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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대흑사병으로 인한 실크로드 붕괴와 오늘의 반성
중앙아시아 실크로드(Silkroad)를 가다(2)
2020년 03월 30일 (월) 14:52:54 최하영 박사 webmaster@amennews.com

최하영 박사 / Ph.D., 중앙아시아 15년 사역, 기아대책기구 사무총장 역임, 현재 ATEA 인준위원장 겸 국제지역연구위원장, GMS 우크라이나 선교사 및 체르니깁교회 담임, 저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유목민에게 나타난 천년의 교회 역사’

   
▲ 최하영 박사

오늘날 우리는 첨단 과학 기술로 인한 인공지능(AI)과 4차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시대에 살고 있다. 참으로 지구촌이 시공을 초월하여 인터넷 네트워킹(Internet Networking)함으로 인해 하나가 된 것 같다. 비행기 속도는 엄청 빨라져서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헬싱키(Helsinki)까지 비행시간이 8시간이 안 된다. 그 헬싱키에서 필자가 있는 키예프(Kiev)를 비롯하여 유럽의 중요도시를 2-3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래서 중국 후베이성 우한(Wuhan)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코비드19(Coronavirus: COVID-19)의 숙주나 매개체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세기에 발생한 전염병(Plague Pandemics)은 초원의 길(Stepp route)과 실크로드(Silkroad)따라 더디게 전파되어 20여년 어간에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이 전염병이 바로 그 유명한 대흑사병(大黑死病, Great Black Death)이다. 흑사병의 세균(Bacteria)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원인균으로 이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서 병을 옮겼다. 이 균에 감염된 사람은 약 6일간의 잠복기를 지나 흉부의 통증과 기침, 각혈, 호흡곤란, 고열을 호소하게 되며, 대부분 의식을 잃고 사망하였다. 내출혈로 인해 생기는 피부의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이라 하였다.

이 흑사병은 당시 몽골제국 원나라(Yuan Dynasty, 1271~1368)에서 시작되었다(M. W. Dols). 1334년 후베이성(Hebei Sheng)에서 흑사병이 번져 인구 90%가 사망하였다. 그 후 1348-54년 동안 장시성과 산시성, 후난성, 광둥성, 광시성, 허난성, 쓰이위엔, 몽골지역으로 번졌다. 당시 중국 인구 약 1억 2천만의 약 30%에 달하는 사람이 사망하였다. 고려 제29대 충목왕(1345~1348)이 1348년에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아마도 흑사병이였을 것이다. 한반도에까지 흑사병이 퍼졌던 것이다. 후베이의 흑사병이 실크로드따라 오가던 상인들에 의해 텐센산맥(Tian Shan)을 넘어 이슥쿨(Issyk-kul)의 네스토리안 공동체까지 옮겨갔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은 초원의 길을 따라 크림반도까지 전이되었던 것이다.

   

▲ Copyright © 2011-2020 by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campus.

이슥쿨 호수 부근에서 네스토리안의 공동묘지인 600여 개의 비석들 중 연도가 확인되는 432개의 비석들이 발견되었다. 1336년까지만 해도 한 해에 한두 개 정도였던 비석이, 1337-38년에는 32개, 1338-39년에는 72개에 달하였다. 그리고 1345년을 끝으로 더 이상 비석은 없었다. 이 시기의 비석들 가운데 흑사병으로 죽었다고 새겨진 것들도 있었다(D. Chwolson). 나중에 러시아 학자들도 그곳에서 발굴된 유골과 문헌자료들을 검토한 끝에, 이들이 흑사병으로 죽었다고 하였다(R. Pollitzer). 실크로드 초원과 오아시스(Oasis)따라 소규모의 공동체와 수도원을 이루며 살던 네스토리안들은 이 흑사병의 영향으로 상당히 심한 타격을 받았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해 실크로드의 경제기반까지 붕괴시켰다.

초원의 길은 발하시호(Balkhash Lake)와 아랄해(Aral Sea) 연안과 카스피해(Caspian Sea)연안을 지나 코카서스(Caucasus) 지방을 남하하여 크림반도(Crimea)까지이다. 1343년에 몽골의 킵착크 칸국(Kipchak Khanate, 1242-1502년) 군대가 크림 반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1347년 그 군인들 중에 흑사병으로 죽은 자들이 있었는데, 킵차크 칸국의 자니베크(Jani Beg, 1342–1357) 칸이 그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이탈리아 식민지인 페오도시야(Feodosia)의 성벽 너머로 던져 넣음으로써 일종의 생물학전을 시도하였다. 이에 페오도시야의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교역소 사람들 중 일부가 상선을 타고 흑해(Black Sea)에서 메시시나 시칠리아(Messina, Sicily)로 갔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의 선원 모두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흑사병이 확산되었다. 이어 1348년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아라곤 왕국(Kingdom of Aragon), 134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1350년 스칸디나비아와 발트해 국가, 1351년 러시아로 흑사병이 확산되었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의 총 인구의 30-60%인 7,500만-2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Jewish)과 외국인, 한센병(Leprosy) 환자, 거지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집단폭력 혹은 학살을 일삼았다. 특히 유대인들은 모세율법에 따라 자주 손을 씻어 흑사병에서 벗어났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렸다고 하면서 그들을 향한 학살이 극에 달하였다.

   
 

1347년 실크로드를 따라 남하한 흑사병은 트라브존(Trabzon)과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북아프리카로 번졌다. 1348년 가자와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1349년 안디옥, 메카, 모술, 1351년 예멘으로 흑사병이 번졌다. 흑사병 이전의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 명 정도로 흑사병 이후 세계 인구는 3억 5천만 명 정도로 거의 1억 명이 줄었다. 흑사병의 이전의 세계 인구로 회복하는 데는 300년이나 걸렸다.

당시 사람들은 이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오염된 공기가 문제라고 해서 강력한 향기를 내는 방향제를 몸에 지니고 다녔고 의사들은 코 부분에 방향제를 넣는 새의 부리와 비슷한 주머니가 달린 두건을 쓰고 치료에 임하였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코비드19로 인해 온 세계가 수십만명이 확진자가 생겼고 수만여명이 사망하였다. 오늘날 최점단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했는데도 아직도 코비드19에 대한 백신(Vaccine)은 없다.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보건대 아무리 문명이 발달되고 인터넷 바벨탑을 쌓는다 해도 늘 겸손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안에서 올바른 윤리적 가치와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 서로가 주님의 사랑으로 이 재앙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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