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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학 씨, ‘황추행’으로 개명 권고한다
필자 교회 코로나 감염 조롱하는 글을 보고
2020년 12월 14일 (월) 11:07:09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본지 편집인
 

   
▲ 최삼경 목사

서론: 필자는 최근 글을 별로 쓰지 못하였지만, 황규학 씨가 필자의 코로나 건에 대하여 쓴 글에 대하여는 답하기로 한다.

필자는 최근에 거의 글을 쓰지 못하였다. 아니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코로나로 인한 어두운 교계에 대한 부담 때문이고, 둘째는 연말연시가 바쁘기 때문이고, 셋째는 필자의 교회에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글을 쓰지 못하면 필자에게 무슨 약점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닌지, 또는 그로 인하여 이단들과 협상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목회도 하고 글도 쓰고, 글도 쓰고 목회도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하나만 할 수 있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황규학 씨가 필자 교회(빛과소금교회)에 발생한 코로나 감염 건을 가지고 교회 이름을 <어둠과소금교회> <빛과코로나교회>라고 하라는 천박한 글을 보았다. 필자는 황 씨의 글들을 보면 모순과 거짓이 너무 많아서 반론 거리로 가득 차 있다고 보지만, 그동안 일일이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또 시간이 없어서 적극적 반론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의 글에 대하여는 필자도 우선 비판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황규학 씨(광장TV캡쳐)

물론 황 씨는 목사직을 잃고도 목사라고 하고 다니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그래도 한때 그가 목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가져야 할 기본 윤리와 정서를 가지기는커녕, 그에게 세상의 도둑이나 마피아 수준의 윤리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목사가 되고 싶고, 목사란 이름으로 살고 싶어서 목사직을 잃고도 스스로 목사라고 하고 다니려면 적어도 목사의 윤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고, 목사답게 살려는 노력을 해야 옳다. 그러나 그가 목사의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소리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목사는커녕, 평신도 아니 세상 사람의 윤리도 없다는 말이다. 도적이나 마피아도 나름의 윤리가 있을 것이고, 하물며 짐승도 그러하다. 그러나 황 씨에게 그런 수준의 윤리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개들도 상대를 봐가면서 짖는 법이다. 

따라서 필자도 황 씨와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서 그의 글을 비판하는 것을 독자들이 깊이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차피 오물 묻은 사람과 싸우며 오물을 묻히지 않기는 불가능하고, 청소부가 쓰레기를 싫어한다면 청소부를 그만두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 씨의 <기독공보> 중에서

필자는 황 씨의 저질스런 글이라도 가감 없이 본지에 그대로 소개하며 비판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씨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단 한 번도 필자의 글을 그대로 자기 언론에 소개하는 경우를 보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그럴 진실도 용기도 그에게 기대할 수 없지만, 소귀에 경을 읽는 마음으로, 필자의 글을 그대로 소개하는 위선적 용기라도 가져보길 주문하며 글을 시작한다.

아래 사이트는 황 씨의 글이다. 제목은 <남양주보건소, 빛과소금교회에 행정명령서 발급>(황규학, 2020년 12월 7일)이다.
(http://www.kidogkongbo.com/2567)

그가 했던 비판 중에 핵심적 내용을 먼저 그대로 소개하겠다(하도 철자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이라 필자가 수정하였음도 알기 바란다).

“신도가 아니라 목회자의 확진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이는 최삼경 목사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이다. 목사로서 평상시 출타를 금지하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철야기도하는 모습으로 임해야 했다.”

“목사가 양성 확진 판정되어 교회가 마비되었다면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이다. 빛과 코로나 교회는 2인 이상 예배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온라인 예배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2주 동안 신도들은 정규예배조차 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전의 촛불이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어둠과 소금교회가 된 것이다.”

“옆 마당에는 빛과 소금교회에서 부활하실 성도들이라는 돌비석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빛과 소금교회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본론: 황규학 씨의 주장이 맞다면 황 씨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황추행>, <황쓰리군>, 또는 <황훼손>, <황거짓>, <황섹스>라고 개명하는 것이 좋겠다.
 

비록 악이라도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다.
질병은 비록 악이라고 해도 모든 책임이 병든 자에게 있지 않다. 그중에도 전염병은 더욱 그렇다. 코로나 문제가 창궐할 때, 이단인 신천지(이만희)나 전광훈 씨(사랑제일교회)처럼 법을 어겨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를 확산시켰다면 아무리 큰 책임을 물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만일 누가 전염병에 걸렸고 그가 혹 부주의하여 병에 걸렸다고 해도, 죄의 책임을 묻듯 적극적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고의적으로 선택하여 병에 걸리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의 교회처럼 코로나를 철저하게 잘 대처한 교회는 별로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국의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주의하다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어떤 책임도 그에게 물을 수 없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필자와 필자의 교회는 후자의 경우다.

필자 교회는 코로나 예방과 대책에 있어서 어떤 교회보다 모범적이다. 자동열감지기를 건물 모든 입구마다 설치하였고, 예배 안내자는 항상 입구에서 손에 젤 소독제를 출입하는 분들의 손에 다 뿌려주고, 마스크를 잘못 낀 분들에게는 바르게 끼도록 시정하고, 마스크를 안 낀 분들에게 새 마스크를 준다. 또한 정부 시책에 따라 20%가 가능할 때는 20%로, 30%가 가능할 때는 30%로, 50%일 때는 50%로 좌석 배치를 하여 앉게 한다. 그리고 예배 사이마다 여름에는 창문을 열고 통풍을 시키며, 주중에 출입이 잦은 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한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우리 교회에 참석한 성도 중에 두 분의 감염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도 어떤 후유증도 없이 완벽한 치료를 받았고, 그로 인하여 교회에서 단 한 사람도 감염되지 않았음을 보면 우리 교회의 대처가 얼마나 훌륭하였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12월 1일, 필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결국 필자가 20일부터 만난 모든 사람들과 자원하는 성도들까지 포함하여 적어도 100명 이상 검사를 받았지만 단 한 사람도 양성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11월 22일과 29일에는 모든 예배를 필자가 다 인도하였다. 만일 이때 필자가 코로나 감염 상태에서 예배를 인도했다면 감염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손으로 악수를 하자고 하신 분도 몇 분 있었다. 그런데 한 분도 양성자가 없다. 심지어 필자와 함께 같은 국그릇에 숟가락을 넣고 밥을 먹었던 분들도 다 음성이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오래 함께해 온 아내마저도 격리로 끝나고 말았다.

필자에게는 처음부터 코로나의 증상이 거의 없었다. 단 한 번도 열이 나거나, 통증이 나거나, 호흡 곤란이 있거나, 맛의 변화가 없었다. 단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조금 느꼈는데 그것이 코로나 때문인지 일반적인 감기와 누적된 피곤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마저 다 치료되어 12월 12일에 조기 퇴원하였다. 양성 판정을 받은 부 목사님 한 분도 13일 주일에 퇴원하였으니 우리 교회에는 코로나 환자가 한 명도 없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있다.

죄의 책임과 질병의 책임은 다르다.
황 씨는 필자가 코로나에 걸린 책임을 필자가 무슨 죄라도 지어서 그렇게 된 것처럼 하며,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억지요 모순이요 어불성설이고 자가당착이다. 죄는 본질적으로 질병과 다르다. 죄는 짓는 것이고 병은 드는 것이다. 병은 내가 선택하여 걸리는 것이 아니지만, 죄는 자신의 선택과 자유의지에 의하여 짓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하지만 질병은 다르다. 그래서 죄란 지은 자가 죄를 지을 때와 같은 결단과 의지로 회개하는 길 외에 그것을 해결할 다른 길이 없다. 그래서 큰 죄라도 회개하면 죄는 없는 것이 되지만, 작은 죄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정죄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도적질, 횡령, 살인, 거짓말, 강간, 성폭행, 성추행, 사기 등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죄들은 다 범법자의 인격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도 능동적 자유 의지로부터 지은 죄이다. 따라서 이런 죄들은 전적으로 범법자의 책임이다. 이런 관점에서 황규학 씨가 필자 교회의 코로나 문제를 필자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로 보는 그 판단이 맞는지 그리고 과연 황 씨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조금이라도 있는 존재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당국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노력하다가 필자처럼 코로나에 걸린 것과, 자유 의지와 욕망으로 추하고 더러운 전과기록들을 남긴 황 씨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황 씨의 말을 먼저 보자. 신도가 아니라 목회자의 확진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이는 최삼경 목사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이다.” 황 씨의 주장은 코로나에 걸린 것은 감염자 필자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서 황 씨는 ‘금식기도를 하고 철야를 하라’는 주제 넘는 충고까지 하고 있다.

이제 '황규학 씨는 누구인가’부터 살펴보면 답이 쉬어진다. 과연 그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경건과 영성을 지닌 사람인가? 한 마디로 아니다. 황 씨는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자기 주제를 모르는 위선자요 부끄러운 전과기록들로 얼룩진 부도덕한 사이비 언론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그는 여러 교단들로부터 이단 옹호자로 규정된 자다. 그것도 그냥 이단 옹호자가 아니다. “상습적 이단 옹호자이며 상습적 이단옹호 언론을 운영하는 자. 그는 성도도 아니고 목사로서, 세상 사람조차 가질 수 없는 수십 건의 전과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황 씨는 명색이 법학 박사란다. 법을 안다는 사람이 지은 죄와 법을 모르는 사람이 지은 죄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고 달라야 한다. 어른의 죄와 어린아이의 죄가 다르듯 말이다. 하물며 목사요 법학 박사라고 하는 인간이 지은 죄는 아무리 큰 책임을 물어도 될 것이다.

황 씨의 전과 기록들을 보면 웬만한 세상 사람마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두 가지 전과기록이 있다. 하나는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였던 사건이고, 또 하나 역시 지하철에서 절도를 한 사건이다. 결국 둘 다 대법원에까지 올라가 벌금을 물고 말았다.

우선 성추행건이다. 황 씨 자신이 이 사건에 대하여 스스로 변호한 말을 통하여 유추해보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비좁은 지하철에서 앞의 여자 뒤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로, 그 여자에게 욕정이 올라와 여자 가랑이 사이에 자기 다리를 넣고 성기를 비벼대다가, 사복 경찰의 눈에 띄어 카메라에 찍히고 결국 성추행범이 되고 말았다.

다음 절도미수 건은 그가 판결문을 공개하거나 조금이라도 변호한 일이 없어서 그 구체적 내용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지하철에서 무슨 물건을 절도하려다가 잡혔고 벌금을 물어 절도미수범이란 별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황규학 씨는 지하철을 타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지하철만 타면 그 속의 더러운 죄성에 불이 붙어 성추행을 하든지 절도를 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런 자가 남을 비판할 수 있고, 명성교회 세습을 옹호할 수 있고, 질병을 경건과 영성의 부족이라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규학 씨의 성추행과 절도미수 등의 찬란한 범죄들은 과연 무슨 경건과 무슨 영성에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 보자.
코로나에 걸린 필자를 죄인 취급하여 회개하라고 말하려면 황 씨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했고, 다윗처럼 지은 죄를 얼마나 빨리 회개하였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황 씨는 회개하지 않았고 회개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과 영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악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리다.

황 씨는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죄를 정직하게 시인하지도 않고 회개할 수 있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없다. 지금까지 황 씨는 자신의 성추행에 대하여 일관되지 못하고 모순된 말들로 변명해왔다. 성추행과 절도미수가 부끄러운 죄인 줄은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회개할 마음도 없고, 회개할 뜻도 없다. 그런 주제에 남의 질병을 죄라고 단정하는 파렴치한 인간이 바로 황규학 씨다.

작년에 황 씨는 필자가 자신을 ‘성추행범’, ‘절도미수범’이라 했다고 하여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이 있다. 무혐의로 끝났다. 전에 다른 사람도 같은 주제로 고소하였다가 황 씨가 역시 패하였다. 성추행을 하고 절도 미수를 한 그 행위 자체는 부끄럽지 않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성추행범이요 절도미수범이라고 하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양이다. 황 씨는 필자가 세상 법정에 누구를 고소하였다고 필자를 비난한 일이 있다. 그가 주관적으로라도 정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은 절대로 누구를 고소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남의 고소는 비난하면서 자기는 고소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모순되고 거짓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자신은 죄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아 회개할 마음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 다른 사람의 질병, 그것도 전염병에 걸린 것을 가지고 회개를 강요하고, 죄 자체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미련이며 교만이고 악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그것을 필자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로 보는 황 씨의 그 눈은 과연 어떤 눈이고, 그것을 생각해 낸 그의 머리는 무슨 머리이며, 그리고 그 마음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필자가 코로나 문제로 회개를 해야 옳다면, 황 씨는 어떤 회개를 해야 할까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는 욕정을 못 이기는 자신을 저주하고 미워하고,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처럼(Origen, 185년 경-254년 경) 자기 성기를 잘라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면 요즘 성범죄자들 중에 49명이 스스로 그것을 원하여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도 화학적 거세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으로부터 죄가 나왔고, 그것을 잘라서 그 욕정이 제거된다면 말이다.

온 나라가 조두순에 대하여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조 씨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런 자의 죄와 황규학 씨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학벌도 다르고 신분도 다르다. 황규학 씨는 소위 S 대학 출신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목사요 또 주제에 기독언론인이다.

황 씨는 자신의 학벌을 늘 자랑하고 싶어하고, 초등학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어 실력을 가지고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가방끈을 은근히 자랑하다가 창피를 당한 일이 있다.

1)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49
2)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73

그는 그 후부터 다시는 가방끈을 운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살아 있나 보다. 무엇이 황 씨로 이렇게 용기를 가지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오직 ‘무식해서 용감한 자’가 되었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필자는 코로나를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잘 모른다. 코로나의 정국이지만 담임 목사로 결혼 주례도 해야 했고, 장례식도 인도해야 했다. 그리고 피치 못한 회의도 있었고 기타 교회 일들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코로나에 걸린 모양인데(혹시 오차 범위 안의 오진은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그것이 필자의 경건과 영성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황 씨가 지은 성추행과 절도는 그의 경건과 영성과 관계가 있을지 몰라도 필자의 경건과 영성과 코로나는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처럼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이 전쟁을 할 때, 원수에 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있고,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있다. 전쟁을 한다고 화학 무기를 쓰고 원자폭탄을 사용하고 세균전을 할 수는 없다. 극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를 그냥 길거리에서 칼로 난도질을 해서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황 씨가 필자를 아무리 원수시하더라도(원수시할 자격도 없는 인간이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무서운 코로나에 걸렸다면, 혹 속으로 기뻐도 형식적으로는 동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해야 인간의 기본과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황 씨가 필자의 자녀 문제를 가지고 가끔 글도 쓰고, 필자에게 협박 문자를 직접 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것을 핑계 삼아 교계의 몇 목사들이 나서서 그와 그 처를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해주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지만, 본 글에서 취급하지 않겠다. 필자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필자도 얼마든지 그들에게 황규학 씨의 실상을 잘 알려줄 수 있다(물론 그 처는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로나 글로도 거론하지 않았다. 이것이 처음이다. 그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 씨는 필자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호기라도 만난 듯 즐기고 나아가 죄와 연결시켜 저주까지 하는 걸 보니 그것 자체가 정신적 중병 내지 영적 중병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황 씨가 주장하는 경건과 영성의 현주소다. 황 씨가 추구하는 경건과 영성은 성추행과 절도미수 등의 범죄들과 잘 어울리는 경건과 영성이다. 그가 살아온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또 위의 주장이 그러하다.

이번에 필자가 받은 코로나 조사 방법은 ‘PCR검사’라고 하여 ‘유전자증폭 검사’ 내지 ‘핵산증폭검사’라고 하는 것을 글로 보았다. 검사의 신뢰성을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 한 사람도 감염자가 없다. 아내마저 격리로 끝났고, 부 목사님 한 분마저 13일 주일로 해지되어 퇴원하였다. 아마 황 씨는 필자가 코로나로 인하여 더 큰 어려움을 겪기를 기대하고 고대했음을 위 글로 알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다. 그것이 그동안 황규학 씨가 보인 인격이요, 경건이요, 영성이 분명하다.

질병의 책임을 경건과 영성의 문제로 보면 역사적으로 훌륭한 목회자들과 성자들의 질병도 저주가 되고 만다.
코로나를 경건과 영성의 문제로 보는 황규학 씨의 말대로라면, 암이나 불치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분들은 다 경건과 영성의 문제를 가졌던 분이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일전에 황 씨가 세습을 반대하던 김동호 목사가 암에 걸렸을 때도, 그 암이 세습을 반대한 죄의 결과인 것처럼 쓴 글을 보고 황 씨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칼빈(John Calvin, 1509년 7월 10일-1564년 5월 27일)부터 보자. 그는 ‘살아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할 만큼 많은 질병들을 가지고 살았다. 황 씨의 주장으로 하면 그것이 칼빈의 경건과 영성의 문제라고 해야 맞을 말이다. 기가 차서 할 말을 못하겠다. 그리고 다음은 최대의 설교가 중에 설교가인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년 6월 19일-1892년 1월 31일) 목사다. 스펄전 목사는 우울증으로 시달렸다. 역시 황 씨의 주장으로 하면 스펄전의 경건과 영성에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 되고 만다.

칼빈은 그 병든 몸으로 수많은 책을 썼고 불후의 명저 기독교강요를 남겼고, 위대한 종교개혁을 완성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나 반대로 황 씨는 경건하게 살고 풍성한 영성으로 산 결과가 성추행이나 하고, 도적질이나 하고, 이단들을 상습적으로 옹호하고, 세상 사람조차 그토록 싫어하는 세습을 옹호하여 명성교회의 후원을 받고, 한국교회 참신한 분들을 괴롭혀 어렵게 만들고, 법정에서 판결을 받아 물어야 할 벌금을 내지 않으려고 재산을 숨기고, 통합측 교단지인 <한국기독공보>와 유사한 가짜 <기독공보>란 언론들을 만들어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는 짓을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경건이요 영성이다.

한 분 더 예를 들어보자. 한경직(韓景職, 1902년 12월 29일-2000년 4월 19일) 목사다. 한 목사님은 미국 프린스턴에서 유학을 할 당시 폐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렇지만 후에 한 목사님은 건강해지셔서 장수하셨다. 그렇다면 한 목사님이 폐병에 시달릴 때는 경건과 영성에 문제가 있다가, 후에 바른 경건과 영성을 회복하여 건강해지셨다는 말이 되고 만다.

이 관점에서 황규학 씨의 경건과 영성을 분석하면 재미가 있게 된다. 황 씨의 경건과 영성의 분기점을 성추행과 절도미수 사건 전과 후로 나누어서 분석하면 쉬어진다. 황 씨는 지하철에서 낯 모르는 여자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그에게 넘치는 건강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병든 자는 성추행을 할 마음조차 가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황 씨는 경건하게 살고 영적으로 살아 하나님으로부터 건강을 얻었고, 그 건강으로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을 지하철에서 풀려고 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경건한 삶과 영성 있는 삶의 결과는 결국 죄를 짓게 한 것이다. 이것이 황규학 씨가 주장하는 경건과 영성이 분명하다. 황 씨는 알아야 한다. 차라리 병이 들어 성추행은 못 해도 칼빈처럼 사는 것이 참 경건이요 참 영성이다. 부자로 사는 것보다 그 문에서 빌어먹고 사는 나사로로 사는 것이 영적으로 낫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언젠가 필자가 ‘인간은 성적 존재다’라는 말을 설교 중에 한 일이 있다. 그랬더니 그 말을 가지고 트집을 잡은 일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성적 존재라는 점을 가장 잘 보여준 표본이 바로 황 씨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다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지성인만 되어도 진정한 지성인은 그 욕망을 이성으로 다스린다. 그보다 성도는 성령으로 그 육체의 정욕을 죽여 이겨내는 것이다.

만일 황 씨가 지금은 과거처럼 성추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훈련이 혹 되었다면(모르지만), 황 씨는 경건하고 풍성한 영성으로 살아 넘치는 정욕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이 되어 위 주장은 틀린 말이 되고 만다. 황 씨가 대답할 차례다.

실제로 필자는 입원하여 며칠 동안 울며 살았다. 필자의 경미한 코로나 증상 때문에 흘린 감사의 눈물이기도 하였고, 그보다 우리 교회가 집단 감염지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기도 하였다.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만일 우리 교회에서 코로나 몇 명만 더 나왔다고 하여도 이단들과 이단옹호 언론들은 난리를 쳤을 것이다. 황규학 씨나 <크리스천투데이> 같은 언론들을 말하는 것이다. 황 씨의 글을 보니 지금 더욱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필자에게 ‘금식을 하고 철야기도를 해야 한다’는 한 주장에 대하여
처음에는 ‘필자가 코로나에 걸렸으니 금식을 하고 철야기도를 하며 회개하라’는 말로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말이었다.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는가? 그가 “목사로서 평상시 출타를 금지하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철야기도하는 모습으로 임해야 했다”라고 한 말 중에 “목사로서 평상시 출타를 금지하고”라는 글을 보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지금 황 씨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늘 철야하고 항상 금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러한가? 황 씨는 얼마나 금식을 해보았고, 철야를 해 보았는지 모를 일이다. 만일 황 씨가 철야와 금식에 힘쓰는 사람이라면(그렇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게 찬란한 죄들을 지을 수는 없다. 아마 황 씨는 코로나 환자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을 사람이란 말처럼 들린다. 제발 필자의 글에 대하여 반론을 해주기 기대한다.

하기야 황규학 씨야 말로 밖에 돌아다니며 다른 여자들을 보지 말고 항상 집에서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뒤에서 여자를 보고도 욕정이 올라오는 사람이라면, 예쁜 여자를 뒤가 아니라 앞에서 본다면, 전보다 10배 100배 더 강한 욕정이 올라와 과거보다 더 끔찍한 죄를 짓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목사가 양성 확진 판정되어 교회가 마비되었다면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이다”라고 한 점에 대하여
질병은 목사도 걸린다. 성자도 걸린다. 경건한 성도도 걸린다. 만일 우리가 ‘참새 한 마리도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그 절대 주권을 인정한다면, 황규학 씨처럼 감히 그렇게 미련한 소리를 지껄일 수는 없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필자든 다른 성도든, 우리를 부르실 때 코로나나 암이나 혹 사고로 부르신다고 해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기쁘게 주님에게 갈 것이다.

누구든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남에게 높은 윤리를 요구하고 자신은 낮은 윤리로 살 수 없다. 반대로 살아야 한다. 남에게 높은 책임을 요구하려면 자기는 그보다 1m라도 더 높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렇지 못할 때 바울처럼 자신을 치며 회개해야 한다. 황규학 씨는 반대로 사는 자 같다. 그토록 이단들을 옹호하여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러운 죄를 짓고도 자기가 가장 의로운 사람처럼 하는 그것이 그 증거다.

코로나로 인하여 <빛과소금교회>가 온라인 예배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 점에 대하여
황 씨가 윗글을 쓴 때는 12월 7일 월요일이다. 그런데 하루 전 6일에 유튜브에 들어가 <빛과소금교회> 온라인 예배 상황을 한 번만 확인했다고 해도 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황 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마 그는 진실을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하고 필자를 나쁘게 말하고 싶어서 원하는 대로 글을 썼을 확률이 높다. 그는 거짓의 챔피언이다.

12월 6일 주일은 한국교회가 코로나 환자가 없어도 대부분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필자는 양성 반응이 나오자마자 온라인 예배를 미리 다 준비해주고 병원으로 떠났다. 우리 교회나 다른 교회나 결과적으로 같았다. 본 교회는 청장년 예배를 4부로 드린다. 그런데 한참 후에 그 횟수를 보니 1부가 822회이며, 2부가 748회이며, 3부나 511회였다. 황 씨란 자가 조금만 정확도가 있고, 정직이 있고, 지혜가 있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인생의 선배로, 그래도 2년씩이나, 비록 작은 것이지만 헌금까지 해 준 은혜를 입힌 사람으로 그에게 엄히 충고한다. 성추행하고 도적질하는 경건과 영성이 참 경건이요 영성이 아님을 알고, 이렇게 되나 안 되나 맘대로 지껄여 한국 교계에 쓰레기만 쌓는 가롯 유다의 길을 가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도 한국교회도 황 씨가 주장하는 그런 경건과 영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 <어둠과 소금교회>라고 해야 한다면, 그러면 이제는 우리 교회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지, 아니면 그간 온라인으로 예배한 모든 교회들도 다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답해 주기 바란다.

우리 주님이 피의 값으로 산 교회 이름을 가지고 이렇게 가십거리를 삼고 조롱거리로 삼는 것은 성령의 경건과 영성이 아니라 사탄의 경건과 영성이다. 제안한다. 차제에 황규학 씨는 자신의 이름을 황추행’, ‘황절도’, ‘황허위’, ‘황훼손’, 또는 황섹스라고 하면 어떨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빛과 소금교회>에 들어갈 수도 없기에 수목장을 한 분들이 부활하기 어렵다고 한 점에 대하여
그의 글을 그대로 먼저 다시 인용한다. “옆 마당에는 빛과 소금교회에서 부활하실 성도들이라는 돌비석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빛과 소금교회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교회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여 성도가 부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황 씨의 신앙이요 신학이요 부활관이다. 부활은 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만 가능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그의 신앙과 신학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누구의 신학이 그러한가? 그러면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린 교회의 성도들은 부활할 수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황 씨는 필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되든 안 되든 지껄이다보니 이런 비신학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주장을 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싸워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다. 다윗은 그래서 사울의 목을 치지 않았던 것이다.

황 씨는 알아야 한다. 부활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란 점이다. 주일 예배를 드렸느냐 아니냐에 의하여 부활이 이루어지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혹 성도가 바다에 빠져 상어들이 그 성도를 나누어 먹고, 혹 다른 많은 물고기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면 그의 부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온몸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다 분해되어 없어졌다고 하여도, 성도들이 부활할 수 있는 것은 부활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황규학 씨가 신학을 한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필자를 공격할 때는 논리도 윤리도 신학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황 씨가 분명하다.
 

결론: 황 씨를 의지하고, 또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특히 명성교회와 같은)은 왜 이렇게 형편없는 자를 의지하는가 알고 싶다

필자는 인생을 살면 살수록 느끼는 한 가지 진리가 있는데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다. 절대로 진실한 사람은 거짓된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지 않는다. 의인은 죄인의 자리에 앉지 않고, 애국자와 매국노는 서로 친할 수 없고, 영적 성도와 육적 성도가 친할 수 없다.

솔직히 필자가 이런 황규학 씨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신앙과 윤리의 수준을 알게 된다. 그나마 이단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상습적 이단옹호자’이며 ‘상습적 이단옹호 언론을 운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교회 안에서 그를 필요로 하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중에 대표적인 교회는 세습으로 교단과 한국교회를 수렁에 빠지게 한 명성교회다. 아무리 세습을 하고 싶고 세습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이런 자를 의지하여 세습 논리를 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명성교회가 황 씨 같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보면, 명성교회도 겉으로는 세습이 정당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것이 잘못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황규학 씨나 최경구 씨 같은 사람을 의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분명하다.

참 성도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 굶어 죽게 되었더라도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정도는 구별하는 법이다. ()은 절대로 악()한 방법으로 이룰 수 없다. 선은 선한 방법이 아니면 이룰 수 없다. 선을 악한 방법으로 이루었다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 분명하다. 두 개의 성구로 글을 맺는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전 6:14-16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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