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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 ‘메시아’ 공연, 대림절에 풍성
교회연합에 이어 원당교회 성가대도
2019년 12월 09일 (월) 14:33:44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널리 알리는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이 올해도 교계에서 변함없이 개최되고 있다. 특히 성탄절을 앞두고 '메시아' 연주회가 더욱 큰 규모로 풍성해지고 있다. 최근의 메시아 공연은 규모와 수준이 더해지고 있다.

   
▲ 원당교회 메시야 연주 장면 

대림절 기간인 12월 초순에도 메시아 연주회 주최 및 여의도순복음교회 주관으로, 제52회 메시아연주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5일밤 개최됐다. 56교회, 320여명의 연합찬양대가 합창을 하고,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장 김홍기)가 협연한 이 음악회는 소프라노 박미자, 알토 정민호, 테너 정호윤, 베이스 김진호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독창을 맡아 했다. 반주는 장민혜 오르가니스트와 박지영 쳄발리스트, 올해 지휘는 윤의중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여의도순복음교회 베들레헴찬양대 지휘자)이 했다.

7일 밤엔 예장(합동측)에 속한 고양시의 원당교회가 설립 70주년을 맞아 정발산역 앞에 소재한 아람누리음악당 하이든 홀에서 메시아 연주회를 열었다. 이 교회의 시온, 할렐루야, 호산나 찬양대 등이 180명의 연합성가대를 구성하여 검정 양복과 화사한 핑크 드레스를 갖추고 대거 출연했다.

독창자로는 한나형 소프라노, 양송미 메조소프라노, 이인학 테너, 함석헌 베이스 등이 협연했고,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문영수 지휘자의 이끔으로 연주했다. 이날 '메시아' 연주는 시간 관계로 일부를 제외한 거의 전곡에 걸쳐했다. '메시아' 전곡 연주는 하기에 따라 3시간 이상도 걸린다.

이날 행사 전 자리를 거의 메운 청중 앞에 나타난 유선모 담임목사는 연주회를 해 오게 된 내력을 소개하고, 라틴어로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라고 외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교회는 5년마다 메시아 연주회를 가져왔다.

문영수 지휘자는 이날 인두염 등 몸이 불편한 데도 (휴식시간 포함) 약2시간에 걸친 연주를 무난히 이끌었다. 유선모 목사와 문 지휘자는 모두 총신대학교 출신이다. 유 목사는 기독교교육학과 학생이던 시절 음악에 관심을 갖고 특히 총신음악과를 주도했던 (고)김의작 교수의 합창과 지휘 강의를 들으면서 메시아 (전곡)연주회에 참가했고,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직접 교회에서 성가대를 이끌기도 했다.

'기독신문'에 따르면, 유 목사는 헨델의 메시아가 자신의 목회사역에 "교회음악의 틀을 잡아준 아주 중요한, 사역의 진수였다"면서 지금도 메시아 찬양곡이 목양실을 늘 감싸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메시아를 부르거나 듣다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겨워하거나 신앙을 회복하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원당교회는 1949년 미북장로교 소속 에드워드 캠프(Edward D. Camp, 한국명 감의도)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캠프는 역시 한국 선교사였던 앨런 포드 캠프 목사의 차남으로,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한 뒤 1937년 26세의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와 부분적인 독립운동을 돕다가 대전형무소와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한 뒤 미국으로 강제추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후 한국에 되돌아와 노방전도와 성경공부에 힘쓰면서 원당에 이 교회를 세웠다. 원당 교회는 지난 20여년간 무료급식과 이/미용봉사, 경로대학, 사랑의헌혈, 영세가정 생계지원 사역, 쉴만한 물가 도서관과 푸른초장 카페 등으로 섬김 사역에도 힘써왔다. 또 평신도 (중동)선교사 파송,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과 협력하여 무료 인공와우 시술 사업도 진행해 왔다.

헨델의 '메시아'란? 

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edrick Handel, 독일명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대표작인 '메시아'(HMV 56)는, 그의 친구이자 부유한 부동산 소유자로, 성공회 평신도였던 찰스 제넨스가 제임스왕 성경(KJV) 신구약의 메시아 관련 예언과 성구 등 본문을 엮어 만든 각본에다, 불과 24일만에 곡을 붙인 대작으로, 예언과 탄생, 수난, 부활/영생 등으로 엮어져있다. 원래는 수난절을 위해 쓰였으나 최근엔 대림절과 성탄절 때 주로 연주되곤 한다.

원래 독일 작센 지방의 할레에서 태어난 헨델은 이탈리아어 오페라에 능해 1715년 영국으로 귀화하여, 생애 74년중 47년간을 영국에 살면서 다양한 오페라를 써서 상연하여 일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갈수록 실패가 잦아졌다. 그의 오페라 '크세르세스(성경의 아하수에로 대왕)' 중 테너 아리아(영창=詠唱) '라르고(Largo)', 또 '리날도' 중 소프라노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등은 지금도 널리 불린다.

1737년 자신의 오페라 컴퍼니가 파산한 뒤, 1741년 헨델 자신이 완전 파산했다. 전통 오페라에 대한 대중의 환멸감과 헨델류의 귀족오페라에 맞선 '걸인 오페라(Beggar Opera, 1728)' 등의 등장, 경쟁자들에 의한 사보타지 음모, 뇌일혈로 인한 자신의 신체 마비 등으로 그야말로 '막장' 인생길을 걷고 있었던 것. '독일 바보(German nincompoop)' 쯤으로 불리던 그는 그해 4월 런던에서 작별 인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돌연 메시아에 관한 예언 및 성취 중심으로 제임스 왕 성경(KJV) 본문을 발췌/편집한 국교회 친구, 찰스 제넨스의 성담곡(聖譚曲) 가사를 받아들고 약 일년만에 오라토리오로 눈길을 돌린 뒤, 때마침 아일런드 더블린에서 열릴 자선음악회를 위한 작곡 부탁을 받은 헨델은, 사상 유례 없는 이 대작을 쓰게 되면서, 그의 생애도 전기를 맞는다.

그가 식음도 잊고 메시아 작곡에 전념하던 어느 날, 음식을 들고 들어간 하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방금, 내 앞의 온 하늘(천국)과 함께 위대하신 하나님 당신을 뵈었다고 생각한다!(I did think I did see all Heaven before me, and the great God himself.")"고 고백한 것. 당시는 합창곡 '할렐루야'를 쓰던 때로, 이때 그가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난 것으로 추정돼 왔다. 이처럼 '메시아'는 헨델 자신의 신앙 및 삶과 직결돼, 역사상 최상최고의 교회음악으로 서게 됐다.

헨델은 바흐처럼 평생 루터교인으로 지냈으나, 영국 채플로열 전속 작곡가로 있기도 했고, 독일의 하노버 공이 조지 1세로 등극한 뒤, 영국 왕실과 직결된 국교회에 거의 개입될 뻔 했으나, 국교회로 개종하지 않았다. 그는 왕년의 상전인 하노버 공이었던 조지 1세에게서 도주하여 영국으로 왔다가 얼마 후 런던으로 등극한 왕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물 위의 음악'을 써서 테임스 강상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메시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잉글런드가 아닌 아일런드 더블린에서, 교회가 아닌 세속홀에서 초연됐다. 헨델은 영국 교계에 식상한 나머지, 귀족에게서 눈길을 돌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사실 헨델은 앞서 첫 오라토리오 '에스더'를 작곡해 발표했다가 교계의 분노를 샀다. 마땅히 성당에서 연주될 음악을 극장에서 공연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만 왕실만은 그의 음악을 반겨주곤 했다.

1739년에도 '애굽의 이스라엘'을 써서 상연 광고를 하고 있었으나 교계의 방해로 무산됐다. 동시대의 동료 교회작곡가 바흐도 평소 성경에 능했지만, 헨델도 "나는 성경을 자주 잘 읽어왔다"면서 자신도 웬만한 주교만큼이나 성경을 잘 안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극빈의 처지여서, 채무자들이 그를 감옥에 쳐 넣겠다고 협박했다.

1742년 4월 13일은 더블린에서 메시아가 초연된 날이었다. 그날 연주장소인 피시앰블 스트릿 뮤직홀엔 700여명이 모여 좌석이 모자라서 나머지 관객은 서 있어야할 만큼 초만원을 이룬 결과, 총400파운드의 자선금을 모아, 142명의 죄수들을 방면할 수 있었다. 이날 100명의 추가관객들이 설 자리를 위해 신사들은 칼을 차지 말고, 숙녀들은 속에 버팀대를 넣은 둥근 후프스커트를 입고 오지 말도록 사전 당부되기도 했다(그후 음악회에선 후프가 인기없는 패션이 되고 말았다).

이 음악회를 방해하려고 당시 성 패트릭 대성당의 주임사제이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였던 조너던 스위프트가 애당초 자기 성당 음악인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방해작전을 펼쳤으나, 여의치 못했다. 이 초연 후 '메시아'가 그후 콧대 높은 런던에서 공연되기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다.

런던 교계는 여전히 '메시아' 공연 반대 기미가 있었으나, '할렐루야' 합창 서두에서 왕이 경의를 표하려고 기립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흐지부지되고 잠잠해져 버렸다. 그후 헨델은 죽기까지 거의 사순절마다 총30회의 '메시아' 연주회를 세속 장소에서 손수 지휘하여 공연했으며, (국교) 성당에선 단 한 번 브리스톨 대성당에서 연주했다. 그 연주회엔 바로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도 참석했었다. 웨슬리는 훗날 "청중이 설교 때처럼 진지하게 듣는 음악회를 처음 봤다"고 술회했다.

헨델은 1759년 부활절 전날, "나의 좋으신 하나님, 그 분의 선하신 주님 곧 구세주를 그분의 부활의 날(즉 그해 부활절)에 뵙기를"이라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에서 뵈려고 숨졌다. 그의 절친 한 명은 "그는 착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갔던 그대로 죽었다"며 "진정한 의미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자기 사명을 다했고, 온 세상에 완전한 사랑(자선)의 본이 됐다"고 말했다.

'악성' 베토벤은 헨델 '메시아'의 26번b곡인 '그분이 채찍에 맞아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를 직접 손으로 베끼면서 감동되어, "헨델의 무덤 앞에 모자를 벗고 무릎꿇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생시에 헨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바 있다.

베토벤은 1827년 죽기 몇 달전, 핸델악곡전집(아놀드 판)을 선사받고, "영광스럽다!"고 감탄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의사에게 "내게 도움될 만한 의사가 계신다면, 그 분의 이름은 '기묘자'(즉 메시아)로 불리실 것이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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