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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목사 사모 장경애 수필가와의 대담
은퇴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
2022년 01월 21일 (금) 11:09:47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장경애 사모 / 수필가, 빛과소금교회 원로목사 사모, 저서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 장경애 사모 

최은수 교수: 사모님의 가족 배경과 신앙적 삶의 여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장경애 사모: 친가로 보나 외가로 보나 저는 4대째이고 제 자녀는 5대가 됩니다. 제 친정아버지께서는 유아세례 교인으로 현재 96세이신데 장로로 은퇴하셨고, 지금 천국에 계시는 어머님은 권사로 봉사하셨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영수로 봉사하시다가 일찍 소천하시고, 할머니께서는 권사로 봉사하셨습니다. 외가 역시 독실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청년 시절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예배당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여 교회가 세워질 정도로 열정이 넘치셨는데, 그때 지어진 교회가 지금도 건재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안에는 목회자가 여럿 있습니다. 저의 친가에는 제 작은아버지, 외가에는 저희 교단의 총회장을 지내신 외할아버지, 그리고 제 이모부까지 목회자였습니다. 4남매의 맏인 저는 목사 아내가 되었고 동생 2명이 목회자입니다. 무남독녀 제 딸도, 사위도 목사입니다. 저는 남편 목사까지 합쳐 목사 3명에 둘러싸인 평신도입니다. 그 밖에 제 사촌 중에서도 목사가 3명이 있습니다.

제 가족은 부계로나 모계로나 직계 가족은 물론 4촌, 6촌까지 포함하여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집안의 분위기나 문화는 모두 기독교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아니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게을리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가는 것을 인생 제일의 낙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정예배를 주일만 빼고 날마다 드렸습니다. 중학교 때 여학생으로는 오직 저만이 설교대회에 두 번(2학년과 3학년 때)이나 나갔었고, 고등부 때에는 교회에서 열리는 성경 퀴즈 대회에서 1등을 모두 휩쓸어서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아이들 기가 죽으니 다음엔 나오지 말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입시 준비로 학생들이 주일 성수를 거의 할 수 없었는데 저는 그때도 개근할 정도로 주일 성수를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중고등부 교사를 시작으로 결혼할 때까지 교사와 성가대에서 봉사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고 반드시 믿어야 할 의무라고 친구들에게 힘주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이었던 제가 목사의 아내가 되고 나서는 도리어 신앙이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목사님이고 모든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니 목사님을 존경하던 내 마음에 혼란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회자 아내가 된 후로는 이전처럼 교회 봉사를 하지 않으니 봉사를 통한 믿음의 성장이 중단되었기에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었음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 부부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최은수 교수: 목회자의 사모로 살아오신 인생의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주시겠습니까?

장경애 사모: 저는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 싶어 한 적도, 목회자 아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같은 교회에서 신학생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기에 목회자 아내가 된 사람입니다. 소명감도 없이 목사의 아내가 되어 40년 간을 목사 아내로 살았습니다. 어쩌면 목사 아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목사 아내가 되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안의 어른 중에는 목사의 아내가 3분이나 있었지만, 목사 아내의 길이 힘들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사모님께서 목사 아내로서 힘든 일을 손녀에게 말씀하실 리 없고, 작은어머니 사모님 역시 고등학교 교사였기에 만나기 힘들었고, 할머니처럼 조카에게 목사 아내가 겪는 어려움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모 사모님은 이모부님께서 고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시다가 늦게 신학을 하시고 미국에서 목회하셨기에 더더욱 목사 아내의 삶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목사 아내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귀동냥으로 조금 들어 알 뿐이었습니다.

제 막내 여동생이 결혼 적령기에 목사 후보생들을 적지 않게 소개받았는데 목사 아내의 길이 힘듦을 알았는지 목사 후보생은 무조건 싫다고 해서 결국 평신도와 결혼하였는데 동생은 감각적으로 목사 아내의 길이 어려운 길임을 알았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목사 아내인 저보다 신앙생활을 더 잘하고 있으니 감사하기만 합니다.

저는 결혼 몇 년 후, 30살의 어린 나이로 담임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부교역자도 아닌 담임 목사 아내이기에 나이보다 훨씬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수고와 고통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목회자 아내가 되고는 학창 시절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지역적으로 멀기도 했지만, 그들을 만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대화의 공통분모도 없으니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목사 아내는 성도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깊이 사귀어도 안 되기에 평소에 시시콜콜 대화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속상해도 말할 곳이 없으니 혼자 삭히면서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목사 아내를 가리켜 ‘그림자, 로버트, 나무의 뿌리, 우렁각시’ 등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이지만 저는 이것 중의 하나가 아니고 모두 합쳐진 사람이 목사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37년을 목회자 아내로 살다 보니 때로는 사람이 아닌 마네킹, 로버트, 몸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조용히 인형처럼 있어야지 나대면 안 되고, 하고픈 말이 있어도 참아야만 하는 사람이 목사 아내였습니다. 목사 아내도 감정이 있고, 호불호도 있는 인간인데 심지어는 감정이나 희로애락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야만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목사 아내의 삶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방 어디에서나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항 속의 물고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서 누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항상 긴장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 목사가 잘나갈 때는 목사 아내의 존재는 없는 것 같다가도 목사가 힘들 때는 목사 아내가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모함까지도 다 뒤집어써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 장경애 사모의 수필집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저는 작년에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냈습니다. 이 제목에서 목회자 아내의 삶을 다 말해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보신 분 중에 다음에 또 책을 낸다면 <나는 남편이 있습니다>, 혹은 <지금도 역시 남편이 없습니다>로 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역시 <지금도 역시 남편이 없습니다>였습니다. 내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 다시 말해 육신이 아플 때도, 마음이 아플 때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남편 목사는 성도 심방과 설교 준비에 바빴습니다. 지나가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잠시 얼굴만 비치고는 바빠서 간다고 할 때는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아내가 힘들어하거나 신경을 예민하게 내색하면 ‘기도해라’, ‘감사해라’라는 말을 녹음기의 말처럼 되풀이할 뿐 그 마음을 함께 해 줄 눈곱만치의 배려도 없이 아내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목회자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도 건강하고, 그래야 전도도 되고,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들이 교회만 생각하는 것을 목회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목사님이 자기 가정에만 혼신을 기울이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가정 모두를 다 소중히 여기고 잘 돌봐야 합니다.

최은수 교수: 이단 사역자의 아내로서 겪어야 했던 뒷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실 수 있는지요?

장경애 사모: 어찌 보면 저는 이단 연구를 못 하게 했던 죄인(?)입니다. 처음부터 못 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이단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단 연구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단 연구 시작 처음부터 너무도 무시무시한 일을 겪었습니다. 훗날 그 사람이 찾아와 이실직고해서 안 진실은 이단 교주 박 모 씨가 자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전과자를 시켜 혼을 내주든지,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단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저는 남편의 이단 연구가 싫었고, 이 일을 하지 않기 바랬습니다. 물론 이단들의 공갈 협박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소심한 저는 부드럽고 온화한 남편을 바랐기에 남편 목사가 이단 비판을 하다 보면 삶 속에서도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이 될 것만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단의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남편은 그만둘 기세는커녕 오히려 역작용이 되어 더욱 열정적으로 이단 척결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이판사판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 빛과소금교회 부임 30주년 기념식에서 

결국 제가 지고 말았지만 무섭게 싸웠습니다. 제 동생 장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내 매형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냉정하게 기도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나의 결론은 “그래, 요즘처럼 편하게 예수 믿는 세상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일이 없는데 이단 척결에서 오는 고난은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러다가 목숨을 잃는다면 이 일은 순교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대형버스에 사람을 싣고 교회에 쳐들어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좁은 동네에 큰 대형버스가 수십 대가 들어오니 늘 다니던 일반버스도 멈추었고, 길은 완전히 차단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찰 몇 개 중대가 배치되어 마치 무슨 큰일이 난 듯 웅성거린 일이 몇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이단은 LED로 남편 목사를 비난하는 글과 사진을 예배 시간 전에 교회 앞에 설치하고 틀어 대기도 했습니다.

예배 도중에 강대상으로 뛰쳐 나와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하는 사람, 교회 앞에서 못된 욕설로 악을 쓰는 사람,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동네를 시끄럽게 하여 주민이 저의 교회를 나쁜 교회로 인식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예배당 안에 못 들어오게 하려고 우리 교인들은 구역장을 통해 교회 출입증을 나누어 주고 그 출입증을 가진 사람만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가슴이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법적 고소는 얼마나 많았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번 고소를 당하면 그것에 드는 시간은 물론, 변호사 비용, 정신적 고통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 아프고 통탄할 일은 이단과 부화뇌동하여 남편 목사를 괴롭히는 교계의 목사들입니다. 남편은 원래도 비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남편 뒷조사를 너무도 열심히 하여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침소봉대하여 대서특필하기에 남편은 늘 유리관 속에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남편 목사가 더 성실하고 조심하며 반듯하게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괴롭히다가 이제는 딸 목사 부부에게까지 화살을 대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또한 모르는 교계의 목사님이나 장로님을 만나서 대화할 때, 내가 누구의 아내인지 소개하면 남편에 관한 생각이 흑백으로 나누어짐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잘 모르는 목사님을 만나 남편 목사를 소개하려 하면 ‘이 분은 내 남편 목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됩니다. 이것 또한 괴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은수 교수: 수필가로서의 사역은 은퇴가 없는 줄 압니다. 앞으로 어떤 글들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실 예정인지요?

장경애 사모: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글 잘 쓰는 사람과 노래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못 쓰는 글이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쌓아 둔 못다 한 말을 글로 써 놓는 습관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참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분노 감정이 솟고 괴로우면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기도보다는 글을 쓰고, 기쁘면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 결과 졸작이지만 제 인생에 최초로 수필집을 출판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의 근본은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는 부모와 자녀가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다워야 자녀가 자녀다운 법이니까 모든 부분에 모범이 되는 부모와 그 본을 받아 자라는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100점짜리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자라온 과정과 또 제가 제 아이를 기르면서 느꼈던, 또는 몸소 경험했던 일들을 가지고 보다 바람직한 삶의 예를 제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솔직히 허구의 소설보다는 마음의 움직임을 쓰는 수필을 더 좋아했습니다. 제 마음이 가는 대로지만, 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누구에게나 유익한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미물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처럼 제 글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 교훈이 마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제 글로 예수님에 관해 관심을 끌게 하는 글이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삶이기에 저는 제 삶이 제 글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 최삼경 목사와 장경애 사모 

최은수 교수: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건강한 가족을 위해 여러모로 수고하고 계시는데, 위기에 처한 현대의 가족관계에 대하여 한 말씀 주실 수 있는지요?

장경애 사모: 가정 문제를 한 10여 년간 강의했지만, 가정 문제는 인간관계의 문제이기에 그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가정이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먼저 목회자 가정이 변해야 합니다. 목회자 가정이 변하면 성도들의 가정도 변합니다. 목사님 가정의 구성원이 행복할 때 교회도 행복해집니다. 교회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요즘 자녀를 조금씩 낳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부모의 우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엄격한 규율도 없고, 무조건 추켜세워주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오냐오냐하는 교육 속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안하무인으로 성장한다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생각 만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또한 부모가 부모답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문제 있는 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혼탁하고 질서가 없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부모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부모가 행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부모, 언행이 일치하는 부모, 일관성이 있는 부모, 솔직한 부모 즉 위선을 부리지 않는 부모,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부모, 윤리적으로 깨끗한 부모, 물질에 급급하지 않은 부모, 자녀와 대화가 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무슨 일이든 부모에게 숨기지 않고 다 말할 수 있다면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부모일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로부터 존경받는다면 그 부모는 부모로서 최고의 부모입니다.

최은수 교수: 신앙의 후배들에게 들려주실 고견은 무엇인지요?

장경애 사모: 신앙의 후배들에게 들려줄 의견보다 목사 아내들에게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 아내는 남편인 목사의 내조자로 그 일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 목사를 신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도 집안에서 아내에게는 남편일 뿐입니다. 가끔 보면 목사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가정에서도 ‘목사님’이라 칭하면서 목사님으로 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도 집안에서는 한 여인의 남편이고, 자녀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목사님도 남자입니다. 물론 요즘 여자 목사가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남자 목사가 많으므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을 성직자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목사 자신도 연약한 한 명의 남자임을 깨달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목사님이 남자라는 것, 목사 아내 역시 자기 남편 목사는 남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목사 아내는 사모님으로 살지 말고 한 남자의 여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단지 한 남자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로 한 남자의 내조자로 살 것을 저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의 후배들에는 이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성도가 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배당에 가서는 격식에 맞는 예배를 드리고 나머지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삶이 예배 화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전도해도 그 효과는 없습니다. 삶의 예배화를 실천한다면 기독교 위기의 시대는 사라질 것입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전도, 삶으로 보여주는 예수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최은수 교수: 우리나라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저와 장경애 사모님은 비록 짧은 시기이지만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나서 이런 귀중한 대담을 하게 되니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부군되시는 최삼경 목사님과 더불어 동고동락하시며 40년 목회사역과 40년 이단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하신 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담에서 나눠주신 소중한 고견들과 더불어 앞으로 써내려 갈 수필들을 통하여 수 많은 독자들과 청중들에게 귀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귀한 시간 할애해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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