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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을 위한 유언적 기도(1)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
2022년 04월 15일 (금) 10:58:07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6): 성전 건축을 위한 유언적 기도(대상 29:10-19)

1) 다윗의 기도가 역대상에 수록된 의미는 무엇일까?

본문(대상 29:10-19)은 다윗의 생애 마지막 기도의 기록이다.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 기도가 왜 역대기에 기록되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구약에서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는 이스라엘 왕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조망한다. 열왕기상·하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역사를 동시에 다루는 반면, 역대상·하는 남 유다의 역사만 다룬다. 역대상·하는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 과거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의 영광을 회고하며 기록한 일종의 역사서다. 주목할 것은, 이 책들의 배열에 있어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구약 맛소라 사본(히브리어 원전)은 왕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열왕기상·하를 사무엘상·하 다음에 배치하고, 유다 왕조실록이라고 할 수 있는 역대상·하는 구약 맨 마지막에 배치한다.

이와 같이 역대상·하가 구약 종결부에 위치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 두 책의 전체 구조를 일견해 볼 필요가 있다. 역대상 처음 부분(1-9장)은 아담부터 에서까지의 족보와 족장들의 족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보를 소개한다. 역대상 나머지 부분(10-29장)은 다윗의 통일 왕국 확립과 통치(언약궤 귀환과 성전 건축 준비에 초점)에 대해 언급한다. 다음으로 역대하 처음 부분(1-9장)은 솔로몬의 통치(성전 건축에 초점)와 여타 행적들을 언급하고, 나머지 부분(10-36장)은 솔로몬 사후(死後)에 일어난 왕국의 분열 및 유다 왕들의 역사를 수록한다.

나는, 역대기(역대상·하) 기자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특정 인물들의 족보를 간추리며 마지막에 보도의 초점을 다윗과 솔로몬에게 맞추고 솔로몬 시대 이후의 유다 왕조실록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어떤 역사를 거쳐 왔고 창조주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주고자 의도했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점에서 나는 역대기 기자가 탁월한 거시적 안목으로 인류 역사의 첫 지점부터 마지막 지점까지 역사 전체를 통찰하고 있다고 본다.

   
▲ 예루살렘 

놀랍게도 신약의 처음 책 마태복음은 역대기의 족보 목록에 메아리를 보낸다. 나는 마태복음 처음 부분(마 1:1-16)이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예수께 이르기까지의 족보 언급을 하는 것과 누가복음이 예수의 족보를 기술할 때, 연어가 자신이 방류된 고향을 찾아 회귀하듯이, 상향식으로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 후에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 3:38)라고 기록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마태복음 족보 서설이 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안에 기록된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진술하고자 한다면, 누가복음의 족보 언급은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술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역대기 기자가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를 단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잘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를 갖추어 준 것에 대한 자화자찬적 독백으로 보지 않고 보다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기도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기도를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영적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영원부터 영원까지”(대상 29:10)라고 하는 초시간적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인식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기 기자는 그 기도를 다윗이 나단의 신탁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자기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고 하는 확신 가운데 드리는 기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다윗이 메시야의 출현에 대해 얼마만큼 통찰력 있는 예지력과 선견력을 갖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다윗이 나단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이 단지 육신적 왕통의 지속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라고 본다. 구약 선지자들의 통찰과 안목을 공유한 사람들은 멀리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날을 바라보고 환영하면서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았던 사실(히 11:13)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다윗의 기도의 배경

다윗의 기도는 그가 성전 건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40년 동안 통치하였다(삼하 5:4-5; 대상 29:27). 그는 자신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에 행방이 묘연했던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들여와 한 장소에 안치하였으며, 이후 그는 백향목 궁전을 짓고 그곳에 거처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호화 궁전에 거처하고 있는 데 반해 하나님의 궤가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 너무도 죄송하여 법궤를 들여놓을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였다(삼하 7:2). 하지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도리어 다윗을 위해 집(신약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영원한 왕조)을 짓고 그의 몸에서 날 씨(곧 솔로몬. 대상 22:10-11)가 당신의 이름을 위해 집(성전 곧 신약 “교회”의 예표)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삼하 7:11-13). 이 말씀은 다윗에게 놀라운 복을 주실 것에 대한 의미심장한 언약이며 동시에 그의 성전 건축 의사에 대한 완곡한 거부의 표시였다.

하나님은 왜 다윗이 성전 건축을 하려는 것을 막으셨을까? 열왕기상 5장이나 역대상 22, 28장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다윗은 여전히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삼하 8:1-14; 10:1-19; 12:26-3). 전쟁 수행과 함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 분명하였다(참조. 왕상 5:3). 더구나 원수들이 건축 중인 성전을 파괴한다거나, 성전 건축을 위해 모은 다량의 은금과 그 외 귀중한 물자들을 탈취해 간다면 이만저만 낭패가 아닐 것이었다.

둘째, 다윗은 적국들과의 전쟁에서 심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다(대상 22:8; 28:3). 전쟁에 임하여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리는 것과 성전을 건축하는 것 사이에는 몇 가지 결합하기 힘든 정서적 부조화가 발생한다. (i)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그의 생명을 강제로 종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레 17:11, 14). 이것은 전투행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전 제사에서 행하는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한 속죄(레 17:11) 개념과 심각한 부조화를 이룬다. (ii) 다윗이 수행한 수많은 전쟁과 피흘림은 평화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들과 벌였던 치열한 전쟁은 그의 아들 솔로몬 시대에 누리게 될 평화와 대조된다(대상 22:9). 하나님은 용맹한 전쟁 영웅 다윗보다는 온순한 평화의 사람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상징하는 성전을 살기등등한 전사(戰士)가 건축한다는 것은 매우 부조화스런 일이었다. (iii) 다윗이 수행한 수많은 전쟁과 피흘림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대상 28:3). 다윗은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이는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왕으로서 그의 의무였고 칭송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든 전쟁 영웅이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은 적병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전쟁의 신(神)을 상징하는 처소로 인식될 위험성이 있었다. 이는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전쟁과 불화를 멈추고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될 것이었다. 나는 이상과 같은 이유들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 건축 뜻을 용인하지 않으셨으리라고 본다.

그럼 다윗은 성전 건축의 열망을 완전히 포기하였나? 그는 성전 건축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고 더 이상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나? 아니다. 그는 자신이 비록 성전 건축을 할 수 없을지라도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 필생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 당대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할지라도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왕조의 표상으로서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확신하였다. 다윗은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솔로몬 성전 건축 준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대상 22:5). 그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주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성전 건축을 위해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건축주인 것처럼 석수들을 모아 돌들을 다듬게 하고, 철, 놋, 백향목, 금, 은을 대량으로 준비하였다(대상 22:2-5).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불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을 유언처럼 당부하였다(대상 22:6; 28:10). 다윗은 솔로몬에게 자기가 본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가졌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실토하였다(대상 22:7-8; 28:2-3). 다윗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자기가 전쟁 중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의 성전 건축 의지를 막으셨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이뿐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한 아들을 택하여 “여호와의 나라 왕 위(位)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그로 당신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며, 그의 나라를 견고히 세워 영원하게 하실 것을 언약하신 사실도 들려주었다(대상 22:10; 28:5-7). 나는 이 언약의 중요한 함의는 솔로몬을 오실 메시야의 표상으로, 솔로몬 왕조를 하나님 나라의 표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다윗이 당시로는 모든 것이 희미할 뿐이지만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성취될 하나님 나라를 멀리서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역사의 한 구간을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상과 같이 다윗은 솔로몬에게 자기의 성전 건축 계획에 얽힌 비화를 털어놓은 후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도 솔로몬을 도와 성전 건축에 온 힘을 쏟으라고 당부한다: “18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주민을 내 손에 넘기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대상 22:18-19). 이 당부는 세 가지 요점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평화를 주셨다, 둘째,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셋째,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언약궤와 기물들을 들여놓아라.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안팎의 설계도를 건네주면서 그것은 자기가 영감을 받은 대로 그린 것이며 하나님의 손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대상 28:11-12, 19). 이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그 일에 푹 빠져 있었는지를 암시한다. 또한 다윗은 솔로몬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성전 건축 일을 추진할 것을 주문하면서 모든 공사를 마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축복하였다(대상 28:20).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은 온 회중을 향해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대상 28:1)이라고 엄숙히 말하면서, 자기가 이미 성전 건축을 위해 전심으로 준비하였노라고 하였다. 다윗은 회중을 향한 연설(대상 29:1-9)에서 자기가 금, 은, 놋, 철, 목재, 각종 보석을 매우 많이 준비해 두었다고 말하면서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기 사유의 금, 은을 즐거이 바쳤노라고 고백하였다(대상 29:3). 다윗은 당당하게 말한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5). 자신이 아낌없이 바쳤다는 고백이다. 과연 오늘날 누가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 금은보화를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하나님 나라의 표상)를 세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형무형의 소중한 것들을 자원하는 심령으로 즐거이 드릴 것인가?

이스라엘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관리들은 다윗의 호소에 감격하여 솔로몬이 추진할 성전 건축을 위해 자기들의 금, 은, 놋, 철, 보석을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바쳤다(대상 29:6-8). 이를 지켜본 다윗은 심히 기뻐하였다(대상 29:9). 본문(대상 29:10-19)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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