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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에 나타난 축복(1)
눅 6:20-26을 중심으로
2021년 03월 04일 (목) 17:24:08 김경진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경진 교수/ Ph.D, 호주 알파크루시스 대학교 박사원장

 

   
▲ 김경진 교수

본문 배경

“사복음서에 나타난 축복”에 대해 말할 때, 통일성의 견지에서 복음서 전체의 메시지를 언급할 수 있겠으나, 사실 네 권의 복음서의 메시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네 권의 복음서에 나타난 축복을 염두에 두기는 하되, 주 본문이 누가복음임으로 거기에 맞추어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사실 복음서에서 축복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 복음서의 주요한 주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복음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님의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주님이 메시아로서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실 때 행하신 취임설교(inauguration sermon)가 그것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물론 누가복음에서는 취임설교에서 마가, 마태복음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후에는 마가, 마태복음처럼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53회, 마가복음에서는 18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44회, 하나님의 나라가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서를 고려하여,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대체한 것일 뿐, 의미상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가 겨우 두 번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요 3:3, 5; “내 나라,” 요 18:36).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및 진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인데, 마태복음의 팔복 설교와 누가복음의 사복 설교의 시작에서 주님이 축복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묶어 선포하신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 5: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일반적으로 설교의 첫 대지는 그 설교의 서론으로서 장차 이어질 설교의 방향을 제시하고 또 근거가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축복 설교의 서두에 등장하는 이 구절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소개하는 것은, 복음서기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복이 곧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임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중요한 진리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릴 복이 곧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구원론적 의미로서, 우리 신앙의 궁극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믿음을 끝까지 잘 견지할 때 장차 저 세상에서 받아 누릴 가장 큰 복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란 뜻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복을 누릴지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복은 없을 것이다(막 8:36).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큰 복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오는 세상에서 받아 누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고 또한 복의 근거라고 한다면, 복음서에서 말하는 복이란 궁극적으로 지상적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이란 세속적인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것도 아닌, 내세적이며 동시에 참으로 영적인 것이다.

이런 진리를 잘 보여주는 기사가 공관복음 모두에 등장하는 ‘부자 관원(청년)’ 이야기이다(막 10:17-31; 마 19:16-30; 눅 18:18-30). 이 사건은 공관복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복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흔치 않은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이 일화(逸話)는 주님을 선한 선생님으로 알고 따르고자하는 부자 청년이 주님에게 영생(永生)을 얻을 방도에 대하여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장담하는 그에게 주님은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막 10:21a) 그의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막 10:21b). 즉 이 땅에서 그 부자 청년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그리하여 그가 가난한 자가 될 때, 마침내 그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권면은 산상설교와 평지설교의 첫 대목, 즉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복으로 받을 것이란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종합할 때,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릴 축복은 궁극적으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견지에서 복음서에서 말하는 복이란 본질적으로 내세적이요 천상적이며 또한 영적이란 교훈을 아울러 얻게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릴 축복의 두 번째 부분이다.

둘째로, 부자 청년 이야기의 후반부는 재물을 포기하라는 주님의 권면을 받은 부자 청년이 자신의 많은 재산으로 인해 포기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현장을 떠난 후, 주님과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이어진다(막 10:23-31).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23절)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부자들을 축복 받은 사람들로 알고 있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제자들을 포함하여,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절)고 말씀하시며, 재물과 하나님의 나라가 양립할 수 없음을 다시금 분명하게 못 박았다. 그 때 베드로가 사도들을 대표하여 자신들은 재산을 다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다고 말하자(28절), 주님은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릴 축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10:28-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주님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가족과 재산을 포기한 이들에게 현세에서 백배나 받는 물질적으로 보이는 축복을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우리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백 배의 축복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집이나 전토를 백배로 받는다면 그것은 정말 이 땅에서 엄청난 물질적 복임이 분명하겠지만,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을 백 배로 받는다면, 그리하여 백 명의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을 그 대가로 받는다면, 과연 그것이 문자 그대로 복이 될 수 있을까? 병행구절에서 누가는 포기 목록에 아내를 포함시키고 있는데(눅 18:29), 그러면 그 대가로 여러 명의 아내를 되돌려 받는다면, 과연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와 양립할 수 있는, 정당화될만한 복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포기의 대가로 주님이 약속하신 백배의 복이 문자적으로 물질적인 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을 이 구절 해석에 반영한다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가족과 재산을 포기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많은 영적인 가족들을 얻게 될 것이며, 이제 신앙의 가족이 된 그들과 함께 살게 됨으로써 물질적으로도 이전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마가복음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백배의 복을 약속한 후 주님은 바로 이어서 “박해를 겸하여” 받을 것도 아울러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는 표현은 마가복음에만 나오고,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생략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배경이 되는 교회 공동체가 고난과 박해에 직면해 있었을 것을 암시하는 요긴한 구절이기도 하다. 백배의 복과 박해를 나란히 소개한 것에 유념할 때, 우리는 다시금 백배의 복이 단순히 물질적인 의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백 배의 복을 받을지라도, 박해를 겸하여 받으면, 결국 그 백배의 복은 상쇄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가족과 재산의 포기의 대가로 백 배(마가복음), 여러 배(마태, 누가복음)의 복을 약속한 후, 복음서기자들은 동일하게 내세에 받을 영생(永生)을 언급하고 있다(막 10:30, 마 19:29, 눅 18:30). 영생이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가족과 재산까지 포기하며 마침내 얻을 복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며,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가 누가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족과 재산을 희생해야 할 동기로서 소개되고 있다(눅 18:29).

이제껏 논술한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복음서에서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결과로 드러나는 교훈은 복음서의 복이 지상적, 세속적, 물질적이 아닌 천상적/내세적이며 영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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