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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의 여호와의증인 비판2: 편의주의적 성경관
1995년 08월 01일 (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정통 교회는 이천년 동안 이단의 공격을 받아 왔으며 이 일은 주님이 오시기까지 교회가 계속해서 져야할 십자가라고 생각한다. 쥐만 없다면 창고에 쥐구멍이 뚫릴까 염려할 필요가 없듯이 이단만 없다면 이단 연구나 이단 규정만큼 불필요하고도 무익한 십자가는 없을 것이다.

 우리 문전을 노크하는 극성스런 불청객으로 소문난 여호와의증인. 이들의 접근을 두려워하는 성도들도 있는 듯 하다. 또한 그들이 성경을 정확히 알고 있기라도 하듯 여기저기 성경을 뒤적이며 편파적인 성구 나열에 심지어 그들이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잘못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성도들 마저 있는 듯하다.

 지난 호부터 시작한 여호와의증인의 비판은 그들의 신론을 서두로 시작해서 그들 교리의 실체를 고발함으로 우리가 믿는 역사적인 신앙에 대해 확신과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고 더욱 복음을 사랑하게 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그들이 정통 교인들을 공격할 때 공격목표 1호로 삼고 있는 삼위일체 교리 중에 자주 묻는 네 가지 명제가 있다. 그중 세 가지는 지난 호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첫째, 성경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다. 둘째, 삼위일체란 숫자적으로 모순된다. 셋째,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나 예수님은 피조물로 대능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주장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이제 그 네번째 명제를 소개하고 비판하겠다.

 넷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신 주, 주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등 많은 이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호와의증인은 이것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본명이 여호와이며 다른 이름들은 직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직접 인용해 보자.

 "우리가 아는 사람으로서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이 아닌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대통령, 왕, 판사 등과 같은 칭호이기 때문입니다."(여호와의 증인,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서울, 1987년, P.41).

 과연 그러한가. 두 가지로 나누어 변증해 보자. 먼저는 예수님도 여호와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성령님도 여호와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여호와이시다.

 여호와의증인은 예수님도 여호와라는 말만 들어도 기절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예수님도 여호와라는 이 교리보다 우리의 삼위일체 교리를 증거하기에 더 좋은 것이 없었으며 여호와의증인의 반 삼위일체 교리를 공격하기에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다음은 여호와의증인 연구의 대가인 호모 덩컨 씨가 미국 뉴욕 브르클린에 있는 워치타워 본부에 직접 질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사용해 본 결과 이만큼 여호와의증인을 쓰러 뜨리기에 더 날카로운 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복음서 모두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먼저 살펴보자. 마태복음 3장 3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같은 내용의 마가복음 1장 2-3절을 보자.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

 또한 누가복음에도 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3:4)

 요한복음 1장 23절을 살펴 보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하니라"

 위의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의 출현과 사명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성취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서 어디에서 예언된 말씀인가? 이사야 40장 3절이다. 내용은 이렇다.

 "외치는 자의 소리요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위의 말씀을 연구해 보면 여호와의증인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엎을 수 있다. 하나씩 정리하며 예수님도 여호와라는 점을 증명해 보자.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태어난 목적은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함이다. 성경에서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태어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러니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세례 요한이요 '주의 길', '그의 첩경'의 '주'와 '그'는 분명 누가 보아도 예수님이다. 그런데 이 예언은 이사야 40장 3절의 성취인데 그곳에서는 주의 길을 여호와의 길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즉, 신약의 주는 예수인데 그것은 구약 이사야 40장 3절에 의하면 그 주는 여호와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은 곧 여호와임이 분명해 졌다. 이 점을 여호와의증인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번역상의 문제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여호와의증인을 가끔 본다. 아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 번역에서도 이사야 40장 3절을 "여호와의 길"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은 그들이 얼마나 성경을 편리주의적으로 인용하는가를 말해 준다. 신약의 '주'가 예수님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성취는 이사야 40장 3절의 예언성취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번역상의 문제라고 할 것인가?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어떤 여호와의증인의 궁색한 답변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능자로서 '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 아들이 아버지의 명함을 이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단 자신은 아버지가 아님을 말하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기꾼이요 인륜을 모르는 부도덕한 사람일 것이다. 그것도 여호와의증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아니요 피조물에 불과한데 예수님과 여호와 하나님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위의 성경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도 여호와임을 다른 성구에 의해 하나 더 증명해 보자.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사야 44장 6절을 보자.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같은 내용이 4장 4절, 43장 10절, 48장 12절에도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2장 8절을 보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위와 같은 내용이 1장 17-18절, 21장 6절, 22장 13절에도 나온다. 여호와의증인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이라면 예수님은 결코 처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나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같은 것이다. 태초가 둘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처음이요 나중인 것은 예수님도 처음이요 나중이이라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이 여호와인 것처럼 예수님도 여호와이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님을 일치시킨 곳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로마서 10장 11절에 보자.

 "성경에 이르되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저'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성경에 이르되'라는 말로 한 것을 보면 '구약에 이르되'란 말로서 구약으로부터 인용된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인용된 구약은 이사야 49장 23절이다.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곳에서는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라고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보아도 예수님과 여호와 하나님은 일치되는 것이다.

  성령님도 여호와이시다.

 여호와의증인에게 예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도 놀랄 일이지만 성령이 여호와라는 말은 더욱 놀랄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은 하나님이기는 커녕 인격이 아니며 단지 활동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후에 비판하겠으나 여기에서는 성령도 여호와임을 성경적으로 증명해 보자.

 히브리서 3장 7-8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여기에 보면 분명 '성령이 이른 바와 같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시편 95편 7-11절의 인용이다. 9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라고 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여호와인데 신약에서는 성령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에서는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 점을 역시 히브리서 10장 15절과 16절에서 살펴 보자.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위 본문은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할 언약을 성령의 증거로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이 인용된 곳은 예레미야 31장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분명히 이 언약을 말씀하신 분은 여호와라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절)

 이처럼 성령도 여호와시요 또한 예수님도 여호와이시다. 이 점을 동시에 같이 증명해 주는 성경 하나를 더 살펴보자. 이사야 6장을 가리켜 이사야의 소명장이라 한다.  내용인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는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창화하는 모습이 있으며, 이것을 보고 자신의 부정함을 느낀 이사야에게 단에 핀 숯을 가지고 그의 부정한 입술을 정케하므로 담대히 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9절)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신약에서 두번이나 인용하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과 연결시켰고 하나는 성령과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12장 39-41절을 보면 바로 이사야 6장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사야가 그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한 말이라고(41절) 하였으니 보좌에  앉은 여호와와 예수님을 일치시킨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 28장 25-26절에 보면 같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면서 역시 그 말씀을 성령의 말씀으로 소개하고 있다.(25절) 역시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일치시킨 것이다.

 이제 정리해 보자. 구약의 '여호와'는 귀한 이름이며 어떤 이름보다 그 의미가 깊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에서 예수님 하나님과 성령님 하나님과 일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비록 인격은 세분이시지만 본질이 하나라는 증거이다.

 잘못 생각하면 위의 말을 한 인격의 하나님께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신약의 예수님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일치(identify)시켰다는 것은 예수님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의 한 본질의 하나님이란 말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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