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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 허성동 목사와의 대담
2022년 01월 10일 (월) 13:34:28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허성동 목사, 제일문창교회 담임

 

   
▲ 허성동 목사 

최은수 교수: 현재 한국교회사 서술에 있어 왜곡되고 간과되고 잊혀진 역사에 대한 정립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송상석 목사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질문들을 몇 가지 드리려고 합니다.

1952년 고신 교단이 출범한 후 예배당 명도 소송을 당했는데 송상석 목사님이 응소함으로 문창교회를 위시한 교단의 재산권이 지켜졌습니다. 송상석 목사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허성동 목사: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에 앞장서고 배교하였고 해방 후 교권을 쥐고 불손하게 행사한 신학 사상가들이 주축이 되어 예배당을 빼앗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일부는 무사 평온주의로 평화를 위해 예배당을 포기하고 나와야 한다는 건덕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송 목사님의 심정은 교회 재판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어요. 바알의 제사장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제단을 쌓은 엘리야의 제단을 쌓아야 하겠다(왕상18:25, 대하31:1)는 심정이었습니다.

명시 송달서를 보낸 그 시점이(1951.10 가을) 온 나라가 6.25 사변으로 풍전등화 같은 혼란기였고 문창교회 교육관은 마산시청 임시청사와 부상병 치료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명시 송달 내용을 살펴보면 “고신 측 단체는 총회 측으로부터 이탈되었다. 모든 교회 예배 주도권, 치리권, 전 재산 소유권은 총회 직속 경남노회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예배당 출입 금지 팻말까지 출입문에 붙여두니 온 교인이 놀라고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역사관 입구 

그 당시 일부 불순한 극소수가 총회파 경남노회 유지재단과 야합하여 6.25의 혼란기에 우리 교회 교인들 모르게 모든 부동산을 일차적으로 마산시청 비치 가옥대장에 소유 신고하였고 이차적으로 그것을 근거로 보존등기까지 하였습니다. 당시 문창교회뿐만 아니라 경남 법통노회(부산.경남)소속 다른 개체 교회 재산도 총회파 경남노회 유지재단에 편입될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송 목사님은 부산 경남일원의 모든 교회를 그 시절 교통수단이 불편한 가운데 기차, 버스, 도보로 오지의 교회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만든 문서는 2가지인데 「개체교회 결의서」와 「건물 소유 증명원이었습니다.

그 당시 작성하여 보존되어 있는 것이 우리 교회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740쪽 분량의 경남 법통노회 재산 관계철입니다. 이렇게 송 목사님은 제일문창교회 존립의 문제와 교회 재산을 13년간 재판 끝에 고법과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지키어 왔고 고신교단의 경남 법통노회 소속 교회 재산권도 온전히 지키게 된 것입니다.

흔히들 송 목사님은 소송을 고집하는 이로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측(총회파)이 먼저 법정 행사를 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대항력이었고, 또한 송 목사님은 법리적 대립에 앞서 화해 요청을 하였고, 심지어 1958.1.5. 마산일보(제3509호) 광고란에 “화해 제안서”를 간곡하게 게재했습니다. 그때가 대구고법에 분쟁이 시작될 즈음입니다.(법정소송과 종교재판 : 송상석 저) 광고내용을 보면 “더 이상 다툼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떠난 법에만 치우침이 됨으로 서로 화해하길 간곡히 제안하고 1958.1.20.까지 화답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1심 2년, 2심 8년, 3심 3년, 13년간의 지루한 재판 가운데 제일문창교회가 대구고법 대법원에서 모두 승소하게 되었습니다.

   
▲ 송삭석 목사 묘비 

그런데 총회 측 문창교회 100년사에는 송상석 목사는 자기들의 화해 요청을 거부하고 끝내는 대법원까지 송사하며 패소하여 총회측 문창교회 돈으로 고신 측 교회를 하나 건축하여 내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음은 참으로 황당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번 발간한 ‘송상석과 그의 시대’에 김성곤 장로님이 필자로 참여하여 ‘송상석과 제일문창교회 편’에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또한 이 내용은 이번에 발간된 이상규 교수가 집필한 제일문창교회 120년 사에도 조목조목 기록되었습니다. 송 목사님의 그 노고는 우리 교회와 고신교단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수 교수: 1970년대 교단 내부에서 송상석 목사님을 불신 법정에 소송하고 교단에서 면직까지 했다가 58차 총회에서 송 목사님 귀천 후에 해벌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허성동 목사: 교단 재산을 보존 유지하는 과정에서 송 목사님이 다년간 고려 신학교 이사장 재직 중 고소자(한상동 목사 측)와 고소하지 않은 반고소자(송상석 목사)로 대별 되었는데 교단 중대 문제와 교단 재산 문제가 있을 때마다 중간에 서서 남풍과 북풍을 다 맞으면서 행정 및 정치적 기지로 문제 해결에 헌신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불신 법정에 고소를 당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 시절 편견과 선입견의 포로가 된 사람들의 편 가르기식으로 과잉 충성하는 고소파 보필자들과 아부하는 실무자들이 만들어 내어 우리 교단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송 목사님을 비참하게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공동작품임을 역사는 평가하리라 봅니다.

송 목사님의 면직은 죄목이 4개 항으로 첫째 총회결의 불복, 둘째 위증, 셋째 사문서위조 넷째 공금유용인데 이 네 가지 문제 하나하나 심도 있게 분석해 보면 대항력이 있고 번복되는 내용입니다. 총회 특별 재판국이 제명을 결정하고 총회가 허락했다고 했으나 실제는 목사 제명이 아닌 면직을 한 것입니다. 총회 특별 재판국은 제24회 총회 공천부에서 목사와 장로 9인으로 구성하고 재판을 진행하는데 이때 송 목사님의 목사직은 재판국 9인 중 6:3으로 파면 또는 면직으로 종결하고 총회에 보고하여 확정했습니다(제25회 총회록 1975년 총회록 부록 66-74).

그런데 1975.2.25.일자 교회 연합신문 광고란에는 불순한 세력들이 송상석 목사 제명으로 표기되어 광고에 게재되게 했습니다. 잠시 면직된 부분을 그것도 활자화해서 광고까지 낸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횡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도와 동기가 매우 불순한 세력들입니다.

   
▲ 송삭석 목사 비석 

가장 주목할 불법은 그 당시 총회 재판국 재판 자체가 불법이었습니다. 장로교회 헌법에서는 “목사는 노회가 1차적으로 치리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송 목사님에 대해서 노회를 거치지 않고 총회가 즉결한 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당시 헌법권징조례 제4장 19조에 보면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 직할에 속하고...”와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치리하라는 사건은 하회가 순종하지 아니하거나 부주의로 해결하지 아니하면 상회가 직접 치리권 있다”고 명시되어 상회가 직접 치리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러한 적법한 법 절차를 전혀 밟지 않은 당시의 총회는 원천적으로 헌법 권징 조례를 위반한 불법 행위를 자행함이 명백하였습니다. 58회 총회에서 송 목사님 귀천 후 세월이 흘러 해벌함은 다행이면서도 우리 교단의 수치를 다시 한번 깨우쳐주고 송 목사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은수 교수: 고신 교단의 역사기술이 한상동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기술이었고, 송 목사님의 사명 감당과 교단에 대한 공헌은 전혀 기술하지 않았거나 간과하였습니다. 제일문창교회는 이에 대해 어떤 대응을 했는지요?

허성동 목사: 제일문창교회 역대 담임목사로써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부끄럽습니다. 고신 교단 형성에 있어서는 한상동 목사는 신앙적으로 송상석 목사는 행정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은

하면서도 한 분은 절대자로 한 분은 형편없는 죄인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도 환란과 풍파 가운데 송상석 목사님을 잠깐 잊은 세월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힘이 없는 무대응의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역사관, 역사자료관, 주기철 목사 기념관 3관을 개관하면서 송 목사님에 대한 충분한 반증 자료를 통해 언제까지 계속 한상동 목사 일색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송 목사님에 대한 일부 극소수가 말 없는 다수에 대해 고인과 유족 25년간 시무한 제일문창교회 교인들을 무시하고 이렇게 매도할 수 있을까?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송상석과 그의 시대’ 발간은 이상규 교수님과 신재철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필진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120년 동안 한 번도 역사책을 발간하지 못하다 이상규 교수님이 주필이 되어 이번에 발간하게 되어 우리 교회의 역사와 함께 송 목사님에 대해 재조명되고 바른 정립으로 나아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상규 박사님 신재철 박사님을 비롯한 많은 역사학자가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계속 도와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송 목사님이 남긴 역사와 신앙 유산들을 잘 계승하여 균형 잡힌 고신교단의 역사 기술을 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남아주길 온 교인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주기철 목사 기념관 전경 

최은수 교수: 신재철 박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송사 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 책 내용을 상당부분”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상기 논문이 송 목사님을 고신 역사에서 회생시키고 회복시킨 공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허성동 목사: 1916년에 조직된 경남노회의 법적전통을 이어온 경남(법통)노회는 노도강풍 가운데도 송상석 목사라는 거목이 버티어 한국 장로교 신앙의 바른 전통과 순결을 지키어 왔습니다만 모든 역사가 왜곡된 가운데 신 목사님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송사 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란 논문은 그 시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분야에 접근하여 논술한 점은 고신 교단의 한상동 목사를 주축으로 하는 많은 허황된 신학 사상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개혁주의 신학의 든든한 토대와 고신 역사를 회생시키고 회복시킨 크나큰 공헌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수 교수: 지난 7월 6일 송상석 목사님 회고기인 ‘송상석과 그의 시대’와 류윤옥 목사님의 자서전인 ‘빛 되신 주 내길을 비추시다’라는 책을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이때 이상규 교수님이 송 목사님을 연구하여 균형 잡힌 역사를 정립하고자 함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신재철 박사님도 모진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에 대해 문창교회와 허 목사님의 입장과 대안은 무엇인지요?

허성동 목사: 2021년 6월 10일에 발간된 ‘송상석과 그의 시대’를 보면 이상규 교수님께서 고신 교단의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재철 박사님께서 한상동 목사님 측의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참으로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야 함에도 우리 교회의 원로 목사님이신 송상석 목사님에 대한 그러한 일들에 대해 그동안 너무도 등한시해 왔음을 시인합니다. 차제에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대응하고자 합니다.

   
▲ 역대 담임목사 사진들 

최은수 교수: 고신 역사에서 삼일교회와 마산 제일문창교회는 상징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일문창교회 담임목사로써 고신 역사와 한국교회 역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거나 하실 것인지요?.

허성동 목사: 흔히들 우리 교회와 삼일교회를 외부에서 고신의 모체 교회라고들 합니다. 우리 교회의 역대 담임 목사님들의 면면을 보면 초대 아담슨 선교사를 필두로 하여 한석진, 함태영, 주기철, 이인제, 한상동, 송상석, 이금도 목사와 같은 한국교회의 기라성과 같은 목회자가 시무한 교회였고 120년을 달려오면서 환란과 풍파 가운데서 다시금 하나님은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제 120주년을 원년으로 해서 교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정립하면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 원리를 축으로 하여 구령과 양육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리고 특별히 세계 선교에 주력하면서 묵묵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최은수 교수: 고신 교단과 한국교회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씀은요?

허성동 목사: 고신 교단은 그동안 한국교회 역사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나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포용과 배려가 부족해서 총회의 분열과 대립, 아픔의 역사를 보였습니다. 다시는 불의한 정치 싸움으로 송상석 목사님이 당하신 일과 같은 불행한 사건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겠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역사관을 가진 일부 극소수와 언론은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공정하고 진실한 판단을 해서 바른 역사, 진실 된 역사를 세워서 후대에 본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은인자중하며 말씀대로 사는 많은 기독교인 가운데도 불법과 비진리, 불신앙적인 교권주의가 화신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한 자들이 득세하는 이 시대 한국 기독교와 고신교단 총회, 교회들의 지도자들을 보면서 저 자신부터 회개하는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 한국 기독교의 쇄신 운동이 있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끝으로 순수한 신앙 정신을 후대에 넘겨주고 역사를 사실대로 알려지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고신 역사가 앞으로는 약자나 강자에게로 진실하게 서술되고 평가를 공정하게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이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사 서술에 있어 굉장히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목사님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이 자체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서 다양한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는 줄 압니다. 아무쪼록 이런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인위적으로 왜곡되고 간과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대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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