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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1)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2년 01월 24일 (월) 13:57:02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지난 해에 연재했던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 시리즈를 통하여 르메니아에 대하여 소개한 바 있다. 필자는 아르메니아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이나 한국과 너무나도 유사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지난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의 글에서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아르메니아에서 여아가 태어나면 가장 많이 지어주는 이름이 애니(ANI)일 정도로 민족적 자긍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애니가 아르메니아 땅이 아닌 터키에 속해 있고 그 이름의 가치와 명성에 비하여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때부터 시간되는 대로 애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하였다.

   
▲ 현재 터키의 동쪽 지역인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전경. 아르메니아, 이란, 이라크, 쿠르드족 등과 얼키고설켜서 항상 긴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애니에 잠재된 교회 역사가 여전히 지하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애니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굉장히 느리거나 의도적으로 늦추거나 간과되거나 왜곡되거나 의도적으로 말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필귀정’을 사명으로 교회 역사란 ‘기억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연구해 온 필자로서는 애니를 심도깊게 다루어 보아야겠다는 동기부여와 함께 사명감이 불일 듯 솟구쳤다.

혹자는 한국과 연관된 교회 역사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리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상식적이고 극히 당연한 답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여 답하려 한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는 주님이 머리되시며 우리는 지체가 된다. 세계 어디든 교회와 관련된 국가와 민족이라면 결코 ‘남’이 될 수 없다. 영적으로 우리 피붙이의 이야기, 즉 나의 부모요 형제자매와 같이 우리와 직결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혈육이 제대로 빛도 못보고 그 생명력이 지하에서 음지에서 신음하고 있다면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서 성지 중의 성지인 애니(ANI) 주변에도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들이 존재했었음을 보여주는 잔재 

 

볼 만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의미를 찾아서

‘1001개의 교회들과 40개의 문들’로 장관을 연출했던 애니가 오랜세월 동안 방치되고 잊혀져서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분명히 볼 만한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필자가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역사 현장들을 방문해 본 경험으로 볼 때,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 담긴 의미가 더 가치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애니를 찾아가는 과정도 만만하지 않았다.

   
▲ 아르메니아의 거룩한 땅, 애니로 가는 길에서 영산이자 노아의 방주가 도달했던 아라랏산이 반겨준다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터키의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공항이 워낙 넓어서 한참을 도보로 이동하여, 애니의 관문인 카스(Kars) 공항으로 출발하는 국내선 항공기의 탑승구 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탑승구 배정이 안되고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다. 이윽고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탑승구 배정이 되고 비행기에 자리했다. 거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탑승객들로 기내가 가득찼다.

   
▲ 애니 마을 주민들이 애니의 잔재들인 돌들을 활용하여 담을 쌓거나 집을 건축하는 데 사용했던 흔적들이 여전하다 

그 때 기장의 안내방송이 터키어로 그리고 영어로 전해졌다. 기상악화로 해당 항공 운항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허탈하고 어이가 없던지 별의별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 갔다. 이대로 애니로 가는 여정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녕 애니가 나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것인가? 순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음날 출발하기로 일정을 변경하였고 동시에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자연재해와 같이 항공기 결항 요인이 운항사 책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급 호텔에서의 무료 1박과 함께 저녁식사, 다음날 아침식사, 그리고 셔틀버스까지 일체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번 항공권을 구입할 때 지출했던 경비의 몇 배나 더 많은 금액에 해당하였다. 주님께서 극적인 반전을 통하여 애니로 가는 여정에 서광을 비추어 주시며 축복을 베푸시는 것 같았다. 이 반전의 하루가 얼마나 꿀맛 같은 휴식이었는지 모른다.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갈등의 현장에서

   
▲ '1001개의 교회들과 40개의 성문들'로 이루어졌던 애니에서 라이언 게이트, 즉 사자의 문에 새겨진 아르메니아의 흔적  

우여곡절을 겪으며 카스(Kars) 공항에 도착한 직후에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는데 바로 언어 소통의 문제였다. 외국인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사람들조차도 영어로 대화가 쉽지 않았다. 세계 곳곳의 기독교 역사 현장을 다녀본 필자의 경험으로는 미국식 영어보다 영국식 영어가 더 효과적이고,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들을 만한 짧고 간략한 용어구사가 실용적이다. 이런 언어 문제는 어디를 가든 동일하였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아쉬운 필자가 그들의 핵심 언어를 습득하여 영어와 혼용하며 극복하였다. 아울러 세계 만국 공통의 언어인 얼굴 표정과 손짓 발짓으로 소통의 난관을 헤쳐나갔다. 정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사실인 거 같고, 분위기 파악만 잘 한다면 한 대 맞을 일도 없는 듯하다.

필자가 아르메니아와 연관된 지역들을 방문할 때마다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는 긴장들이 표출되곤 하였다. 특히 터키의 동부, 즉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의 끝자락인 국경지대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였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국가 없는 쿠르드족 등이 얼키설키 엮여져 있는 형국이다. 국가를 창설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쿠르드족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 천혜의 요새인 애니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애니는 터키 영토이고, 애니를 가장 사랑하는 아르메니아는 강 건너 성지를 슬프게 바라본다 

최근에는 터키의 쿠르드 노동자당(PKK) 전사들이 벌인 무력행동으로 구호단체의 직원 두 명이 납치되어 처형되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애니를 포함하고 있는 동부지역에 쿠르드족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터키 특수부대의 색출 작전도 빈번하게 목격된다. 중무장한 장갑차를 비롯하여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터키 군인들이 나타나 의심가는 차량들에 대하여 순식간에 검문을 한다. 필자는 생김새가 완전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검문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아르메니아 교회의 생명력을 찾아다닌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카스에서 애니로 이어진 도로는 언듯 보기에도 잘 포장된 듯 보인다. 하지만 막상 달려보면 한동안 보수를 하지 않았는지 도로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심지어 바스러진 아스팔트 조각들이 마치 총알처럼 달리는 차를 마구 갈겨댄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불어오는 칼바람도 큰소리를 내며 운전자를 놀래킨다. 그나마 운전자에게 위안이라면 저 멀리 보이는 영산(Spiritual Mountain)이자 노아의 방주가 다다랐던 아라랏산과 애니(ANI)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이다. 애니를 생각하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누가복음 19:40)

애니를 비롯하여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관련 유적들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는 그들의 깊은 상처와 애환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필자 또한 교회사가로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과 공감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더군다나 애니를 비롯한 기독교의 소중한 유산들이 이슬람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터키에 산재해 있으니 그 쓰라린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애니에 도착하니 저 멀리 국경 너머에 아르메니아 초소가 눈에 들어온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아라갓산(Aragats, 해발 4,090미터, 아라랏산이 아님)이 손에 잡힐 듯 장관을 연출한다. 이 산은 아라랏산과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이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전에 아라갓산에 올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내려다 본 예레반 전경과 특히 영산인 아라랏산의 위용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말씀처럼 지금도 애니는 돌들이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생명력을 우렁찬 함성으로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 옛날 중세시대인 1000년 전후를 풍미했던 애니는 가히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아니 모든 실크로드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었음을 직감한다. 애니를 말할 때 보통 ‘1001개의 교회들과 40개의 문들’로 구성된 곳으로 묘사된다. 참으로 천혜의 요새에 세워진 철옹성과 같다. 일단 애니를 둘러싼 성곽 내부를 기준으로 이렇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성곽 내부는 250,000평 정도로 여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하다. 이 안에 100,000명이 살았다니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셀 수 없는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이곳이 얼마나 번화했던 곳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발굴되는 주거지를 볼 때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니와 관련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을 언급하고 시작하고 싶다.

1) 애니를 정복한 이슬람 세력들이 기독교 색채를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너무 눈에 띄게 보여진다는 점이다. 정복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으나, 문화적 유산에 대한 관용과 포용력은 아쉬워 보인다.

2) 유엔 산하 기구나 국제적인 단체들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아 애니를 복구하고 보전시키는데, 애니의 진실인 기독교의 흔적들은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이슬람만 부각시키려는 모습이 지나쳐 보인다.

3) 애니를 찾는 방문자들 가운데 기독교인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것이 사실이나, 이슬람을 신봉하는 터키인들도 적지 않은데, 일단의 사람들이 비매너의 태도를 보이고 심지어 기독교를 모독하는 행위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4) 애니를 이슬람권의 전리품처럼 과시함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애니의 진정한 후계자인, 아르메니아에게 자존심의 손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애니는 아르메니아의 성지와 같기 때문이다.

5)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에게 과시라도 하듯 엄청나게 큰 터키 국기를 휘날림으로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민족적 자긍심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필자가 생생하게 목격하고 느낀 바로는 애니가 과거의 영광스러운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폐허가 된 애니의 곳곳에 널부러진 그 수 많은 돌들이 기독교의 생명력을 증거하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듯한 우렁찬 함성이 들린다. 교회의 생명력을 찾아 평생을 떠돌아다닌 필자의 귀에는 정말로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서 혹시 제거되지 않은 지뢰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구석진 곳까지 그 숨결과 돌들이 소리지르는 엄청난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며 정신없이 역사 현장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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