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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박진영 씨가 전하려는 복음 ‘참~이상해’
분석 / 박진영 씨의 신간 <무엇을 위해 살죠?>
2020년 11월 11일 (수) 14:33:03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박진영 씨(JYP 엔터네인먼트 CCO)가 최근 <무엇을 위해 살죠?>(은행나무, 2020, 8월 1쇄)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주제는 인문학에서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박진영 씨는 그 질문에 대해 그의 책 후반부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즉,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라고까지 말했다(박진영, 246).

   
▲ 박진영 씨 책 <무엇을 위해 살죠?>

또한 그는 책 표지 뒷면에 “내 인생은 이 책을 내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고까지 하며 자신의 책에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보면, 박진영 씨의 버킷리스트, 즉 복음을 전하며 살겠다고 다짐이 ‘소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여느 기독교인들의 소명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박진영 씨를 보통의 크리스천이라고 여겨도 괜찮을까?

그런데 박진영 씨가 전하려는 ‘복음’이라는 것을 조금만 깊게 살펴보면 ‘참~ 이상하다’는 점이 발견된다. 그의 책을 통해 드러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여느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복음과 적지 않게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박진영 씨 스스로도 인정하리라 본다. 자신이 전하려는 복음이 보통의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고 또 전하려는 복음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유는 박진영 씨가 기독교인들에게도 자신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박진영 씨는 여느 기독교인을 ‘구원 받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는 듯하다. 박진영 씨는 모태신앙인이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열심히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알려진 이에게도 자신의 복음을 전하려고 애쓴다. 그러한 모습이 그의 책에 잘 나타나 있다. 도대체 그가 전하려는 복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직접 살펴보자.
 

천국에 가는 기준은?

대화가 깊어지면서 나는 그분이 천국에 가는 기준을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착한 크리스천으로 살면 천국에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천국에 가려면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쓰인 구절을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괴 되나니’(야고보서 2장 10절)”(박진영, pp.239-240)

   
박진영 씨는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이상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박진영 씨는 종종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달려간다고 했다(박진영, p.238). 한 번은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A 씨를 찾아갔다. 그는 말기 암 환자로 매우 위독한 상태였다고 했다. 박진영 씨는 그에게 ‘복음’을 전한다며 ‘천국에 가려면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했다. 자신의 메시지에 해당되는 성경구절인 야고보서 2장 10절의 말씀도 그 환자에게 전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박진영 씨는 모태신앙이며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착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A 씨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한 내용이다.

위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국에 가는 기준’이라는 주제에 대해 박진영 씨와 암 환자인 A 씨가 만나 대화한 것이다. ‘천국 가는 기준’에 대한 박진영 씨의 질문에 A 씨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럴 경우 흔히 ‘예수 믿음’이라고 답하는 게 보편적이다. A 씨도 그렇게 답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음’이라고 누구든지 교정을 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A 씨의 대답에 박진영 씨가 교정을 해 주었다. ‘천국 가는 기준’에 대해 자신이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박진영 씨의 답이 이상하다. 박진영 씨는 ‘천국에 가려면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흔히 ‘예수 믿음’이라고 답하려는 것과 차이가 난다. 그것을 박진영 씨는 크리스천인 A 씨에게 소위 ‘복음’이라며 전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태신앙으로 ‘예수 믿음’이 있다고 언급된 A 씨에게 박진영 씨는 ‘죄 없음’이라는 자신의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A 씨와 박진영 씨의 대화 이후의 모습도 계속 살펴보자. 그의 책에 기록된 장면이다. A 씨가 박진영 씨가 전한 소위 ‘죄 없음’이라는 내용의 ‘복음(?)’에 대해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진영 씨가 언급한 A 씨의 반응을 직접 살펴보자.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지금 제 상황에 ... 제가 모태신앙이라서... 피곤하네요”(박진영, p.240)

박진영 씨는 말기 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그에게 ‘복음’이라며 약 2:10절인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는 구절을 불쑥 내밀었다. 그러자 A 씨는 적지 않게 당황한 듯했다. A 씨는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모태신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박진영 씨는 A 씨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진영 씨는 그 A 씨의 반응을 이렇게 해석했다. “본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하나도 없다는 확신이 없어서 그 구절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이다. 자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A 씨의 ‘탓’으로 돌렸다. 자신의 메시지에 A 씨가 ‘굉장히 무섭게’ 느꼈을 것이라며 엉뚱한 해석을 했다.

박진영 씨의 아전인수격 상황 인식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박진영 씨는 “사람은 보통 죽음 앞에선 양심이 살아나는데 그분의 경우, 자존심이 양심을 가로막은 것 같다”고 했다(박진영, p.240). A 씨의 ‘자존심’이 ‘양심’보다 강해서 자신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며 A 씨의 반응을 매우 부정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평생을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며 착한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A 씨가 박진영 씨를 만나고 왜 당황했을까? A 씨는 과연 자신의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박진영 씨의 ‘이상한 복음’ 때문일까?

결국 A 씨는 숨을 거두었다. 박진영 씨는 A 씨가 천국에 가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진영 씨는 자신의 책에 “절망감에 병실을 나(왔다)”고 기록했다. 박진영 씨는 A 씨를 만나 ‘천국에 가는 기준’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한 후 절망감을 안고 병실을 나왔다고 했다. 박진영 씨는 “천국에 가게 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지옥에 가는 걸 의미”한다는 말도 덧붙였다(박진영, p.242). 박진영 씨가 전하는 복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착한 크리스천도 지옥에 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

박진영 씨는 믿음이,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으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을 ‘인간의 믿음’과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이라는 말로 이해를 했다. 그는 편의상 ‘믿음1’과 ‘믿음2’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런 박 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믿음1 = 믿는 것 = 인간의 믿음
믿음2 = 믿어지는 것 =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

   
▲ 박진영 씨는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을 믿음1과 믿음2로 나눈다

박진영 씨는 자신이 이렇게 ‘믿음’을 ‘믿음1’과 ‘믿음2’로 나누는 이유도 설명했다. 바로 로마서 1:17절 등의 성경구절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씨는 자신의 논리적 이해를 위해 성경 해석에 자의적으로 손을 대고 말았다. 롬1:17절의 ‘믿음’이라는 단어를 ‘믿음1’과 ‘믿음2’로 구분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박 씨의 성경 해석이 옳은지 살펴보자. 먼저 롬1:17의 성경구절이다. 아래와 같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롬1:17)

위 구절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모두 3개 등장한다. 박 씨는 위 성경구절에서 밑줄 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대목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논리에 그 구절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해결한 방법이 믿음을 2가지로 나누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믿는 것’ 즉 ‘인간의 믿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믿어지는 것’ 즉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박 씨는 위 성경구절에 나타난 첫 번째 단어인 믿음을 ‘믿음1’로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어인 믿음을 각각 ‘믿음2’로 구분했다. 그래서 박 씨는 롬1:17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1으로 믿음2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2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롬1:17)

박 씨의 롬1:17절 중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부분을 ‘인간의 믿음이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자신의 논리에 맞다고 본 모양이다. 그럴까? 조금 더 깊게 살펴보자.

가. 여러 번역 성경을 통해
이제 하나씩 살펴보자. 박 씨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먼저 롬1:17절에 대한 다른 번역본 성경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혹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개정개역)이 ‘믿음’에 대해서 놓치고 있는 것은 있는 점검해 보자.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롬1:17, 표준새번역성경)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롬1:17, 공동번역성경)

표준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경의 예를 살펴보았다. 개역개정성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공동번역성경을 보면 ‘오직 믿음’만을 강조할 뿐, 박진영 씨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 영어성경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 역동적인 번역 원칙을 가지고 있는 NIV와 헬라어성경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KJV 등을 통해 살펴보자.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롬1:7, NIV)

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롬1:17, NASB)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롬1:17, KJV)

역동적인 번역 원칙의 대표적 성경인 NIV는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라고 표현했다. 번역해 보면 ‘의라는 것은 믿음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 것’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온전한 믿음’ 또는 ‘믿음 전체’ 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NIV 성경보다 원문에 가까운 번역 원칙으로 기록된 KJV는 어떠한가.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라고 기록했다. ‘하나님의 의는 온전한 믿음(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까지)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에 의한 것, 역시 ‘온전한 믿음’을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영어 성경 어디에서도 박진영 씨의 주장처럼 믿음을 ‘믿음1’과 ‘믿음2’라고 나누는 개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 헬라어성경을 통해
헬라어성경도 살펴보자. 롬1:17 내용은 아래와 같다.

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κ πστεως ες πστι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κ πστεως ζήσεται”(롬1:17, 헬라어성경)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이라는 단어가 역시 3곳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처음 두 개의 단어 형태가 다르다. ἐκ πίστεως와 εἰς πίστιν로 말이다. 에크(ἐκ)와 에이스(εἰς)는 전치사다. 이것이 박진영 씨가 주장한 믿음을 ‘믿음1’과 ‘믿음2’로 나눈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세 번째 나타나는 믿음의 단어 형태(ἐκ πίστεως)를 본 후, 바로 ‘박 씨의 주장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박 씨의 주장에 따르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어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헬라어성경 본문에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가 같은 형태로 나와 있다.

헬라어 문법을 잠시 살펴보자. 헬라어성경 롬1:17에 나타난 3개의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단어는 모두 동일하다. 각각이 두 개의 전치사 ἐκ(from, out of)와 εἰς(to, into)로 연결된다. 헬라어 문법에 전치사 에크(ἐκ) 다음에는 소유격 명사가 오고, 전치사 에이스(εἰς) 다음에는 목적격 명사가 온다. 영어나 한국어와 전치사 사용법이 다르다. 따라서 전치사 에크(ἐκ) 다음에 믿음(πίστις)의 소유격인 πίστεως(피스테오스)가 온 것이고, 전치사 에이스(εἰς) 다음에는 믿음(πίστις)의 목적격인 πίστιν(피스틴)이 온 것일 뿐이다. 세 번째 단어도 마찬가지다. 전치사 에크(ἐκ) 다음에 소유격인 πίστεως(피스테오스)가 온 것이다. 3개의 단어 모두가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동일한 단어다. 박 씨의 주장처럼 2개의 믿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 박진영 씨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언급한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믿음으로 믿음에)는 어떤 의미일까? 이제는 구분법으로 접근해보자. ‘ἐκ... εἰς...’는 관용구다. 이때 에크(ἐκ)는 시작점을 나타내고, 에이스(εἰς)는 종점을 의미한다. 즉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는 ‘믿음의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위 영어성경 NIV에서 표현한 대로 “by faith from first to last”와 동일하다. ‘온전한 믿음’ 또는 ‘완전한 믿음’이라는 의미다. 논리상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 주석가들의 견해를 통해
이제는 주석가들의 견해를 살펴보자.
JA 에머튼은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에 대해 “ ‘sola fide’(오직 믿음만으로)의 ‘sola’(오직)와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JA에머튼, CEB그랜필드, ICC 국제비평주석 로마서 1, 도서출판 로고서, p.175).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롬1:17절의 의미를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와 연결시켰다. ‘믿음’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갑종 교수는 “종말론적인 이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인 계시로써 복음이 내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설명했다(두란노 HOW 주석, 로마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240). 변함없는 지속적인 믿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제임스 던은 WBC 주석을 통해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에 대해 “바울이 보기에 이러한 유대인의 정의는 인간의 편에서의 믿음만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라는 근본적인 인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그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전적인 의존을 예증으로 삼아 분석한다”고 했다(제임스 던, WCC 로마서 1-8, 도서출판 솔로몬, pp.156-157). 즉, 유대인과 같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의존을 강조한 의미라고 언급했다.

이상으로 살펴볼 때, 롬1:17절의 ‘믿음’이라는 3개의 단어를 ‘믿음1’과 ‘믿음2’로 나눌 수 있다는 박진영 씨의 주장은 한 마디로 비성경적인 엉뚱한 궤변에 불과하다. 박진영 씨가 전하려는 ‘복음’이라는 것, 그리고 성경 이해, '참~ 이상하다.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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