 교장선생님.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구체화되면서 첨단무기에 사용되는 물품들이 부족해지자 전자제품을 위시하여 대대적인 약탈이 벌어졌다. 러시아 연합군의 사령부가 있던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사용되던 컴퓨터 등 각종 비품들이 모조리 약탈되었다. 일반 가정집들도 남아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러시아 병사들이 메뚜기 떼 같이 덤벼들어 거의 초토화시켰다. 지난번 올랙 목사의 기도요청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사택도 모두 털려서 쓸만한 것이 없을 정도다. 까추장카 마을의 할머니 한 분도 자신의 속옷까지 약탈하는 러시아 병사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노인의 물품을 가져가서 뭐하냐고 했더니 자신의 엄마에게 줄 거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행태들을 보면 과연 러시아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지 덩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실소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일상의 평화를 기원하며

필자는 조용하고 평화롭던 까추장카가 전쟁 범죄의 사령부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약 한 달간 지속된 점령기에 러시아 총참모부의 고위급 장성이 까추장카를 방문하여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을 정도라 침략자들의 만행이 얼마나 극악무도했을까를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순박한 까추장카 주민들에게 이런 상황들이 얼마나 큰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까를 상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까추장카가 체르노빌 폭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를 아직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상처까지 떠안게 되었으니 깊게 베인 그들의 상처가 쉽게 치유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까추장카 교회의 올랙 목사와 교인들이 솔선수범하여 전쟁의 상흔들을 어루만지며 영육 간에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이 되고 소망을 보게 된다. 하루빨리 고요하고 목가적인 까추장카의 일상이 회복되고 푸근한 평화의 기운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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