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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중에 부르짖는 기도(3)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
2021년 10월 29일 (금) 11:19:01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4)(시 57:1-11)

2)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며 그분의 영광을 간구함(시 57:6-11)

(1) 하나님, 저의 길을 훼방하는 자들이 도리어 자기들이 판 함정에 빠져 파멸하는 것을 봅니다(6절). (지난 원고)

(2) 하나님, 제 마음을 오직 당신께 고정시키고 당신을 찬양하겠나이다(7-10절).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걸음을 훼방하는 원수들을 그들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지게 하심으로 상황을 다스려 나가시는 것을 보며, 오직 확정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노래하고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7절).

나는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고백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 두기로 작정하였다고 고백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다윗의 반복적 고백은 그가 자기 마음의 추를 오직 하나님께 두기로 결단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의 원어 레브(bl)는 “속사람, 정신, 마음, 뜻”을 의미하고, “확정되다”의 원어 쿤(!WK)은 “고정되다, 확고한 상태로 있다, 세워지다, 설립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말은 가식적 인간이 아닌 진실한 자기의 속사람이 하나님께 나무가 심겨지 듯 확고히 심겨졌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향해 확고부동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식적 신앙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겉치레만 하는 신앙생활은 우리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진실함이 없는 가식적 인간은 복음 진리를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가식은 스스로를 기만에 빠지게 할 뿐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진실히 고정시킬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우리 안에서 정한 마음이 창조되고 정직한 영이 새롭게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시51:10). 이런 사람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원활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를 통해 수많은 응답의 체험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 마음을 확정하지 못한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같아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도 없고 그분을 찬양할 수도 없다.

다윗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다짐한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결국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그분께 찬양할 것을 다짐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8절; 비교. 시 108:2). “내 영광아 깰지어다”에서 “내 영광”은 “내 영혼” 또는 “내 생명”을 뜻하는 시적 표현이다(시 7:5). 영혼의 본질은 생명이며, 생명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참조. 창 1-2장). 다윗이 “내 영광아”라고 호출할 때, 그는 자신이 회복된 영혼의 소유자라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이 자신의 존재를 “내 영광”이라고 말할 때, 자신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혼으로 준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회복된 영혼의 소유자가 최고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찬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을 반영한다. 하나님과 밀착된 생활보다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지존하신 하나님, 온 세계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더 빛나는 삶은 없다. 인간이 그분께 마음을 확정하고 성령 안에서 그분과 소통하는 가운데 그분께 인정을 받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삶은 없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 경지에 가까이 다가선 자신을 발견하고 감히 “내 영광아 깰지어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는 아름다운 악기 연주를 통해 승리의 새벽이 올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뜻을 반영한다. 비파와 수금은 다윗에게 익숙한 악기였다. 다윗은 이 두 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였다. 다윗은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에게 호출되어 가서 수금을 탈 때 사울이 상쾌하게 낫고 악령이 나가기도 했다(삼상 16:23). 또 다윗은 언약궤를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 온 족속과 함께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였다](삼하 6:5).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아름다운 악기 소리에 실어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뛰어난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소망의 새 아침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반영한다. 다윗은 칠흑같이 어두운 고통의 날들을 보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가슴에 안고 승리의 새벽빛이 밝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다윗은 이 싯구를 넣을 때 어쩌면 출애굽한 자신의 조상들이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넌 후에 그들을 추격하던 바로의 군사들이 새벽녘에(출 14:27) 다 홍해에 빠져 수장되었던 구원의 날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믿고 그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승리의 날을 꿈꾸며 보다 능동적으로 새벽을 깨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다윗은 감사의 마음으로 뭇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다짐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9-10절).

다윗은 지나온 일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이새의 말째 아들로 태어나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것, 사울의 끊임없는 추격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신 것,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주변 권력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신 것, 결국 통합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 것, 블레셋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게 된 것, 백향목 궁전을 건축하고 평안히 거주하게 된 것, 비록 자신이 이룰 수는 없었으나 성전건축의 열망을 갖게 된 것, 나단의 신탁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 대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받게 된 것...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자기에게 헤아릴 수 없는 복이 차고 넘친 사실에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참조. 시 143:5-6). 감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준다. 우리에게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없고 그분을 찬양도 할 수 없다.

다윗의 감사는 너무도 용량이 커서 뭇 사람 가운데 그것을 쏟아 놓아도 남을 만큼 차고 넘친다. 그의 감사의 마음은 너무도 커서 수많은 사람에게 그것을 다 소비해도 남을 정도다. 다윗은 자기 민족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일들을 말하고 싶고, 더 나아가 모든 민족에게 자기의 감사를 간증하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을 마치 만방에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해야 할 선교사처럼 느낀다. 사실 그의 고백들과 영감 있는 글들은 세상의 선교사들을 다 합친 것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윗은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10절)라고 고백한다. 사실 원문을 직역하자면 “왜냐하면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기 때문이니이다”이다. 앞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다짐한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가 무한광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앞 단락 3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지금 다윗은 그때 충분히 하지 못한 말을 보충하는 듯이 보인다. 그가 보충하고자 하는 말은 무한한 스케일의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에 관한 것이다. 하늘까지 미치는 그분의 인자는 자신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도 구출할 수 있고, 궁창에까지 이르는 그분의 진리는 자신처럼 흑암의 권세 아래 짓눌린 영혼에게도 빛을 던져 주며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다. 이러한 스케일의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깨닫고 나니 다윗은 벅차오르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분에 대한 찬양을 다짐할 수 있었다.

(3) 하나님, 당신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11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본문은 앞 단락 끝 절(5절)과 동일하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온 세상 위에 높이 빛나기를 기원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5절 해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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