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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의 복과 저주’는 비성경적 개념이다
‘가계저주론’ 이윤호 목사의 반론에 대한 정훈택 교수의 반박(2)
2003년 06월 18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정훈택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이윤호는 가계의 복과 저주가 신, 구약이 지지하는 진리라고 억지만 부렸지 증명하지는 못했다. 특히, 신약성경이 “가계(혹은 조상)의 저주가 후손에게 전가됨을 증언한다”면서 제시한 신약의 구절들은 전혀 그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가 제시한 신약의 구절은 1) 행 7:51~52; 마 23:29~32; 눅 11:48~51; 벧전 1:18; 2) 마 18:25; 3) 눅 23:28; 19:41~44의 세 종류인데, 1)은 “조상의 죄성/불의가 자손에게 대물림된다”, 2)는 “예수님은 세대적 처벌의 관행을 재천명했다”, 3)은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죄로 인해 후손이 받게 될 처벌을 경고했다”는 제목 하에 위의 성경구절들을 괄호 안에 소개하였다.

우선 그가 선택한 제목들이 백분 옳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가계(조상)의 저주가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가 증명한다고 한 것은 고작해야 “조상의 죄성/불의”와 “처벌”의 대물림뿐이다. 이런 개념들은 저주의 대물림과 그 결과 나타나는 온갖 불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죄성과 처벌의 대물림과 온갖 저주의 대물림은 다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억지만 부렸지 그가 증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평한 것이다.

그가 괄호 안에 소개한 신약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 그가 말한 것과는 또 전혀 다르다. 사도행전 7장 51~52절에서 스데반은 “조상의 죄성/불의”가 자손들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범죄의 유사성을 “…같이”란 단어로 비교하고 있다. 즉 구약시대에 유대인의 조상들이 성령을 거스리고 “의로운 분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들을 박해한 것같이 당대의 유대인들이 “그 의로우신 분을 배반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죄의 유사성을 말하는 것과 죄성이 유전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이것을 일치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마태복음 23장 29~32절과 누가복음 11장 48~51절도 죄나 죄성의 대물림을 말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은 적대자들이 선하게 말하고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을 비난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잠시 후에 죽일 것이다. 조상들이 한 잘못과 같은 일을 그들도 한다는 것이다.

구약이 신약을 바라보고 예언하는 기능에 비추어 볼 때, 특히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범죄는 한 묶음으로 취급되고 있다. 예수님은 조상들에게서 시작된 “선지자 박해 및 살해”라는 범죄가 그들이 자신을 죽임으로 그 극에 달한다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일에 가담한 모두가 연대적 책임을 지게되고 예수님을 죽일 그 세대도  책임을 져야할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윤호가 억지를 부리는 대물림에 대한 내용이 이 구절에도 들어있지 않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죄성/불의의 유전이 아니라 잘못된 생활방식의 습득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은 피를 타고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학습하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앞 세대의 헛된 생활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본문에는 이것이 유전이냐, 학습이냐의 토론이 없다.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그 헛된 생활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서 “해방되었다”고 격려하고 있다. 이것을 이윤호는 어떻게 죄성의 유전과 저주의 유전을 증명하는 구절로 사용하는가? 글은 기록되지 않은 것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알릴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록된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18장 25절은 “세대적 처벌의 관행을 재천명”하는 말씀이 아니라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종이 빚을 갚지 않기 때문에 그 주인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명령한다. 물론 이 명령은 잠시 뒤에 취소되고 종은 빚을 탕감 받는다. 후에 이 종의 잔혹한 행동 때문에 그는 다시 감옥에 갇힌다. 그 한 부분인 25절을 가지고 죄에 대한 연대 책임도 아니고 “세대적 책임”을 말할 수 있는가? 이윤호가 사용하는 성경구절 인용은 그냥 - 그의 주장이 성경에서 나왔다고 위장하기 위한 - 형식적인 인용일 뿐 그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네 원수들이 …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에서 “너와 네 자식”을 이윤호는 아마도 유대인 조상들과 후손들이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찾아내었지만, “너“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너의 자식” 혈통적 관계의 자녀들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유대인들, 어쩌면 성전과 그 모든 제도, 즉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역시 이윤호가 선택한 죄성/불의의 대물림이나 저주의 유전을 입증하는 구절이 절대 아니다.
 
그의 주장에는 물론 구약성경으로부터의 많은 인용도 있다. 필자는 이 구절들의 설명을 일부러 피했다. 이 구절들이 이윤호의 주장처럼 가계를 타고 흐르는 저주의 유전을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 이윤호의 가계저주론이 구약성경에도 생소한 것임을 이미 여러 글에서 말했다 - 그가 말하는 신, 구약 성경의 연속성 및 통일성과 관련하여 효과 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연속성, 통일성을 말하기 위하여 인용한 몇 책들은 가계 저주의 유전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므로 논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이윤호는 자신의 가계 저주론이 신학자들이나 다른 저술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이 역시 위장전술의 일환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경의 연속성, 통일성보다는 신구약성경의 불연속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이윤호는 연속성, 통일성이 신구약 성경을 통합하는 방식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 용어 자체가 신구약 성경의 불연속성과 다양성 때문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연속성을 부정하는 연속성이나 다양성을 망각하는 통일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이윤호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즉 불연속성과 다양성을 부정하며 연속성과 통일성에 치중하여 가계 저주론에 집착하다 보니 - 지난 주에 지적한 것처럼 - 구약성경적 사고를 만들어내고 신약시대의 특징을 전혀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7~19에서 “나는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다. 완성하러 오셨기 때문에 신약시대를 구약시대 그대로의 연장, 구약성경 그대로의 연속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구약시대의 예언을 이루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케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스라엘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하셨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이윤호가 말하는 십계명을 예로 들어보자. 구약시대에 살인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금해졌다. 살인이란 물리적 힘을 가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이다. 신약시대에 살인은 이런 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1절 이하에서 살인을 취급하신 항목에서 화내고, 욕하고, 무시하는 말도 함께 취급하셨다. 살인이란 직접적인 행위 만이 아니라 살인의 동기가 되는 분노, 경멸, 욕설까지도 살인으로 취급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배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마 5:21 등)고 하심으로, 또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높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5:20)고 하심으로 구약성경의 단순한 연속이 아닌 완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완성의 국면에는 유대 혈통의 가치 중단, 이스라엘의 국가적 특권 중단, 사회법의 승화, 제사법의 완성 등 여러 가지가 들어 있다. 구약 개념 자체로 본다면 불연속성이라는 단어가 불가피하다. 계시의 점진성, 역사성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이윤호는 - 한국교회에서 “세대주의”라는 용어가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용하여 - 모두 세대주의라고 비난하지만,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의 완성을, 신약시대가 구약시대의 완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하나요 초대 교회 시절 오래 논의되었던 주제였다. 어거스틴은 ‘완성’이란 용어로 한 편으로는 무율법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적 율법주의를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던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윤호의 성경해석은 이미 이단적인 것으로 판명난 것이다. 구약적 개념, 그것도 입증되지 않은 한 단편을 성경전체에 그대로 적용,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가계저주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한 구약성경의 구절들은 지난 호에 필자가 설명한 신약시대의 관점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용서라는 주제를 따라 차분히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이윤호의 가계저주론은 성경에서 입증할 수도 없고 성경에서 끄집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써내는 이윤호의 글을 보면 몇 가지 특색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 신학자/교회 지도자들의 비판을 밑거름으로 하여 이곳 저곳을 고치고 변신, 발전을 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판자들이 그에게 사상적 발전을 도와주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이상한, 비기독교적 저주 개념이 그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있는 한 어떤 발전이 있다 하더라도 기독교적/성경적이 될 수는 없다.

둘째, 그는 가능하면 기독교 신학/신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정통 기독교 신학을 다루거나 토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경에서 정당화 될 수 없는 그의 기본 개념들을 포기하지 않고 단순히 감추어 두는 한, 그의 글들은 모두 위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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