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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의 여호와의증인 비판4: 예수님의 육체부활문제
1995년 10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부정한다. 먼저 그들이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부정하는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어떤 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넘어가고 설명이 필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비판하겠다.

첫째,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를 위한 희생물로서 단 한번 드려졌으므로 다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한때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설명하신 일이 있습니다(요 6:51).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자기의 육체를 인류를 위한 희생물로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 희생물은 얼마 동안이나 유효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번 드려짐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자들이 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히 10:10, 새번역).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육체를 바치셨으므로 결코 다시 그것을 취하실 수 없으며, 다시 한번 사람이 되실 수 없습니다."(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1987. 워치타워. p.143)

이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한번 우리를 위하여 몸을 드렸으니 다시 또 인간의 몸으로 부활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둘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육체를 입으신 것은 과거의 천사들이 했던 바와 같이 육체를 입으셨다는 것이다. 직접 인용해 보자.

"그러면 사도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 구멍에 손을 넣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형틀에서 못박히신 몸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으셨음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과거에 천사들이 했던 바와 같이 육체를 입어 물질화하신 것입니다. '도마'에게 자기가 누구인가를 확신시키기 위하여 그 분은 상처난 구멍이 있는 몸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창 18:8, 히 13:2, Ibid, p.144)."

셋째,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본 그대로 오시라고 한 것은 '같은 방법으로' 온다는 말로써 세상 사람들은 모르게, 조용히 떠나셨듯이, 세상은 알지 못하게 온다는 말이라고 한다.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 분은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그곳에 있던 두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같은 방법으로, 신세 오시리라'고 사도들에게 말하지 않았는가?(행 1:11)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몸이 아니라 '본 그대로' 즉 '같은 방법으로'라고 말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러면 예수께서 떠나신 방법은 어떠하였습니까? 일반 사람들은 모르게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사도들만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은 알지 못했습니다."(Ibid, p.145).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말은 육체를 입은 예수께서 구름타고 가신 것처럼 육체를 입고 오시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은 모르게 조용히 떠나셨듯이 그렇게 조용히 오실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경을 얼마나 억지로 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 1장10-11절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 옷 입은 두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되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말에 의하면 첫째는 "갈릴리 사람들아"라는 말을 해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거기 있었다면 "갈릴리 사람들아"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는 성경에 보면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들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제자라고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태복음 8장 21절에 보면 "제자 증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제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결코 아니다. 이는 누가복음 9장 59절에 보면 제자가 아니요, 단지 잠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사복음서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15절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120명이였는데 승천을 본 사람들이였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천사가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말을 하고 이어서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한 것을 보면 너희가 하늘로 가시는 예수를 본 그대로 오신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은 것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해석은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림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다른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증인의 말처럼 아무도 모르게 몇 사람이 알게 오신다는 말이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9-17).

본문에는 재림문제에 대하여 나타날 이단문제까지 경계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게 올라가셨듯이 눈에 볼 수 없는 영체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도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방법에 대한 성서의 설명을 고려해 보십시오.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1:9).'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였을 때 그 분은 구름에 가려 사도들의 육안에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떠나시는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그 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그분은 영체로 승천하신 것입니다."(Ibid. pp.145-146)

다섯째, 이를 위해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성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그리고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몸이 일정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로 보았고(요 20:11-16),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도 그를 알지 못했고(눅 24:13-35), 디베랴 바다에서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몰랐을 것(요 21:4-14)이라 하며, 단지 도마에게 보이신 것은 그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옛날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한다(요 20:24-29).

여호와의 증인들이 위의 다섯 가지의 내용으로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그토록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혼 불멸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혼이란 곧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죽음은 생명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 없어진 예수님께서 다시 그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교리에 큰 모순을 주는 것이다. 위의 말들을 읽어 볼 때 얼마나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증해 보자. 위의 모든 해석을 뒤엎을 몇 개의 성구가 있다.

요한복음 2:18-22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말씀을 믿었더라".

여호와의 증인의 말에 의하면 예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육체 부활을 하시지 않았고 영의 부활을 하셨다면 왜 예수님께서 "이는 성전된 자기 영을 가리켜 한 말이니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어차피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달은 것은 부활하신 후가 아닌가? 더욱이 육체 부활이 아닌 영의 부활이라 한다면 예수께서 구태여 그것을 숨길 이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다음의 성구는 그 점을 더욱 선명하게 증명한다.

누가복음 24장 39절의 말씀이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이야말로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성구가 된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는 말은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영의 부활과 육체 부활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영의 부활이 아닌 육체 부활을 강조함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5절의 빈 무덤은 그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몸을 옮기신 것처럼(신 34:5-6) 예수님의 몸도 옮기신 것이 아니라(Ibid, p.144) 그 몸이 부활하신 것이다. 모세의 몸을 옮기고도 그것을 기록했는데, 예수님의 몸을 옮겼다는 그런 기록이 성경에 없지 않은가. 더욱이 9절 말씀에 "성경에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한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란 말을 볼때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간단히 그들이 말하는 위의 성구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변증해 보자. 그들의 말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육체를 입으신 것은 확신을 주기 위해 상처난 구멍이 있는 몸을 빌려 사용하셨다면 예수님은 사기꾼이 된다. 참을 거짓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영의 부활이 참인데 육체를 입고 육체 부활이 아닌 영의 부활을 증명하시어 반대로 육체 부활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를 남기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본 그대로"란 말이 "같은 방법으로" 그것도 조용히 가심 같이 조용히 오시겠다는 말이 될 수 있는가? 조용히 가셨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렇게 따지면 탄생하실 때는 승천하실 때보다 더 조용히 오셨지 않았는가? 오히려 승천시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지 않은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는 말을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즉 영체로 떠나셨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한다면 "구름이 가리워"라는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어차피 구름이 있든, 없든 영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았다(요 20:1)는 점도, 그 당시 아직 어둠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무시하는 말이요, 마리아의 큰 슬픔 중에 있었다는 점도,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후 영광과 승리의 빛으로 변했다는 점도 무시하는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에게도(눅 24:13-35)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또는 자연적인 방법으로(옷이 달라졌거나, 대화에 열중하거나, 서로 나란히 걷고 있었거나 하는) 자신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디베랴에서도(요 21:1-14) 예수님과 제자들이 무려 오십 간(약 90m)쯤 떨어져 있었다는 점(8절)을 무시한 해석이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이나 고리도전서 15장 45절의 내용을 잘 읽어보자. 베드로전서 3장 18절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로마서 8장 11절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의 아담은 산 영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이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말은 생명의 종류를 가르치는 것으로 첫 아담은 자연적인 생명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은 영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199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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