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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의 보물창고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8)
2020년 06월 15일 (월) 13:34:52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정훈 교수 / 김정훈 교수는 영국 더람(Durham) 에서 제임스 던(James Dunn)의 지도로 석사를, 영국 글라스고(Glasgow)에서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지도로 박사를 취득하였고, 백석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The Significance of Clothing Imagery in the Pauline Corpus’ (T&T Clark), ‘바울 서신 연구’ ‘사도들의 설교와 신학’ ‘약속, 성취, 그리고 하나님 나라’ ‘작은 구름 한 조각’ 등이 있다. 현재는 B and C Mission Center 대표로 있다.

   
▲ 김정훈 교수

수평적-수직적 화목 공동체(엡 2:11-18)

본문은 1세기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실체와 본질에 대해 심도 있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바울은 교회가 무엇인지 말할 때 물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신비적 차원으로까지 끌고 나간다. 그러므로 그의 교회에 관한 이야기는 신비롭고 황홀하기까지 하다(참조. 엡 5:32). 앞에서 바울은 1세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교회가 유대인 그룹과 이방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사실 그들은 인종과 상관없이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의 상태에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승귀의 위치에까지 끌어 올려져 그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진술하였다. 이제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너희”)을 주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연합하게 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밝히고 있다. 본문 안의 “그때에”(11, 12절)와 “이제는”(13절)은 독자가 이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 과거와 현재의 틀 속으로 안내해 준다.

   
 

첫째, 과거에 이방인들은 영적 차원에서 볼 때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육신적으로 이방인이었다(11절 상). 그들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 즉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유대인들의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유대인들을 특별한 민족으로 세워주었더니 그들은 인간을 “우리”와 “너희”로 나누고 이방인들을 멸시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행위였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보편성은 구약시대 때부터 이방인들의 구원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편가르기 행위의 부당성이 믿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분별력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믿는 자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날카롭게 선을 그어야 할 대상인지, 인내로 참고 설득하며 기다려야 할 대상인지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 양의 가죽을 쓰고 나타나 교회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자라 불리는 자 곧 유대인에 의해 무할례자라 불리는 자들이었다(11절 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할례 받은 민족이라는데 대해 대단한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할례는 곧 하나님이 주신 의(義)의 징표 곧 구원받은 자의 표식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손으로 육체에 낸 흔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영적 의미가 중요하고, 그러한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갖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성경통독을 100번 한 것, 기도 중에 신비상태에서 하늘 궁정을 다녀온 것, 모든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마스터한 것, 교회를 위해 허리가 으스러지도록 봉사한 것, 1000명이나 전도한 것, 10평을 10만평으로 일군 것, 세상일 다 포기하고 신학공부 한 것 ··· 이런 것들로 교만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

셋째,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다(12).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와 같은 단어다. 구약시대에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언약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메시야가 올 것을 대망하였다. 그가 오면 다윗의 왕조가 재현되고 그의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1세기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왕국 개념은 다분히 정치적, 군사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메시아(그리스도)가 오면 그의 왕국이 건설될 것인데, 이방인들은 이에서 영원히 제외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너희는 아무리 무릎으로 기며 울고불고 매달려도 영원히 희망 없어”라는 태도였다. 이런 유대인들의 오만에 이방인들의 분노는 쌓여만 갔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무엇을 쌓아가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리 교회 교인 수가 10만 명이고, 땅 부지가 2000평이고, 국회의원·대학교수·의사·판사·변호사가 100명이라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넷째, 그들은 이스라엘의 백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12).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 개념이나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영적 특권(롬 3:1-2; 9:4-5)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을 소외시키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교회는 재산, 학력, 신분, 사회적 관계 등 육적 요소들로 인해 소외감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지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그들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낯선 사람들이었다(12). 유대인들은 자기의 조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복의 약속을 받은 민족이라는데 대해 큰 자랑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열두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들(창 17:1-14; 26:24; 28:13-15), 모세 시대에 출애굽 백성에게 주신 언약들(출 24:1-11),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영원한 메시아 왕국(삼하 7:16; 렘 31:31-34; 단 7:14)에 대한 언약들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들이 이방인들에게는 낯선 것들이었다.

여섯째, 그들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12). 이방인들은 세상에 태어나 살고는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 어떤 소망도 없고 참 신(神) 하나님도 모르는 가련한 자들이었다. 사람에게 소망은 안전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은 것으로서(히 6:19) 목적지를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제공해 주는 필수 기재인데,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소망이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알고 그분과 정상적 관계성 속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방인들은 그 출발점조차 갖지 못한 비참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과거의 참혹한 상태로부터 벗어났다. 과거에 자신들의 출신 성분이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들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38선처럼 이격된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이 가진 특권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의 피로 그들 모두를 자기 안에 들어오게 하였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한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로 연합된 것에 대해 바울은 특이한 비유로써 교회론적 진술을 시도한다. 그의 진술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암시해 준다. 그는 먼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어떻게 가까워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그의 요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육체로 양자 간의 화목을 이루어 내셨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출현의 결정적 요인에 대한 진술로서, 그것은 돈이나 학문 또는 인간의 열정이나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그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화평이시다. 각각의 배경이 어떠하든 그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화학적 결합을 이루어 내셨다. 그는 둘로 하나를 만들어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물어 버리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철폐하셨다. 여기서 “둘”은 이방인 그룹과 유대인 그룹을, “하나” 는 새로운 연합체적 인격으로서의 교회를,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은 양자 간에 켜켜이 쌓인 증오심을, “자기 육체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을,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던, 수많은 세부조항이 달린 율법을 가리킨다. 아무튼 교회의 중요한 본질 중의 하나는 하나됨 곧 통합성이다. 어떤 경우이든 교회의 통일성을 깨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무효화하는 반교회론적 도전행위이다.

그리스도의 율법 철폐 사역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첫째,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도 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고, “한 새 사람은 새로운 본성을 가진 3의 인격곧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 안에 나타난 최고의 걸작(傑作)으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용광로 안에서 빚어진 새로운 결정체다. 교회를 “한 새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인격을 가진 유기적 통일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이런 종말론적 인격적 유기체를 만들어내신 것은 자신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화평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 곧 유기적 통일체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셨고, 또한 이들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한 신앙 공동체가 되게 하셨다. 교회가 수평적-사회적 관계만 중요시하고 수직적- 신앙적 관계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16절 하반절에서 18절까지는 14-16절에 대한 주해적 설명이다. 그리스도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누적된 증오심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들 모두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것은 그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교회론적 연합체로서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단절된 자들이 아니다. 교회론적 “몸”으로서의 그들 안에 한 성령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시고, 교회를 위해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하시며, 교회가 아버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다.

우리의 본문은 에베소서가 교회론의 보물창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교회를 묘사 하는 “하나,” “한 새 사람,” “한 몸,”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라는 별칭들은 교회가 무엇이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 암시해 준다. 교회는 연합 공동체이며, 종말론적 제3의 인격 공동체이며, 유기적 통합 공동체이며,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신앙 공동체다. 이는 교회가 통일성과 인격성, 유기체성, 신적 거룩성을 본질로 하는 실재임을 보여준다. 교회가 이러한 실재가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다. 그리스도의 피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그리고 “한 몸”이 된 이 “둘”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화목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교회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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