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갖고 일을 하다가 은퇴한 뒤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특히 은퇴 후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일 경우 급속하게 늙어 버린다. 이런 점에서 김북경 목사(64·영국 레딩한인교회)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년이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은퇴를 하지만 후학을 가르치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총장으로 임명되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22년 동안 영국에서 목회를 했다. 하지만 이민목회는 아니었다. 영국에 유학이나 직장 때문에 잠시 거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다. 덕분에 그의 목회는 비교적 수월했다. 3,4년 되어 떠나는 교인들 때문에 일반 목회처럼 결혼 주례, 돌 집, 개업하는 집에 심방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주하지 않고 삶을 돌아보며 실천하는 목회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김 목사는 북경에서 태어났다. 부친 김성일 씨가 항일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의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태어난 곳의 지명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장춘에서 태어난 그의 동생 이름은 김장춘이다. 그의 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교회를 다닌 것은 해방 이듬해다. 상해에서 일곱 살까지 살았던 그는 8살에 평양에 와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닌 것이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됐다.
1947년 서울로 와서 동대문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대학교 입학을 하면 보통 교회를 중단하는 일이 많았잖아요. 교회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과 함께 사상적 반항이 있잖아요.”
그가 다시 교회를 다닌 것은 캐나다 유학 때였다. 유학을 떠나면 의례히 접촉하는 곳이 교회다. 그도 자연스럽게 캐나다한인교회에 출석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하나님을 만났다. 장로님의 적극적인 인도와 신비스럽지만 꿈에서 뵌 하나님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꿈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제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하나님이 저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이 아버지시란 사실과 또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었지요.”

한번 택한 사람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는 어린 시절 만난 그 하나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언어학을 전공하려 했던 생각을 바꿔 신학의 길로 나선 것이다. 그는 천주교를 연구하러 로마로 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를 통해 스위스 라브리공동체를 소개받았다. 라브리에서 만난 프랜시스 쉐퍼 박사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영국의 바이블 칼리지에서 신학 공부를 했다.
라브리와의 인연은 여러 면에서 깊다. 그는 그곳에서 아내 신시아를 만났다. 그보다 8살 연상이지만 사랑은 나이를 초월했다.

그는 라브리의 조직원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라브리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강의도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라브리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를 연구하고 그 문화 안에서 사는 것을 배웁니다. 비록 사회적 운동이나 데모는 직접 하지 않지만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라브리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전통과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 장로교회가 너무 엄숙주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하나님의 존엄과 초월 주권을 생각해서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표현하는 예배가 없다는 것이다. 좀더 활기찬 예배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교회의 열린 예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열린 예배는 프로그램 중심입니다. 이 이면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고 또 그 성장 이면에는 개인적인 명예와 실리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쁨의 예배를 드리는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너무 형식적이고 프로그램 중심의 예배는 지양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는 영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영국교회의 몰락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영국교회에 교인은 5∼10%만 출석하고 있다. 중국에서 한글성경을 번역한 스코틀랜드의 로스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가 술집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영국교회의 상황이다. 김 목사는 이런 상황이 한국교회에도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겠느냐고 반문한다.

“한국교회의 경건성은 좋지만 너무 사회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세상문화와 철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적그리스도가 창작한 철학을 대적하기 위해 연구해야 하는데도 너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구교회의 몰락 이유가 이런 것이었는데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문화를 예수 얼굴이나 십자가가 있는 교회를 그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는 삶의 창의적인 활동과 함께 그것을 음미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대적할 문화를 이해하고 그 사상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교회 역시 이 부분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사상전(思想戰)에서 후퇴하면 교회는 사양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김 목사는 교회가 구제와 사회복지만으로는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론적 사고 속에 세상을 마귀적으로 규정해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그들을 분석해서 그 이론들을 부수는 것이 기독교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일에 가장 우선되는 것이 성경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을 바로 알면 강력한 변화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목회에서 그는 귀납적 성경공부를 통해 교인들이 효과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김 목사는 삶을 통해 목회와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 두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몸에 이상은 없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 탓에 한국에서 아홉 살 박이 남자와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모두 출가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 소중한 가족들이다.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그가 실천하고 싶은 신학의 방향도 실천적 신앙의 삶이다.
“4년 임기동안 한국교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학교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에스라는 성경만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성경전체를 바로 알고 바르게 가르쳐 삶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