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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의 선교신학 3
김경진 교수의 성경 논단
2022년 04월 18일 (월) 14:11:29 김경진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경진 교수/ Ph.D, 신약학, 호주 알파크루시스 대학교 교수

   
▲ 김경진 교수

  
 
3.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선교신학

 누가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선교활동을 기록하였다면,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책제목처럼 사도들의 선교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두 책에서는 여행의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즉,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전체 기사 중 약 40%를 차지하고 있고(눅 9.51-19.27)1),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의 선교여행이 역시 약 57%를 차지하고 있다(행 13-28장). 이렇게 볼 때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전도여행과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의 선교여행은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두 권의 책에서 선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에게 부각시켜 주고 있다. 2)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도행전 1장 8절은, 누가복음 4장 18절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전개과정을 예시해주는 프로그램적 요약 구절로 알려져 있다. 3)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복음전파, 즉 선교의 프로그램은 예루살렘(1-7장) → 온 유대와 사마리아(8장) → 땅끝, 즉 로마(9-28장)까지 이르는 세 단계의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프로그램에 따라서, 1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과 전도자 스데반의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사도들과 스데반은 약 50일 전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예정하신 오실 메시야 구주라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證人)의 자격으로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유대인들과 심지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회개하고 개종하게 되었다(행 2.41; 6.7).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고, 사도들은 유대 관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에 의해 많은 핍박을 당했고, 전도자 스데반은 결국 순교 당하고 말았다.

이어지는 8장에서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발생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유대 기독교인들, 특히 전도자 빌립에 의한 사마리아에서의 선교와 구스 내시에 대한 전도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분명히 사도행전 1장 8절의 주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에 따라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하나님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 교회에 큰 핍박이 있도록 하여 강제로 그들을 흩어지게 하였고, 그 결과 흩어진 기독교인들이 나가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행 8.1-3).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첫째로 아마도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을 전부 복음화시키고 난 다음에 사마리아로 나아가려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완전히 복음화되지 않았다. 이는 어떤 한 지역의 완전한 복음화란 하나의 이상(理想)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둘째로,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께서 명한 이방인 전도를 달가워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를 놓고 볼 때 철저한 민족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큰 특권이 개나 돼지처럼 간주되는 이방인에게도 허락된다고 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이방인 전도를 망설이자 주님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맞도록 하여 억지로 그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내 전도와 국외 선교는 함께 병행되어야 할 사역이지 전(前)과 후(後)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해외 선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들의 주장은 이것이다; 아직 국내도 다 복음화되지 못하였는데,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해외 선교를 감행하는가? 그러나 국내의 완전한 복음화는 아마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도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상(理想)의 성취를 위해 마냥 해외 선교를 미루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고, 그 증거를 우리는 사도행전 8장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는 병행되면서 추진되어야 할 사역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9장부터 28장까지는 로마로 상징되는 땅끝까지 나아가는 사도들의 선교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9장부터 12장까지는 특별히 베드로의 선교 사역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의 만남이었다(10장).

우선,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려할 점 하나는, 흔히 유대인의 사도로 알려진 베드로가 이방인과 접촉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례 또한 베풀었다는 것이다(cf. 갈 2.9). 사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도,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지방을 가든지 우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행 13.15; 14.1; 17.1 etc.). 그렇다면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구분‘은 실제로는 유효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이 이미 이방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

베드로의 고넬료와의 만남은 복음전파와 기독교회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기(轉機)가 되었다. 이전까지 사실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접촉조차 꺼려했던 전형적인 유대인이었다. 그리하여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나타난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잡아먹으라고 명한 짐승들을 ‘속되고 더럽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나중에 깨달은 바에 따르면,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지 않다’고 간주한 짐승들은 결국 고넬료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을 가리킨 것이었다. 고넬료의 집에 가서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마침내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 34-35)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한 베드로는 그후 교회 내에서 이방인의 영입(迎入)이 문제가 되어 개최된 예루살렘에서의 사도회의에서(행 15장)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담대하게 이방인의 영입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에 동조한 주의 형제 야고보의 도움으로 교회의 허락을 받게 되었다. 결국 베드로의 고넬료와의 만남은 이방인 전도의 공식적 인정과 연결되면서, 기독교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베드로에 의해 다듬어진 이방인 전도의 토대 위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전도를 시행한 전도자가 바로 바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삼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감행하였다. 그 선교여행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차 여행에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소아시아의 갈라디아 지방의 네 도시, 즉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하였고(행 13-14장), 이차 여행에서는 실라와 함께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들을 재 방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다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아가야 지방의 아덴과 고린도 등을 지나 에베소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을 들렸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온다(행 15.36-18.22). 삼차 여행에서 바울은 다시금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재방문하고 에베소에서 약 삼 년을 보낸 후, 유럽의 교회들을 역시 재방문하고, 그 다음 여러 교회들로부터 헌금을 모아 갖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행 18.23-21.17). 이런 삼차에 걸친 선교여행이 끝난 후 바울은 죄수로 체포되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로마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서 변증하다가, 네로의 법정에 호소한 까닭에 죄수의 처지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게 된다(21.18-28.31). 이러한 바울의 선교여행을 종합해 보면, 일차 여행은 주로 갈라디아, 이차 여행은 갈라디아와 유럽, 삼차 여행은 갈라디아와 에베소 그리고 유럽을 무대로 하여 전개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의 선교여행을 통하여 누가는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많은 역경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방 지역에 널리 증거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바울의 선교활동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만을 위하여 사역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 복음을 거절할 때 비로소 이방인에게로 나아갔던 것이다(행 18.6-7).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실상 많은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와 믿음을 갖게 되었다(비시디아 안디옥 - 행 13.43; 이고니온 - 행 14.1; 에베소 - 행 19.10, 17-18). 따라서 바울의 전도는 유대인을 일방적으로 배척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 가운데서 참 하나님의 백성을 솎아내는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선교활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을 거쳐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 복음을 증거했던 전도자들이 이 두 사람으로 한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가 기록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른 사도들 역시 나름대로 받은 바 사명을 위하여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을 것이다. 6)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누가가 초대교회의 역사 전체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7) 그렇다면 누가는 복음서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자료의 선택과 배열을 통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맥락에서 두 사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두 번째 책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컨대, 누가는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주로 활동한 베드로를 사도행전의 전반부에서 소개하고, 후반부에서 소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로마로 이어지는 선교활동을 편 바울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편만(遍滿)하게 증거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4. 누가신학의 제일 주제로서의 복음전도

누가-행전의 저자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즉 그 저자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누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자들은 누가-행전의 통일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행전의 기록목적을 논의할 때 우리는 두 권의 책 모두를 포함하는 대표적 주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학자들은 누가-행전의 기록목적과 관련하여 매우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전도, 바울에 대한 변증, 로마정부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 바울에 대한 비난에 대한 변호, 종말론 연기, 영지주의에 대한 논박, 복음의 확증. 8) 이러한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서 학자들은 이런 저런 근거와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보기에 적절한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한다. 그러면서도 각 이론들의 유용성 및 가치를 전혀 배제하지 않는 이중(二重)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논의의 와중(渦中)에서 나는, 각 이론의 유용성들을 주의 깊게 검토한 결과, 이들 이론들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조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전제가 완전히 다른 경우는 제외될 것이지만, 예를 들면 누가공동체의 구성원이 그리스도인이냐 비그리스도인이냐,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하는 다른 전제를 갖고 출발한 이론들은 협조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9)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의 기본적인 견해는, 누가가 대상으로 삼았던 독자들은 데오빌로와 같은 이방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데오빌로는 누가-행전의 대표적 독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기본적 전제와 다른 이론들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 이론들은, 나는 생각하기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10) 이런 맥락에서 나는 누가행전의 핵심적인 제일 주제가 부르스(F. F. Bruce), 오닐(J. C. O'Neill), 그리고 반 우닉(W. C. van Unnik)이 주장하는 대로, 선교, 즉 복음전도라고 생각한다. 11) 즉, 이 복음전도가 누가신학의 제일 주제이고, 기타 위에서 언급된 다른 목적들은 소주제로서 기능하면서, 주된 주제이자 목적인 ‘복음전도’를 돕는 수단적 역할 및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결국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한 누가의 선교신학은 기타 다른 소주제들을 총괄하면서 누가-행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함께 우리가 누가행전의 목적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글의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누가신학의 다양한 특징과 복음전도적 목적과의 상호 연관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보편주의,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 여자들의 향상된 위치, 기도 및 성령에 대한 강조, 구제에 대한 명령 등의 누가신학의 다양한 특징들은 그 자체가 대표적 주제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 주제인 복음전도적 목적을 위한 소주제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가의 선교신학」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누가-행전의 통일성의 근거에서 말할 때, 우리는 복음전도적 목적을 하나의 종합적인 주제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전도적 목적은 누가-행전이 이방인에 대한 전도용 책자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이자 청중인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전도를 격려하는 차원을 가리킨다.

 

주(注)

1) D. A. Miesner, "The Missionary Journey Narrative Pattern and Implication", Perspectives on Luke-Acts (ed. by C. H. Talbert: Edinburgh; T & T Clark, 1978), 199.  
2) Cf. Donald J. Selby,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New York: MacMillan, 1971), 160.
3) Tuckett, Luke, 51-2.
4) 이에 대한 좋은 실례를 우리는 사도행전 15장 1절에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처럼 전통적으로 전혀 다른 문화권 속에 살아온 이방인에게 유대인의 전통적 문화적 관습인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유대인처럼 살라는 말이 되는데(참고 갈 2.14), 이는 사실상 실천하기에 매우 힘겨운 요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요구는 결국 이방인들을 수용하기보다는 배척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로 악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5) 실례로 갈라디아서에 소개되고 있는 안디옥 교회를 보면(갈 2.11-14), 베드로는 그곳에서 이방인과 함께 습관적으로 식사하고 있었다(이는 2장 12절의 συησθιε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밖에서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함께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복음전도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짓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였던 것이다(cf. J. Ziesler,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Epworth Commentaries: London; Epworth, 1992], 14).
6) 실례로 갈라디아서에 소개되고 있는 안디옥 교회를 보면(갈 2.11-14), 베드로는 그곳에서 이방인과 함께 습관적으로 식사하고 있었다(이는 2장 12절의 συησθιε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밖에서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함께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복음전도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짓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였던 것이다(cf. J. Ziesler,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Epworth Commentaries: London; Epworth, 1992], 14).
7) 화이트, 󰡔누가신학연구󰡕, 11-12.
8) R. Maddox, The Purpose of Luke-Acts (Edinburgh: T & T Clark, 1985), 19-23; J. Jervell, The Theology of the Acts of the Apostl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1.
9) 예를 들면, 누가공동체의 구성원을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는 저벨(Jervell)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특히 사도행전의 유대성(the Jewishness of Acts)을 강조하면서,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공격에 반박하면서 바울이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임을 제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Jervell, The Theology, 11-17). 그러나 사실 그의 논리는 누가-행전 전부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을 제외한 채 거의 사도행전만을 근거로 한 것이기에 적절한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cf. Maddox, Purpose, 21.
10) Kyoung-Jin Kim, Stewardship and Almsgiving in Luke's Theology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8), 36-44. [한역: 󰡔누가신학의 제자도와 청지기도󰡕 (솔로몬 출판사, 1997),   
11) F. F. Bruce, The Book of the Acts (NLCNT; London: Marshall, Morgan & Scott, 1972), 17-24.; J. C. O'Neill, The Theology of Acts in its Historical Setting (London: SPCK, 1970), 172-185; W. C. van Unnik, "The Book of Acts, the Confirmation of the Gospel", Nov.T 4 (1960), 26-59; Cf. 박응천, 󰡔세계를 향한 복음󰡕 (한국성서학연구소, 199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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