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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점의 파장은 크고 길었다
2020년 07월 06일 (월) 13:26:46 송길원 목사 happyhome1009@hanmail.net

송길원 목사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 송길원 목사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 ‘20세기 마지막 영성가’라 불린다. 헨리 나우웬을 헨리 나우웬으로 만든 것은 한 장의 그림이었다. 1983년 그는 고단한 순회 강연을 마치고 친구의 사무실을 찾는다. 지적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L'Arche)였다. 17세기에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다. 말할 수 없는 감흥에 젖는다. 헨리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원작을 찾아 나선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쥬(Hermitage) 미술관이다. 가로 1.8미터 세로 2.4미터의 원작 앞에 마주 선 그는 그림을 떠나지 못한다. 깊은 사색과 묵상에 잠긴다. 또 다음날 그곳을 찾는다. 이번에는 그가 아버지 품에 안긴다. 헨리 나우웬이 생애 마지막 10년을 보냈던 곳은 라르쉬였다. 라르쉬는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아버지의 집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꾼 또 하나의 그림이 있다.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1589~1623)가 그려낸 작품 《에케호모》(Ecce Homo) 앞에 선다. 에케호모는 빌라도가 신음처럼 내뱉은 말이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19:5)

빌라도의 말은 먹히지 않는다. ‘민란’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무너져 내린다. 군중들의 소리에 꺾이고 만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라는 아내의 간절한 청도 외면한다. 가장 비극적인 ‘국민참여재판’이 되고 만다. 겁먹은 빌라도는 끝내 손을 턴다.

   
 

빌라도의 ‘에케 호모’가 페티에 의해 색채시각으로 살아난다. 페티는 만토바에서 곤차가 가문의 궁정화가로 일했다. 고독하고 명상적인 인물을 묘사함에 탁월했다. 페티는 겨우 서른네 해의 짧은 생애를 살아냈다. 페티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독일 귀족의 아들이 그림 앞에 섰다. 4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10대에 기도의 능력을 알아 7개의 기도회 그룹을 스스로 조직했다. 그가 페티의 그림 앞에 선다.

“나는 너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지금, 너는, 무엇을...”

그리고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고백한다.

“주님,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을 위해 행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이 이끄시는 어떤 것이라도 행하겠습니다.”

19살의 청년 진젤도르프(Zinzendorf, 1700~1760)다. 그는 고향 드레스덴으로 돌아간다. 백작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진다. 오로지 그의 삶의 중심은 주님 한 분이었다. 그러던 중 체코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동한 모라비안 교도들(난민)을 만났다. 모라비안 교도는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Jan Hus)를 따르는 개신교도들이었다. 후스는 체코 프라하 소재 베들레헴 채플에서 1402년부터 1412년까지 10년간 라틴어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설교한다.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과 천주교 성직자들의 부패 등을 폭로했다. 마틴 루터보다 100여 년을 앞선 개혁주의자다. 1415년 끝내 소환된다. 화형으로 순교한다. 시대는 혼란했다. 핍박은 거셌고 혹독했다. 그들은 유럽으로 흩어졌다. 무려 3세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경건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진젤도르프는 그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내놓는다. 모라비안들에게는 항구와 같았다. 모라비안 형제회를 조직한다. 본격적인 경건주의 운동이 시작된다. 이 운동이 근대 선교의 불을 지핀다. 반딧불 같은 작은 불씨는 곳곳으로 흩어진다. 고아원의 아버지 조지 뮐러를 회심시켜 영국으로 보낸다. 그들에 의해 영향을 입은 요한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탄생된다. 그 불꽃이 한국에도 떨어진다. 1832년 7월,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다.

한국 땅을 밟았던 첫 선교사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 정식선교사가 아닌 방문선교사일 뿐이었다. 한 달도 채 머물지 못했다. 서른에서 하나가 모자란 스물아홉 살 때다. 자신의 고백대로 첫 발걸음은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 첫 전도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습니다. 조선에 어둠이 가고 속히 새벽이 와서 ‘밝은 날’이 오기를 다 같이 소망합니다.”

귀츨라프의 꿈은 헛되지 않았다. 조선 국왕에 의해 거절당했던 성경을 손에 든 선교사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선교대국(2위)이 되었다. 그가 건네 준 감자를 먹고 배고픔을 이겨내 어느새 건강대국(평균 여명 1위)이 되었다. 무럭무럭 자란 젊은이들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건아들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10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난에 찌들었던 나라가 경제강국(30/50기준 5위)에다 무역대국(6위)이 되었다. 변방의 반도국가가 문화강국(한류 미디어와 K-pop, BTS)을 이루었다. 교육강국(IQ 1위)에다 창조강국(ICT)이 되어 세계를 흔들고 있다. UN사무총장 WHO사무총장 세계은행총재 세계무역센터총재 등을 배출한 글로벌 인재가 많은 나라, 전쟁을 극복하고 분단의 긴장과 위협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정신 강국….

그가 말한 ‘밝은 날’은 그렇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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