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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7)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13)
2020년 07월 22일 (수) 12:08:48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 미국 리폼드 신학대헉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화평케 함
화평케 하는 자의 삶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모습을 본받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가장 탁월한 피스메이커이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이 평화롭게 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어내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9절). 평화에 대한 표현은 성경에 많이 나오지만 ‘화평케 하는 자’라는 특수한 표현은 신약 전체에서 마태복음 5:9에서만 발견된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단지 '평화를 유지하는 자'(peace-keeper)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자'(peace-maker)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마운스(Robert H, Mounce)는 "예수님이 명하신 평화는 단지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고, 문제에 직면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일해서 얻는 평화이다"라고 하였다.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일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평화가 무너진 상황을 전제로 한다. 선교사는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고, 그 속에서 일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를 이루어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는 먼저 하나님이 평화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가장 탁월한 피스메이커(the supreme peace maker)'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하신 것은 그 아들의 희생이었다. 뭔가 희생이 없이는 결코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시고 희생시키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쳤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므로 하나님은 그와 인간 사이에 놓여있던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시고 화목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희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화평케 하는 자로 살려면 그 일을 스스로 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신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는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화목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은 그와 화목을 이룬 자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맡기신다. 이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하였다. 따라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이 맡겨주실 때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화평케 하는 일은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할 때'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에 대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평화를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에 이르기까지 전하셨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사역의 지향점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이루신 평화를 이 땅에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평화의 복음을 전하므로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하는 사역에 헌신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무너진 평화를 회복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님이 명하신 것처럼 ‘화평케 하는 자’(οἱ εἰρηνοποιοί)가 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악과 싸워야 하고 자기희생을 통하여 선을 실천해야 한다. 평화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곳'에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했던 성 프란시스(St. Francis)의 기도는 사실 ‘선교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에 헌신자들이 가는 곳, 머무는 곳마다 그들의 삶을 통해 평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헌신자들이 무엇보다 먼저 피스메이커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삶의 현장은 가정이다. 가정의 평화가 깨지면 다른 평화도 있을 수 없다. 잠언은 가정의 평화를 매우 소중한 것을 보여주면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하였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소중한 것이 가정의 평화라는 것이다. 헌신자들이 아무리 현장에서 사역을 많이 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할지라도 가정의 불화로 인해 그 가정이 무너지면 현장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역자들이 '목적 지향적‘이 되어 사역을 지나치게 추진하다 보면 가정의 평화가 무너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다. 헌신자의 가정에서 평화가 무너지면 오히려 사역 자체가 큰 고통이 될 수 있다. 어떤 해외 선교사 지망생은 자신이 선교사가 되는 것을 그의 아내가 동의하지 않아 가정에 큰 불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 경우 선교사로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정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가정이 무너지면서까지 선교지에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가정의 평화를 깨면서 다른 곳에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피스메이커로서 살아야 하는 또 다른 현장이 있다면 교회 공동체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하였다. 교회의 성도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된다면 모든 사역은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지역 교회는 선교를 실천하기도 전에 선교지와 선교의 방법의 이견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 교회가 그 일로 무너진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은 선교의 큰 원동력이 된다. 사탄은 이 시대 교회 안에 들어가 선교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평화를 무너지게 할 때가 많다. 하나됨이 무너지고 평화가 깨진 교회는 헌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선교는 평화를 가져오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먼저 예수님처럼 화목제가 되고 하나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희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과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길이 열리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화목케 하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 파송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나누어야 하는 가정, 교회, 선교 현장에서 피스메이커가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화평케 하는 일'에 헌신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9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화평케 하는 일을 실천하는 자를 사람들은 존경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도 그런 자들을 귀하게 여기실 것이다. 그 반대로 어느 공동체에서든지 불화를 조장하고 평화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은 사탄의 자녀처럼 살게 될 것이다. 사탄은 가는 곳이면 어디나 불화와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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