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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8)
최은수 교수의 코카서스 조지아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10월 25일 (월) 11:53:16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고상하고 품위 있는 맛과 정취

하나님께서 조지아에게 주신 선물은 물과 연관된다고 여러번 언급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무공해의 눈이 녹아내린 물, 즉 눈-물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하에서는 세계 최고의 물이 나오고 지상에서는 포도를 통한 신이 내린 물이 차고 넘친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그런 물들을 맛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표현은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곱 번에 걸쳐 쓴 글들을 통해서 밝혔듯이, 조지아는 눈물로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감내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거칠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고상하고 품위 있는 맛과 정취를 계승해 왔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노아와 그 가족을 태운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하고 코카서스를 중심으로 신인류의 역사가 펼쳐졌던 성경의 땅, 사도들과 여성 조명자를 통해 뿌리 깊게 형성된 기독교 신앙의 땅, 즉 거룩한 성지에서 다듬어지고 발효되고 정제되어 나온 맛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내린  음료의  재료인  포도로  가을  들판이  풍요롭다. 고상하고  품위있는  맛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죽음으로 증거하는 기독교 신앙

코카서스의 지정학적 특성상 수많은 나라들과 제국들이 조지아를 침략하였고 온갖 만행들이 저질러졌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스러져갔다. 특히 기독교 세계와 항상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 세력들은 오랜 기독교 전통을 목숨과 같이 여겼던 조지아인들을 주검으로 내몰았다.

   
▲ 하나님이  조지아에  주신  선물인  물이  역사의  질곡  가운데서도  거침없이  흐르고  있다

17세기 아프칸인들이 조지아의 지오르기 11세 왕을 암살했던 이유도 그가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을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아의 왕들은 가슴 한복판에 십자가 문양을 새긴 의복을 입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자신들의 심장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리라.

아프칸인들은 조지아 왕을 암살하고 그가 가슴에 착용했던 십자가 문양을 이란(페르시아)의 황제에게 보내서 이슬람에 굴복하지 않은 저주스러운 증거물로 제공키도 하였다. 그만큼 이슬람 진영에서는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의 끈질긴 저항과 그들의 굴하지 않는 신앙에 대하여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왕을 암살해도, 귀족들을 협박해도, 일반 민초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해도 조지아인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내심 두려움마저 느꼈을 법하다.
 

조지아의 저력: 언어, 교육, 그리고 출판

   
▲ 조지아의  교회를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 부서지고  깨지고  파괴될지언정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담고  있다

조지아 언어

실크로드에서 명멸해 갔던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던 국가가 많지 않은 가운데 조지아는 4세기 이후 줄곧 조지아만의 독특한 문자를 유지하여 왔다. 7세기 아랍계 이슬람의 확장으로 큰 혼란에 빠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지아어로 된 성경을 비롯하여 각종 기독교 관련 자료들이 발간되어 기독교 신앙을 함양시키고 훌륭한 전통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랍계 이슬람 등 중동 지역과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이슬람 세력들이 조지아의 기독교 신앙과 언어를 말살하려고 조직적이고 강압적으로 시도를 했었지만 조지아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신앙을 노래하고 고백하는 삶을 양보할 수 없었다.

조지아의 언어는 전체 조지아를 통합되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고 조지아 교회 역사의 중간중간에 꽃을 피웠던 문화의 황금기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강한 민족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제고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이란의 사파비드 제국의 박해를 견뎌낸 조지아 국가와 교회는 1801년 러시아 제국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기 전까지 교회와 국가의 자주권을 가지고 조지아 전역에 걸쳐 기독교적인 체계와 문화를 재정비하였다.

   
▲ 므츠헤타에  있는  오래된  교회의  모형  조차도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며  본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지아의 기독교 교육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인 니노의 헌신과 희생으로 기독교가 국가가 된 이후로 조지아 교회는 교육을 통해 기독교 국가로서의 사상적 기초를 놓고 민족 종교의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이런 기독교 교육의 힘은 코카서스 산맥의 혹독한 북풍한설과 같이 휘몰아치는 역사의 고통 앞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흔들릴지언정, 뿌리가 뽑히지 않는 저력을 과시하였다.

조지아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모든 교육이 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17세 당시 자주권을 되찾았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조지아인들은 기존의 교회당들을 정비하였고 새로운 교회들을 건축하여 교육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바쿠쉬티 바그라티오니(Vakhushti Bagrationi)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그 어떤 조지아인들에게 당신들의 기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 모두는 우리는 조지아인이고 우리 모두는 또한 기독교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바그라티오니의 말대로 조지아의 기독교 교육은 민족 종교의 근간이 되어 조지아와 기독교를 불가불리의 관계로 통합시켰다.

   
▲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  위치한  온천지대  상류의  아담한  계곡과  폭포. 이  근처에서도 순교자  아보와  같은  신앙인들이  굴복하지  않고  죽음으로  기독교  정신을  설파하였다

출판을 통한 조지아 기독교 문화의 창달

서양의 구텐베르크를 통한 인쇄술의 혁신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고대로부터 발전된 인쇄술이 얼마나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는지 역사가 이를 증명하였다.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개혁도 출판의 힘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17세기와 18세기 어간에 조지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조지아어로 책들을 대량으로 발간하기 위한 인쇄소들이 세워져서 각종 기독교 서적들과 서지학 관련 문서들까지 출간되었다. 이렇게 조지아는 자국의 언어, 그 언어로 교육하는 체계, 그리고 인쇄된 책들을 통해 교육 자체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까지 조지아의 기독교적 가치와 전통을 공유하고 그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졌다.
 

눈-물로 다듬어진 네 번째 조약돌: 가깝고도 먼 나라 러시아의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

1801년에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더 1세는 코카서스가 전략적으로 요충지역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조지아 출신의 파벨 츠싯찌아노프(Pavel Tsitsianov)를 코카서스 지역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이란계 이슬람인 사파비드 제국의 잔재들을 청산한다는 미명하에 조지아를 병합하였다. 1811년에는 자칭 ‘제3의 로마’라고 부르던 러시아 교회가 조지아 사도 교회가 누리던 교회의 주권을 박탈하고 종속시켰다. 한편으로 보면, 조지아 출신의 사령관이 오랜 동안 조지아를 억압해 왔던 이란계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고 같은 기독교인 러시아 교회와 합친 것이 최선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 트빌리시의 온천지대. 바흐탕 왕이 조지아의 뜨거운 물에 매료되어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이곳도 트빌리시를 침략했던 수많은 세계 열강들의 도전들을 생생하게 목도한 장소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러시아 제국의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면정책으로 일시적으로 민족 정체성의 혼동이 야기되었지만, 조지아와 러시아는 분명 언어, 문화, 역사, 전통이 다르고, 더욱이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로서의 자부심은 러시아의 기독교 전통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탁월하였기 때문에, 조지아인들은 이슬람 세력들의 억압 속에서 취했던 태도와 같이 외형적으로 정복될지언정,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민족적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며 굴복하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러시아는 기독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전의 이슬람 세력들조차 하지 않았던 민족 정체성을 말살시키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진행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조지아의 모든 학교들에서 러시아어로 교육하도록 강제하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 트빌리시  온천지대에  위친  한쪽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굳건한  결속을  다짐하는 자물쇠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조지아의  민족  교회가  조지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언약적  결속을  다지게  역할을  해  왔던  것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1801년 러시아 제국이 조지아를 병합한 이후 104년째 되던 해에 한 조지아의 귀족이 니콜라스 2세에게 서신을 보내어 조지아 교회의 자주권을 청원하였다. 그 귀족은 러시아 제국과 러시아 교회의 강압적인 통치와 제제 하에서도 조지아 교회는 한 번도 굴복하지 않고 자체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지아 교회의 수장이 갖는 법적 지위를 회복하고 러시아 교회의 간섭에서 탈피하여 조지아 교회만의 자유로운 예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조지아 교회는 교회의 자치권을 회복하는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볼셰비키 붉은 군대가 1921년 2월 25일에 조지아를 재차 병합함으로 무신론 공산주의의 도전 앞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러시아 공산주의 정권의 영향으로 조지아는 향후 73년간 교회의 독립성을 갖지 못했다. 1990년 1월 25일에 가서야 조지아 교회는 자주권을 되찾아 오게 되었다. 조지아 교회가 먼저 자주권을 얻고 1년여가 지난 1991년 4월 9일에 조지아는 정치적인 독립을 쟁취하였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조지아 민족과 교회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 코카서스  지역을  통틀어  유일한  한식당인  트빌리시  서울  레스토랑의  테이블  커버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새겨넣은  문구로  순례자들을  맞고  있으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순례에  지친 사람들에게  쉼과  여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과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는 조지아와 조지아 사람들

필자가 코카서스 조지아를 여러 해에 걸쳐서 방문하면서 느낀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눈-물로 다듬어진 조약돌이라는 표현으로 총 네 차례의 주요 도전들을 언급하면서 크고 작은 시련 앞에서 예쁘게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보기에도 부담없고 거칠은 부분이 없는 둥글둥글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이지 않을까 해서다.

2천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 그 자체인 조지아만의 저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더 나아가 노아의 시대부터 수천년에 걸쳐서 이어져 온 성경의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필자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를 통해 다뤘던 아르메니아와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인 조지아는 성경의 땅이며 거룩한 성지다. 이제 성지순례의 패턴은 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어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은혜의 순례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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