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신학자의 신학이야기 | 최은수 교수의 교회사 이야기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6)
최은수 교수의 아르메니아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06월 21일 (월) 15:10:44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후하여 터키의 전신인 오토만 제국에 의해 150만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조직적으로 대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오토만 제국의 신진 세력들은 패전의 책임과 국면전환용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기념탑 너머로 보이는 아라랏산이 슬퍼보인다

비록 아르메니아인들이 오토만 제국의 통치 하에서 국가적 주권을 상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견지하며 각 지역마다 자체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탁월한 상술을 발휘하여 경제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던 상황이 이슬람 정권인 오스만 제국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기독교권과 전쟁을 치르며 패전을 거듭하던 분위기에서 기독교 전통을 확고하게 유지해 오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혹여나 적들과 내통할 가능성으로 인하여 오스만 제국은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아르메니아인들은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던 대대적인 학살, 추방, 그리고 각종 비인도적인 만행 등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쓰러져 갔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현재는 터키의 영토가 된 지역에서 고유한 아르메니아 역사와 문화를 터키의 것으로 포장하려는 ‘역사적 문화적 대학살’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1001개의 교회들로 번창하던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

   
▲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드려진 꽃들

필자가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에 있는 숙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한 여성의 이름이 애니(Ani)라서 그녀에게 그 이름의 유래를 물었더니 역사적인 지명인 애니에 대하여 막힘없이 설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딸이 태어나면 애니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붙여 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중심가에서 ‘애니’라고 부르면 상당수의 여성들이 반응할 정도라고 한다. 역사적 정체성을 소중히 여겨온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애니는 민족적 자긍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허로 방치된 애니 유적지에서 어떤 사람들이 얼쩡대다가 아르메니아 군인들이 쏜 총탄에 맞기도 했다고 한다.

   
▲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피해자들을 공동 매장하는 장면. 추모기념공원 내 박물관 소장

아르메니아어로 악후얀 강(Akhuryan River, 터키어로 아르파카이)을 사이에 두고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국경이 그어져 있는 관계로 애니를 터키에 빼앗긴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애니는 동서양을 잇는 중계무역의 중심지로서 아르메니아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소중한 장소였고 기독교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던 코카서스의 예루살렘이었다.
 

실크로드의 교차로, 애니(Ani)

   
▲ 세반에 세워진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기념 조형물

애니는 중세시대 중반기에 번성했던 아르메니아 바그라티드(Bagratid) 왕조의 수도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애니가 실크 로드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발한 동서 간의 교역을 통해 부와 명성을 얻었다. 특히 바그라티드 왕조의 아숏 3세(Ashot III)는 비잔틴 제국과 아랍 제국들로부터 ‘제왕 중의 제왕’이라는 최고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영향력과 명성이 자자하였다.

애니가 지정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의 표적이 되었다. 11세기에 들어서서 애니는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기도 했으며, 다음으로 이슬람인 셀죽 세력에 의해 점령되기도 했다. 원래 기독교권인 아르메니아 영토였던 애니를 되찾기 위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연합군이 합세하여 통치권을 확보함으로 1세기 이상에 걸쳐서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 1001개의 교회가 있었던 애니(Ani)의 지도

하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타격을 입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런 틈을 타서 애니를 대체하는 교역 도시들이 생겨남으로 이곳은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 애니에 있는 언덕위의 교회와 돌다리의 흔적


현재진행형인 역사적, 문화적 대학살

최근 들어 애니를 발굴하고 복원하려는 시도들이 대대적으로 진행된 결과로 과거 전성기 때의 윤곽이 드러났다.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학살로 인하여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터키와 육로를 통한 왕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니(Ani)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애니 근처의 공항인 카스(Kars) 공항으로 이동한 후 현지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항공편은 하루에 2-4회 운영되고 왕복 항공료가 100불 전후한다.

   
▲ 애니(Ani)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직 1세(Gagik I).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국왕의 깊은 신앙심을 표현하고 있다. 예레반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오랜 숙원 때문에 육로로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출발하여 터키의 투르크고주(Turkgozu)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루트로 애니까지 간다면 대략 6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물론 각자의 재량에 따라 다른 방편들도 마련할 수 있음이다.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강 건너 보이는 애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심정이야말로 굉장히 뼈 아프고 분노가 솟구치며 처절하게 슬픈 현실이다. 게다가 터키가 애니를 비롯한 아르메니아 유산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왜곡하려는 ‘역사적, 문화적 대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므로 양국 간에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이 쉽게 아물 수 없는 형국이다.
 

구슬픈 아르메니아 아리랑

   
▲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수장으로서 민족적, 신앙적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카레킨 2세. 아제르바이잔과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2020년 전쟁을 막지 못했다.

필자가 예레반 외곽에 자리 잡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 공원 및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슬픈 선율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깊은 슬픔을 느끼도록 했다. 예레반과 그 주변의 어디를 가든 항상 웅장하게 보였던 아라랏산이 대학살 추모 공원에서 위령탑 사이로 볼 때는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런 아픔과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딸들의 이름에 애니(Ani)를 붙여서 조상들의 유산들을 기억하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고개가 저절로 숙연해졌다.

최은수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이재록, 신옥주 등 자칭 남신 여
기억함의 사명을 실천하는 이성만
교인 10명 중 4명 ‘명목상 기
기독교의 주일은 천주교에서 나왔는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인가?
인생은 기다림이다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