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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남장로교 파송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실존적 이해 2
최은수 교수 논고
2022년 01월 03일 (월) 13:33:18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정신적 육체적 질병과 죽음에 대한 미 남장로교 초기 선교사들의 태도

미 남장로교 파송 초기 선교사들이 세계 선교의 위대한 시대라고 하는 19세기 말부터 한국으로 파송되었기 때문에 당대의 선교지향적 신앙 운동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신앙 사조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선교사로 자원하였을지라도, 미 남장로교 초기 선교사들은 분명히 다른 실존적 삶의 자리를 견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미 장로교 내의 근본적으로 다른 전통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 장로교는 제네바의 개혁가인 존 칼빈으로부터 기원한 것은 맞지만, 이 또한 칼빈 혼자 이룩한 성과는 아니고 취리히의 개혁가인 울리히 쯔윙글리와 스트라스부르그의 개혁가인 마틴 부쳐 등의 영향이 칼빈을 통해 집대성되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장로교의 원리와 제도를 실행하였지만, 제네바가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거국적인 장로교 정치제도의 조직과 실행이 성취되지는 않았다. 프랑스가 가장 유력하였으나 성 바돌로뮤 대학살을 계기로 위그노들이 크게 위축됨으로 실패하였다. 어쨌든 유럽 대륙에서는 각 나라별로 소규모일찌라도 개혁파 전통으로 뿌리를 내렸다. 잉글랜드의 청교도 하면 90퍼센트 이상이 장로교일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고 세계 장로교회의 표준문서를 탄생시킨 웨스트민스터 회의를 개최하여 거국적인 장로교 정치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미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장로교 국가를 선포한 스코틀랜드와의 오랜 숙원으로 인하여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식 장로교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실패하였다. 잉글랜드 청교도 내의 절대 다수인 장로교인들도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 즉 개혁파 전통을 견지하였지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충실하지 않은 경향이었다. 미국에서 장로교인들의 이런 차이는 뉴잉글랜드 신학에 영향을 받은 신학파, 즉 부흥 운동에 호의적이지만 표준문서에 소극적인 입장과 구학파, 즉 거의 대부분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계열의 장로교 전통을 고수하며 부흥 운동에 소극적이고 표준문서에 적극적인 경향으로 양분되었다.

   
 

19세기 미 장로교회를 분열시킨 신학파와 구학파의 대립은 미 남부 지역에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 남장로교회는 대체적으로 구학파의 경향이 우세하였으므로 아무리 신학파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보수적인 흐름은 거스릴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말은 그들이 웨스트민스터 표준 신앙 문서들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미 남장로교 파송 초기 선교사들도 이 틀에서 신앙과 삶을 영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하며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의지와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일치와 조화를 시키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결코 주권자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거나 불평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1903년 4월 24일 자 전위렴 선교사가 안력산 의사 선교사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런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위렴 선교사의 아들 조지가 어린 나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고 거실에서 조촐하게 치러진 천국환송 예배에서 부위렴 선교사가 ‘이 어린 생명이 안타깝게 죽은 것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글을 전위렴 선교사가 편지에 담았다. 이렇듯 그들은 큰 슬픔과 고통 속에서라도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

이러한 초기 선교사들의 삶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근거한 신앙의 태도에 근거하였다. 특히 종말론적 신앙을 통하여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내한한 미국 선교사들이 전천년주의, 세대주의, 아니면 이 둘을 엮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를 견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19세기 중후반에 유행하던 종말론적 입장들을 내한 선교사들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견해인 것 같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미 남장로교 초기 선교사들이 완전히 비껴 갔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들은 분명 여타의 선교사들과는 다른 종말론적 입장을 견지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미 남장로교는 구학파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지향하는 종말관에 충실하였다. 천년기론의 측면에서, 그들은 후천년주의를 표방하였다. 사실 후천년주의는 무천년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후천년주의는 상징적인 천년의 시기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견해다. 전천년주의나 세대주의처럼 극적이고 단기적인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후천년주의는 매일매일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종말론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견지에서 그들의 삶은 내세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삶이 영생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구원에 대한 감격으로 살아가며 그들은 실천적 삶을 통해 신행일치의 모범을 보였다. 그들은 가정을 천국이라고 생각하였고 장로교의 원리대로 가족교회와 공교회의 균형을 이루며 개인적, 신앙적, 사회적 책임 윤리의 실천에 충실하였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전천년주의나 세대주의가 극적이고 임박한 현상들에 집중하다가 염세적이고 사후 천국과 같은 내세지향적 삶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잘못으로 치닫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를 변혁시키려는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자세를 초지일관하게 유지하였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미 남장로교 파송 초기 선교사들의 실존적 삶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한 인간으로서 우여곡절의 여정을 체득한 그들의 실존적 삶의 자리를 살펴보면서 남북전쟁 이후 감성적 정서적 정신적 고통들로 축적된 남부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호남의 것들과 절묘하게 소통하면서 사역의 큰 열매들이 맺어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초기 선교사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한 유기적인 역사라고 이해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종말을 이해할 때 장로교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원리에 근거하여 후천년설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들은 오늘의 사역에 충실하면서 언제든 개인적 종말인 죽음이 온다 해도, 더 나아가 그들은 주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될 최후의 종말이 오더라도 변치 않는 열정으로 바로 지금 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호남인들은 초기의 선교사들을 대하면서 처음에는 외모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다른 그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응했고, 이런 단순한 호기심은 점차적으로 남북전쟁 이후 축적된 삶의 정황들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들의 진솔한 삶의 흔적들, 상처들, 연약함, 인간적 한계들이 호남인의 삶의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갖게 되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수용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Bloody Flux-Massachusetts’, Morbidity and Mortality Weekly Report, Vol. 25, July 2 1976, 4.

Michael R. Gilchrist, Disease & Infection in the American Civil War, The American Biology Teacher, Vol. 60, No. 4 (Apr., 1998), pp. 258- 262.

Joseph Miller Gettys, What Presbyterians Believe: An Interpretation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Clinton, 1984.

Jack P. Maddex, Proslavery Millennialism: Social Eschatology in Antebellum Southern Calvinism, American Quarterly, Spring, 1979, Vol. 31, No. 1 (Spring, 1979), pp. 46-62.

George Marsden, KINGDOM AND NATION: NEW SCHOOL PRESBYTERIAN MILLENNIALISM IN THE CIVIL WAR ERA, Journal of Presbyterian History, DECEMBER 1968, Vol. 46, No. 4 (DECEMBER 1968), pp. 254-273.

DIANE MILLER SOMMERVILLE, Aberration of Mind Book Subtitle: Suicide and Suffering in the Civil War–Era South,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8).

최은수, 미 남장로교 파송 매티 새뮤얼 테이트(Mattie Samuel Tate, 최마태) 선교사의 배경 연구, 교회와 신앙, 2021.

최은수, 미 남장로교 파송 메리 몬태규 레이번(Mary Montague Reyburn) 선교사에 관한 연구, 교회와 신앙, 2021.

최은수, ‘미국 남장로교회 파송 최초의 내한 선교사 셀리나 리니 풀커슨 데이비스(Selina Linnie Fulkerson Davies)의 가정배경에 관한 연구’, 부.경 교회사 연구, 제84호, 2020. 11.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https://kmhistory.com/writings/letters/ 
(한미경, 흩어져 있던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길, 기독교사상,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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