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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내한 선교사, 셀리나데이비스
사진으로 보는 교회사
2022년 03월 23일 (수) 11:13:41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 최은수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미 남장로교 파송 최초의 내한 선교사,
셀리나 리니 데이비스(1862-1903)

 

   
▲ 셀리나 리니 데이비스 

 

   
▲ 셀리나 리니 데이비스 선교사는 미 남장로교회가 1892년 한국 선교를 결정하고 파송했던 7인의 개척선교사들 중 일인이었다. 그녀는 7인중에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던 선교사로 기억되고 있다. 이 때가 1892년 10월 17일이었다.

 

 

   
▲ 셀리나 리니 데이비스 선교사가 태어나고 자란 버지니아주 아빙돈 지역의 전형적인 모습. 데이비스 선교사는 13명의 자녀 중 12째로 태어났으며, 자매들 가운데서 막내딸로 자라며 내리사랑을 듬뿍 받았다

 

 

   
▲ 데이비스 선교사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장로교인들로서 경건에 충실하였다. 아빙돈과 그 주변에서 최초로 세워졌던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가 데이비스 선교사의 모교회였다. 교회 묘지가 있는 곳이 원래의 교회 터였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시무 장로로 섬기며 헌신하였다

 

 

   
▲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는 초창기에 통나무로 교회당을 건축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민자들이 밀려들면서 교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교회의 예배가 있을 때마다 교인들이 교회 주변으로 길게 줄지어 서서 참석하던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었다

 

 

   
▲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가 설립된 이후 교회와 성도들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공유하였다. 개척자들인 장로교인들은 미국 독립전쟁, 1812년 전쟁, 남북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요인으로 인하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들 중에는 주지사, 남부군 장성과 장교들, 그리고 무명의 애국자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망라하였다

 

 

   
▲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의 초대 목사였던 찰스 커밍스 목사가 살았던 목사관이 현재의 교회 묘지 자리로 옮겨졌다

 

 

   
▲ 1773년 경으로 추정되는 목사관이 교회 묘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이정표

 

 

   
▲ 19세기 들어 여성 교육 운동이 강하게 전개되면서 아빙돈 지역에도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교회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지역의 여학생들의 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이 학교는 대공황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막대한 빚더미에 올랐다. 이 학교는 폐교의 위기에서 브리스톨에 위치한 킹 대학교(King University)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르다 워싱턴 대학도 여성의 고등교육을 위해 아빙돈에 설립되어 수많은 여성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다. 이 대학도 재정난으로 폐교의 위기를 맞았으나, 아빙돈의  이웃 도시인 에모리에 위치한 에모리 앤  헨리 대학(Emory & Henry College)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르다 워싱턴 대학이 있던 캠퍼스는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교회 묘지가 있던 구교회를 떠나 현재의 자리로 확장하여 이전하였다

 

 

   
▲ 현재 교회의 내부 모습

 

 

   
▲ 현재 교회는 유구한 역사를 재조명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교회 로비에 전시된 역사자료에는 초대 목사를 역임했던 찰스 커밍스 목사에 대한 자료를 통해 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 신킹 스프링 장로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워싱턴 카운티 곳곳에 개척교회를 설립하였다. 모교회의 시무 장로로 수고하던 데이비스 선교사의 부친과 또 다른 장로 한 명이 스프링 크릭 장로교회에 파송되어 이 교회의 설립부터 당회가 조직되어 지역민들을 섬겼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이 신생교회에서 공립학교 교육과 주일학교 교육을 받았다

 

 

   
 데이비스 선교사가 공교육과 주일학교 교육을 받으며 친구들과 뛰어 놀았을 공간

 

 

   
▲ 지금은 성도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도 데이비스 선교사가 교육과 활동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 스프링 크릭 장로교회당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지금도 유유히 흐르며 푸른초장과  맑은 시냇가를 이루고 있다

 

 

   
▲ 데이비스 선교사의 부친인 아르키메데스 장로의 비석만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데이비스 가문의 공동묘지에는 아빙돈에 정착했던 조상들로부터 많은 수의 집안 사람들이 매장되어 있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는 누구의 비석인지도 모를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 데이비스 가문의 공동묘지는 주변이 소를 키우는 농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반인의 접근이 사실상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필자도 농장주가 도착하기 전에 펜스를 넘어서 묘지에 접근하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려고 했었다. 다행하게도 주인이 그  찰나에 도착하여 전기가 흐르는 펜스를 제거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깜짝놀랐다. 만일 필자가 막무가내로 그 전기가 흐르는 펜스를 넘어갔다면, 아마도 큰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환경에서 데이비스 가족묘지를 제대로 보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에 담긴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기 때문이다

 

 

   
▲ 데이비스 가족 묘지에 접근하는 필자를 보고 떼를 지어 도망갔던 소들이 눈치를 보며 필자를 따라오고 있다

 

 

   
▲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아빙돈의 역사적인 시내 중심가의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유유히 흐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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