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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11)
2020년 12월 30일 (수) 14:25:07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모세의 기도(3): 후계자를 위한 기도(민 27:12-23)

3) 기도의 내용

모세는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위해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을 이해하였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결정에 절도 있게 순종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 27:16-17).

이 짧은 기도에 두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첫째, 모세는 자기의 기도의 대상을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이 호칭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하나님, 당신은 이 민족의 끝없는 반역과 배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시며 당신이 언약하신 대로 신실하게 여기까지 인도하셨나이다”라는 고백이 담겨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에서 “하나님”(엘로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당신은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으로 모든 육체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또한 주관자이십니다”라는 고백이 함축되어 있다.

   
 

기도자는 자기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어떤 신(神)에게 기도하는지도 모르고 기도하는 행위는 단지 마음의 염원을 비는 기복신앙적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실체가 없는 대상을 설정해 놓고 막연하게 비는 것은 참 하나님을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가련하고 공허한 종교적 행위일 뿐이다. 바울은 믿는 자가 바른 신관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의 서신서 여기저기에서 강조한다.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라고 간구한다. 이것을 원문으로부터 번역해 보면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이해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고”라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영적 지혜와 이해력을 가질 때 하나님의 뜻을 아는 풍부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결핍하여도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된 환상이다. 때로 어떤 이들은 신앙의 지적 요소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지적 요소가 불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책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우리의 신관을 형성하고, 신관은 우리의 신앙 형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바울은 그의 목회서신 전반을 통해 “하나님”이 구원자이심을 강조한다(딤전 2:3; 4:10; 딤후 1:8-9; 딛 2:11; 3:4도 볼 것).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소멸 불가하고, 불가시적이고,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왕이라고 진술한다(딤전 1;17. 딤전 6:15-16). 바로 이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다.

둘째, 모세는 일신의 명예와 권세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새로운 세대가 안정감 있게 정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자기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 “한 사람”을 세워 달라고 간구하였다. 이 한 사람은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머리이심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통치자로 믿고 그분의 통치에 순종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서의 자신의 실체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해 나갈 수 있다.

모세가 자기의 후임으로 들어설 새로운 지도자에게 거는 기대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오기도 하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모세가 바라는 후계자는 백성 앞에 부끄럼 없이 출입할 수 있는 자여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을 데리고 나가든 데리고 들어오든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당장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의 뒤를 이를 지도자를 찾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장차 오실 메시야를 찾는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지도자의 유일한 원형이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백성 앞에 출입이 자유롭고 즐거운 지도자, 그 백성에게 나가야 할지 들어와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쳐 주는 지도자를 구하는 목적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 방황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27:17). 이는 모세의 마음이 오실 메시야의 마음과 같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훗날 예수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 때문이었다(마 9:36; 막 6:34).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온 이후 40년 동안 모세의 마음에는 항상 그들을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 갈팡질팡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 같다.

만일 새로운 세대가 요단강을 건너는 일부터 시작하여 목적지에 정착해서도 광야에서처럼 방황한다면 그것은 궁극적 하나님 나라 도래의 꿈을 상실한 채 소망 없이 표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히 6:1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까지 떠돌이처럼 방황한다면 그것은 그 땅의 “젖과 꿀”과 무관한 어리석은 삶일 뿐이었다. 당시 역사 속에서 가나안 땅에 입성한 사람들은 궁극적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민족으로서의 기품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크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개될수록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모세는 개인적 열망이나 명예보다 민족 전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도를 통해 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 기도의 응답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기뻐 받으셨다. 하나님은 주저함 없이 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지목하셨다(민 27:18상). 여호수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28:18)였다. 여기서 “영”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선언한다.

사실 여호수아는 일찍부터 지도자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과 전쟁을 벌일 때 직접 전선에 나가 용맹하게 싸운 군인이었다(출 17:13). 모세는 하나님이 처음 두 돌판을 주시려고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실 때 자기 형이며 제사장인 아론이 아니라 자기의 부관인 여호수아를 데리고 올라갔다(출 24:12-13). 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정치 지도자 역시 종교 지도자 못지않게 신령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난 후 다베라에 이르렀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는 사실을 알고 모세에게 보고했을 만큼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다(민 11:3, 26-28).

또한 여호수아는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인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견할 때도 그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10인 정탐꾼이 불신앙적 보고를 하며 백성을 낙담시키고 저항 세력을 부추길 때, 갈렙과 함께 담대하게 하나님이 동행하는 한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외쳤던 인물이었다(민 14:7-9). 하나님은 이 12인 정탐꾼 보고 사건 때도 이미 거역하는 백성을 향해 진노하시며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모세 역시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민 14:26-30; 신 1:34-38). 하나님은 그때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귀뜸도 해 주셨다(신 1:38). 이는 모세가 이미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택해 놓으시고 훈련시키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자기의 나이가 120세나 되어 출입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이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하였다(31:1-2). 모세는 모인 백성에게 하나님이 먼저 요단강을 건너가셔서 다른 민족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백성의 선봉에 서서 건너갈 것이라고 말하였다(민 31:3). 그리고 그는 여호수아를 불러온 백성 앞에서 “7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7-8)라는 말로 독려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영에 의해 사로잡힌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제사장 엘르아살(아론의 아들)과 온 백성 앞에서 모든 것을 위탁하여 백성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27:18-20). 또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당신의 뜻을 알기 위해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때 엘르아살은 “우림”의 판결로써 당신께 묻고,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은 엘르아살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민 27:21). 제사장의 옷의 한 품목인 에봇에는 판결흉패가 달려 있었는데 이 그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었다. 우림둠밈주사위와 유사한 것으로 우림, 둠밈완전 뜻하였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손을 넣어 하나를 택했는데, 그 중 하나는 “예”를 다른 하나는 “아니오”를 뜻하였다. 제사장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고,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당신의 백성을 투톱 체제(지도자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로 다스리기를 원하시며, 하지만 최종 권위를 당신 자신에게 두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호수아를 엘르아살과 온 백성 앞에 세우고 안수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였다(민 27:22-23). 모세에게 안수를 받고 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이런 여호수아의 말에 백성은 모두 순종하였다(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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