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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의 선교신학 2
김경진 교수의 성경 논단
2022년 02월 18일 (금) 13:08:10 김경진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경진 교수/ Ph.D, 신약학, 호주 알파크루시스 대학교 교수
 

   
▲ 김경진 교수

  
2. 복음서에 나타난 누가의 선교신학

1957년 독일 신학자 한스 콘첼만은 󰡔시간의 중간󰡕(die Mitte der Zeit)란 책을 출판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누가-행전을 편집비평의 학문적 도구를 이용하여 분석한 본격적인 누가신학 책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의 영문판은 아예 그 제목을 The Theology of St Luke이라고 명명하였다.1) 이 책에서 콘첼만의 주요 논지는 누가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종말(parousi,a)의 문제를 누가가 3단계의 구속사를 이용하여 역사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종말이 곧 임하지 않게 되자 누가 공동체 교인들은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따라서 그 공동체의 지도자 중 하나였을 누가는 이러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권의 책을 저술하게 되었는 바, 그 주장은 종말이 그들의 기대처럼 곧 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연기되었으므로 현재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종말이 아니라 오늘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것이었다(행 1.8). 이렇게 함으로써, 콘첼만은 누가를 단지 전승의 수집가가 아니라 독창적인 신학을 주창한 신학자로 크게 부각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누가를 신학자로 부각시키는 것은 좋았으나, 그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누가의 역사적 사실 묘사를 신학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누가의 역사 기술(記述) 자체에 회의적이도록 만들었다는 문제가 야기되었다.2) 결국 누가의 관심이 구속사 신학에 있으므로 수단화된 누가의 역사 기술의 역사성이 의문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콘첼만의 주장에 대항하여 누가의 역사 기술을 옹호한 신학자가 영국 아버딘 대학의 하워드 마샬(I. Howard Marshall)이다.3) 마샬은 역사가로서의 누가를 평가절하했던 콘첼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누가가 예수님과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역사화(歷史化)시킨 것이 아니라 그 독자들의 신앙을 확증하기 위해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의 역사기술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그를 역사가로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샬은 누가가 두 권의 책을 저술함에 있어서 본래 가졌던 의도는 역사적이지도 신학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복음전도적이었다고 주장한다.4) 따라서 누가를 역사가와 신학자라고 불러도 틀리지는 않지만, 보다 바람직한 칭호는 ‘복음전도자’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음전도자로서 누가가 전도 및 선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을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는 두 권의 저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로마제국의 한 귀퉁이인 팔레스타인의 시골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그 나라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거쳐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많은 장애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할만한 것은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스가랴의 예언이자 동시에 주님의 예언이기도 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27-28/마 26.31-32). 즉 누가복음에는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간다는 기록이 빠져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계속 진취적으로 앞으로, 즉 땅끝인 로마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누가의 누가-행전 기록 목적이 복음전도적, 즉 선교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누가-행전이 선교적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증거 중 하나가 누가복음에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보편주의(普遍主義)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쓴 누가의 여러 가지 신학적 특징 증 주목할만한 것은 보편주의이다. 물론 다른 복음서 기자들 또한 보편주의적 특징을 전혀 갖지 않은 것은 아니나, 누가는 다른 이들과 비교할 때 이를 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편주의(universalism)라 할 때 이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에 대조되는 말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한 없이 허락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보편주의는 자연히 그 성격상 전도 및 선교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누가는 그 누구보다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우리는 그에 대한 증거를 누가의 두 권의 저작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다. 누가의 보편주의적 특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만민과 이방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첫째로,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 선지자 시므온이 고대하던 메시야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 노래한 찬송시(詩) 가운데에서, 주의 구원이 만민 앞에(pa,ntwn tw/n law/n) 예비된 것으로, 그리고 이방(evqnw/n)을 비추는 빛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눅 2.31-32). 둘째로, 세례자 요한의 설교 가운데서 우리는 그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외치는 것을 듣는다(눅 3.6). 여기서 ‘모든 육체’(pa/sa sa.rx)는 만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로, 주께서 승천하실 때 주신 마지막 명령 중에서 우리는 회개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을 듣는다(눅 24.27). 여기서 모든 족속(ta. e;qnh)이란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로, 고향 나사렛에서 행한 주님의 취임설교 중 우리는 유대인 선지자 엘리야와 그 제자 엘리사만이 아니라 그 파트너로서 이방인(아람) 장군 나아만과 사렙다의 한 과부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본다.

다섯째로, 만찬의 비유에서 누가는 미리 초대받았으나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참석을 거절함으로써 주인에게 모욕(侮辱)을 안겨준 부자 손님들 대신에 불러올 손님들을 찾으러 ‘길과 산울 가로 나가라’고 주인이 말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눅 14.23). 이 비유 해석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먼저 초대된 이들은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이고 후에 초대된 이들은 이방인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주님의 잔치에 이방인들이 참여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눅 14.24). 여섯째로는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던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인데,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가려 하다가 저지를 당하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의 불을 내려 부락 전체를 멸하기를 주님께 간청하였는데, 주님은 이 형제들의 철없는 간청을 오히려 꾸짖으셨음을 보게 된다(눅 9.52-56). 이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긍정적 묘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로는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인데(눅 10.30-35), 여기서도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재물을 허비해 가면서 강도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 비참한 이웃을 도움으로써 착한 일을 행한 의로운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여덟째로는 열 명의 문둥병자 치유 사건인데(눅 17.11-19), 열 명의 문둥병자가 주님의 은혜로 고침 받았으나 돌아와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오직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역시 사마리아 사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적 관심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5) 이에 대한 두 가지 예를 들면, 첫째로 누가는 예수님의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만남 장면을 생략하고 있고(막 7.24-30), 둘째로는 백부장 하인의 질병을 치유하는 기사에서 마태복음과는 달리 백부장이 주님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의 하인이 나아와 주님을 만난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백부장과의 만남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눅 7.1-10; 마 8.5-13). 이 문제와 관련하여 터킷(C. M. Tuckett)은 예수님이 그 사역동안 많은 이방인들과 접촉한 사실이 없음을 알았던 누가가 역사적 사실 보존의 차원에서 이렇게 기록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6) 결과적으로,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누가복음에서는 사도행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방인 선교가 예시적 혹은 암시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7)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누가는 그 복음서에서 주님의 복음이 사마리아인을 포함하여 모든 이방인들, 즉 만민들에게 미칠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로써 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지역적 한계와 유대인 중심의 인종적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누가의 이러한 복음전도적, 즉 선교적 관심은 주님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8) 

 

주(註)

1) Hans Conzelmann, The Theology of St Luke (London: SCM, 1960, 1982).
2) Conzelmann, Theology, 167-9.
3) I. Howard Marshall, Luke: Historian and Theologian (Exeter: Paternoster, 1970). 한역본; 이한수역, <누가행전> (엠마오, 1993).
4) Marshall, Luke, 216-222: 'It was enough that he should compose this record as a means of evangelism'(221).
5) C. M. Tuckett, Luke (New Testament Guide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6), 52-3.
6) Tuckett, Luke, 53-4.
7) Tuckett, Luke, 54: "For Luke then the Gentile mission prefigured in the Gospe".
8)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옳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또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야 하리니, 이 일 때문에 나는 보내어졌다”. 여기에 사용된 δει는 신적 필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복음 전도의 일을 주님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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