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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홍치모 교수 7주기 추모 특별 대담
2020년 11월 19일 (목) 11:24:30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홍성애 권사/ 낙산 홍치모 교수의 장녀, 주안장로교회(담임: 주승중 목사) 시무 권사

   
▲ 홍치모 교수 장녀 홍성애 권사

최은수 교수: 낙산 홍치모 교수님의 7주기가 11월 22일인데요. 교수님의 장녀되신 권사님과 특별 대담을 갖게 되어 그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 홍치모 교수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를 하자면, 교수님은 평양 상고에 재학하시면서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씨에게서 배우셨고, 경기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사학과 졸업, 영국에서 종교개혁사를 전공하셨습니다. 낙산 선생님은 한국 교회사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역사학계에 종교개혁사를 정립시킨 분입니다. 명실공히 한국 교회사학계의 1세대 대부이시지요. 저를 포함하여 낙산 선생을 추억하는 많은 분이 아직도 교수님이 곁에 계신 것처럼 느낄 정도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수님에 대한 언급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그만큼 교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반증이겠지요. 제가 아직도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7년 전에 교수님의 소천하셨다는 전갈을 받고도 미국의 추수감사절 일정과 겹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해외에 있던 많은 제자들이나 후학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낙산 선생님의 장녀로서 가족을 대표해서 7주기를 맞는 소회가 어떠하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홍성애 권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 나라와 교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셨던 아버지가 곁을 떠나신 지 벌써 아름다운 숫자 7주기가 되었다니 문득문득 아버지가 그립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부재가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하네요.

최은수 교수: 권사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지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월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요. 아직도 교수님이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로 ‘임자’하고 부르시던 음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교수님은 제자들과 지인들을 항상 그렇게 불렀어요. 교회와 신앙에 ‘성경 기도 해설’을 인기리에 연재하시고 계시는 김정훈 교수님도 낙산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시면서 이런 호칭을 자주 말씀하시거든요. 참으로 정감 넘치는 호칭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메밀국수를 좋아하셔서 즐겨 드시던 모습도 그렇구요. 권사님에게 너무나도 많은 추억들이 있으시겠지만, 낙산 홍치모 교수님과의 추억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무엇인지요?

   
▲ 홍치모 교수와 홍성애 권사

홍성애 권사: 고2 때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저의 가치관으로는 전혀 해결이 안 되는 의문점을 성경말씀(약 4장 2~3절)으로 딱 풀어 주시던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러웠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책 내용에 등장하는 사탄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아직 순수한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이 그래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탄의 주장과 똑같다니 나도 사탄인가? 깜짝 놀랬죠. 사탄의 주장은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고 또 구하는데 자신들의 생활은 나아지는 것이 없고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사탄의 주장이었어요. 그때 아버지께 이 책 내용을 말씀드렸죠. 빙그레 웃으시며 야고보서 4 2~3절을 펼쳐 주셨는데 정말 할렐루야였죠.

최은수 교수: 참으로 교수님다운 현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종종 안타까운 교계 현실을 바라보시면서 신앙은 보수가 좋은데, 행동은 개차반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보수가 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예장 통합이나 기장 쪽 사람들이 더 신사적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사실 교수님은 진보냐 보수냐를 가리지 않고 폭 넓은 인맥을 자랑하셨지요. 심지어 타종교 사람들과도 인간관계를 잘 하셨으니 말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시무 권사로 계시는 주안장로교회의 주승중 목사님도 낙산 선생님을 잘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권사님이 주승중 목사님을 뵈러 가셨을 때, 홍치모 교수님의 장녀인 것을 알고 예의를 다해 교수님에 대한 존경을 표하셨다고 말입니다. 어떤 경우는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분들도 낙산 선생님을 아시고 그 분과의 추억을 말씀하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경험했구요. 낙산 홍치모 교수님의 신앙적인 가르침과 자주 말씀하셨던 교훈들은 무엇이었는지요?

   
▲ 박윤선 교수와 홍치모 교수

홍성애 권사: 아버지는 순리대로 하라는 이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게 잠언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아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날짜에 마쳐서 잠언 말씀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최은수 교수: ‘순리대로’라는 한 마디가 요즘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 외침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토록 쉬운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거스리려고 온갖 에너지를 낭비하고 스스로 지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교수님은 가끔 순리대로 살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물 흐르듯이 살라우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적인 흐름을 따라야지 자꾸 거스르려고 하니 사람들이 피곤하고 사회가 메마르고 국가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은 흐르다가 막히면 멈추고, 일정 부분 차오르면 다시 흐르고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적인 인내심도 부족해서 억지로 하려고 하는데, 돌이켜 보면 나아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빨리 간 것도 아니고 하거든요.

제가 교수님과 함께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영국에서 박사 과정 거의 끝나갈 즈음에 교수님이 방문하셔서 함께 여행을 떠났었지요. 기차도 타고 렌트카를 빌려서 잉글랜드와 웨일즈까지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청교도들의 유적을 찾아다녔었습니다. 교수님은 청교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셨고, 작은 흔적 하나에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시며 교훈을 얻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권사님이 부친과 함께했던 여행 중에 교회사나 종교개혁과 연관된 장소가 있었다면 교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고, 어떤 역사적 입장을 말씀하셨는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홍성애 권사: 미국에 갔었을 때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아버지와 제가 유럽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무산됐어요. 너무 아쉬웠지요. 대신 뉴욕에 살고 계시던 최재건 목사님과 몇몇 제자 목사님들과 보스톤의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을 방문하고 좀 더 멀리 떨어진 필라델피아에 가서 청교도들이 세운 임시 정부 건물을 방문했는데 빨간 벽돌로 지어진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건물이었어요. 아버지는 이 건물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며 청교도들의 생활 등에 대하여 말씀하셨어요. 작은 종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유럽 종교개혁 현장을 못 간 것은 정말 아쉬워요.

최은수 교수: 그런 아쉬움이 있으셨군요. 아쉬움은 아쉬운대로 또 다른 추억이니 소중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수님은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첫째는 언어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둘째는 깨알론을 주장하시면서 무슨 논문이든 깨알같이 작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독창성이 있다고 강변하셨습니다. 권사님을 비롯하여 자녀들과 손주들을 보시면서 교수님이 주신 가르침은 무엇이었는지요?

   
▲ 홍치모 교수의 사모 최은자 권사, 장녀 홍성애 권사, 차녀 홍정애 집사

홍성애 권사: 아버지는 동생과 저에게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아버지는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저희들의 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하셨던 가르침이요 당부의 말씀이었죠.

최은수 교수: 낙산 선생님은 박윤선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종종 박윤선 교수님과의 추억을 말씀하시면서, 한 때는 박윤선 교수님의 댁에서 숙식하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셨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당시 총신대학교가 교권주의자들의 횡포로 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은 박윤선 교수님을 중심으로 합동신학대학원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낙산 선생은 박윤선 교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총신대학교에 남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홍치모 교수님은 역사가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셨지요. 지금 한국 기독교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면서, 만일 교수님이 생존해 계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 것 같은지요?

홍성애 권사: 아마도 살아계셨더라면 ‘아이고 두야 머리두’라는 말씀을 TV 앞에서 무릎을 치시며 매일 하셨을 듯합니다. 아마도 어려운 말로 정돈된 말로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이 정도로 하지요.

최은수 교수: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가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중간에 지도를 그만두어야 했던 박사과정에 있던 분들이 몇 분 있었는데, 그 중에 부산외대의 신재철 교수님이 본인의 박사 논문 심사를 하는데 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홍치모 교수님은 신재철 교수님의 논문에 등장하는 예장 고려 교단의 제왕과 같은 교권주의자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그 분에 대해서 아직 역사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라 여기셔서 논문심사위원에서 빼 달라고 하셨었지요. 하지만 교수님은 항상 정도를 걸으시기 때문에 그 이후로 신재철 교수님과 자주 왕래하시면서 역사적 진실을 깨닫고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셨던 분들이 총신대 심창섭 교수님, 고신대 이상규 교수님, 고신대 이복수 교수님 등이셨어요. 이 논문 심사가 홍치모 교수님이 하셨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심사였지요. 제가 알기로는, 이 때의 인연으로 신재철 교수님이 홍치모 교수님의 장례 과정에도 물심양면으로 수고하셨고, 오랜 인연을 이어오신 이상규 교수님 등도 멀리 부산에서 상경하시어 교수님의 마지막 길에 동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분들과의 동행이었다고 봅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홍치모 교수님을 추억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주시겠습니까?

홍성애 권사: 먼저 감사드린다는 말씀이고 세월이 갈수록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은 산소와 같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치모 교수님을 아는 분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고 계시는 분들이니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다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홍치모 교수님의 딸로서 주님 안에서 평안과 강건함이 늘 모든 분에게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은수교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신 권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래는 올해 낙산 선생님의 7주기를 맞이하여 낙산 홍치모 교수 기념 강좌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일단은 10주기를 기념해서 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의 7주기를 맞이하여 가족 모임이 11월 20일에 있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교수님의 사모님이신 최은자 권사님과 동생 되시는 홍정애 집사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고, 가족 모두에게 주님이 진정한 위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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