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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왕이로소이다
2021년 06월 02일 (수) 14:52:24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여고 시절에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만 나는 유독 시를 좋아했다. 지금도 암송하는 시가 여러 편 있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어떤 시는 내용보다 제목이 더 좋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홍사용 님의 “나는 왕이로소이다”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을 ‘눈물의 왕’이라고 표현했다.

그분이 눈물의 왕이라면 눈물의 여왕이라 해도 하나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잘 우는 울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한 눈물의 여왕이다.

나의 눈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유아기 시절엔 하도 잘 울어 망태 할아버지에게 준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흘렸으니 나의 막내 삼촌은 늘 나를 ‘울보’라고 놀리곤 했다. 그렇게 잘 우는 내가 잘못하여 꾸중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울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모든 것을 눈물로 해결하려 한다고 나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일부러 눈물을 흘려 해결하려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공항은 이별하는 사람, 또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는 사람이 어우러지는 곳이기에 그곳에 가기만 하면 모르는 사람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니 딸을 유학 보내 놓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주책없을 만큼 눈물이 많은 것을 굳이 탓하자면 나의 엄마를 닮은 탓이다. 엄마는 눈물이 많으면 울 일이 많이 생긴다고 참으라고 하시면서 나의 눈물 많음을 걱정하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참는다고 나오는 눈물이 안 나오느냐고 볼멘소리로 반문하기도 했다. 눈물이 나면 참으라는 데 그 참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정말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는데 나오는 눈물을 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만치 힘들다.

눈물의 여왕인 나는 기도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혼자 기도할 때는 거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데 그러한 모습을 여러 번 본 어느 장로님이 내가 불치병에 걸려 그렇게 간절히 울면서 기도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묻는 일도 있었다. 그 후, 나는 교회에서는 울지 않고 기도하려 무척 노력했다. 목사 아내는 남에게 특별하게 보여서는 안 됨을 새삼 느끼면서 조심하려 했지만…

일반적으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면 웃음이 나지만, 눈물은 아프고 괴롭고 슬프고 속상할 때 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눈물은 참으라고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행복이 보통일 때는 웃지만 아주 많이 행복할 때는 눈물이 난다. 슬퍼서도 울지만, 너무 기쁠 때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가?

밤이 없으면 밝은 대낮이 없는 것처럼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기뻐할 때도 정말 기뻐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울고 나면 기분이 맑아진다. 현대인이 메마른 것은 눈물이 메마르고, 눈물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눈물은 보이지 않는 삶의 언어이며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눈물이 말랐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며, 사랑이 메말랐다는 증거다.

이전에 엄마들은 자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거의 금기 사항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자녀 양육에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나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너에게 너의 엄마는 너를 어떻게 길렀냐고 묻는다면 나의 엄마는 눈물로 나를 키우셨다”라고 말하라고 했다.

비교적 웃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눈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부정적이다. 우는 것을 ‘질질 짠다’라는 말로 폄하하고, 특히 남자가 잘 울면 사내가 계집아이처럼 운다고 핀잔주기 일쑤다. 남자도 감정이 있는 동물인데 마치 우는 것은 여자의 전용물로 여기고, 못난 사람이나 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울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남자가 울어야 사회가 온유해지고 건강해진다. 의학적으로 남자가 더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선입견과 학습되어 있어 잘 울지 않는다. 아니, 울지 못한다. 눈물을 참는 것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다. 감정을 억지로 억제하지 말고 눈물이 나면 울어야 한다. 눈물은 감정의 유통이 아닌가?

눈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요즘은 눈물 예찬론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눈물은 안구를 보호한다. 눈물이 없다면 눈을 깜박거릴 수도 없다고 한다. 눈물이 있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삼라만상도, 사랑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많이, 크게, 세게, 오래 울면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피부도 좋아지고 또한 많이 울면 면역성이 증가하고 심혈관이 튼튼해진다고 한다. 또한 엔돌핀이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한 암 전문의 박사는 ‘울어야 산다’라고 하면서 살고 싶으면 많이 울어야 하는데 울 일이 없으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울라고 말한다. 또한 웃음보다 울음이 스트레스 해소에 훨씬 더 좋다고 한다. 영국의 황태자비인 다이애나가 죽었을 때 정신과를 찾는 환자가 줄었다는데 그 이유를 남의 슬픔을 보고 울었고, 그 눈물이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웃음이 파도라면 눈물은 해일’이라든지 ‘웃음이 비라면 눈물은 소나기’라는 말은 잘 우는 나에게 얼마나 반갑고 기쁜 말인지 모른다.

탈무드에 보면 비누는 몸을 닦고 눈물은 마음을 닦는다는 말과 천국의 한쪽 구석에는 기도는 못 했지만 울 수 있었던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눈물은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눈물 예찬론자들은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고 한다. 또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는 말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은 깊이 없는 삶이라는 말이 된다. 교만하고 건조한 삶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는 말이나 흘린 눈물의 깊이만큼 아름답다는 말은 나에게 적잖은 위안이 되는 말이다. 지도자들이 많이 울면 생명 넘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잘 우는 것도 은혜이며 복이다. 문제는 울어야 할 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황당할 때가 없다. 그렇게도 잘 울어 평생 울보 소리를 들으면 산 내가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 놓고 장례식에선 생각한 것만큼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이상할 만큼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장례 마치고 세월이 감과 함께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기가 막히고 감당이 안 되어 꿈인지 현실인지 멍하기만 했고, 또 엄마를 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마를 잃은 것이 사실임을 실감하면서 눈물은 더욱 많이, 그리고 자주 흐른다. 울보라는 별명도 들은 터이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는 충고를 들을 만큼 잘 우는 내가 너무도 민망하고 싫었다. 그러나 이제는 울 수 있는 것도 축복임을 확실히 깨닫는다.

눈물도 웃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마치 마른 영혼에 비를 내리듯이 인간에게 눈물을 주셨다. 성경에 보면 울라는 말이 많이 있다. 반면에 웃으라는 말은 한 곳도 없는 것 같다. 또한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우셨다는 기록이 성경에 있다. 예수님도 흘리신 눈물이라면 나는 더 많이 흘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있어 온 그 여왕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겠다. 훗날 천국에서 주님께서 닦아주실 눈물은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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