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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올 겨울에도 불어올까
대선 앞두고 각 후보 진영 촉각
2002년 11월 20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대통령 선거를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후보 단일화 움직임이 불붙는 등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결승점인 내달 19일의 대선날짜를 향한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지만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각 후보측들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번 대선에는 특히 북한관련 이슈들이 대선후보들의 노선이나 정책과 관련해 최대 쟁점 중의 하나로 떠오를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이나 정치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또 정치인들도 이런 견해에는 대체적으로 동감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북한에 대한 대북 화해·협력 정책(햇볕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것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온 때문이다.

현대로 흘러들어간 4천억의 행방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북 비밀지원’ 논란은 대표적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최대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발표가 비밀지원 의혹의 대가였다는 한나라당 측의 의혹제기는 아직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불씨가 살아나 또 한 번의 사생결단식 논란이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11일 열린 국회 통일 외교 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4억달러 지원설과 신북풍 의혹, 그리고 병풍 및 서해교전 정보보고 묵살의혹 등 북한관련 대선 변수 목록이 이미 선을 뵈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북한이 대규모 기동활동을 벌이고 비행훈련을 50% 증가한 데다 잠수함을 새로 만드는 등 군사활동이 급증한 것은 4억 달러 뇌물 지원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란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질의나 “노벨상을 타기 위해 정상회담을 돈으로 샀다면 국민을 기만한 비정상회담이고 통일을 막는 반통일 회담”이라는 같은 당 강창희 의원의 주장은 대선 국면에서 이른바 북풍 공방이 거셀 것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북한의 불편한 관계는 불안요소로 등장한 지 오래다.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나라당 측에 대해 북한의 매체들은 매우 비판적인 논조로 잇단 비난을 제기해왔다. 또 최근 들어 이 같은 비난공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빗나간 정권욕 때문에 북한과 손잡는 행위는 국기를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이는 북한이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다가온 현 상황에서도 군사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87년 대선 직전에는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가 체포돼 국내로 압송돼 온 것을 비롯해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간첩망 일망타진 발표 등으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표를 모으려 한 집권세력의 행태는 계속돼 왔다. 97년 대선의 경우에도 이른바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으로 관계자들이 기소되고 권영해 안기부장도 사전 첩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은폐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홍역을 치렀다.

문제는 소위 ‘북한 변수’가 이번 대선에 작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첫 대선인 이번 선거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 남녘을 짓눌러 온 북한의 남한 정치 개입 행태가 종식을 고할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서 언급됐듯 올 대선에서는 북한관련 현안들이 정치적 쟁점으로 불거질 공산이 크다. 대북지원에 대한 퍼주기 논란이나 각종 남북 교류 협력사업에 대한 비밀거래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돼온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북한의 비밀 핵 개발 의혹이 터져 나와  포용정책을 추진해온 정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데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때문이다. 4천억 비밀 대북지원 의혹에 대해 정부가 적극 나서 해명하고 국민의 의혹을 말끔히 씻어주는 길을 택하는 대신 미적거림으로써 가뜩이나 흔들리고 있는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깎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내 정치나 경제·사회복지에 대해 뚜렷한 쟁점이 아직 후보들간에 차별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 변수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란 우려를 갖게 한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 인사들이 “그래도 막판에 믿을 것은 지역감정과 북한변수”라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것이 실정이기 때문이다.

북풍을 원천적으로 사라지게 하려면 국정원 등 국가 정보기관의 위상정립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역대 선거마다 되풀이 돼온 북풍공작이 결국 북한과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이들 정보기관이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2000년 3월 현 국정원장인 신건 당시 민주당 공명선거대책위원장이 “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국가안전기획부가 당시 울산에서 검거했던 부부간첩을 이용, 북한의 무장병력을 서해안으로  상륙시킴으로써 ‘`북풍’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에서 국정원 등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흔들림없이 대북정보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북한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 변화와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변동으로 인해 북한 변수가 이번 대선에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이를 계기로 한 남북 당국간 회담과 민간차원의 화해협력 움직임으로 대북관이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이로 인해 북한을 위협적 존재로 보거나 과민반응하는 현상도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지난 6월29일 터진 서해교전 당시 우리 국민들의 대응은 이를 잘 보여준 사례다. 당시 서해교전으로 우리 해군 병사가 사망하고 고속정이 침몰하는 일촉즉발의 무력충돌에도 불구하고 이날 예정됐던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전은 예정대로 치러졌다.

결국 이번 대선의 경우 북한 변수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성이 떨어진 점 때문에 북한 변수가 그만큼 먹혀 들기 어려워질 것이란 얘기다. 물론 우리 정치권의 후진적 행태로 볼 때 이런 국민들의 인식변화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북풍 만들기가 재연될 개연성도 있다.

최근 방한해 우리 정부측 인사와 만난 한 독일 인사는 분단국가에서 한 체제가 다른 체제의 내부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경우에 대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동서독 시절 동독은 자신들보다 월등한 체제였던 서독에 대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옛 서독의 선거에 개입해 자신들이 의도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 동독측의 그런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과 대남 관계자들의 이번 ‘남조선 대선’ 감상법과 관련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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