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무개(76세 추정) 씨는 2년 전에 가평 꽃동네에서 나왔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돈이라도 벌어 전북정읍의 여동생 집에 살고 있는 백살이 넘은 노모에게 부쳐줄 생각에, 재워주고 먹여주는 꽃동네를 나와 서울역 앞에 있는 쪽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원받은 최저생계비와 남대문 시장에서 번 돈을 꼬박꼬박 노모에게 보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돈마저 부칠 수 없다.

건강하던 다리가 관절염으로 부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다리만 뻗을 수 있는 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그는 40일을 밥도 먹지 못하고 오직 드링크제로만 연명했다. 그가 몸져 누워있을 때, 그래도 간간이 연락을 하던 여동생이 아프다는 말에 아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 집에 있는 노모가 염려스러울 뿐이다.

서울역 쪽방은 서울역 앞 대우빌딩과 최근 새로 지은 빌딩 숲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비록 두 평 남짓한 방들이 즐비하지만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있어서 쪽방은 영전(?)하는 곳이다. 하루 벌이로 돈을 버는 사람이나 최저 생계비를 다달이 받는 사람들에게나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그런 여유가 없는 노숙자들은 밤이면 바람 막을 곳을 찾아 지하도로 모여들지만 차디찬 시멘트가 뿜어내는 냉기를 온몸으로 견딜 수밖에 없다.

서울역에 상주하는 노숙자는 7백여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교회와 시민단체들이 제공하는 저녁식사시간이면 노숙자는 천여 명으로 불어난다. 인근 지역의 노숙자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 몰려들기 때문이다.

역전 파출소 장준기 경사는 “IMF보다 노숙자 상황이 나아졌다. 노숙자 대부분은 알코올중독자와 정신지체자들이 많고 가족들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파출소에서 신상을 파악하여 270여 통의 편지를 가족들에게 보냈지만 34명만 가족이 데려가고 나머지는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대표 문헌준 씨는‘거리 노숙’도 문제지만 ‘거리 노숙과 옥내 노숙을 반복하는’ 노숙자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숙자들 중 일부는 막노동을 통해 돈을 마련하면 여관, 사우나, 쪽방을 전전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노숙자로 전락한다.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말했다.

현재 노숙자 쉼터는 98년 당시 106개에서 73개로 줄어들었다. 노숙자의 수용인원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노숙자들도 쉼터 이용을 꺼린다. 까다로운 통제가 그들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춥더라도 거리에 노숙하는 편을 택하는 사례들이 발생한다. 

겨울 한파가 두려운 사람들은 도시의 노숙자만이 아니다. 태풍 루사의 피해를 입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수해민들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지난 10월 20일 강원도 영동지역에 200밀리미터가 넘는 집중호우로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집을 건축하지 못한 경우 컨테이너 박스에 살림을 꾸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파다. 동절기에 추위를 이기기 위한 난방시설이 제대로 있지 않아 수재민에게 절실한 것은 난방기구와 겨울 옷가지다. 여름철에 받은 옷들은 대부분 여름옷들이라 겨울 추위를 견디기에는 어려운 형편이다.

조현삼 목사(한국기독교봉사단 단장)는 “수해지역은 의류와 의료, 난방 기구와 옷가지는 물론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며 “강릉은 물론 동해와 김천 수해지역에 겨울 준비 상황이 어려워 자원봉사자들과 물품 지원이 지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교회와 단체들, 그리고 기독교기업들이 계속해서 돕고 있지만 여름철보다는 예산과 숫적인 면에서 필요한 분량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해마다 3백명의 동사자가 발생하는 겨울의 한파가 전국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거리마다 세모의 풍경을 즐기려는 인파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거리 한구석에는 우리의 이웃이 살을 에는 한파와 외로움에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