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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5)
최은수 교수의 아르메니아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06월 16일 (수) 14:08:54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한국인,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유대인

이번에 필자가 아르메니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기독교 유적들을 탐방하고 성직자를 만나고 일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한국인과 유대인의 정서와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아르메니아인을 비롯한 이 세 민족은 각자의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이 있다. 특히 아르메니아 알파벳과 한글 알파벳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서도 독창적으로 창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과학적이고 진일보한 언어로 정평이 자자하다.

   
▲ 국가와 교회의 수장이 합력하여 교회를 섬긴다. 수도 예레반에 있는 아르메니아 국립 역사박물관 소장

언어학적인 유사점과 더불어 아르메니아인들, 한국인, 그리고 유대인들은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고난과 역경을 수도 없이 겪어 왔다. 이 세 민족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이 세 민족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고,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후대를 위한 교육에 사활을 걸었다. 이 세 민족은 현재의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교육열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대단한 열정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 세 민족은 상술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서 세계 어디를 가든지 경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세 민족은 신앙의 뿌리가 같아서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유사성을 공유한다. 더욱이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라는 상징성과 함께 유구한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면에서 더욱더 정서적인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 아르메니아인과 한국인의 이런 정서적 친근감과 동질감은 아르메니아의 유적들을 접하고 산야를 누비며 현지 사람들과 접촉하면 할수록 커져 간다.
 

아르메니아의 세종대왕, 메스롭 마쉬톳츠(Mesrop Mashtots)

   
▲ 국립 고문서 보관소의 표지판. 현지어로 마테나다란이다

한 국가의 문자는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역사서술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력을 의미한다. 한국도 문자가 도입되기 전에는 중국의 역사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문자를 가진 민족의 관점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기록한 서술에 따라 한때지만 한국도 문화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의 고대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도 자신들의 문자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가진 중국 본토의 역사기록이 문자가 없어서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중국 북방 민족들에 대한 서술에서 왜곡과 무시가 빈번하게 목격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아르메니아 알파벳의 창시자인 메스롭 마쉬톳츠의 동상. 그의 이름을 딴 도로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국립 고문서 보관소의 상징과도 같다.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질곡의 세월을 감내하였다. 아르메니아가 301년에 사상 최초로 기독교 국가로 발돋음을 한 후 로마제국과 신생 페르시아 제국의 대립 속에서 나라의 주권을 상실키도 하였다.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던 아르메니아로서는 자국의 발성과 맞지도 않는 남의 나라 문자를 사용하는 데 있어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아울러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 따라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강요받게 되는 일들을 겪으면서 아르메니아 자체의 문자에 대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 마테나다란, 즉 국립 고문서 보관소의 전경이다. 본관 앞에 나열된 동상들은 아르메니아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킨 공로자들이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담당했던 인물이 바로 메스롭 마쉬톳츠였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왕의 최측근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쥘 수 있었던 왕실의 요직에서 물러나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메스롭은 소정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복음의 불모지를 찾아 전도사역에 헌신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아르메니아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타민족의 언어들, 즉 그리스어, 페르시아어, 그리고 시리아어 등을 사용해 보았지만 자국어를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 아르메니아 알파벳이 창제된 후 돌판에 새겨서 보관키도 했다. 에치미아진 박물관 소장

당시에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르메니아만의 문자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분위기에서 메스롭은 아르메니아 국왕인 브람샤푸(Vramshapuh), 총대주교인 아이작(Isaac), 귀족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최일선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거국적인 지원에 힘입어 자신의 제자들을 주요 국가에 파송하여 각 나라의 언어들을 연구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405년에 35개의 알파벳이 창제되었다.

그 이후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2개의 알파벳이 추가되었다. 만일 아르메니아가 자체의 문자를 갖지 못했다면 동방에서 명멸해 갔던 수 많은 민족들처럼 단순히 국가의 이름 정도만 남기고 사라졌을 것이다. 아르메니아 자체의 문자 창제는 성경과 기독교 문헌들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면서 명실상부한 기독교 국가로서의 전통과 민족적 정체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

   
▲ 에치미아진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수련중인 요셉 후보생. 유서깊은 게하르드 수도원에서 담임 성직자를 보좌하며 순례자들을 영접하고 질문에 대하여 친절하여 설명한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메스롭은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창제한 후 나라의 곳곳에 학교를 세워서 학생들에게 문자를 익히게 하여 자국의 언어로 학문을 연마케 하였다. 그의 수고와 노력은 아르메니아로 하여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만들었다.

후세들이 메스롭의 공로를 인정하여 수도인 예레반을 비롯하여 주요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도로 이름을 붙였다. 예레반의 메스롭 마쉬톳츠 길은 그의 동상이 있는 고문서 보관소, 즉 마테나다란(Matenadaran)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다른 동상들은 아라랏산과 마주하고 있는 아라갓츠(Aragats) 산 근처와 역사적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세워져 있다. 2020년 말에 벌어졌던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메스롭의 무덤과 그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접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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