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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다는 것은
장경애 사모 컬럼
2021년 10월 12일 (화) 16:22:31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십여 년 전쯤일까? 한 백화점에서 할머니를 부르는 어느 꼬마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할머니 같은 사람은커녕 아주머니 정도의 사람도 없었다. 나는 얼른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빛이 나를 지칭한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아이 엄마는 내게 죄송하다며 인사를 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너무도 생소한 할머니라는 소리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감추어져 있는 내 늙음이 들통 난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는 자신이 느낀 대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니 마음속에 나는 아직 젊었다는 생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건이 생겼을 때는 딸이 결혼하기 전이고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멀게만 생각하던 때라 할머니라는 소리가 나를 더 당황하게 했다. 하기야 할머니 소리 좀 들었기로서니 무엇이 그리 아프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라 하면 싫어한다는데 아직 진짜 손주가 생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젊고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기에 씁쓸한 생각은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이 사건은 늙음이 무엇인지, 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상했고 마음은 서글픔으로 가득 찼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나를 심각하게 들여다보았다. 노인으로 가는 모든 요인이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모두 다 내게 있었다. 시력은 자꾸 나빠져 노안이 깊어지고 있고, 안구가 건조해져 눈이 침침하고 눈꺼풀은 내려앉아 눈은 작아졌다. 머리카락은 자꾸 빠져 숱이 적어질 뿐만 아니라 흰 머리카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더불어 머릿결은 푸시시 했다. 희고 깨끗하던 피부는 탄력을 잃고 주름과 잡티가 생겼다. 허리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고… 이런 것들이 바로 나의 현주소였다. 결국 아이가 나를 할머니로 여긴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밤에 안약을 찾느라 잠자리에서 일어나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울이 있는 서랍을 열다가 거울에 희미하게 비친 내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이 아닌 낯선 노인이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 앞에 서글프기까지 했다. 잠은 다 달아나고 무얼 하며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한 10년은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꽃도 피려고 꽃봉오리를 트일 때는 여린 모습이 너무도 싱그럽고 눈부시다. 활짝 피었을 때는 활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자태가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 꽃이 지기 시작하면 빨리 가져다 버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움은 자취도 없어지고 지는 속도 또한 무척 빠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지고 있는 꽃이다. 그것도 쓰레기통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꽃이다. 시들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눈을 비비고 찾아도 없다.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싫어한다. 아무리 나이 먹음을 부정하며 안간힘을 써 노력해도 나이 먹음은 현실로 나타난다. 한 시인은 <인생의 주소>라는 시에서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먹어야 할 약이 많아짐을 실감한다. 어디 그뿐이랴. 나이와 함께 많아지는 것은 주름, 흰 머리카락, 아픈 곳, 먹는 약 등이 있고, 나이와 함께 적어지는 것은 키, 머리카락, 잠, 살날도 적어지고 자신감도 없어진다고 한다. 그 외에도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눈에 들어올 때 나이 먹음을 느낀다고 한다. 한 조사에서는 무엇보다 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늙음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TV를 켜기만 하면 싱그러운 젊은 사람들만 보이고 나 같은 중늙은이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리 마음만은 젊게 산다고 해도, 그것은 내 생각일 뿐만 아니라 늙은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십상이다. 정말 마음은 아직도 젊기만 한데도 말이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고 마음이 늙으면 모든 욕구도 사라져 매력은커녕 쓸모없는 존재로 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기에 자신이 없어지고, 나아가 한없이 작아만 지는 모습을 발견할 때 서러움마저 느낀다. 경쟁 사회 속에서 정신없이 달려오다 어느 날 문득 한없이 오그라든 내가 보일 때 한층 더 서럽고 서글프다. 게다가 세상은 하루하루, 아니 한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니 그것을 따라가려고 부지런히 헐떡거려야 하는 현실이다. 또한 하루만이라도 대충 소홀히 하다가는 낙오자로 전락하여 버릴 것이니 시간 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늙어 감을 실감했을까?’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 작은 글들이 잘 보이질 않아 눈을 찡그리기도 하고, 초점을 맞추려고 책을 앞뒤로 옮겨가며 보는 일이 잦아졌다.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고 그것이 추억거리가 되어 그리워지면 늙었다는 표라는데 요즘은 더욱 옛날이 그리워진다. 애써 자신을 스스로 아직 젊은 나이라고 우겨 봐도 조금씩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나를 세월은 비웃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나이 듦을 느낀 것은 내가 살아야 할 세월이 산 세월보다 적어짐을, 나의 지인이 천국에 한 명씩 더 늘어나는 것을 깨달을 때부터였다. 지금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이 땅에서보다 천국에 더 많이 계신다. 가장 친했던 나의 엄마도 하늘에 계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결코 하루 이틀에 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살아온 날들의 점철로 이룩된 삶의 흔적이기에 살아온 세월의 수만큼이나 겪어야 했던 일들 속에서 조금이나마 인생 후배들에게 조언해줄 지혜가 생김이 늙어감에 얻은 유익일 것이다. 어차피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용기 있게 받아들이면서 몇 가지 마음에 소원을 가져 본다.

육신의 눈은 나빠지지만 신령한 눈은 반비례로 밝아지면 좋겠다.
육신의 귀가 어두워질수록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 지식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천국은 더 확실히 기억하고 사모하며 살면 좋겠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죽을 것이고 그리고 주님을 만날 것이다. 주님 보시기에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늙어감을 감사하며 주님 만날 소망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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