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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르네 지라르를 통해서 본 이 시대의 문화적 현상
2021년 02월 19일 (금) 14:58:55 김진구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진구 목사/ 십자가군사학교 대표

   
▲ 김진구 목사

1923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출생한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세속화로 물들어가는 20세기에 <십자가의 능력>을 앞세운 독특한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지식인이요 예언자적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7년에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미국 인디에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인디애나 대학, 브린모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현대 사상과 프랑스 어문학과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기도 했던 르네 지라르는 1973년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e)으로 프랑스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1961년에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nanesque)에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인간 욕망을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계속해서 연구 범위와 폭을 넓혀 인류학, 신화, 종교학 쪽으로 관심을 돌려 인간의 욕망과 구조적 폭력문화의 결정체인 희생양 이론과 모방본능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의 희생양 이론과 모방본능에 관한 이론은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20세기 기독교 철학의 걸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르네 지라르는 모든 종교적 제의들은 희생물에서 나오며 종교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인간의 주요 제도들은 제의에서 나온다고 주장을 하며 현대사회가 이 부분을 주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합니다. 이제 그의 이론의 형성과정과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라르는 일단 신화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성경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를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지라르가 기독교와 성경을 신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 땅에 사이비 종교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철저하게 분석해 내기 위함입니다.

르네 지라르는 그의 걸작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머리말 말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불트만의 말대로 자동차나 전기보다 십자가가 신화의 수수께끼를 더 잘 해명하고, 또 현대철학과 사회과학에 만연해 있는 환상으로부터 우리를 더 잘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에게 십자가는 꼭 필요할 것이다. 기독교는 한물간 것이 아니다. 아니, 총체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최고의 진주와 같은 것이다.“

지라르가 신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했던 이유는 폭력이 난무하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라르가 이러한 연구작업을 통해서 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든 종교를 문화 현상으로 볼 수는 있지만 오직 기독교는 문화 현상의 카테고리에 한정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가 철학자가 아니고 신학자였다면 기독교를 "계시"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라르는 신화가 형성되는 이유를 사회 문제, 특히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폭력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지라르에 의하면 그 원인이 바로 '모방 욕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라르에 따르면 모든 죄의 원인이 이웃을 모방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정된 세상의 재화나 자원으로 인해 성공한 자의 삶, 부자의 삶, 스타의 삶을 모방하려는 욕망이 그것을 제한하려는 사회적 구조와 충돌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지라르는 인간 개개인의 욕망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인간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탈출구를 찾게 되는데 자신들의 폭력성을 집중시킬 대상을 찾게 되고 그것을 지라르는 '희생양'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폭력적인 대부분의 사람은 분노한 군중에 의해서 형성된 희생양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제거함으로 세상의 평화를 다시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지라르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신화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사회의 혼란은 폭력성으로 나타나고 결국 신의 분노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희생시킬 제물을 찾아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문제의 핵심은 희생양 이론을 통해서 집단적인 폭력이 정당화되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라르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이다영-이재영 쌍둥이 자매의 '학폭'(학교폭력) 문제로 시끌시끌합니다. (사실, 미디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 사건에 관심도 없고 이 사건이 무엇인지 조차도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만 일단, 미디어와 SNS상에서는 이 사건이 또 하나의 이슈로 부각된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학폭' 문제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주 유능한 국가 대표 배구선수들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우리나라 배구계의 전설과 같은 존재인 김연경 선수 사이에 갈등설이 언론에서 슬슬 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이다영 선수는 작년 12월부터 '배구여신'이라고 부르는 김연경 선수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sns상에 계속 올려왔고, 또 그런 와중에 이다영-이재영 자매로부터 고교시절에 폭력을 당했다는 학교폭력 네이트판이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메이저 기자들과 인터넷 신문에 의해서 빠르게 보도되었고 지금은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다영-이재영 자매는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발빠르게 고교시절의 학교폭력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제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동장치가 없는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된 이 문제를 정리할 자신이 없는 책임이 있는 사회의 지도자들이나 관계자들은 징계에 징계를 거듭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해당 실업팀에서는 이들을 무기한 정지키셨고,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징계의 내용이 좀 과하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런 학교폭력의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협회 차원의 의지적 결단이라는 점에 있어서 이 정도의 징계와 처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페이스북에서 페친이 올린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잠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페친 역시 이 집단적인 폭력성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댓글들을 보니 여전히 잔인하고 희생양을 찾아 방황하는 이 시대 군중들의 모습으로 인해 저는 정말 아연실색할 정도였습니다.

페친이 올린 글의 댓글을 보니 거기에는 일단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어서 뜨겁게 논쟁이 붙었습니다. 하나의 흐름은 이다영-이재영 자매에 대한 징계가 너무나 과하니 이제 그만 해야 한다는 흐름과 또 하나의 흐름은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학폭 문제를 계속 제기하며 이러한 학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무거운 징계를 해야 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후자의 흐름도 저는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들 중에는 이다영-이재영 자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학창시절에 혹은 자신의 자녀들이 학폭의 피해로 인한 큰 상처를 지금도 갖는 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 시점에서 정말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의 폭력적인 잔인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희생양을 설정해 놓고 모든 국민의 눈과 귀를 이곳으로 집중시켜 놓은 상태에서 자기들의 사악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음흉한 어떤 이들의 미소가 제 눈에는 보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상업적인 언론이 춤을 춥니다. 그들 역시 자기들의 시청률이나 댓글 조회 수가 늘어나면 행복해합니다. 이들 역시 잔인한 좀비들입니다. 여기에 구린 구석이 많은 정치인이 행복해할 것 같습니다. 국민의 시선을 이곳으로 몰아넣고 그들은 여전히 사악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최소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흐름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스텐스를 취해야 할까요? 무관심...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흐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의 배후에 어떤 사악한 의도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것을 날카롭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세상처럼 변한 이 시대가 정상적인 사회로 회복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정직하고도 담대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또한 어떤 방향으로 누구를 모델로 삼아 행동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나는 다시 또 르네 지라르의 "십자가 이론'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 끔찍한 세상에서 정반대의 방법으로 폭력을 잠재운 하나의 사건을 우리들에게 소개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모방 욕구로 인한 폭력성의 죄악을 고발하는 유일한 사건입니다. 또한 르네 지라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다른 종교나 문화적 현상으로 발생한 수많은 신화화는 다르게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사건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신화 뒤에는 실제로 일어났으며 신화를 지배하는 사건이 있는데 신화는 그 사건을 변형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서 실제의 사건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복음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사람들이 지금까지 결코알아차리지 못한 이 진실을 전 인류에게 그냥 내맡겨두고 있다."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갈보리 언덕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지금도 그를 믿고 영접한 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진행형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서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집단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신화적 사건이 아니라, 이 땅에 만연한 모든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그 폭력의 중심부에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희생양이 되기를 기뻐하는 계시적 사건입니다.

로마의 빌라도, 그리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사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또 그 목적에 불만을 품은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이 된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폭력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거룩한 희생양이 되어 그 폭력의 중심부에서 그 폭력의 문제와 당당히 맞서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십자가의 전사들에 의해서 폭력을 일으키는 이 땅의 곳곳에서 날뛰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폭력의 원인이 되는 마귀와 그의 세력이 사망의 불못에 갇히게 될 때 온 우주적 샬롬의 나라가 새하늘과 새 땅과 더불어 우리 앞에서도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더욱 당당하게 달려갑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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